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일자: 2022.2.18
코스: 양포항(시점)-신창마을-일출암-신창항-영암마을-영암방파제-대진마을-대진해수욕장-모포마을
-모포항-구평마을-구평방파제-장길리복합낚시공원-보릿돌-하정마을-하정항-병포마을-병포항-구룡포항(종점)
인원: 나홀로 (이사, 곽차)
거리: GPS 21.22km (두루누비기준 19.1km)
시간: 널널.촬영&휴식포함/ 6시간20분
▶ 갈때 : 개금집에서 노포동.동부시외버스터미널으로~ 포항行시외버스를 타고 포항시외버스터미널에 하차,
포항시외버스터미널/버스정류장에서 306번 버스타고 오천농협세계지점/버스정류장에 하차,
포항800번 버스 환승하여 양포삼거리 하차, 시점까지 도보 이동.
▶ 올때 : 구룡포항 일본인가옥거리/버스정류장에서 포항900번 버스타고 포항시외버스터미널 하차,
포항시외버스터미널에서 부산.사상/서부터미널行 버스이용,
부산.사상/서부터미널 하차, 지하철2호선타고 개금집으로 귀가.
양포항 끝자락 수협 구룡포 장기지점 맞은편에 세워져 있는 해파랑길 13코스,14코스 종합안내판
(09:45) 해파랑길 13코스,14코스 종합안내판 우측에 있는 13코스 스탬프를 찍고,
방제대응센터 표시가 된 컨테이너박스 조립패널건물 앞으로 진행하면서 해파랑길 13코스는 시작된다.
(09:50) 구룡포수협 양포위판장과 그 맞은편의 경매장을 지나고~
양포항
양포항(良浦港)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장기면 양포리에 있는 어항이다.
1971년 12월21일 국가어항으로 지정되었다.
양포리는 양포 서편 산 아래에 있는 마을로 이 마을은 달이 뜨면 제일 먼저 달빛이 비치는 곳이라하여 양월이라 한다.
다기능어촌어항으로 어항시설 외에 해양레저· 공연장 등을 갖추고 있어 해양휴식공간으로의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09:57) 양포 근린공원
문어형상의 급수대, 배 돛과 선원을 조각한 조각품, 원형공연장과 특색 있는 가로등이 조성된
근린공원은 많은 예산이 투입된 듯 보이지만, 이후 관리가 잘 되지 않은 느낌이다.
(10:02) 양포항 방파제는 출입하지 못하도록 철조망으로 칭칭 감아놓았다.
이후 해안가길을 따라 신창리로 진행하면, 우측 해안가로 '양포축양장'이 이어진다.
(10:08) 신창리 부챗살바위
신창리 안내도에는 '병풍 선돌'로 표기되어 있다.
이 부챗살 바위는 60년 전 사라 태풍 때 밀려와서 이곳에 멈춰 있다고 한다.
이제는 이 바위들이 예전부터 이 자리에 있었던 터줏대감인 듯, 자리하며 기묘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1959년 9월17일 한반도를 강타한 사라 태풍은 그 이전까지 한반도에 상륙한 태풍 중 가장 강력한 태풍으로 유명하다.
이 태풍이 우리나라에 미친 피해는 엄청나서, 사망 내지 실종이 849명, 이재민이 37만 명이었으며,
이를 계기로 재해대책본부가 설치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10:10) 신창2리항
(10:11) 창바우(倉岩)
신창2리항에 자리잡고 있는 바위인데, 이 마을 이름이 유래된 창바우(倉岩)다.
신창리의 옛 이름은 창바우[倉岩]인데, 이 마을 앞 바다에 곳집같이 생긴 바위에 연유하여 불린 마을이다.
매년 정월과 6월에 동제를 모시고 있다.
(10:12) 신창마을
신창해변
아직 정식 해수욕장으로 지정되지 않아 안전시설이나 편의 시설이 미비하지만, 낮은 수심과 맑은 물로
여름이면 많은 사람들이 놀려온다고 하는데, 조금씩 시설 설치 공사가 진행 중이다.
"간이"라고 이름하기에는 작은 않은 백사장을 가진 곳이다.
이후 신창마을 어촌체험마을펜션을 지나고~
(10:19) 31번국도인 '동해안로'에 올라 우측 도로를 따라 진행한다.
'우는 바위'
신창마을 동해안로 갈림길에서 뒤돌아 보면, 국도 우측에 자리잡은 큰 바위다.
산이라고 착각할 만큼 큰 ‘우는 바위’에는 일찍이 고아가 된 아이가 부모를 그리워하며
밤낮으로 울었다는 전설이 전해오는데, 지금도 비가 오려하거나 동풍이 불어 파도가 치는 날에는
바위에서 잉잉대는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린다고 한다.
