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經典講解

무비스님의 천수경강해-20

무비스님의 천수경강해-20

 

 

准提功德聚(준제공덕취) 寂靜心常誦(적정심상송)

一切諸大難(일체제대난) 無能侵是人(무능침시인)

天上及人間(천상급인간) 受福如佛等(수복여불등)

遇此如意珠(우차여의주) 定獲無等等(정획무등등)

南無七俱脂佛母大准堤普薩(나무칠구지불모대준제보살) (3)

 

淨法界眞言(정법계진언)

옴 남(3)

護信眞言(호신진언)

옴 치림(3)

 

觀世音普薩(관세음보살) 本心微妙(본심미묘) 六字大明王眞言(육자대명왕진언)

옴 마니 반메 훔 (3)

 

准提眞言(준제진언)

나무 사다남 삼먁삼못다 구치남 다냐타

옴 자례주례 준제 사바하 부림 (3)

 

我今持誦大准提(아금지송대준제) 卽發菩提廣大願(즉발보리광대원)

願我定慧速圓明(원아정혜속원명) 願我功德皆成就(원아공덕개성취)

願我勝福遍莊嚴(원아승복변장엄) 願共衆生成佛道(원공중생성불도)

 

如來十大發願文(여래십대발원문)

願我永離三惡道(원아영리삼악도) 願我速斷貪瞋癡(원아속단탐진치)

願我常聞佛法僧(원아상문불법승) 願我勤修戒定慧(원아근수계정혜)

願我恒隨諸佛學(원아항수제불학) 願我不退菩提心(원아불퇴보리심)

願我決定生安養(원아결정생안양) 願我速見阿彌陀(원아속견아미타)

願我分身遍塵刹(원아분신변진찰) 願我廣度諸衆生(원아광도제중생)

 

 

發四弘誓願(발사홍서원)

衆生無邊誓願度(중생무변서원도) 煩惱無盡誓願斷(번뇌무진서원단)

法門無量誓願學(법문무량서원학) 佛道無上誓願成(불도무상서원성)

自性衆生誓願度(자성중생서원도) 自性煩惱誓願斷(자성번뇌서원단)

自性法門誓願學(자성법문서원학) 自性佛道誓願成(자성불도서원성)

 

發願已歸命禮三寶(발원이귀명례삼보)

南無常住十方佛(나무상주시방불)

南無常住十方法(나무상주시방법)

南無常住十方僧(나무상주시방승) (3)

 

淨三業眞言(정삼업진언)

옴 사바바바 수다살바 달마

사바바바 수도함 (3)

 

開壇眞言(개단진언)

옴 바아라 놔로 다가다야 삼마야 바라베 사야훔 (3)

 

建壇眞言(건단진언)

옴 난다난다 나지나지 난다바리 사바하 (3)

 

淨法界眞言(정법계진언)

羅字色鮮白(라자색선백) 空點以嚴之(공점이엄지)

如彼髻明珠(여피계명주) 置之於頂上(치지어정상)

眞言同法界(진언동법계) 無量衆罪除(무량중죄제)

一切觸穢處(일체촉예처) 當加此字門(당가차자문)

나무 사만다 못다남 남(3)

 

 

천수경 오늘은 준제주, 준제주를 할 차례입니다.

천수경 안에 있는 준제주를 수지 독송하고 주문으로 외우는 그런 주력공부를 하시는 분들도 간혹 있습니다.

천수경에는 대다라니가 중심이지만은 준제주도 사람들이 좀 관심을 갖는 것이고,

그 다음 뒤에 나오는 관세음보살 육자대명왕진언이라고 옴 마니 반메 훔 이라고 하는 것이 곧 나오는데

옴 마니 반메 훔도 관세음보살님의 정신이 담겨있는 그런 주문이라서 상당히 중요시 여기는 진언 중에 하나죠.

 

准提功德聚(준제공덕취) 寂靜心常誦(적정심상송)

准堤眞言(준제진언)은 모든 공덕이 다 모여 있다.

공덕의 무더기다 그랬습니다.

그래놓으니까 준제진언도 외우죠.

중생들은 말하기가 무섭게 말에 따르고, 말에 떨어지고,

말을 집착하는 그런 습관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에는 그렇게 광고가 많이 나돌고 선전을 그렇게 많이 하는지도 모르죠.

저런 선전 저런 광고에 누가 속겠나 싶지만은

또 그런 광고 그런 선전에 약한 것이 또한 사람이기도 하니까요.

