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經典講解

무비스님의 천수경강해-21

무비스님의 천수경강해-21

 

 

如來十大發願文(여래십대발원문)

총원이라 그렇게 하지요.

 

願我永離三惡道(원아영리삼악도)

원컨대 내가 삼악도를 영원히 떠나지이다.

지옥 아귀 축생이죠. 물론 그런 것은 없어야 됩니다.

그러면서도 우리가 지옥 아귀 축생들에게 또 기웃 기웃 하죠.

 

願我速斷貪瞋癡(원아속단탐진치)

원컨대 내가 속히 탐진치 삼독을 끊어지이다.

 

願我常聞佛法僧(원아상문불법승)

원컨대 내가 항상 불법승을 들어지이다.

부처님이라고 하는 말, 부처님의 가르침이라고 하는 말,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단체라고

신도가 되었든 승단이 되었든, 단체를 승가 이렇게 합니다.

협의 뜻으로는 출가승을 승가라고 이렇게 하지만

대승적인 입장에서는 승단 하면은 우리 불자 사부대중 전체를 뜻하죠.

어째든 그런 소리 늘 듣고 산다는 것, 이것만으로도 보통 인연이 아닙니다.

여기 그런 서원을 세워섭니다.

원컨대 불법승 삼보에 대한 이야기를 늘 들으면서 살아지이다.

그것만으로도 참 좋은 행복한 인생이 아닐까 싶어요.

 

願我勤修戒定慧(원아근수계정혜)

그러면서 내가 말만 듣고 사는 것이 아니라

내가 열심히 열심히 부지런히 부지런히 계정혜 삼학을 열심히 닦아지이다.

그래서 우리가 이런 시간도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願我恒隨諸佛學(원아항수제불학)

항상 모든 깨달은 분들을 따라서 배우기를 원합니다.

제불이라고 하는 말은 모든 사람, 모든 깨달은 사람을 따라서 배우기를 원합니다.

심지어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에서도 배우고

아이들의 떠들고 장난치는 데서도우리가 깨우칠 것이 있고 그렇지요.

그런 열린 마음이 필요합니다.

 

願我不退菩提心(원아불퇴보리심)

원컨대 내가 항상 깨달음이라고 하는 궁극적인 목표,

그 마음에서 물러서지 않아지기를 원합니다

 

願我決定生安養(원아결정생안양)

그래서 결국은 안양국에 태어나기를 결정코 틀림없이 안양국에 태어나기를 원합니다.

안양이라고 하는 것은 극락세계를 안양국이라고 하고,

그야말로 이것은 염불이니까 약간 염불사상이 곁들여있습니다.

 

願我速見阿彌陀(원아속견아미타)

원컨데 내가 빨리 아미타부처님 보기 원하옵니다.

 

願我分身遍塵刹(원아분신변진찰) 願我廣度諸衆生(원아광도제중생)

내가 온 몸을 온 세계에 어디든지 다 나누어가지고,

분신을 해가지고 모든 중생을 제도하기를 원하옵니다.

이렇게 열 가지 발원문인데 여래께서 세우신 발원문이 천수경에도 들어와 있고,

부처님 가신 길을 우리가 또한 본받아서 원을 세운 것으로 염불을 삼고 있습니다.

 

四弘誓願(사홍서원)

우리가 잘 아는 사홍서원이죠

 

衆生無邊誓願度(중생무변서원도) 煩惱無盡誓願斷(번뇌무진서원단)

法門無量誓願學(법문무량서원학) 佛道無上誓願成(불도무상서원성)

중생이 아무리 많다 하더라도 맹세코 내가 건지기를 원하옵니다.

번뇌가 무진하다하더라도 끝이 없다 하더라도 맹세코 끊기를 원합니다.

법문이 한량없다 하더라도 맹세코 다배우기를 원합니다.

불도가 아무리 높다고 하더라도 맹세코 내가 다 이루기를 원합니다.

 

그것도 중요하지만 자성중생서원도

내 마음속에 있는 중생을 맹세코 재도하기를 원합니다.

내 마음속에 있는 번뇌를 맹세코 끊기를 원합니다.

내 마음속에 있는 법문을 맹세코 배우기를 원합니다.

내 마음속에 있는 불도를 맹세코 이루기를 원합니다.

 

自性衆生誓願度(자성중생서원도) 自性煩惱誓願斷(자성번뇌서원단)
自性法門誓願學(자성법문서원학) 自性佛道誓願成(자성불도서원성)
참 사홍서원 좋죠.

 

그다음 총귀의라 해서 發願(발원)하고 나서 歸命禮三寶(귀명례삼보)

다시 또 三寶(삼보)에게 목숨바쳐 귀의하고 예배합니다.
南無常主十方佛(나무상주시방불),

南無常主十方法(나무상주시방법),

南無常主十方僧(나무상주시방승).