창바우마을 안내판
그렇게 31번국도인 '동해안로'에 올라 우측 도로를 따라 진행한다.
계속 이어지는 신창해변
(10:31) 구룡포 14km 표지판을 지나고~
(10:33) 장기천을 가로지르는 '금곡교'를 건넌다.
장기천
경북 포항시 남구 장기면 방산리 소재 방산지에서 발원하여 신창리에서 동해안으로 유입되는
독립하천인데, 최근 생태 하천으로 정비되면서 연어가 돌아오고 있다고 한다.
포항시에서 추진하는 연어 양식장 사업과 관련하여 주민들과의 마찰이 있다고는 하지만
양식장 추진과 관계없이 생태 하천이 잘 관리되어 연어가 계속 돌아오길 바랄 뿐이다.
(10:34) 일출암(日出岩)
경치가 아름다운 '장기 일출암'은 장기천을 따라 내려오는 민물과 동해의 바닷물이
만나는 곳에 있는 바위로, 옛날부터 생수가 솟아난다고 해서 일명 '날물치' 또는
'생수암(生水岩)'이라고도 불리어 왔다.
뭍에서 조금 떨어져 우뚝 솟은 바위 틈새로 그림처럼 붙어 자란 소나무들과 그 사이로
떠오르는 아침 해의 조화가 실로 절경이어서, 육당 최남선이 '장기 일출'을 조선십경(十景) 중의
하나로 꼽았을 만큼 빼어난 장관을 연출한다.
육당 최남선의 조선 10경.
1. 압록 기적(汽笛) - 압록강 기선의 경적 2. 천지 신광(神光) - 백두산 천지 풍광
3. 대동 춘흥(春興) - 대동강변 봄빛 4. 금강 추색(秋色) - 금강산 가을 단풍
5. 재령 관가(觀稼) - 황해도 구월산 동선령 풍경 6. 경포 월화(月華) - 경포대 수면에 비치는 달
7. 연평 어화(漁火) - 연평도 조기잡이 어선 불빛 8. 장기 일출(日出) - 장기에서 뜨는 아침 해
9. 변산 낙조(落照) - 변산 앞바다 해넘이 10. 제주 망해(茫海) - 제주도 망망대해
또한 장기면의 옛 지명도 해돋이와 관련이 있는 지답현(只畓縣, 只畓: 해 뜰 때 물이 끓어오르는 모양)이라고 불렀다.
날물치 해송과 해돋는 바다가 어우러진 모양이 너무 아름다워 오늘날 이 바위를 '장기 일출암'으로 명명하고 있다.
(10:38) 신창1리마을
(10:39) 신창1리항
(10:42) 해파랑길은 해안가에서 벗어나 좌측 임도로 이어진다.
그렇게 좌측 임도에 올라 야트마한 산을 넘고~
(10:49) 다시 해안가로 내려오면 해안가 끝에 집 한채와 정자가 나타난다.
거센파도가 밀려온다.
이후 해파랑길은 정자앞에서 좌측 해안숲속길로 이어지고~
작은 모래해변이 육지속으로 쏙 들어와 있는 가족단위 해수욕장이다.
해안숲속길을 진행하다 바라본 바닷가
해안숲속길에서 영암1리 방파제를 바라보고~
(11:04) 영암1리마을
(11:05) 영암1리항
'영암 갓바위 둘레길' 안내판
'영암 갓바위 둘레길'은 이곳 영암1리에서 신창1리까지 해안가를 따라 이어지는 약1.3km의 둘레길이다.
영암1리 해변
(11:10) '영암 갓바위'
영암 회식당 바로 우측 옆집 마당안에 위치한, 영암마을 이름의 유래가 된다는 바위다.
옛날 과거 보러 가던 선비가 이곳에서 잠시 갓을 풀어놓고 쉬다가, 갓을 잊고 그냥 가버렸는데,
그 갓이 바위로 변하였다는 것이다.
이 갓바위가 동해의 해가 뜰 때마다 조금씩 자랐는데, 이에 신령스러운 바위로 여겨 치성을 드리면
효험이 있었다고 하여, 마을이름도 관암(冠岩)에서 영암(靈巖)으로 바꿔 부르게 되었다 한다.
(11:12) 영암2리 어촌계 공동작업장 앞을 지나고~
지나온 영암2리 해변을 뒤돌아 보고~
(11:17) 영암2리항
영암3리로 이어지는 해파랑길
(11:22) 영암3리항
(11:23) 영암3리 어촌계 공동작업장을 지난다.
(11:24) 영암3리마을
마을 앞 도로 한가운데에, 소나무가지 묶음에 새끼 당줄을 칭칭 감아 세워 놓았다.
마을의 액운을 물리치는 의식용인가???