그렇다고 준제주가 그런 시중에 떠도는 광고나 선전문과 같다는 뜻은 아닌데,

준제주의 공덕은 온갖 공덕의 무더기다 이런 뜻이죠.

 

寂靜心常誦(적정심상송)

고요한 마음으로 아주 마음을 가만히 가라앉혀가지고 잡념 없이 이런 뜻이죠.

잡념 없는 마음으로 항상 독송할지니라.

 

一切諸大難(일체제대난) 無能侵是人(무능침시인)

그렇게 하면은 일체의 모든 큰 어려움들이 무능침시인 능히 준제주를 외우는 사람을 침범하지 못할 것이다.

내가 이제 주문이야기를 하면서 즉심시불이라는 화두를 잘못 알아들어서

짚신이 부처라고 했어서도 얼마나 정성스럽게, 얼마나 일심으로 하느냐에 따라서

그게 뭐 화두 같지도 않은 화두지만은 충분히 도를 이룬 그런 사실이 있고,

또 도를 이루는 데는 아무 관계가 없다. 이런 말씀을 몇 번 드렸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신묘장구대다라니가 좋고, 무슨 준제주가 좋고, 옴 마니 반메 훔이 좋고,

어떤 이들은 혹 광명진언이 좋다 해서 광명진언을 하는 이들이 있고요,

혹은 아비라 기도 옴 아비라 훔 캄스바하 아비라 기도를 또 열심히 하는 이들도 있고,

능엄주를 하는 이도 있고 하는 사람의 마음자세에 달려있는 것이지

어느 주가 특별히 좋다고 저로써는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무슨 주문이든지, 무슨 진언이든지, 무슨 다라니든지 다 열심히 하면

거기에 따르는 공덕은 충분히 설명한대로 광고한 대로 있게 마련인 것입니다.

제대로만 하면은요.

 

天上及人間(천상급인간) 受福如佛等(수복여불등)

천상에서나 인간세상에서 복을 받는 것이 부처님과 똑같이 동등하게 받을 것이다.

부처님 복 만치 준제주를 잘 지니고 마음속에 간직해서

준제주의 정신을 실천하면은 부처님 복과 같이 그렇게 복이 많을 것이다.

 

遇此如意珠(우차여의주) 定獲無等等(정획무등등)
이 여의주를 만남으로 해서 결정코 무등등(無等等) 같은 것이 없는,

최상, 비교할 수 없는 큰 깨달음을 얻게 될 것이다. 이런 의미가 되겠죠.

준제주는 아직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놓고 정법계진언(淨法界眞言) 옴 남

법계를 청정히 하는 진언 옴 남

옴은 모든 법문의 모체다, 축복이다, 섭복이다, 찬탄이다,

별 별 의미를 다 가지고 있는 진언이란 말씀을 드렸습니다.

의미에 보면 옴 자같이 많은 능력과 뜻을 가지고 있는 것이 없어요,

제일 낫다고 볼 수 있겠어요.

남자는 이제 화대의 종자라 그렇습니다,

화대의 종자 화대의 종자는 불씨라는 뜻이겠죠.

불씨는 어떻습니까? 성냥불 하나가 온 수미산을 다 태우고도 남죠.

그게 씨입니다. 씨의 특징인데, 특히 불씨의 경우 더욱더 그렇습니다.

 

남자는 옴 남 할 때 남 그런 의미를 가진 화대의 종자다 그랬습니다.

화대의 종자여, 화대의 종자니까 그것은 곧 보리문이기도 하다 그런 뜻입니다.

화대라고 하는 것은 온갖 번뇌를 다 태운다는 그런 의미고

그것은 곧 깨달음의 문으로 통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가 진언 속에 포함 되어요.

남자 화대의 종자다 하는 그런 뜻만 이해하시고 그것은 보리문으로

온갖 번뇌를 다 태우니까 보리문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이렇게 보면 됩니다.

 

호신진언(護信眞言) 옴 치림
호신진언, 몸을 보호하는 진언 하는 진언 옴 치림인데,

쓰림이라고 본래 발음은 그렇습니다.

옴 자의 뜻은 똑 같고, 쓰림은 妙吉祥種(묘길상종)이다.

그렇습니다. 문수사리 만주신리 이렇거든요.

쓰리 여기서 쓰림, 옴 치림 이라 표기가 되어 있습니다만 묘길상의 종자입니다.

모두 통하고 있어요.

 

천수경의 첫머리에 정구업진언의 수리 수리 마하수리 하는 것이나,

만수스리나 하는 것이나, 치림 이라고 하는 것이나 전부 그 어원을 찾으면 똑 같습니다.

