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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산행

2016.1.23 통영.미륵도 미륵산

일자: 2016.1.23

산행코스: 용화사~띠밭등~미래사~미륵산~현금산~구망산~범왕산~산양읍사무소

인원: 홀로

GPS거리: 8.62  널 널/4시간10

 

부산 서부버스터미널에서 통영시외버스터미널로 이동하고

통영시외버스터미널 근처 식당에서 아침먹고,

이후 207번 시내버스를 타고 버스종점인 용화사 광장에서 하차한다.


산행준비를 마치고

용화사로 향하는 좌측 포장길로 오르면서 산행 시작이다.


용화사 해월루(海月樓)


용화사에는 일주문이 없다.

해월루 옆에 나란히 세운 두 개의 돌기둥이 일주문 역할을 한다.


용화사(龍華寺)

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 본사인 쌍계사의 말사이다.

신라 제27대 선덕여왕 때(632~646) 은점화상(恩霑和尙)이 초창하여 정수사(淨水寺) 라고 불렀다.

그 뒤 고려 원종(元宗) 원년(1260)에 큰 비가 내려서 산사태가 나자 전체의 가람이 쓸려 무너진후

3년 뒤 자윤(自允), 성화(性和), 두 화상이 자리를 옮겨 짓고, 절 이름을 천택사(天澤寺)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그러다가 조선 인조(仁祖) 6(1628) 화재로 폐허가 된 것을 벽담선사(碧潭禪師)

현재의 자리에 새로 중창후 용화사로 개칭하였다.

벽담 스님이 절 이름을 고친 데에는 그만한 사유가 있었는데, 즉 화재로 말미암아 잿더미가 된 뒤

절을 중창하기 위해 미륵산 제일봉 아래에서 칠일칠야(七日七夜)동안 미륵존불께 기도를 드렸다.

이후 마지막 회향날 밤에 한 신인(神人)이 나타나 이르기를, "나는 당래교주미륵불(當來敎主彌勒佛)이니라.

이 산은 미래세에 용화회상(龍華會上)이 될 도량이니 여기에 가람을 짓고 용화사라 하면

만세(萬世)에 길이 유전(遺傳)하리라."라고 하였다.

이에 이곳에 새로 터를 잡아 절을 짓고 절 이름을 용화사(龍華寺)라고 하였다 한다.


보광전(普光殿)/ 경남유형문화재 제249


정면 3칸 측면 2칸의 오량구조로 다포계 맞배지붕 건물로써

아미타삼존불(阿彌陀三尊佛)을 모신 전각이다.

아미타삼존불 뒤에는 후불탱화, 우측 벽면에는 신중탱화가 봉안되어 있다.

아미타불은 서방 극락정토(極樂淨土)의 주재자이다.

아미타여래(阿彌陀如來), 줄여서 미타(彌陀)라고도 한다.

또 아미타불을 무량수불(無量壽佛), 무량광불(無量光佛)이라고도 한다.

극락전, 아미타전, 미타전, 무량수전, 무량광전 등은 바로 아미타불을 주불로 모신 전각이다.

아미타불의 결인(結印)은 아홉 종의 미타정인(彌陀定印) 가운데 한 가지나 묘관찰인(妙觀察印)을 취하게 되며

좌우 협시보살로는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 또는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을 두고 있다.

아미타불은 수행 중에 모든 중생을 제도하겠다는 대원(大願)을 품고 성불하여 극락정토에서 교화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중생들이 아미타불을 간절하게 염송하기만 해도 죽어서 극락세계에 들어간다고 한다.


불사리4사자법륜탑


우리 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고대 아쇼카 양식의 원주석탑으로 진신사리 7과가 봉안되어있다.


큰법당(대설법전)


팔모정 형태의 종루


종루의 편액 글씨는 추사체의 대가 성파(星坡) 하동주(河東洲, 1865~1943)가 썼다.


효봉선사 석조좌상


미륵산 용화사(龍華寺)와 미래사(彌來寺)는 우리나라 선종의 거봉인 효봉스님과 인연이 깊다.

효봉스님은 한국전쟁 때 용화사로 피난을 와 산내 암자인 관음사와 도솔암에서 공부를 했으며,

이후 스님의 상좌인 구산스님이 1954년 인근에 미래사를 창건해 다시 이곳으로 옮겨 주석했다.

구산, 미산, 보성, 법정, 법흥, 종욱스님 등이 효봉스님의 제자들이다.


용화사 참배를 마치고, 절 뒷편 넓은 임도를 따르고


이후 임도는 지그재그로 이어지는데, 임도가 굽어지는 지점마다 곧바로 오르는 등로가 있다.


띠밭등


공원 같은 넓은 터인데, 띠밭등이란 이름은 예전에 이곳에서

""가 많이 자랐다고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는 벼목 화본과의 여러해살이 풀인데, 김 등을 널어 말릴 때

사용되는 깔개를 만드는 재료로 섬사람들에게는 유용한 식물이었다.

띠풀로 엮어 만든 초가집을 모옥(茅屋)이라 불렀었다.