궁금증만 남긴 채 이곳을 지난다.
영암3리방파제 바라보고~
대진리로 넘어가는 도로에 '동해안 자전거길' 표시가 선명하다.
(11:34) 대진항
(11:35) 대진리 어촌계 공동작업장 앞을 지나고~
(11:40) 대진리 해변이 시작된다.
호미반도 해안둘레길 이정표
호미반도 해안둘레길은 한반도 죄동단 지역으로 영일만을 끼고 동쪽으로 쭉 뻗은 트레킹 로드로,
서쪽의 동해면과 동쪽의 호미곶면, 구룡포읍, 장기면에 걸쳐 있다.
연오랑세오녀의 터전인 청림 일월(도기야)을 시점으로 호미반도의 해안선을 따라 동해면 도구해변과
선바우길을 지나 구룡소를 거쳐 호미곶 해맞이광장까지 4개 코스의 25km 구간과 해파랑길 13,14코스로
연결되는 구룡포항, 양포항, 경주와의 경계인 장기면 두원리까지 전체 길이는 58km에 달한다.
(11:49) 대진리 마을회관
대진리는 대추나무가 많다고 하여 붙여진 대초전(大哨田) 마을과,
매화나무가 많아서 붙여진 매진(梅津) 마을이 합쳐지면서 대진 마을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대진마을회관 옥상에 태양광 발전설비가 설치되어 있는데,
체계적인 태양열 시스템 발전 설비가 이렇게 설치된 곳은 처음 보는 듯 하다.
(11:51) 대진해수욕장
넓고 긴 해변의 대진해수욕장은 정식 해수욕장은 아니어서 안전시설이나 편의 시설은
거의 없지만, 대신 대형 펜션과 카페의 전용 공간이 되어 버린 느낌이다.
그렇게 해파랑길은 대진해수욕장 좌측 백사장을 따라 계속 이어지고~
(12:05) 대화천 하류 모래사장을 통해 대화천을 지난후 뒤돌아서서 바라본 대진해수욕장
가야할 모포마을이 지척으로 다가온다.
(12:10) 모포마을
모포리(牟浦里)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장기면에 있는 리(里)로, 동해의 둘출부에 형성되었고, 자연마을로는 모포, 칠전 등이 있다.
모포는 어느 지역보다도 봄에 보리가 일찍 되는 포구라 하여 '보리 모(牟)' 자를 붙여 모포라 하였는데,
보리가 제일 먼저 되는 구석이라 하여 '버리꾸지[包衣浦]'라고도 하였으며, 바위가 동해로 돌출하여
구석을 만들고 있다 하여 '바우꾸지[巴衣浦]'라고도 하였다.
모포리는 지금은 비록 한미한 해촌이지만 과거에는 군사요충지이자 화물 교역의 중심지였다.
모포리의 앞바다는 수심이 깊고 포구가 형성되어 있어서 고려 시대부터 조선시대에 걸쳐서 이곳에
수군기지[水軍萬戶鎭基]가 있었으며, 1658년(효종 9)에 상주하던 병력이 동래로 기지를 옮겨간 뒤에도
해창(海倉)을 설치하여 화물 교역장으로 번창한 역사가 전하고 있다.
또한 이 마을은 해안 봉수가 지나가는 곳이기도 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기록된 뇌성산(磊城山)의 봉수가 그것이다.
모포리 북쪽의 진산인 뇌성산을 현지에서는 내성산이라고 부르며, 이 산에는 지금도 봉수터가 남아 있다.
국가 중요민속자료 제187호인 '모포줄'은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12:13) 모포리 해변
(12:17) 모포리어촌계를 지난다.
(12:20) 모포항
이후 태진횟집을 지나고, 좀 더 나가다가 '개인 양어장' 건물 앞에서,
(12:25) 좌측의 테크 계단길로 해파랑길은 이어진다.
그렇게 테크계단길로 올라서니 (12:30) 예전 콘크리트 해안초소 지붕이다.
아침을 부실하게 먹은터라 배도 고파오고~
이곳에 배낭을 내리고 준비해온 토스트와 캔맥주로 점심을 해결하며 휴식이다.
(20분 휴식)
휴식하며 바라본 모포리 해안가~
(12:50) 좌우로 밭 사이로 해파랑길은 이어지고~
다시 우측아래 'C자' 형태의 해변으로 해파랑길은 이어진다.
(12:55) 언덕마루 갈림길
방향안내판이 수풀에 가려 자칫 그냥 지나쳐 계속 임도따라 갈수도있는 지역이다.
(지금까지 포항시 남구 장기면 안을 진행해 왔는데, 이후부터 구룡포읍으로 행정계가 바뀐다.)
