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문관 제5칙) 향엄상수(香嚴上樹)
향엄선사가 말했다.
"그대가 나무 위에 올라가 손으로 가지를 잡지 않고
발로도 나무를 밟지 않고서
오직 입으로만 나무가지를 물고 매달려 있을 때,
어떤 사람이 나무 밑에 와서 진리를 묻는다면,
대답하지 않으면 질문을 외면하는 것이 되고,
대답하면 나무에서 떨어져 목숨을 잃게 될 것이다.
바로 이런 때 그대는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설사 거침없는 말솜씨라도 쓸모가 없고, 대장경을 설할 수 있어도 역시 쓸모가 없다.
이 속의 이치를 터득하면 종전에 죽었던 것을 살릴 수 있고, 종전에 살았던 것은 죽일수 있다.
그것이 아직 안 된다면 기다렸다가 미륵에게 물어 볼 일이다.
★향엄은 진짜 황당한 사람, 악독하기 그지없네.
납승의 입을 틀어 막고, 온 몸으로 귀신처럼 지켜 보는구나.
○화두가 가지는 특성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언어도단. 불립문자의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대는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정히 답변이 궁색하다면 직접 한 번 해보세요.
경험보다 확실한 것은 없으니까요.
☆향엄지한[香嚴智閑:?-898]-위산영우[僞山靈祐]의 제자.
어느 날 위산은 향엄에게 "지금까지 그대가 터득한 지식은
눈과 귀로 남에게서 보고 들었거나 경전에서 읽은 것 뿐이다.
나는 그것을 묻지 않겠다.
다만 '그대가 아직 어머니의 배 안에서 나오기 이전,
아무것도 모르고 분별하지도 못하던 때의 자신의 본성에
부모미생전 본래면목(父母未生前 本來面目) 대해서 한마디 일러 보게나'
내가 그대의 공부를 가름하려 하노라."
이에 향엄은 여러 가지로 대답하였으나 위산은 인정해 주지 않았다.
결국 위산에게 가르침을 간청하자
위산은 '나의 말은 그저 나의 견해일 뿐,
그대 스스로의 안목으로 일려야 그대의 안목이 아니겠느냐?' 하고 향엄의 청을 거절하니,
향엄이 온갖 책을 뒤졌어도 답을 구하지 못하자 모든 책을 불살라 버렸다.
그리고, 스스로 자책하면서 '이번 생에는 불법을 배우지 못했다.
오늘날까지 나를 당할 사람이 없으리라 여겼는데,
오늘 아침 위산스님에게 한 방망이 맞고나서 그 생각이 깨끗이 없어졌다.
이제부터 나는 그저 밥이나 먹고 살아가는 중이 되리라.'
향엄이 눈물을 흘리며 위산스님을 작별하고 향엄산으로 들어가
옛 혜충국사가 주석하던 절에서 기거했다.
어느 날 도량을 청소 하다가 무심코 던진 돌이
대나무에 부딪치며 나는 소리에 깨달음을 얻고 게송을 지었다.
☆향엄격죽[香嚴擊竹]
한 번 던지다가 알던 것 다 잊으니 다시는 더 구할 것이 없구나.
움직이는 모습이 옛 길을 드날리니 더 이상 꺼릴 것이 없구나.
가는 곳 마다 자취가 없으니 빛과 소리 밖의 위의로다.
세상의 도통한 사람들이 최상의 근기라 말하는구나.
향엄은 목욕재계하고 향을 피우고 위산이 있는 곳을 향하여 예배를 드렸다.
위산으로 돌아와 스승에게 인증받고 다시 게송을 지었다.
거년빈 미시빈 (去年貧 未是貧) 작년 가난은 가난이 아니요
금년빈 시시빈 (今年貧 始是貧) 금년 가난이 비로소 가난이로다.
거년 무탁추지지 (去年 無卓錐之地) 작년에는 송곳꽂을 땅이 없더니
금년 추야무 (今年 錐也無) 금년에는 송곳조차 없더라.
*스승 위산에게 인가를 받은 향엄에게 사형인 앙산이
다시 깨달음을 점검하며 이것은 아직 조사의 도리를 깨친 것이 아니라
여래선이라고 평을 받아서 다시 게송을 지었다.
아유일기 (我有一機) 나에게 한 기틀이 있으니
순목시이 (瞬目示伊) 눈을 깜짝여 그에게 보였다가
약인불회 (若人不會) 만약에 알아채지 못한다면
별환사미 (別喚沙彌) 따로 사미를 부르리라.
이에 앙산이 향엄사제의 깨달음을 인가하였다.
◎해운정사 진제선사가 묘관음사에서 향곡선사에게 화두를 청하였다.
"화두를 내려주십시오.
화두를 주시면 깨칠 때까지 걸망을 지지 않겠습니다."
이렇게 받은 화두가 '향엄상수'인데, 이 화두를 2년이 넘게 그 어떤 일도 상관 않고
오로지 화두 참구만 일념으로 정진하여 나이 스물여덟에 화두 관문을 뚫어냈습니다.
그리하여 종전에 막혔던 법문이 열리어 비로소 진리의 세계에 문답이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게송을 하나 지어 향곡선사께 바쳤습니다.
저개주장기인회 (這箇拄杖幾人會) 이 주장자 이
진리를 몇 사람이나 알꼬
삼세제불총부식 (三世諸佛總不識) 삼세의 모든 부처님도 다 알지 못함이로다.
일조주장화김룡 (一條拄杖化金龍) 한 막대기 주장자가
문득 금룡으로 화해서
응화무변임자재 (應化無邊任自在) 한량없는 조화를
자유자재 하는구나.
게송을 보시고 향곡선사께서 물음을 던지셨습니다.
향곡: "용이 홀연히 금시조를 만난다면, 너는 어떻게 하겠느냐?"
진제: "몸을 움츠리고 당황해서 세 걸음 물러가겠습니다."
향곡: "옳고, 옳다." 하시며 크게 기뻐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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