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님의 법화경강해-45
♧수기가 없어도 부처님이다
제13권지품에는 "내가 먼저 전체적으로 모든 성문에게 다 수기(授記)한다고 설명하였는데
그래도 이제 그대가 수기 받음을 분명히 알려 한다면" 이라고 하시면서,
부처님을 키워준 마하파사파제 비구니와 부처님의 부인인 야수다라까지 수기를 받는 장면이 있습니다.
굳이 아난과 라후라의 실명을 거론하면서까지 수기를 주는 것은
역시 이 경전을 편찬한 편찬자의 인간적인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부분입니다.
그러므로 실명을 거론하여 수기를 주는일이 특별한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독자는 알아야 합니다.
실명을 거론하는 사람만 부처님이고 그렇지 않은 이는 부처님이 아니라고 하다면
부처님의 법이 편협하기가 세속의 인정보다 못할 것입니다.
그런 이치는 있을수 없다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이 품의 경문은 한참 배우는 이들과 거의 다 배운 이들 2천 명을 동시에 수기하는 내용으로 이어집니다.
전혀 누구의 이름도 거론하는 일이 없이 2천 명 모두를
동시에 부처님이라고 수기하는 것을 보더라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경을 잠깐 인용하면, "그때 세존께서 학(學)과 무학(無學) 2천 명을 보시니 그 뜻이 유연하고 고요하며,
또 청정하여 일심으로 부처님을 우러러 보는지라, 부처님은 아난에게 이르셨다.
'너는 이 학, 무학 2천 명을 보느냐?'
'예 보나이다.'
'아난아, 이 사람들은 오십 세계 미진수의 부처님을 공양하고 공경하며 법장을 수호해 지닌 후,
중생으로서 최후의 몸을 받을때 동시에 시방 국토에서 각각성불하리라.
이름은 다 같이 보상(寶相)여래, 응공, 정변지, 명행족, 선서, 세간해, 무상사, 조어장부, 천인사, 불, 세존이라 하리라.
수명은 1겁이요, 국토의 장엄한 모양과 성문과 보살과 정법과 상법의 기간은 모두 같으리라." 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번 이야기하는 내용이지만, 이와 같이 경전을 수기합니다.
그러므로 특별히 구체적인 이름을 들어 수기하지 않더라도 모든 생명, 모든 사람들이
본래로 부처님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고자 하신 것이 부처님의 참 뜻입니다.
독자들은 그러한 속뜻을 읽어야 경을 보는 눈, 즉 경안(經眼)이 갖춰진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불교의 경전을 읽는데는 무엇보다 이 경안이 있어야 합니다.
조석예불 때 하는 축원문에 '간경자(看經者) 혜안통투(慧眼通透)'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찰에서는 자나깨나 경을 보는 안목인 지혜의 눈이 열리기를 축원합니다.
경안이 열리지 않으면 아무리 경을 보아도 글자만 좇아갈 뿐 그 깊은 뜻은 알 수 없기 때문에
옛 조사들이 축원을 통하여 간절히 바라게 한 것입니다.
진실로 모든 생명, 모든 사람들이 부처님입니다.
모든 생명, 모든 사람들을 부처님으로 받들어 섬기면 나도 행복 하고 그도 행복합니다.
세상이 모두 행복합니다.
진정한 인류의 평화는 모든 생명, 모든 사람들을 부처님으로 받들어 섬겨야만 이루어집니다.
생명들과 사람들을 부처님으로 받들어 섬기지않고는 그 어떤 노력도 평화와 행복을 가져오지는 못합니다.
진정 인류의 평화를 위한다면, 참으로 인류의 행복을 위한다면 지금부터라도 모든일을 멈추고
사람들을 부처님으로 받들어 섬기는 일 만을 해야 합니다.
사람들을 부처님으로 받들어 섬기는 일을 외면한다면 인류의 평화는, 인류의 행복은 영원히 오지 않습니다.
개인에게서나 국가에서나 오늘날 인간이 펼치는 모든 노력이 인류의 행복과 평화를 위해서 하는
것이라면 하루 빨리 진정한 행복과 평화의 열쇠를 가져야 합니다.
부디 이 생각에 확신을 가지고 개인이나 국가나 하루 빨리 진정으로 행복하고
평화로운 삶을 누리기를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다음에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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