산죽밭을 지나고~
이동통신 중계탑 옆으로 내려서서 해안가로 내려간다.
해변에는 자갈과 해초, 쓰레기로 뒤덮여 있는데, 좌측 해안길을 따라간다.
반대방향 해안 멀리 기묘한 입석바위가 줄지어 서 있는데~
그중 '고양이바위'로 불리는 가장 큰 기암괴석이 압권이다.
고양이바위는 ‘송곳바위’ ‘두꺼비바위’ ‘망부석’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데,
보는 각도에 따라 달리 보이기 때문이다.
이 중 '망부석'이란 이름이 꽤나 적당해 보이는데, 등에 업힌 아이는 칭얼대고 배는 자꾸 불러오는데,
만선의 꿈을 안고 바다로 나간 남편은 돌아오지 않아 기다리다 지쳐 망부석이 된 여인 같다고 한다.
(13:15) 자갈해안길끝에서 지나온 해안가를 뒤돌아보고~
(13:18) 영일수산 축양장(畜養場)을 지난다.
축양장은 어업 또는 양식에 의하여 생산된 수산물을 알맞은 시설에서 얼마동안 보관하여
기르는 곳을 말하는데, 겨울 횟감의 대명사인 대방어가 그물안에 가득하다.
이후 각양각색의 갯바위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곳을 지나고~
이곳은 파도가 굉장히 많이 몰아치는 곳인데 기상이 나쁠때는 이곳을 피하는게 답인것 같다.
구평마을로 이어지는 해파랑길
(13:29) 구평마을회관
구평리(邱坪里)는 동해면 중산리와의 경계에 있는 달구벼슬산에서 발원되는 내를 따라 발달된
긴 골짜기와 동쪽 해안선에 'ㄱ'자로 길게 형성된 마을이다.
5개의 자연부락이 1리(새바우), 2리(邱坪, 학교마), 3리(都邱亭, 황사다미)로 나누어져 있다.
그중 1리 새바우(鳥岩)는, 이 마을 주변에 군데군데 구멍이 뚫린 큰 바위가 많이 있어 뭇 새들이 날아와
쉬었다가 간다 하여 새바우 또는 조암(鳥岩)이라 불러오고 있다.
(13:31) 구평1동(새바우)항
구평1동항의 기암괴석
이곳에서는 신생대 화산활동이 활발했던 곳임을 입증해주는 화산암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파도와 염분의 풍화작용으로 형이상학적 모양을 가진 바위가 여기저기 늘려있다.
(13:33) 새바위(鳥岩)
구평마을 해안가의 커다란 바위에 구멍이 뚫려있는것을 볼수가 있는데, 이 바위를 바위구멍에
새들이 날아와 쉬었다가 간다고 해서 조암(鳥岩) 또는 새바우로 부르고 있다.
(13:37) 구평마을 돌담
국도를 향해 올라가는 길에서 만난 정겨운 돌담.
제주 돌담과는 또 다르게 보이는데, 정겹게 보이는것은 콘크리트 구조물에 질려 버린것이 아닌가 싶다.
(13:41) 31번국도상의 구평2리 버스정류장
구평2리는 구평(邱坪)마을과 학교마(學校村)마을이 합친 리로, 옛날 성지(性智)라는 풍수가
이곳을 지나다 뇌성산 줄기가 뻗어내린 이곳이 평평한 두들로 되어 있으므로 구평이라 했다 하는데,
거북의 등과 같은 형상이라 하여 구반(龜盤)이라고도 불리고 있다.
학교마(學校村)는 1949년에 설립된 구룡포 남부초등학교가 있었던 마을이라고 학교마 또는 학교촌이라 불린다.
효자 하영식(河永湜)의 효자각이 있다.
구평2리 버스정류장 맞은편의 '구룡포 효자 하영식 정효각(旌孝閣)'
효자 하영식(河永湜)은 진주 하 씨로 일찍부터 벼슬에는 뜻을 두지 않고 초야에 묻혀
학문을 연구하면서 효도를 다하였다.
부친이 한겨울에 병을 얻어 위독하여지자 산닭이 병에 좋다는 이야기를 듣고 엄동설한에
눈 속에서 산닭을 구하여 복용케 하였으며, 두꺼운 얼음을 깨고 큰 잉어를 잡아 고아드리니
병이 쾌차하여 3년을 더 살았다고 한다.
이러한 효행을 그 지방을 지나던 관찰사가 알고 조정에 상고하여, 조선 인조 22년(1644년)에
봉대부(奉大夫) 동몽교관(童夢敎官)이란 직을 하사받았으며, 그의 효행을 알리고자
진주 하씨 문중에서 비와 비각을 건립하였다.
이후 해파랑길은 장길리낚시공원 입구까지 약 0.9km를 31번 국도를 따라 진행한다.