그래서 묘길상의 종자다.

몸을 보호하는데는 무엇이겠습니까?

() () () 삼업이 길상스럽게 될 때 그때 내 자신을 잘 보호합니다.

 

내 자신을 보호하는 것은 말 길상스러워야 되고, 행동이 길상스러워야 되고,

생각이 길상스러워야 되고 불보살처럼 항상 그렇게 길상스러운

身신口구意의 삼업을 가진 사람은 몸이 자신을 보호되게끔 되어있습니다.

마음과 몸과 말을 함부로 하니까 침해를 받죠.

당연히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게 옴 치림의 뜻이고요.

 

관세음보살(觀世音普薩) 본심미묘(本心微妙) 육자대명왕진언(六字大明王眞言)

옴 마니 반메 훔

 

관세음보살 육자대명왕진언 옴 마니 반 메 훔

티벳 불자들은 오로지 옴 마니 반메 훔,

이거 하나만 열심히 외우는 것으로써 정진을 삼고, 수행을 삼고 불교 공부를 삼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그렇지는 않지만 거의 99% 티벳 불자들을 그렇게 하는 것 같아요.

옴 마니 반메 훔, 옴 마니 반메 훔

 

중국불교에 가면 아미타바 아미타불을 부르는 그게 불자들끼리 인사고,

티벳이나 네팔, 부탄 같은데 정통 티벳 불교가 전해진 곳에서는 옴 마니 반 메 훔 이렇게 하면

불자들끼리는 다른 말은 안 통해도 그 말 하면 불자들끼리는 최상의 인사가 되거든요.

옴 마니 반메 훔 하면 그대로 좋는 인사가 됩니다,

아미타불, 아미타바 하면 중국에서는 좋은 인사가 되듯이 그렇더라고요.

 

옴 마니 반메 훔

옴 자는 설명하대로고 마니는 여의주, 마니주라는 그런 뜻입니다.

결국은 우리 마음을 뜻하는 것이고

반메, 파드메 라고 하는 연꽃이라는 뜻인데, 연꽃 파드메 연꽃을 표현하는 것이 몇 가지가 있는데

청연도 있고, 홍연도 있고, 백련도 있고 그렇죠.

 

법화경은 백련을 뜻합니다.

백련경이라 이렇게도 하고, 그런데 파드메 라고 하는 것은 홍연을 말합니다.

그래서 홍연이다, 백련이다, 거기에 색깔에 큰 의미는 있지는 않지만

연꽃이 불교의 꽃이고 부처님의 마음, 부처님의 사상, 정신을 연꽃 하나로 다 표현이 되죠.

이것은 곧 우리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옴 자나 마니나 반메 나 전부가 궁극적으로는 우리 마음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렇게 이해를 해도 하나도 틀리지 않습니다.

연꽃도 결국은 우리 마음이 아무리 중생으로 이렇게 산다하더라도 근본정신은 청정하기 으를 때 없고,

또 마니주라고 하는 것, 여의주라고 하는 것이 세상에 뭐가 여의주겠습니까?

우리 마음 같이 뜻대로 되는 것이 없죠.

 

마음은 제일 뜻대로 됩니다.

생각한대로 마음은 되어요,

그러니까 속뜻은 전부 우리 마음을 표현 것이고 옴도 마찬가지입니다.

훔은 이구청정이라고 해서 때를 여읜 본래 청정한 자리,

역시 어떻게 보면 마음자리다,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훔은 이구청정이면서 성스러운 말의 종자다 이렇게도 표현해요.

성스러운 말은 바로 훔에서 나온다.

왜냐하면 마음이 아무 때가 없는 청정한 본심의 자리, 그것이 그대로 성스러운 말이

거기서 나올 수 있으니까 그래서 성스러운 말의 종자가 훔 이다.

그리고 또 표면적인 뜻은 이구청정이다 이렇게 표현합니다.

 

준제진언(准提眞言)

그 다음에 준제진언이 나오는데 준제보살의 진언이다.

 

나무 사다남 삼먁삼못다 구치남 다냐타 옴 자례 주례 준제 사바하 부림이거죠.

외울때는옴 자례 주례 준제 사바하 부림이것만 열심히 외우는 것으로 되어있습니다.

나무는 귀의한다, 받든다는 이런 뜻이고 사다남은 널리 두루 계시는 칠천만억 이런 뜻 입니다.

칠천만억 그다음엔 정등각 그런 뜻 이죠.

