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일자: 2022.6.18
코스: 칠포해수욕장(시점)-칠포2리마을-칠포1리마을-해오름전망대-오도1리마을-오도리간이해변-오도2리마을
-흥해읍에서 청하면으로-청진3리마을-청진2리마을-청진1리마을-이가리마을-이가리간이해변-이가리닻전망대
-용두1리마을-용두리간이해변-용두2리마을-월포해수욕장-방어마을-조사마을-조사리간이해변-방석마을
-화진1리마을-화진2리마을-화진해수욕장(종점)
인원: 나홀로 (이사, 곽차)
거리: GPS 19.65km (두루누비기준 19.3km)
시간: 널널.촬영&휴식포함/ 4시간55분
▶ 갈때 : 개금집에서 노포동.동부시외버스터미널으로~ 포항行시외버스를 타고 포항시외버스터미널에 하차,
포항시외버스터미널/버스정류장에서 포항5000번버스타고 흥해환승센타/버스정류장에 하차,
흥해개인택시 이용하여 칠포해수욕장 입구 하차, 시점까지 도보 이동
▶ 올때 : 같은날 포항19구간 동시진행으로 인해 18구간 날머리 대중교통편 확인못함
해파랑길 포항 구간 마지막 코스인 18코스 출발지인 칠포리 강서마을 해수욕장 안내판 앞에서
답사준비를 마치고 18코스 스탬프 찍고 (09:05) 출발이다.
칠포리(七浦里)
수군 만호진이 있던 곳이며, 고종 8년(1870) 동래로 옮겨가기 이전까지 군사 요새로서,
7개의 포대가 있는 성이라 하여 칠포성(七砲城)이라 불렀다 한다.
칠포(漆浦)라고 부르는데 절골에 옻나무가 많아서, 또는 해안의 바위, 바다색이 옻칠한 듯 검은데서 연유한다고 한다.
1914년 북하면 지역의 강서, 강북 두 마을을 합하여 칠포(七浦)라 하였다.
강북(江北)마을
망제산(望齊山) 산록과 강변에 걸쳐 조선 중종 5년(1510)에 쌓은 칠포성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1956년 개교한 칠포 초등학교는 1996년 폐교되었고, 그 건물은 현재 청소년 수련원으로 사용되고 있다.
오봉산(烏熢山) 꼭대기에는 석축을 했던 흔적이 남아 있는데, 지금은 이 주위가 마을 공동묘지로 되어있어
공동묘지산이라 부르고 있다.
옛날에는 심한 가뭄이 들면 공동묘지산과 곤륜산에서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강서(江西)마을
고현천의 서쪽에 위치한다고 불린 지명이다.
상두들(上野)에는 큰 주춧돌과 성혈식 고인돌 10여기가 있다.
현재 마을은 섬산(島山)의 동쪽 '잠불' 일원에 형성된 어촌으로 3월 보름날 동제사를 지낸다.
상두들 뒷산 농밭산에서는 조개 화석이 발견되기도 한다.
마을 남쪽에 있는 곤륜산(崑崙山 ;176m, 일명高靈山)의 서편 산기슭 바위벽에 다수 선사시대 암각화가 발견되었다.
곧바로 바다시청 안을 통과하여 '칠포해수욕장' 백사장 좌측으로 진행이다.
'칠포해수욕장'
칠포해수욕장
포항시에서 북쪽으로 13km 거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백사장 길이 2km, 폭 70m,
평균수심 1m 총 넓이 9만 7천 평에 하루 10만명을 수용할 수 있는 동해안 최대의 해수욕장이다.
백사장은 왕모래가 많이 섞여 있으며 주변에 바다낚시도 가능하다.
'칠포해수욕장' 백사장 끝 지점에 앞쪽 산 능선으로 오르는 테크탐방로가 조성되어 있다.
테크계단길을 올라 해안 능선길 위에서 '칠포해수욕장'을 뒤돌아보고~
잠시후 '테크 전망대'를 지나고~
가드 로프길을 따르다 군부대 옆으로 내려서면 (09:18) '칠포해변'이다.
칠포해변으로 내려서니 '귀암' 입석바위 꼭대기에 소나무가 자라고 있는것이 이채롭다.
(09:25) '칠포2리'회관 앞을 지나고~
칠포방파제 바라보고~
(09:27) '고현천'을 건너기 위해 좌회전하여 '고현천'을 우측에 끼고 간다.
(09:30) '20번 해안도로'가 지나는 '칠포교'를 건너간다.
'칠포교'를 건너자마자 우회전하니 '칠포1리' 강북마을 표지석이 있다.
(09:32) '칠포'항
(09:35) '해골바위'라고 불리는 갯바위를 지나고~
보는 방향에 따라 달라 보이겠지만, 해골바위가 아니라 강아지가 엎드려 있는 형상 이기도하다.
다시 테크계단길을 올라서 진행하면~
'해오름전망대'가 조망된다.
'20번 해안도로'에 올라서서, 도로옆 테크로드를 따라간다.