(13:43) 상정천을 건너는 구평교'를 지나고~
상정천
상정천을 따라 상류로 올라가면 포항 블루밸리 국가산업단지가 지정되어 한참 개발 중이다.
임야를 깎아내며 공사를 진행하다 보니 산업단지의 영향을 오롯이 받는 하천이다.
(13:45) 좌측 2km 지점에 구평3리가 있다는 안내판과 '구룡장어' 입간판 사이 국도변을 따라간다.
(13:46) 구평리 느티나무(보호수)
구평리에는 포항시 보호수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는 450년이 넘은 느티나무가 있다.
가지가 주위로 넓게 퍼져서 여름이면 넉넉한 그늘을 만들어 주는 나무인데,
잘 큰다면 수명이 1천 년에 이르기도 한다.
은행나무, 소나무와 함께 천연기념물로 가장 많이 지정된 나무이기도 하다.
(13:52) 구평리 해변
구평리에는 상정천 외에도 구평 3리에서 내려오는 작은 개천이 해변으로 내려오는데,
두 하천이 해변과 만나는 지점에도 넓은 모래사장이 있다.
몽돌과 모래가 섞인 구평리 간이 해수욕장이다.
(13:54) 장길리복합낚시공원갈림길
31번국도상의 장길리복합낚시공원갈림길에서 해파랑길은 우측 낚시공원으로 들어간다.
장길리(長吉里)는 남쪽으로는 구평리, 북쪽으로는 하정리와 경계를 이루면서
바다에 접해 있는 마을로 장구목, 생길리 등 2개의 자연부락이 있다.
장구목, 생길리를 병합하여 장구목의 장(長)자와 생길리의 길(吉)자를 따서 장길리라 하였다.
장길리항 방파제 끝의 '희망등대'를 당겨보고~
장길리항의 '희망등대'는 물고기와 새싹을 형상화한 작품으로,
포항시의 역동적인 모습을 담아 희망을 상징하는 높이 10m의 적색 등대다.
밤이 되면 조명에 의해 새싹과 물고기 비늘 형상이 잘 표현된다고 한다.
(13:58) 장길리복합낚시공원
'장길리 복합낚시공원'은 낚시를 좋아하는 강태공들에게 인기가 높은 낚시 명소다.
공원은 어민 소득증대와 관광 활성화를 위해 120역원의 예산이 투입되어 2015년에 준공되었다.
이곳은 확 트인 해안 덱 산책로와 조경공원, 야경이 아름다운 경관조명 등대, 부유식 낚시터,
바다에 떠있는 펜션, 카페 등 여러 부대시설과 편의시설이 조성돼 가족단위 방문객들이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특히 바다 쪽을 향해 길쭉한 모양으로 자리하고 있는 ‘보릿돌 교량’이 2013년 말 완공돼 관광객들은
도보로 보릿돌까지 걸어가 낚시를 즐기고, 아름다운 장길리 바닷가를 더 가까이서 볼 수 있게 됐다.
장길리복합낚시공원에서 (13:59) 나무데크길따라 보릿돌 방향으로 간다.
좌측으로 신생대 화산활동으로 생긴 화산암이 파도와 풍화작용으로
기이한 형태로 변한 갯바위가 펼쳐진다.
(14:03) 장길리 복합낚시공원 조감도를 지나고~
(14:07) 보릿돌교 입구
보릿돌교를 건너 보릿돌이 있는 전망대까지 갔다온다.
보릿돌은 장길리 앞바다에 있는 갯바위로 예전 배를 타야만 들어갈 수 있었지만,
2013년에 교폭 4.5m, 길이 170m의 덱 교량이 조성되었다.
보릿돌교와 연결된 큰 갯바위가 '안보릿돌', 조금 더 먼바다에 위치한 작은 갯바위가 '바깥보릿돌'로,
낚시꾼들에게는 천혜의 포인트로 알려져 왔다.
보릿돌의 이름과 관련한 유래로, '보릿고개를 면하게 해 주었다'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하지만,
'섬 두 개가 각자 따로 떨어져 있다’는 의미에서 보릿돌이 됐다는 주장도 있다.
보릿돌
갯바위모양이 보리같다고해서 보리암(麥岩) 또는 보릿돌이라고 했다.
이 마을사람들은 옛날 보릿고개를 넘어야 할때마다 이 바다 아래에서 미역이 많이나
어려운 고비를 넘길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보릿돌교에서 가야할 하정마을과 구룡포항을 바라보고~
(14:17) 보릿돌 포토존
보릿돌입구에서 해파랑길은 (14:21) 나무데크계단을 내려와 자갈해안길로 연결된다.
