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님의 천수경강해-19
십악참회(十惡懺悔) (열 가지 악업을 참회함)
살생중죄금일참회(殺生重罪今日懺悔) 살생한 죄업 오늘 참회합니다
투도중죄금일참회(偸盜重罪今日懺悔) 도둑질한 죄업 오늘 참회합니다.
사음중죄금일참회(邪淫重罪今日懺悔) 사음한 죄업 오늘 참회합니다.
망어중죄금일참회(妄語重罪今日懺悔) 거짓말한 죄업 오늘 참회합니다
기어중죄금일참회(綺語重罪今日懺悔) 발림말한 죄업 오늘 참회합니다
양설중죄금일참회(兩舌重罪今日懺悔) 이간질한 죄업 오늘 참회합니다
악구중죄금일참회(惡口重罪今日懺悔) 나쁜말한 죄업 오늘 참회합니다
탐애중죄금일참회(貪愛重罪今日懺悔) 탐애한 죄업 오늘 참회합니다
진에중죄금일참회(瞋恚重罪今日懺悔) 성내온 죄업 오늘 참회합니다
치암중죄금일참회(痴暗重罪今日懺悔) 어리석은 죄업 오늘 참회합니다
백겁적집죄(百劫積集罪) 백겁천겁 쌓인 죄업
일념돈탕진(一念頓蕩盡) 한 생각에 없어져서
여화분고초(如火焚枯草) 마른 풀을 태우듯이
멸진무유여(滅盡無有餘) 남김없이 사라지네
죄무자성종심기(罪無自性從心起) 죄의 자성 본래없어 마음따라 일어나니
심약멸시죄역망(心若滅時罪亦亡) 마음 만약 없어지면 죄업 또한 사라지네
죄망심멸양구공(罪亡心滅兩俱空) 죄와 마음 모두 없애 두 가지 다 공해지면
시즉명위진참회(是則名爲眞懺悔) 이 경지를 진실로 참회라 하네
참회진언(懺悔眞言) 죄를 참회하는 진언
[ 옴 살바 못자 모지 사다야 사바하 ]
내가 그동안 지은 죄업을 열 가지로 분류를 하면, 더 많겠지만
대개 신삼(身三), 구사(口四), 의삼(意三) 이렇게 해서 몸으로 세 가지, 입으로 네 가지,
마음으로 세 가지, 이렇게 해서 십악 참회라고 해서 우리 불교인들은 잘 알고 있지요.
염화실의 기도문인 관음예문에도 이 십악참회가 들어 있습니다.
거기에는 낱낱이 아주 잘 해석이 되어 있습니다.
살생중죄금일참회: 살생한 무거운 죄를 오늘에사 참회 하옵니다
투도중죄금일참회: 도둑질한 무거운 죄를 오늘에사 참회 하옵니다
사음중죄금일참회: 사음한 무거운 죄를 오늘에사 참회 하옵니다
망어중죄금일참회: 망어한 무거운 죄를 오늘에사 참회 하옵니다
기어중죄금일참회: 비단결같은 말한 무거운 죄를 오늘에사 참회 하옵니다
양설중죄금일참회: 두가지 말한 무거운 죄를 오늘에사 참회 하옵니다
악구중죄금일참회: 악한 말한 무거운 죄를 오늘에사 참회 하옵니다
탐애중죄금일참회: (마음으로 짓는) 탐욕하고 애착한 무거운 죄 오늘에사 참회 하옵니다
진에중죄금일참회: 성내고 화낸 무거운 죄를 오늘에사 참회 하옵니다
치암중죄금일참회: 어리석고 어두워서 지은 무거운 죄를 오늘에사 참회 하옵니다
제가 여기서 이렇게 읽으니까 관음예문에 견주어서 보면 참 재미가 없지요?
관음예문에는 아주 잘 나와 있지 않습니까?
“입으로 지은 업장 참회하오며 당신께 귀의하오니, 원합니다.
걸림 없는 하늘의 귀로 저희의 말씨를 밝게 살피사 바른 귀의, 바른 참회 되게 하소서.”
관세음보살 멸 업장 진언 [ 옴 아로늑계 사바하 ]
이렇게 되어있죠.
또 “마음으로 지은 업장 참회하오며 나 이제 당신께 귀의하오니 원합니다.
거울 같은 그 마음으로 저희의 생각을 밝게 비추사 바른 귀의 바른 참회 되게 하소서.”
온갖 그런 십악참회를 낱낱이 아주 마음에 와 닿고 감동이 되게 표현이 되어 있습니다.
그걸 참고하시면 훨씬, 우리가 정말 과거에 지은 업장이 그냥 술술...