(09:40) 배 형상의 '해오름 전망대'
해오름 전망대
해오름은 포항-울산 고속도로 완전 개통을 계기로 포항· 울산· 경주 3개 도시가 함께하는 동맹의 이름이다.
이 3개 도시 공히 한반도에서 해가 가장 먼저 뜨는 지역이면서 산업화를 일으킨 [산업화의 해오름] 지역이라는 점과
경제 재도약의 [해오름]이 되겠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다시 해안길로 내려서니 추락방지를 막는 가드 로프가 길게 이어진다.
다시 '20번 해안도로'를 따르고~
자귀나무...
다시 해안길로 내려서니 시누대 자생지 우측 좁은 등로를 따라 '접도구역' 안내판을 지난다.
(09:48) 테크전망대를 지나고~
'오도1리'가 지척이다.
북구 흥해읍 오도리(烏島里)
1914년 한가심이, 검댕이, 섬목과 같은 자연부락을 합하여 오도(烏島)라 칭하고 곡강면에 속하였다.
오도(烏島)는 원래 부둣가에서 100m 거리에 위치하며 3개의 커다랗고 질펀한 검정색 바위로 되어 있는 작은 섬인데,
마을이름은 여기에서 유래되었다.
한가심이[황계(黃溪)·방어(方魚)] : 큰 나루터가 있다 하여 한가심이,
개천이 누렇다 하여 황계(黃溪),
방어가 많이 잡힌다 하여 방어(方魚)라 불리었다.
해발 145m의 묵은봉(舊烽山) 기슭 해변에 위치한다.
언덕 위에 사방기념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검댕이(檢丹) : 청하면 신흥리로 가는 길에 비구니들만 사는 절이 있어 금단(禁斷)의 절이 있다는
뜻의 지명이 변천하여 검단(檢丹)이라 했다 한다.
섬목(島項) : 오도1리로 길목 마을이어서 섬목이라 했다 한다.
(09:55) '오도1리'항
(09:56) '오도1리'간이해수욕장
해수욕장 우측 앞바다에 '오도'가 조망된다.
(10:02) 오도 주상절리 안내판
'오도1리' 간이해수욕장 백사장이 끝나는 곳에서 도로는 좌측으로 휘어지고,
해파랑길은 우측 백사장으로 내려서는데, 이정표는 월포해수욕장까지 7.3km 남았다고 알려준다.
앞쪽 해변으로 이어지는 길도 있지만, 좌측 펜션 위로 테크계단길로 진행한다.
'오도 주상절리' 바라보고~
(10:05) 테크탐방로를 올라 DMZ 펜션 앞을 지나고~
벌노랑이...
군부대와 DMZ 펜션 입구를 나서는데 배가 산으로 향하고 있다.
다시 20번 해안도로를 따라 '오도교'를 건너고~
(10:10) 'Y자' 갈림길에서 우측 해안길로 들어서면 '오도2리'다.
좌측 도로를 따라 오르면 '오도리 사방기념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오도리 사방기념공원(砂防記念公園)
근대적 사방사업(砂防事業: 산에 나무를 심고 강둑을 높이는 등 자연재해를 방지하기 위하여 실시하는 공사)이
시작된지 100주년을 기념하여 2007년 11월 7일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흥해읍 오도리에 개장하였다.
오도리 일대는 1975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로 연인원 360만 명이 총면적 4500ha를 단기간에 녹화하여
사방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룩한 대표적 지역으로 알려진 곳이다.
사방사업 기술의 변천사와 각종 자료들을 모아놓은 3개의 전시실과 다목적 영상실을 갖춘 사방 전시기념관,
실제 시공현장을 모형으로 재현해놓은 야외 사방시설 및 삼국시대 석실묘와 석곽묘 등을 전시해놓은
문화유적 전시시설로 구성되어 있다.
관람시간은 오전 9시30분에서 오후5시까지이며, 입장료는 무료이다.
(10:20) '오도2리'항
'오도2리'항 주변은 방파제 준설공사를 하는지 너무 부산하다.
'월포해수욕장'이 5.5km 남았음을 알려준다.
(10:24) 청하면 표지판과 청진3리 입간판을 지난다.
이곳부터 포항시 북구 흥해읍에서 북구 청하면으로 행정구역이 바뀐다.
포항시 북구 청하면(淸河面)
북쪽은 송라면(松羅面), 서쪽은 신광면(神光面), 남쪽은 흥해읍과 접하고, 동쪽은 동해로 열려 있다.
청하라는 지명은 육청(六淸)에서 유래하여 맑은 시냇물 때문에 지었다는 설도 있고,
청계리(고구려와 신라의 국경)의 『청(淸)』과 고현(河芳[하방])의『 하(河)』를 합쳤다는 설도 있다.
청하천과 월포천(月浦川)이 서부 산지에서 발원, 동쪽으로 흐르면서 하류지역에 충적평야를 형성하고,
동해에서 손꼽히는 해수욕장이 펼쳐져 있다.
덕성리(德城里) 부근은 단구 형태의 평탄면이 넓게 발달하여 경지로 이용되고 있다.