자갈해안길을 이어가는데, 발이 푹푹 빠지는 모랫길이 아니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해파랑길 화살표 표식기 찾기놀이중~
(14:28) 해파랑길은 31번국도가 지나가는 해안도로를 따라 이어진다.
(14:30) 구룡포까지 5km 남았다는 교통 표지판을 지나고~
이후 하정1리까지 갓길이 없는 위험한 국도변을 따라 이어진다.
(14:34) 도로 우측 해변의 바위섬
고래 형상의 이 바위섬은 화산암이 파도에 의해 침식된 해식애(海蝕崖) 단애로
이루어져 있는 암반 섬으로, 위쪽에는 소나무들이 자리를 잡고 오랜 풍파를 견뎌오고 있다.
가슴이 확 트이는 망망대해 수평선
(14:40) 하정1리 입구
(14:41) 알록달록비치펜션앞에서 우측 하정마을 해안가로 해파랑길은 이어진다.
(14:42) 하정1리마을 해변
(14:44) 하정1리 마을회관 앞을 지나고~
하정리(河亭里)는 구룡포읍 소재지 남쪽 약 10리 되는 곳인, 북쪽의 병포리와 남쪽의 장길리 사이에
해안선을 따라 길게 형성된 마을로 옛 하성과 송정을 합쳐 하정리라 부르게 되었다.
5개의 자연부락이 1리(임물), 2리(하성, 태끼, 솔머리), 3리(당사포)로 구분되어 있다.
하정1리인 임물(臨勿)은 1700년경 한씨와 편씨가 개척한 마을로, 예로부터 물과 인심이 좋고
많은 인물이 배출될 것 같다고 하여 임물이라 했다 한다.
(14:48) 하정1리항
하정1리에는 해파랑길 13코스 방향안내판에서 가르키는 살모사 바위가 위치한 곳인데,
그저 걷기에 정신이 팔려 귀중한 곳을 만나지 못했다.
13코스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 살모사 바위를 찾아보니~
하정1리 방파제 사이에 바다로 뻗어 있는 바위가 있는데, 길 쪽으로 정자와 운동 기구가 있고
그 위로 살모사 바위를 조망할 수 있는 데크가 설치되어 있다.
물 아래로 얕은 바위지대에 침식으로 생긴 기다란 뱀 모양이 보이는데, 와! 하고 탄성이 나온다.
평소 길 바깥에서 볼 수 있는 그런 커다란 바위가 아니다.
하정1리항에서 다시 해안도로인 '하정로'에 올라서면
(14:40) 언덕 마루에 소나무 고목이 자리하고~
(14:51) 하정2리마을회관앞을 지난다.
하정2리는 옛 하성(河城)과 솔머리, 태끼를 합친 마을로, 하성은 마을의 생긴 모습이 성을 쌓아 둔 것 같아
붙여진 이름으로, 진주 하씨가 개척하여 하씨들이 많이 살고 있으므로 하성이라 불렀다 한다.
솔머리(松亭)는 마을의 생긴 모양이 쇠머리 같은 형상이며, 그 머리에 해당하는 바닷가 언덕 위에
큰 소나무 정자가 숲을 이루고 있다 하여 '솔머리'로 불렸고, 이 소나무 정자가 있는 언덕을 일송정이라 하여,
여기에 연유하여 송정이라고 하였다.
태끼('토끼'의 경상도 방언)는 배가 닿는 포구에서부터 마을의 끝까지가 반달 형상을 하고 있는데다
마을 어귀의 지형이 돌출하여 토끼의 형상을 하고 있는데, 이것을 두고 사람들이 토끼가 동해에서
떠오르는 달을 바라보는 형국(玉兎望月形)이라 하여 '태끼'라 불렀다 한다.
(14:53) 하정2리버스정류장앞에서 해파랑길은 우측 해안가로 연결된다.
(14:54) 하정2리항
하정2리 갯바위 파도가 장난이 아니다.
(15:00) 하정2리 어촌계 공동작업장 앞을 지나고~
하정2리에서 하정3리로 이어지는 해파랑길
(15:05) 하정3리 초입 바닷가 정자
(15:11) 하정3리벽화마을
(15:12) 하정3리 마을회관을 지나고~
하정3리의 옛 이름은 당사포(堂士浦)로, 마을 뒤에서 보면 '堂'자 같고,
앞에서 보면 '士(사)'자 같다고 하여 당사포라 했다 한다.
또 다른 일설로는 선비들을 가르치는 서당이 있었던 곳이라고 그렇게 불렸다고도 한다.
마을 뒤 언덕 위에는 수년 전에 세워진 경북대학교 수련원이 있다.
(15:16) 하정3리마을 해안가끝에서 좌측 골목안으로 해파랑길은 이어진다.