 

삼먁삼못다 -칠천만억 삼먁삼못다 부처님 이죠.

정등각, 칠천만억 부처님 그런 뜻입니다.

구치남은 본래 꽃띠남인데 이게 천만억 이란 뜻입니다.

저 앞에는 칠이라는 그런 의미가 포함되어있고 여기는 이제 천만억 이라고 하는

그런 뜻이 포함되어서 합해서 칠천만억 불모라는 그런 뜻이 되죠.

 

다냐타 곧 설해 가로되옴 자례준제 사바하 부림

칠천만억부처님께 귀의하며 받드옵니다. 이런 의미가 되겠죠.

그래서 한 부처님께 귀의하는 것보다 준제진언 그 자체 속에 칠천만억 부처님께

귀의하는 것으로 되어 있으니까 그래서 준제진언을 외우는 경우가 많이 있어요.

 

옛날 스님들은 진언 외우는 것을 주력하는 스님이다 이렇게 말했어요.

주력을 한다. 주문을 외운다. 이런 뜻이겠죠.

주력을 하는 스님들이 더러 있었어요. 심심치 않을 정도로 있었습니다.

뭔가 자기 업장을 녹이고 어떤 신비한 어떤 힘을 좀 얻고 싶기도,

자기 업장을 녹이고 싶기도 하고, 자기의 현재 인생을 다른 어떤 삶으로 전환시키고 싶은

그런 마음에서 제3의 힘을 은근히 바라는 심리가 주문을 외우도록 하는 것이 아닌가?

주문에는 대게 그런 어떤 분위기가 사실은 조금은 있거든요.

그런데 불교를 그렇게 보는 것은 바람직한 불교라고 보기가 어렵습니다.

바람직한 불교는 대승불교 또는 선불교에서 아주 화반탁출 모든 것을

다 들어 내놓고 그야말로 손가락을 하나 세우든지, 꽃을 하나들어 보이든지,

주장자로 한번 내리치든지, 보고 듣고 하는 이사실의 어떤 진실성,

그 위대성 여기에 촛점을 맞추는 있는 것이죠.

그것이 우리의 생명이고 또 불교의 생명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옴 자례주례 준제 사바하 부림

옴 자례주례 이것은 뭡니까

준제진언의 진정한 모습인데, 준제진언을 외우면서

옴 자의 뜻은 어디가나 늘 한결같습니다.

한결 같는데 자례주례는 동회, 유행존 움직이고

또 돌아가고 행하는 그런 동회존(同回尊), 유행존(流行尊)이시여

 

준제라고 하는 것은 주례준제 이렇게 하면 두상정계존(頭上淨界尊)이시여,

이런 의미가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 다음에 이제 묘의청정존(妙意淸淨尊)이시여, 유행존이시여, 두상정계존이시여, 묘의존이시여

그러니까 자례주례 준제 이렇게 하고 사바하는 성취되고,

부림하는 것은 정륜왕의 종자. 가장 높은 이마라고 하는 그런 의미인데

이마 위에 있는 법문을 상징하는 내용의 종자다.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부림이라고 하는 게요,

부림이라고 하는 것은 또 다른 진언에도 더러 붙어 있기도 하죠.

다시 말씀드리면 옴 동회 유행존이시여, 두상정계존이시여, 묘의청정존이시여 사바하

그리고 부림은 종자니까, 사실은 정륜왕의 종자니까 뭐라고 해석하기는 좀 그렇죠.

종자는 사실은 해석이 잘 안되지 않습니까?

대강 이제 진언의 뜻을 억지로 해석하자면 그런 뜻입니다.

30~ 40%나 설명이 되었는지 모르겠어요.

지금까지 천수경안에 있는 진언을 연구한 바에 의하면 그렇습니다.

 

我今持誦大准提(아금지송대준제) 卽發菩提廣大願(즉발보리광대원)

내가 지금 대 준제진언을 지송합니다.

가지고 외웁니다.

곧 보리의 광대원을 발해지이다.

깨달음이라고 하는 크고 큰 원력이 발해지이다.

 

願我定慧速圓明(원아정혜속원명) 願我功德皆成就(원아공덕개성취)

그래서 원컨대 내가 정과 혜가 빨리 원명해지고,

선정과 지혜가 뚜렷이 밝아지고 밝아지를 원합니다.

원컨대 내가 공덕이 다 성취되기를 원합니다.

원컨대 내가 승복 아주 훌륭한 복으로 두루두루 장엄돼지이다.