이렇게 되어있죠.

상주시방불- 늘 계시는 시방의 모든 부처님께 귀의하고 받드옵니다

상주시방법- 늘 계시는 시방의 모든 가르침에 귀의하고 받드옵니다

상주시방승- 늘 항상 계시는 시방의 모든 사부대중에게 귀의하고 받드옵니다.

이렇게 삼보에게 귀의하고 천수경이 혹 여기까지 끝나는 그런 천수경도 있죠.

그건 회향이 빠졌다고 볼 수 있는데 그 다음에 구체적으로 다 갖추어서 보면

 

淨三業眞言(정삼업진언)
옴 사바바바 수다살바 달마 사바바바 수도함

이게 이제 또 따라옵니다.

삼업진언, 개단진언, 건단진언, 정법계진언이 나오죠.

그래서 이런 것들을 다 구체적으로 갖추었을때 천수경이 완전한 천수경이 된다.

그렇게 이제 봅니다.

 

옴 사바바바 수다살바 달마 사바바바 수도함
淨三業眞言(정삼업진언)

삼업을 청정하게 하는 진언 그렇게 되어있죠.

옴 은 이제 말씀드린대로 중요한 뜻이 있고

사바바바 본성이 청정한,

사바바바 수다 까지가 본성이 청정하다 그런 말입니다.

사바바바 本性(본성)이고 수다 淸淨(청정)이란 뜻이고요

살바 달마 一切法(일체법)이죠.

살바는 늘 들었듯이 一切(일체), 달마 法()이 않습니까

일체법이여 내자성도 청정하리

수도함하는 것이 내 자성도 청정하여 하리라,

하여지이다 원하는 입장으로 하면은 하여지이다 그렇게 됩니다.

 

開壇眞言(개단진언)

단을 여는 진언이다. 그렇게 되어있는데 옛날에는 지금같이 절이 그렇게 많거나 그렇지 못했죠.

그래서 어떤 의식을 할 때, 특별한 의식을 할 때 야단법석을 많이 했잖습니까?

밖에다 차려놓고 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럴 때를 생각해서 단을 연다 하는 그런 뜻이 있습니다.

 

옴 바아라 놔로 다가다야 삼마야 바라베 사야훔

옴 바아라 바즈라죠.

금강의문이여 열어지이다, 금강의문이여 열어지이다.

바아라 놔로 다가다야

 

삼마야 바라베 사야훔

삼마야는 삼매죠. 삼매에 두루 들어가 지이다, 삼매에 두루 들어가 지이다.

단을 열고 법석을 마련하면은 결국은 그러한 마음가짐, 금강의 문이 열리고

그 속에서 어떤 일심으로 정진하는 그런 삼매의 분위기에 두루 들어가지이다.

그런 뜻이 담겨있습니다.

 

建壇眞言(건단진언)

단을 열었으니 세운다는 이런 뜻이죠.

 

옴 난다난다 나지나지 난다바리 사바하

불공도 대충 대충하거나, 청소도 대충 대충하거나

절에서 은어로 잘 쓰는 소리가 그 건단진언으로 해 이렇게 말을 해요.

그러면 대충대충 얼른얼른 시간 없으니까 얼른얼른 대강해서 치워라 이런 뜻으로

건단진언으로 해라하는데 여기 건단진언과는 전혀 서로 뜻이 다르죠.

그러나 그런 말을 익히 사찰에서는 써왔습니다.

 

옴 난다난다 나지나지 난다바리 사바하

난다난다 단을 이제 세우니까 작당 단을 만드는 무녀신이여,

또 단을 세우는 무녀신이여, 희열의 낙원을 가지고 와서 유지 하소서, 사바하

난다난다 나지나지 난다바리 사바하

단을 세우면서, 단을 만들고, 단을 세우고,

그래서 법희선열의 낙원으로 유지가 되도록 해주십시오 하는 그런 발원이 담겨있습니다.

 

그다음에 정법계진언 인데 또 앞에서 옴 남 있었죠.

옴 남자가 정법계진언 이라고 되어있었는데 여기는 이제 남자의 설명입니다.

 

羅字色鮮白(라자색선백) 空點以嚴之(공점이엄지)

범서를 그려가면 설명을 해야 되는데 라 자가 이렇게 기역자처럼 쓰고,

기역자 그 위에 점을 하나 딱 찍어요,

점을 하나 찍은게 그게 이제 남자데 그 남자는 처음에 라 자를 쓰고

위에 점을 찍으니까 남 이렇게 되어요.

우리 철자법처럼 범서도 그렇게 되어있습니다.

라자는 색이 선백하다, 색으로 보면 텅 비어서 깨끗하고 맑다.

거기에다가 공점이엄지라~

둥근 점을 갖다가 위에다가 장엄을 한다 그러면 남돼요.