이후 언덕을 넘어 구룡포 읍내로 가는 길에는 풀빌라들이 줄지어 있다.
말 그대로 객실마다 개인 풀(Pool)이 달려있는 숙박시설이다.
이색적인 이스케이프 풀빌라를 지나 해안도로에 올라왔다가 다시 우측 병포마을 해안가로 내려간다.
(15:24) 병포1리교를 건너고~
병포리(柄浦里)는 구룡포만을 끼고 구룡포리와 마주 보는 곳에 위치하며, 북쪽의 대보 방면으로 통하는 도로와
남쪽의 장기 방면으로 통하는 도로의 길목이기도 하다.
자래골, 웃자래골, 남포리 등 3개의 자연부락이 행정구역 상 각각 1, 2, 3리로 구분되어 있다.
병포1리인 자래골(柄里)은 마을 앞에 있는 큰 바위 형상이 자래('자라'의 방언)를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병리의 병(자루 柄) 자는 자래골을 한자로 표기할 때 '자래'를 '자루'로 오해하여 잘못 적은 것이다.
과메기와 건오징어가 등장하고~
과메기는 겨울철에 청어나 꽁치를 얼렸다 녹였다 반복하면서 그늘에서 말린 것으로,
경북 포항 구룡포 등 동해안 지역에서 생산되는 겨울철 별미이다.
원래 청어를 원료로 만들었으나 1960년대 이후 청어 생산량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청어 대신 꽁치로 과메기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과메기라는 명칭은 청어의 눈을 꼬챙이로 꿰어 말렸다는 관목(貫目)에서 유래한다.
'목'을 구룡포 방언으로 '메기'라고 발음하여 '관목'이 '관메기'로 변하고 다시 'ㄴ'이 탈락하면서 '과메기'로 굳어졌다.
과메기를 먹게 된 유래에는 여러가지 설이 있다.
동해안의 한 선비가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가던 길에 배가 고파 바닷가 나뭇가지에 청어가 눈이 꿰인 채로
얼 말려 있는 것을 먹었는데 그 맛이 너무 좋았다.
그래서 집에 돌아와서도 겨울마다 청어의 눈을 꿰어 얼 말려 먹었는데 이것이 과메기의 기원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재담집《소천소지(笑天笑地)》에 기록되어 전해진다.
또 뱃사람들이 배 안에서 먹을 반찬이나 할 요량으로 배 지붕 위에 청어를 던져놓았더니 바닷바람에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여 저절로 과메기가 되었다는 설도 있다.
이규경(李圭景, 1788~?)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算稿)》에는 '청어는 연기에 그을려 부패를 방지하는데
이를 연관목(燃貫目)이라 한다'라고 쓰여 있고, 《규합총서(閨閤叢書)》에는 '비웃(청어)을 들어 보아
두 눈이 서로 통하여 말갛게 마주 비치는 것을 말려 쓰는 그 맛이 기이하다'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과메기는 만드는 과정에서 어린이 성장과 피부미용에 좋은 DHA와 오메가3 지방산의 양이 원재료인
청어나 꽁치보다 증가한다고 알려져 있다.
또 생산 과정에서 핵산이 더 많이 생성되어 피부 노화, 체력 저하, 뇌 쇠퇴 방지에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서 상의 과메기 이야기
● 《소천소지(笑天笑地)-1918 최창선》 : 동해안 지방의 한 선비가 겨울에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가기 위해 해안가를
걸어가다가 민가는 보이지 않고 배는 고파오는데, 해변가를 낀 언덕 위의 나무에 고기의 눈이 나뭇가지에 꿰인 채로
있는 것을 보고 찢어 먹었는데 너무나 맛이 좋았었다.
과거를 보고 내려온 그 선비는 집에서 겨울마다 생선 중 청어나 꽁치를 그 방법대로 말려 먹었다.
●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算稿)- 이규경(李圭景, 1788~1863)》 : '청어는 연기에 그을려 부패를 방지하는 데
이를 연관목(燃貫目)이라 한다'라고 쓰여 있다.
● 경상도읍지(1832년), 영남읍지(1871년) : 영일만의 토속 식품 중 조선시대 진상품으로 선정된 관련 식품은 연일과
장기 두 곳에서만 생산된 천연재료의 관목 청어뿐임.
● 동국여지승람 영일현 편 : 매년 겨울이면 청어가 맨 먼저 주진(注津 지금의 영일만 하구)에서 잡힌다고 하는데
먼저 이를 나라에 진헌한 다음에야 모든 읍에서 고기잡이를 시작했다.
잡히는 것이 많고 적음으로 그해의 풍흉을 짐작했다.
(15:27) 병포항
(15:28) 병포항 방파제
병포항 방파제와 '대성조선소' 직전 갈림길에서 (15:30) 좌측 골목길로 해파랑길은 이어진다.
