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經典講解

무비스님의 법화경강해-16

무비스님의 법화경강해-16

 

 

깨달음

 

경문에, 혹 어떤이는 스스로 보시를 행하는데 금이나 은과같은 진귀한 보물들을 

기쁜 마음으로 에게 주기도 하고, 수많은 재산과 심지어 자기의 육신과 가족들까지도 

보시를 하여 깨달음의 길을 구합니다.

깨달음이 무엇이기에 불교에서는 그토록 깨달음을 강조하는걸까요?


실은 불교라는  자체가 깨달음의 가르침깨달은 이의 가르침

또는 깨달음에 의하여 깨닫게 하는 가르침이라는 뜻 입니다.

불교는 실로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가 깨달음의 문제뿐 입니다.

그러므로 불교를 공부하는 사람은 이 깨달음의 문제를 천형(天刑)처럼 여기고 

자나깨나 이 화두(話頭) 탐구해야 합니다.


그 외의 일은 아무리 좋은 일이라 하더라도 불교의 본령(本令)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세존의 출가와 6 고행이 그것을 위함이며달마의 6년 면벽(面壁) 모든 조사들이 

일체 인간적인 일들을 포기하고 피나는 수행을 하신것도 그 깨달음을 위해서 입니다.

앞을 못보는 사람으로서 눈을 뜨는 일보다 시급하고 소중한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부처님이면서 부처님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일같이 어리석고 억울한 일은 없습니다.

다이아몬드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구걸행각을 한다면 

그것보다 더 어처구니 없는 일은 없을 것이 때문입니다.

필자는 십대 후반부터 이십대, 삼십대, 사십대, 30년의 세월에 이르도록

천수경(千手經)보다도 더 많이 읊조린 시가 한수 있습니다.


모든 인간적인것을 깡그리 버리고다시는 더 이상 인간이기를 포기해 버리고 

오직 깨달음을 이뤄야겠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가슴 깊이 다짐하고 

또 다짐하면서 읊조리던 시입니다.

신라 말기의 최고운 선생의 입산시(入山詩)입니다.


고운 선생은 기울어 가는 신라 말기의 어지러운 세상을 비관하여 

속진을 떨어버리려고 가야산으로 어가던 중이었습니다.

홍류동이라는곳을 지나다가 산에서 내려오는 스님들을 만나서 들어가는 자와 

나오는 자의 상반된 장에서의 느낌과 자신의 각오를 말한 시 입니다.


승호막도청산호(僧乎莫道靑山好)   중아청산이 좋다 말하지 말라.

산호여하부출산(山好如何復出山)   산이 좋은데  다시 산에서 나오는가.

시간타일오종적(試看他日五從迹)   뒷날 나의 자취를 잘 지켜보시오.

일입청산갱불환(一入靑山更不還)   나는 한번 청산에 들어가서 다시는 세속에 나오지 않으리라.


특히 일입청산갱불환(一入靑山更不還)이라는  구절은 주문을 외듯이 

무수히 외며 인생을 포기하기를 다짐하고 또 다짐하며 깨달음에 대한 열정으로 살았습니다.

실로 앞을 못 보는 사람으로서 앞을 보기위해 눈을 뜨는 일보다 더 절박한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


경문에, "수많은 재산과 심지어 자기의 육신과 가족들까지도 보시를 하여 

깨달음의 길을 구한다."  하였습니다.

목에다 줄을 걸어서 잠을 쫓기도 하고 송곳으로 허벅지를 찔러 

졸음을 항복 받기도 하는 일은 정진하는 곳에서는 비일비재한 일입니다.

 

다음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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