따뜻한 봄날에 눈이 녹는 듯한 그런 느낌을 받으실 수 있을 것입니다.
관음예문 기도란에 기회가 되는 대로 열심히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백겁적집죄(百劫積集罪), 일념돈탕진(一念頓蕩盡),
여화분고초(如火焚枯草), 멸진무유여(滅盡無有餘), 이렇게 했습니다.
참회를 하는데 이 참회가 봄날의 눈 녹듯이.... 그건 너무 늦어요.
표현인즉슨, 봄날에 눈 녹듯이... 녹는 것을 느낄 것이다.
말씀을 그렇게 드렸습니다만 여기에서는 이 밀교경전이라고 하는 것은 대승불교경전입니다.
대승경전에 들어갑니다.
사실은... 그러기 때문에... 물론 뒷날 새롭게 조직된 경전이지만
그 소견과 불교에 대한 안목은 아주 높아요.
백겁적집죄(百劫積集罪), 백겁동안 쌓고 모은 그런 죄가 있다하더라도
일념돈탕진(一念頓蕩盡)이라,
한순간! 일념이라고 하는 것은 일초를 백 이십 등분한 그런 짧은 시간이라고 하던가요?
그렇게 아주 짧은 시간입니다.
그래서 한 순간! 이렇게 표현을 합니다.
“한순간에 몰록! 다 녹아서 없어지이다.” 그랬습니다.
한꺼번에, 한순간에, 몰록 다 녹아서 없어지이다.
여화분고초(如火焚枯草), 멸진무유여(滅盡無有餘),
마치 “불이 마른 풀더미를 태우는 것과 같이 다 타서 하나도 남김이 없어 지이다.”
일념돈탕진(一念頓蕩盡)이 된다면, 일념에 돈탕진이 되는 것을 눈 녹는데다가 비유를 하겠습니까?
마른 풀더미가 불에 타는데다 비유를 하겠습니까?
안되지요. 그러나 표현을 하자니 여화분고초, 멸진무유여(滅盡無有餘) 라고 이렇게 했습니다.
어째서 그게 가능한고하면은 우리가 백겁동안 쌓은 죄들,
업장들이 어떻게 한순간에 녹아지고 제거될 수 있는가?
참 아득한 생각입니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그 밑에 해답이 있습니다.
죄무자성종심기(罪無自性從心起), 심약멸시죄역망(心若滅時罪亦亡)
이 천수경 안에서 아주 근사한 게송이죠. 죄무자성종심기(罪無自性從心起),
죄와 죄업이라고 하는 것을 백겁을 쌓았든 억 만겁을 쌓았든 간에 그 죄업이라고 하는 것이
원래 자성이 없어. 실체가 없어. 고정 불변하는 어떤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다.
전부 내 마음으로부터 일어나는 것이다. 그랬습니다.
이건 혜가스님이 달마스님을 찾아갔을 때의 대화에도 나타나구요.
또 삼조 승찬스님이 혜가스님을 찾아갔을 때도 이 같은 대화가 나타납니다.
죄라고 하는 것은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다. 이겁니다.
우리가 마음으로부터 죄, 죄 하므로 해서 죄가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종심기(從心起), 마음으로부터 일어나는 것이다.
심약멸시죄역망(心若滅時罪亦亡),
마음이 만약에 소멸해버린다면 죄 또한 소멸한다. 마음위에 죄가 있는 거죠.
그래서 우리가 무심의 경지에 들어가 버린다면...
공부를 제대로 해가지고, 또 마음이라고 하는 것이 본래 공적하다고 하는 사실을
제대로 알아서 거기에 계합이 되어버리면, 바로 무심이 되니까 백겁동안 쌓은 죄도
마음이라고 하는 것을 근거로 해서 그 위에 건립된 것이라구요..
땅위에 건립된 건물과 같이... 땅이 없어졌는데 건물이 있을 수가 있습니까?
마찬가지로 마음위에 건립된 죄이기 때문에 마음이 없어지면 심약멸시,
마음위에 건립된 죄 또한 없어진다.
그래서 죄망심멸양구공(罪亡心滅兩俱空), 죄도 없어지고 마음도 소멸해서
죄와 마음이 함께 다 공해 버렸을 때 시즉명위진참회(是則名爲眞懺悔),
이것이야말로 진짜 참회다. “이것이 진짜 참회다.” 이렇게 되기 때문에
백겁적집죄(百劫積集罪)가 일념돈탕진(一念頓蕩盡)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불교의 이치는 마음의 이치고 불교공부는 마음공부이기 때문에
그래서 이 마음이 있는 사람은 모두가 부처님이라고 하잖습니까?
