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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어록

(무문관 제1칙) 조주구자(趙州狗子)

(무문관 제1) 조주구자(趙州狗子)

 

스님: "개에게 불성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구자환유불성야무(狗子還有佛性也無)

조주: "없어 !" ()

 

일체중생 실유불성(一切衆生 悉有佛性),

일체의 중생이 다 불성을 가지고 있다는 '열반경'의 가장 중요한 사상이다.

마땅히 개도 불성이 있어야 하는데, 왜 없다고 했을까?

 

조주(趙州:778-897)스님은 남전(南泉)의 법을 이은 제자로서 120세까지 장수한

당말(唐末) 중국 선종의 최후의 거장으로 선문에서 널리 참구되는

 '조주무자(趙州無字)'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 '만법귀일 일귀하처(萬法歸一 一歸何處)'

많은 공안의 창시자이다.

그는 '옛 부처님'으로 불리워서 조주고불(趙州古佛)이라고도 하는데,

그가 왜 '개에게 불성이 없다' 하였을까?

 

무문혜개(無門慧開:1183-1260)선사의 말입니다.

"참선은 모름지기 조사관을 꿰뚫어야 하고

묘오(妙悟)는 심로(心路.마음길)이 끊긴 곳까지 다할 필요가 있다.

조사의 관문을 뚫지 못하고, 심로가 끊기지 않았을 때에는

모두 다 숲속에 붙은 귀신 나부랭이 같은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러면 무엇이 조사의 관문인가?

다만 '()'라는 한 글자가 선종에서 넘어가야 할 관문이다.

선종무문관(禪宗無門關)이라고 ''를 지목하여 말한다.

이것을 뚫고 지나갈 수 있는 사람은 조주스님을 친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역대 조사들과 더불어 손에 손잡고 함께 가며 눈썹이 맞닿아 있듯이

함께 보고 함께 듣고 하니 어찌 경쾌한 일이 아니겠는가?

이러하니, 어찌 관문을 꿰뚫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는 것을 마다 할 수 있겠는가?

삼백육십 뼈마디와 팔만사천 털구멍에 온몸으로 의심을 일으켜

''자를 참구하여 주야로 놓치지 말고 간직하라.

허무라 이해하지 말고, 유무로 이해하지도 마라.

이 공안을 간직하기를 막 뜨겁게 달아오른 쇳덩이를 입에 문 것처럼 하라.

토하고 또 토해도 나오지 않게끔 하라.

과거에 배웠던 좋지 않은 지각(知覺)을 전부 탕진해 버려

오래 오래 순숙(純熟)하여 저절로 안밖이 한 덩어리가 되어

벙어리가 꿈을 꾼 것처럼 스스로 알 뿐 말 할 수는 없다.

아주 기세가 등등한 말()처럼 뛰쳐나가 천지를 놀라게 하고,

관우가 큰칼을 빼앗아서 손에 잡은 것 같이 한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고,

생사의 기로에서 대자재를 얻는다.

육도 사생 중에서 삼매를 즐기니 또 무엇을 붙들고 무엇을 놓지 않고 있단 말인가?

평생의 기력을 전부 다 써서 이 ''라는 글자에 매달려 쉬지않고

열심히 노력하면, 법의 촛불이 한 점 환하게 피어 나리라."

 

무문송

구자불성(狗子佛性) 개다불성이다

전제정령(全提正令) 완전한 지상명령

재섭유무(涉有無) 유무로 판단하면

상신실명(喪身失命) 목숨이 상실된다.

 

천년도 훨씬 지난 늙은 노인네의 헛소리에 줄줄이 코를 꿰어 끌려가는 이유가 무엇일까?

님께서 무관심 하다고 발뺌하고 싶지만 수행의 길목에서 생을 연명하는 한

절대로 이 길을 벗어날 수 없다.

왜 그렇다고 결론 내릴까?

이렇게 단호하게 말하는 이유는 모든 선사들의 체험 때문이다.

혹시 그대는 아니라고 하여도 결국에는 가고자 하는 정점에서 이 관문이 님을 기다린다.

실유불성이라 하였다가 불성이 없다고 하였으니 이 무슨 일일까?

어디에 불성이 없다는 말인가?

선사들의 이야기는 님들의 알음알이를 용납하지 않지만 태양처럼 분명한 사실이다.

불성이 없는 곳을 알아야 조주의 관문을 넘볼 수 있다.

과연 어디가 불성이 없는 곳일까?

''는 불성이 없고, ''도 불성이 없지요.

왜일까요?

천지간에 불성이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개와 나와 천지간이 사라지면 비로소 온우주가 온전히 '실유불성'이 되지요.

중생심은 오직 이유와 조건으로 인드라망을 펼칩니다.

이 인연의 그물을 벗어나는 법은 오직 그대에게서 시간의 이유와

공간의 조건이 사라져야 합니다.

이유와 조건은 곧 시공의 그물이며 그대를 옭아매는 인연의 고리이지요.

없다는 언구에 매여서는 안됩니다.

수행의 길목에서 서성이는 숫한 사람들이 ''라고 외치는

소리를 들었지만 언제나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그대들이 아무것도 없다고 해도 만상은 언제나 여여하게

실상을 드러내며 그대를 비웃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