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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어록

(무문관 제24칙) 이각어언(離却語言)

(무문관 제24) 이각어언(離却語言)

 

풍혈 화상에게 스님이 물었다.

스님: "말이나 침묵으로 이[]와 미[]에 드나들면서, 어떻게 해야 진리를 범하지 않고 통할 수 있습니까?"

[원래 여하시인경구불탈(如何是人境俱不奪): 무엇이 사람과 경계를 모두 빼앗지 않는 것입니까?]

풍혈: "강남의 삼월을 오래도록 기억하지, 자고새 우는 곳에 백화가 향기로웠네."

 

* 풍혈 연소[風穴延沼:896-973]: 여주 남원 혜옹의 제자.

* 승조[僧肇:374-414]스님의 '보장론' 중의 두 번째 품으로 이미체정품에 나오는 구절.

 

기입리(其入離) 기출미(其出微): 그 들어갈 때는 이 나올 때는 미.

가위본정체가자리미야(可謂本淨體可自離微也): 본정의 체는 스스로 이와 미를 한다.

거입고명리(據入故名離) 약용고명미(約用故名微): 들어 가니 이요, 쓰여지니 미다.

혼이위일(混而爲一) 무리무미(無離無微): 혼연히 하나가 되면, 이도 없고 미도 없다.

체리불가염(體離不可染) 무염고무정(無染故無淨): 체는 이로 물들 수 없고, 물들지 않으니 청정하지도 않다.

체미불가유(體微不可有) 무유고무의(無有故無依): 체는 미로 있을 수 없고, 있지 않으니 의지할게 없다.

시이용이비유(是以用而非有) 적이비무(寂而非無): 쓰여도 있는 것은 아니고, 고요해도 없는 것이 아니다.

비무고비단(非無故非斷) 비유고비상(非有故非常): 없지 않으니 끊을 수 없고, 있지 않으니 영원함도 아니다.

 

무문왈: 풍혈의 기지가 번개불과 같아서 꺼리낌없이 행했으나

어찌 앞에 앉은 이의 혓바닥을 끊지 못했을까?

만약 이 점에 관해서 본 바가 있어 정곡을 찌를 수 있다면 스스로 나아갈 길이 있으리라.

언어 삼매를 떠나서 한 마디 해봐라.

 

: 풍골의 구를 드러내지 않고(격조 높은 어구) 말하기 전에 먼저 보였네.

입을 열어 지껄이는 것은 그대를 대망조 들게 하리라.

 

스님의 질문 '어묵섭이미(語默涉離微) 여하통불범(如何通不犯)'

말을 해도 진리를 범하고 안해도 범하니 어찌하면 좋으냐는 질문이다.

과연 당돌한 스님의 질문이다.

만약 그대가 질문의 언구에 매이지 않는다면 직하에 풍혈의 가풍을 볼 수 있겠으나,

언구에 매이여 , 불범의 경계를 논한다면 이십년은 족히 참선을 해야 풍혈을 볼 수 있으리라.

 

협산선사가 자신의 경계를 묻는, '무엇이 협산의 경계입니까?'라는 물음에

 '원포자귀청장후(猿抱子歸靑장後) 조함화락벽암전(鳥含花落碧巖前):

원숭이는 새끼를 안고 절벽을 돌아가고 새들은 꽃을 물고 푸른 바위로 날아든다.' 라고 대답하였는데,

훗날 법안종의 법안 문익은 이 게송을 협산의 경치를 읊은 경계라는 생각을 이십년이나 하였다고 합니다.

이렇듯 스스로 불립문자하여 언구에 매이지 않아야 하고,

나의 주관과 일체의 경계의 객관을 초월하여 자재 할 수 있어야 비로소 작가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