머리 위로 케이블카의 캐빈이 쉴세없이 오르내리고 있다.


지난 2008 418일 개통한 이곳 미륵산 관광 케이블카는 국내 최장인 1,975m의 길이라고 한다.

미륵산 케이블카는 곤돌라(8인승) 형태로 상부에서 하부역사까지 2km 거리에 소요시간은 15분 정도,

전부 48대라는데 동시에 움직이는 건 절반 정도라고


미래사 방향으로 진행한다.


미래사로 가는 길은 산허리를 도는 길이다.


한산만 일대


임도/갈림길


미래사(彌來寺)


미륵산 남쪽 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으며 미륵의 섬에 미륵 부처님께서

오실 절 이라 하여 이름 지었다고 한다.

1954년 전 승보종찰 방장 구산스님께서 근세의 큰 스승이었던 효봉선사를 모시기 위해

두 칸의 토굴을 지은 것을 시작으로 법당을 낙성하였는데, 1975년 미륵불상 조성을 시작으로

19776월 토굴중수의 불사가 이루어졌으며 1983년에 대웅전을 중건하였다.


삼회도인문 三會度人門)(三會度人門)

三會度人門)三會度人門)三會度人門)


"3회에 걸쳐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설법하신다" 는 뜻이다.


대웅전


자항선원(慈航禪院)과 도솔영당


영매당(요사채)


스님들이 주거 공간인 요사채다.

영매당 좌측 끝에 황매실이란 현판이 걸려있는데, 황매실은 주지실이다.


범종루


亞자형 누각으로 이름난 걸작이다.


불유정


미륵산의 정기를 흠뻑 머금고 있는 약수터다.


불영담과 자항교.


자항교에는 여러 가지 불교의식 문양과 코끼리 조각상이 새겨져 있는데


석가모니의 어머니인 마야부인이 흰코끼리가 옆구리로 들어오는 꿈을 꾼 뒤에

석가모니를 낳았다는 전설을 상징하는 불교정신이 서린 상이라고 한다.


자향교에서 바라본 미래사(彌來寺)


부도탑과 비문


미륵도 달아길이 시작된다.


룰루랄라~


반듯하게 이어지는 길은 점차 갈수록 가팔라지기 시작한다.


목제데크 계단을 오르고


당포해전 전망대



욕지도. 두미도가 잘 보여야 하는 장면인데, 오늘은 조망이 좋지가 않다.


삼덕리 일대


박경리묘소 전망쉼터로 간다.


마음  -박 경리-



미륵산 정상부가 지척이다.


미륵산/봉수대


미륵산(彌勒山) 정상석(미륵산 461m)


미륵도 중앙에 우뚝 솟은 위풍당당한 산으로 산림청선정 100대 명산중의 하나다.

미륵산(彌勒山)을 용화산(龍華山)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이 산에 고찰 용화사가 있어

그렇게 부른다고도 하고, 또 이 산은 미륵존불(彌勒尊佛)이 당래(當來)에 강림하실

용화회상(龍華會上)이라 해서 미륵산과 용화산을 함께 쓴다고도 한다.

미륵산은 그리 높은 산은 아니지만 울창한 수림 사이로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이 있고

갖가지 모양의 기암괴석과 바위굴이 있으며 고찰과 약수, 봄 진달래와

가을 단풍이 빼어나 명산으로서의 덕목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산정에 오르면 한려해상의 다도해 조망이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우며,

청명한 날에는 일본 대마도가 보인다.


날이 맑으면 이렇게 보이는데.../ 매물도 방향


오늘은 이렇다.


날이 맑으면 이렇게 보이는데.../ 한산도 방향


오늘은 이렇다.


날이 맑으면 이렇게 보이는데.../ 통영 방향


오늘은 이렇다.


통영이란 명칭은 삼도수군통제영(三道水軍統制營)을 줄인 말이다.

선조37(1604) 통제사 이경준이 두룡포(지금의 통영시)로 통제영을 옮기면서

통영의 명칭이 여기에서 시작되었다.

또한 충무시(忠武市)의 본 지명은 통영군이고, 통영군에서 시로 승격되면서

충무공(忠武公)의 시호를 따서 충무시라 하였으며, 그 후 시,군 통폐합 과정에서

다시 “통영시”라는 명칭으로 환원 된 것이다.


거제도


장평리에서 지금은 폐교가 된 해양분교가 있는 해간도로 연결된 작고 예쁜

해간교 너머로 긴 다리가 2개 보이는데, 앞에 보이는 다리는 지난 1971년에 준공된

거제대교(길이 740m, 10m)이고, 조금 북쪽인 뒤쪽의 다리는 1999년 세워진

길이 940m, 20m의 왕복 4차선 교량인 '신거제대교'이다.


산 아래 용화사


미륵산 정상석 부위는 케이블카를 타고 온 관광객들로 인산을 이루고

번잡함이 싫어 곧바로 미륵치로 향한다.


산불초소가 있는 방향이다.


바위암봉 통과하고



아래로 뚝 떨어진다.