 

如彼髻明珠(여피계명주)

그 남자의 모양이 상투위에다 아주 값진 밝은 구슬을 올려놓은 것과 같이

그렇게 뚜렷하다 이것입니다.

옴자나 남자나 글자 범서를 쓸때 제일위에 있는 동그라미가 ㅁ에 해당되는 것인데,

그걸 구멍이 뚫리게 하면 안돼요.

구슬이 구멍이 뚫리면 됩니까? 그 속이 꽉차있어야지

진짜 좋은 구슬은 속이 꽉차있어야 됩니다.

 

옴자나 쓸때 위에 구멍이 없게 꽉차게 점을 꼭 찍어야 되고,

남자 쓸때도 위에다 마지막에 점을 꼭 찍어야 되요.

거기 계명주에요. 상투위에다 올리는 구슬과 같은 것

置之於頂上(치지어정상) 이라
정상이다. 나자의 정상에다 딱 두므로 해서 남자가 된다.

 

眞言同法界(진언동법계) 無量衆罪除(무량중죄제)

그래서 진언이 법계와 하나가 된다.

옴 남하는 것은 남은 뭐라고 그랬죠.

화대의 종자. 지혜의 불로 모든 것을 다 태워 버린다.

그런 것의 종자적인 역할을 한다.

그래서 한량없는 죄의 장애를 다 제거한다.

 

一切觸穢處(일체촉예처) 當加此字門(당가차자문)

一切觸穢處(일체촉예처) 일체의 더러운 곳이 닿는데 마다

當加此字門(당가차자문) 일체촉예처에 탁예처라고 발음한다는 라는 그런 표현도 있습니다.

굳이 뜻이 틀리지 않아요.

촉예처 더러움이 닿는 곳,

일체 더러움이 닿는 곳에 바로 당가차자문 바로 이 글자를 갖다 붙여라. 이런 뜻이 되겠어요.

 

그래서 옴 마니 반메 훔 을 문위 에다 갖다 붙이기도 하고, 나가는 문에,

현관문에, 방에, 온데 갖다 다 붙이기는 그런 것도 있고,

불자의 집을 표시 하는 데는 옴 마니 반메 훔, 옴 남 이런 주문을 본래

옴 남을 붙이도록 천수경에는 그렇게 되어있는데 옴 마니 반메 훔을 붙이죠

옴 마니 반메 훔도 좋기는 합니다.

그러나 그런 것을 붙여놓고 무슨 특별한 기대를 하기보다는

그 진언의 정신과 사상을 우리가 몸소 받아들여서 하나라도 실천에 옮기는

그런 자세가 오히려 바람직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듭니다.

 

羅字色鮮白(라자색선백) 空點以嚴之(공점이엄지)
如彼髻明珠(여피계명주) 置之於頂上(치지어정상)

이것은 범서의 남자를 모르면 이 해석이 잘 안돼요.

그래서 천수경 번역본에 보면 틀리게 해석한게 종종 이제 보입니다.

 

나무 사만다 못다남 남

나무 귀의한다

사만다 보변이죠.

못다남 은 부처님이란 뜻이고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널리 두루 계시는 부처님께 귀의하고 받드옵니다.

그리고 남

람이 아니고 남이에요 남

남이 화대의 종자고 또 주문을 하거나 진언을 하거나 밀교에서 금강경의 전형구가

옴자 남자 이런 것이 붙여지는 그런 경우가 있습니다.

태장경의 전형구, 무슨 금강경의 전형구, 이 어렵고 복잡한 말이 있습니다.

그건 다 밀교에서 전문적으로 하는 말이고요.

 

이렇게 해서 우리가 사는 법계를 청정하게 한다.

청정하게 하는 것은 지혜의 불로써 우리의 번뇌를 몰아내고 세상을 환하게 밝혔을 때

그때 법계가 청정해지는 것이지, 달리 불을 켜거서 청정하게 한다든지 불로 태워서

청정하게 한다든지 하는 그런 이치는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서 뜻을 잘 알고 보면 수긍이 가고 어떻게 우리가 행동해야 되겠다 하는 그런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천수경 강의를 모두 마치는데, 천수경강의나 어떤 경전의 강의라 하더라도

불교의 가르침, 부처님 조사스님들의 가르침이란 인생을 정말 이치를 알아서

이치에 맞게 지혜롭고 슬기롭게 살 때만이 행복하고 평화롭다.

진정한 행복과 진정한 평화는 이치를 깨달아서 그 이치에 잘 맞게 살때만이 가능한 것이다.

이걸 가르켜주는 것입니다.

그 외 다른 것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이런 가르침을 우리가 배우면서 정말 하나 하나 이치를 깨우쳐서 이치에 맞게

순리대로 사는 그런 지혜를 닦아가는 것이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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