해파랑길 화살표 표식기 찾기 놀이중이다.
구룡포항이 잘 조망된다.
이후 '병포길' 따라 '병포3리'로 들어서고,
(15:38) 철대문 집 앞 'ㅏ자' 갈림길에서 우측 골목으로 들어간다.
병포3리는 구룡포리 남쪽에 위치한다고 하여 남포리(南浦里)라 불려 왔는데,
이곳에서 구룡포리가 마주 보인다고 하여 '맞구룡포'로도 불려졌다.
또 6.25전쟁 때 피난 온 사람들이 많이 산다 하여 '피난민 동네'라고도 하였다.
(15:41) 구룡포항
구룡포리(九龍浦里)는 영일만을 형성하고 있는 범꼬리의 동쪽 해안선이 남쪽으로 내리 달리다가
응암산의 한줄기와 만나는 지점에서 활처럼 휘어져 구룡포만을 이루는데, 이를 끼고 기다랗게 놓여 있는
읍 소재지 마을이다.
1923년에 방파제를 쌓고 부두를 만듦으로써 본격적인 항구로서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예로부터 용두귀운(龍頭歸雲), 옥산반조(玉山返照), 주잠명월(珠岑明月), 항구장제(港口長堤), 유명조일(維溟朝日),
창주모연(滄珠暮煉), 우진화선(盂津畵船), 석문청풍(石門淸風)등 8가지를 구룡포팔경(八景)이라 하였다.
전설에 의하면 신라 진흥왕 때 장기 현령이 늦봄에 각 마을에 순시하다가 지금의 용주리를 지날 때
갑자기 폭풍우가 휘몰아치면서 바다에서 용 10마리가 승천하다가 그중 1마리가 떨어져 죽자
바닷물이 붉게 물들면서 폭풍우가 그친 일이 있는데, 9마리의 용이 승천한 포구라 하여 구룡포라 했다고 한다.
또 다른 전설에 의하면 용두산 아래에 깊은 소(沼)가 있었는데, 이 소(沼) 안에 살던 아홉 마리의 용이
동해 바다로 빠져나가면서 승천하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구룡포는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조용한 어촌마을이었다.
어부 이외에는 가족의 먹을거리를 구하기 위해 바다에 나가는 정도였다.
일제강점기가 되자 구룡포는 최적의 어업기지로 떠올랐다.
‘도가와 야사브로’라는 일본인 수산업자가 조선총독부를 설득해 구룡포에 축항을 제안한 것이다.
큰 배가 정박할 곳이 생기자 수산업에 종사하던 가가와현과 오카야마현 등에서 일본인들이 대거 구룡포로 몰려왔다.
그들은 큰 배로 대량 어획을 해서 부를 축적했고 어업과 선박업, 통조림 가공공장 등을 하며
일본인 집단 거주지를 만들었다.
현재 구룡포 우체국 옆쪽 골목에서 볼 수 있는 ‘일본인 가옥거리’가 그것이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100여 채 남아있던 일본인 가옥은 현재 50채가량 남았다.
거리 곳곳에는 일제강점기 당시 사진이 붙어 있어 현재 모습과 비교하며 둘러볼 수 있다.
집 내부에는 다다미는 물론, 일본 잡지로 도배한 방문, 후지산이 그려져 있는 유리창 등
일제의 생활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15:49) '구룡포 대게 유통센타 대게직판장' 앞에서 좌측이다.
(15:50) '구룡포 버스 환승정류장'과 택시 승강장을 지나고~
(15:51) 스페인 바르셀로나 구엘 공원의 모자이크 타일의 긴 벤치를 닮은 곡선형 장식 담장을 지난다.
(15:55) '과메기 문화거리'
선박에서 어로작업 중인 어부를 형상화한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15:58) '아라광장'
도로 건너편의 일본인 가옥거리 입구
(16:05) 해파랑길 13코스,14코스 종합안내판과 스탬프
해파랑길 13코스,14코스 종합안내판과 스탬프는 구룡포 일본인 가옥거리 버스정류장에서
30m 더 진행한 e마트24시편의점 앞에 세워져있다.
해파랑길 포항14코스 진행은 구룡포 일본인가옥거리입구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진행하면서 시작된다.
오늘은 여기까지, 목표했던 오늘 구간도 무사히 도착했다.
해파랑길 13코스 스탬프 찍고~ 그렇게 답사마무리하고,
구룡포항 일본인가옥거리/버스정류장으로 이동, 포항900번 버스타고 포항시외버스터미널 하차,
포항시외버스터미널에서 부산.사상/서부터미널行 버스이용,
부산.사상/서부터미널 하차, 지하철2호선타고 개금집으로 귀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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