가야할 산줄기/ 그 너머로 사량도가 보인다.


사량도 (蛇梁島 통영시 사량면)

조선초기의 사량도 지명은 ‘박도’였으며, 두 섬은 ‘상박도’와 ‘하박도’,

이를 아울러 일명 ‘상하박도’라고 하였다.

상도와 하도 두 섬 사이를 흐르는 물길이 가늘고 긴 뱀처럼 구불구불한 형세를 이룬 것에서

유래하여 이 해협을 사량이라 일컬었는데, 당시의 수군진이 육지로부터 여기로 옮겨와 설치되면서

이 사량지명을 따서 사량만호진이라 칭하게 된 것이다.

그 후 진영이 더욱 번성해지자 점차 원래의 이름인 박도 보다는 사량진, 사량 등으로

일컬어지게 되었으며, 조선후기에 이르러 결국 이러한 군영의 이름이 섬지명으로

전용되어 보편적으로 사량섬, 사량도라고 부르게 된 것으로 추측된다.


또 고도가 떨어진다.


미륵치


등산로 안내도에는 이곳에서 가는 길이 여섯 갈래로 나눠지는데,

직진하여 현금산으로 향한다.


지나온 미륵산


암릉을 우회하여 올라서니 우측에 넓은 우회길이 있으나 능선길로 직진한다.


암릉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암릉 끝봉(×331.5)


돌탑이 있는 암봉은 바로 앞이 낭떠러지다.


아래로 보이는 마을은 야소골이다.


야소골/ 통영시 산양면 남평리 상촌마을의 옛지명이다.

이 마을에서만 국회의원, 판검사, 변호사  14명이 배출되었고2010 SBS신년특집 다큐

‘야소골 출세기 100년’제목으로 방송을 탄 유명한 곳인데, 풍수지리적으로 명당이란다.

옹기종기 모여있는 집 뒤편 비탈의 다랭이논, 현금산 산줄기가 감싸고 있는 마을은 한폭의 그림이다.


우측아래로 로프가 걸려있는 등로를 따르고


바위굴을 지난다.


다시 선명한 우회길을 만나고


곧바로 안부인데, 등산로 안내판에는 현금산고개라고 적혀있다.


다시 현금산을 향한 오르막길이 시작되고


지나온 산줄기


KBS중계소 도착전 좌측 바위암봉에 자리잡고...


간식겸점심을 해결하며 20분간 쉬었다 간다.


울타리를 두른 KBS중계소 시설물을 우회하고


현금산(×338.1) 정상부


위험 접근금지라고 표기된 철탑이 있는 곳에, 기반이 묻힌 지적삼각점이 있는데

통영시의 등산안내도에는 이 봉우리를 ‘현금산’이라 표시했다.


바로 아래 통영대교가 있고, 통영시가지와 통영항이 잘 내려다보인다.


통영대교에서 우측으로 이어진 좁은 바다가 길이 1,420 m. 너비 55 m,

수심 3 m에 이르는 이른바 통영운하인데, 통영반도의 남단과 이곳 미륵산이 있는

미륵도(彌勒島) 사이의 좁은 수도(水道)를 말한다.



본래 이 좁은 목은 가느다란 사취(砂嘴)로 반도와 섬이 연륙되어 바다가 막혀 있었다.

한산대첩 때에 이순신 장군의 수군에게 쫓긴 왜선들이 이 좁은 목으로 도망쳐 들어왔다가

퇴로가 막히자 땅을 파헤치고 물길을 뚫어 도망쳤다 하여 이곳을 판데목[鑿梁]이라고 부르는데,

왜군들이 도망칠 때 아군의 공격으로 무수히 죽었으므로 송장목이라고도 한다.


미수체육공원 갈림길


구망산(×318.8)


국립지리원 지도에 ×318.8으로 표시된 봉우리인데,

통영시 행정지도에는 구망산으로 표기되어 있다.


세포고개 갈림길


전망바위/ 널찍한 바위 밑은 낭떠러지다.


전방에 우뚝솟은 암봉인 범왕산이 잘 조망된다.


안부를 지나고


뒤돌아본 구망산(×318.8)


범왕산(×303.1)


우뚝하게 솟은 암봉으로서 역시 국립지리원 지도상 303.1봉인데,

통영시 행정지도상으로 범왕산이다.


내려가야할 능선


지나온 능선


서서히 고도가 뚝 떨어진다.


능선갈림길


능선길은 직진으로 이어지지만 등로는 좌측으로 내려서게 되어있다.


이후 급경사의 내리막길이 계속되고


야소골 둘레길<박경리 묘소>갈림길


운치있는 대나무숲을 지난다.


마을길로 내려서고


산양읍사무소 담장 골목길을 따라서


산양읍사무소/버스정류장이다.


산양읍사무소 도로 건너편에 희망봉으로 오르는 등로가 있다.


한려해상 바다백리길 안내판


산행마무리하고

잠시후 도착한 534번시내버스를 타고 통영시외버스터미널로 이동하고,

이후 아침에 진행한 순서를 역으로 부산집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