그래서 “사람이 부처님이다.” 하는 것입니다.
마음 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며 사람이면 마음 없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마음이 곧 사람이고 사람이 곧 마음입니다.
그래서 마음이라고 하는 말보다 “사람이다” 라고 하는 직접적인 표현은 저는 즐겨 쓰는데
그래서 “사람이 부처님이다.” 라고 하는 말을 제가 자신있게 하는 것이고
또 그런 이치를 우리가 이해하고 내 공부가 되자고 이런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여기의 천수경만 하더라도 우리가 천수경은 맨 처음에 공부하는 경전이니까,
제일 낮은 경전이라고 칩시다. 사회의 통념대로요.
제일 낮은 경전이라고 치는데 제일 낮은 경전의 가르침이 이렇습니다.
죄의 문제! 이것이 얼마나 큰 문제입니까?
또 죄를 참회하는데 어떻게 참회를 하는 것이냐?
무릎이 닳도록 하루에 천배, 만 배, 삼천 배를 계속 10년을 해야 되는 건지?
그야말로삼아승지겁이라는 세월이 다 가야만 가능한건지.....
세상에 모든 것은 전부 마음 하나로 되어 있습니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말을 흔히 쓰죠?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세상을 전부 이 한 마음이 만들었는데
우리가 죄(罪)다 복(福)이다. 하는 것인들 그 한마음이 만든 그 원칙에서 벗어날 까닭이 없는 거죠.
우리의 한마음이 만든 그 원칙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죄도 그렇고 복도 그래요.. 그러니 이게 가능한 거죠.
한 순간에 몰록! 다 없어지고 사라진다고 하는 것이 가능한 것입니다.
한순간에 우리 마음이 텅비어버리면, 우리마음이 본래 공적한 줄을 알고
공적한데 계합을 해버리면 끝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마음이 공적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
이것이 문제지. 원리는 한마음으로 돌아가면 끝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말이 가능한 것입니다.
아주 이 참회문제! 천수경을 외우고 다라니를 외우는 것도 이 참회하는데 아주 큰 역할을 하지요.
사실은 큰 역할을 하는데 [다라니를 외우고, 다라니의 힘에 의해서, 제3의 힘에 의해서 차츰차츰
우리 죄가 사라지는 그런 것으로 그렇게 이해하기가 쉬운데 그렇게 해석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 공부하는데 달려 있고 천수경, 제일 낮은 이 천수경도 결국은 마음 가르침으로 해서,
마음이 무엇인가를 제대로 가르침으로 해서 제대로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하는 그런 이야기가 됩니다.
참회진언하지요. 참회하는데 있어서 [ 옴 살바 못자 모지 사다야 사바하 ]
그랬죠. 옴(극찬, 축복)은 일체의 법문이 옴 속에 다 들어 있다 그랬습니다.
살바(일체)는 여러 번 들어 왔듯이 일체라고 하는 말이구요.
못자는(붓다. 보디샤트바) 잘 아시죠? 보리살타 사바하,
그러니까 “옴, 일체불보살들에게 사바하” 이렇게 됩니다.
옴, 일체 불보살들에게 사바하 그러면 뭡니까?
제망심멸양구공(罪亡心滅兩俱空), 마음이 공적한데로 돌아간다. 라고 하는 말은
바로 불보살의 경계에 돌아 간 것이나 똑 같습니다.
불보살들도 결국은 마음이 공적한 것을 본 사람입니다.
다른 것이 아니예요.
마음이 공적한 것을 본 사람들이기 때문에 여기에서 일체 불보살들에게 사바하,
이렇게 한 것은 마음이 공적해서 죄도 없고 마음도 없는 그런 자리에 합일이 되었다.
혼연일체가 되었다 하는 그런 뜻입니다.
그게 제일 좋은 참회지요. 더 이상 좋은 참회가 어디 있습니까?
그래서 앞에 죄무자성종심기(罪無自性從心起) 라고 하는 이치와
또 불보살이라고 하는 이치가 요렇게 맞아 떨어지는 것입니다.
여기서는 최소한도 부처님의 지혜와 자비가 어떻고, 덕이 어떻고, 신통묘용이 어떻고,
이러한 부처님의 입장으로 볼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무심한 부처님!
일체가 망상이 없는 부처님! 공적한 마음 도리를 자유자재로 쓰시는 불보살님! 그런 뜻이죠.
그렇게 되었을 때 이것이 진정한 참회가 된다.
진정한 참회는 바로 그러한 입장이다. 하는 그런 내용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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