 

승복 좋은 복이 장엄되어야지 좋지 않이 한 복이 많이 장엄되어 가지고

이리 끄달려 다니고 저리 끄달려 다니고 그렇게 하면 인생 헛살 수가 많지요.

또 복이라고 하는 것은 정말 냉정하게 불교의 관점에서 보면요.

세속적으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그런 복은 미안하지만 탁복,

흐린 복이라 그렇게 표현하고 아무리 가진 것이 없고 없는 게 오히려 좋죠.

 

벼슬도 없고 가난하고 최소한의 그런 의식주만 해결된다면은 이렇게 부처님 법을 만나서

마음의 안녕을, 부처님 가르침을 통해서 마음의 행복을, 모두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서

원리를 알고 진리를 알아서 마음의 평화를 누리고, 행복을 누리 줄 아는 이러한 복을 청복이라 그래요.

맑을 청 맑은 복이다.

돈 많으면 돈 심부름해야죠, 벼슬이 높으면 벼슬 심부름 해야죠, 자기는 잃어버리는 거예요.

돈도 없고 벼슬도 없어서 오로지 진리의 가르침만 있으면

그 걸로써 인생을 얼마든지 행복하고 편안하게 살 수가 있다는 거죠.

 

사실은 사회가 아무리 발달하고, 문명이 발달하고, 산업이 발달해가지고

무슨 1년에 개인 소득이 3만 불, 5만 불이 아니라 1년에 개인이 벌어들이는 소득이 백만 불이라고 합시다.

백만 불이라고 한다 하더라도그 걸로써 행복의 열쇠가 되지 못하거든요.

그건 우리가 살아와본 경험으로 충분히 알 수가 있지 않습니까?

1년에 소득이 백만 불이라고 하더라도 결국은 의식주 먹고 입고 머무는 살아가는 것,

이거 하나 해결하자는 것이지 그 외의 다른 아무것도 아닙니다.

 

옛날에 연간소득이 천불일 때도 그저 의식주 문제하나 해결이고,

백만 불 되어도 의식주문제 하나 해결이지 궁극적으로 보면 그래요.

사실은 아껴쓰고 적게 소비하고 또 적게 벌어도 충분히 의식주는 우리가 헛 소비만 하지 않고

아껴서 쓴다면은 얼마든지 의식주는 나누어가면서 해결할 길이 얼마든지 있는데 다 사람 욕심이죠.

아무리 많이 벌고 아무리 큰 회사를 운영한다 하더라도

의식주 문제 하나 해결하는 것이지 사실은 다른 것 아닙니다.

 

그러니 청복이다, 탁복이다. 하는 말도 세속적인 가치관으로

우리가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좀 마음에 안 드는 소리고,

무슨 구름 잡는 소리고, 현실성 없는 소리다 라고 생각하겠지만

그것도 우리가 한 번 쯤은 들어 볼 필요는 있습니다.

그렇게 사는 사람도 적지도 않고요.

돈도 크게 욕심내지 않고, 벼슬도 크게 욕심내지 않고 그저 이치에 눈을 뜨고

스스로 만족하며 사는 그런 사람도 적지 않다. 하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願我勝福遍莊嚴(원아승복변장엄)

훌륭한 복으로써 두루두루 장엄하여지이다.

물질이 풍부하고 돈이 많고 벼슬이 높아서 어떤 불교적인 이치를 제대로 알아서

제대로만 활용하고 쓸 줄 알면 그 이상 더 좋은게 없죠.

그러나 사람의 능력이란 한계가 있기 때문에 벼슬이 높으면 벼슬시중을 들어야 되고,

돈이 많으면 돈 시중들어야 되고 하다보면 그렇게 제대로 쓸 줄 아는 연구를 할 기회가 없습니다.

돈이 많아도 어떻게 쓰야 잘 쓰는지 전혀 모르죠.

그런데 대해서 관심이 없으니까? 그런 공부를 안했으니까?

전혀 뭐 제대로 쓸 줄 알 까닭이 없습니다.

사람이 두루두루 좀 안목을 넓혀서 살아야 되고 그래야 되는데

한쪽으로 치우치니까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願共衆生成佛道(원공중생성불도)

원컨데 다 함께 모든 중생들이 불도를 이루어지이다.

준제진언을 외우면서 세운 원력이 되겠습니다.

그러니까 결국은이러한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것,

계정혜 삼학이 원명해져서 깨달음의 길로 나아가고 다른 중생도 다 깨달으지이다.

가장 불자로서 성인의 가르침을 배우는 사람으로서 정도로 인도해주는 그런 가르침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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