해안에 위치한 이가리(二加里)·월포리는 면내의 대표적인 어촌이고 또한 월포리 부근에는 모래해변이 넓게 발달해 있다.
육청(六淸)이란?
時淸而河淸(시청이하청 : 시절은 맑고 물 또한 맑으며),
官淸而心淸(관청이심청 : 관리가 깨끗하니 민심 또한 맑고),
風淸而睡淸(풍청이수청 : 바람이 맑으며 잠자리 또한 맑도다).
청진리(靑津里)
월포만 남단 해안 돌출부위에 형성된 어촌으로서, 3리인 보리진은 흥해읍의 오도리와 경계를 이루며,
마을 남서쪽에는 옛 봉화산인 묵은봉[구봉산, 해발 104m]이 있다.
1914년 대곶이(1리)와 흥해군의 푸나리(2리), 보리진(3리)을 합하여 청진이라 하였다.
대곶이[죽관]는 바다 쪽으로 뾰족이 나온 대나무가 많은 마을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다.
푸나리[푸른나리, 청진]는 원래 길 서편 골짜기의 송림이 울창한 곳에 있어 송정리라 했었는데,
바닷가로 이주하면서 푸른나리, 푸나리(청진)라 이름을 바꾸었다.
보리진[포이포·포위진·모진]은 임진왜란 때 왜적을 포위하여 섬멸한 곳이라는 말이 전해지며,
보리가 잘 되는 어촌이었다는 설도 있다.
(10:27) '청진3리' 어민복지회관 앞을 지나고~
(10:29) '청진3리'항
'청진2리'항 방파제 바라보고~
(10:35) 청진2리[푸나리] 대행 신고소가 있는 '푸나리항'이다.
이름이 특이한 '청진하다' 펜션 앞을 지나고~
'독채민박 9월애' 펜션 벽면에는 고려속요인 '청산별곡'을 패러디한 글귀와~
'그리운 건 / 그대일까 / 그때일까'란 '하상욱 시인'의 싯귀가 쓰여 있다.
(10:38) 자연석 거석을 줄지어 세워놓은 곳을 지나고~
'청진1리'가 지척이다.
(10:42) 연인바위 펜션을 지나는데, 건물과 바로 붙어서 자연석인 '연인바위'가 있다.
연인바위
선사시대 포항 칠포 해수욕장 주변에는 고인돌과 암각화가 많았다.
그때 이 지역 부족장의 딸 해수가는 다른 부족과의 오랜 전쟁에서 패하여 여기 대곶이 해변으로 도망 오다가
추격군의 화살에 맞아 머리에 큰 구멍이 나는 중상을 입었다.
위급한 상황을 본 마을 청년 무돌이 추격군을 물리치고 해수가를 구하였지만 다시 보낸 추격군의 포위에
둘은 100일 동안 저항하다 죽으면서, 그 애틋한 마음으로 입 맞추며 꼭 껴안은 채 바위로 굳어
연인의 영원한 사랑을 이루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바위다.
(10:43) '청진1리'항(대곶이항)
'청진1리' 어촌계를 지나고~
(10:47) 새로 조성된 계단식 방파제 해변길을 따라 길게 나간다.
'등대지기연수원 펜션' 앞을 지나는데, 모래와 자갈로 섞여있는 해변길이 시작된다.
(10:55) 액운을 막는 여러 개의 돌탑을 지나 '이가리'로 들어선다.
청하면 이가리(二加里)
마을이 동해와 맞닿아 있으며 곳곳에 저수지가 위치한다.
자연마을로는 백암동, 이가리 등이 있다.
백암동은 백암이 보이는 언덕에 마을이 처음 형성되었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 마을 서편 언덕 위에 황새마을이란 작은 촌락이 있었는데, 송림 속에 황새가 깃들던 데서 붙은 이름이다.
이가리는 옛날 두 기생이 청진과 백암의 갈림길에 터를 잡고 마을을 개척하며 살았다 하여 지어진 지명이라 한다.
도씨와 김씨 두 가문이 길을 사이하여 각각 집성촌을 일구었는데 차츰 번성하면서 서로 합하여 한마을이 되었다 하여
이가리라고 불렀다는 얘기도 전해지고 있다.
(10:57) '이가리'항
이가리 해양경찰 출장소를 지나고~
이가리 정자 쉼터가 있는 마을회관에 배낭을 내리고 물 한잔하며 잠시 쉬어간다.
잠시후 '선주회센터'를 지나 직진하고~
(11:08) 새로 조성된듯한 해변길로 진행하면, 전방으로 '이가리닻전망대'가 보인다.
(11:11) '이가리'간이해수욕장
(11:16) 이가리닻전망대
이곳 전망대에서 '독도까지 거리는 직선거리로 ≒251km'라고 한다.
이후 해안가에 자연상태의 수석전시장을 방불케하는 '거북바위'를 지나고~
머리에 소나무를 이고 있는 입석바위를 지난다.
(11:21) 두꺼비바위
'이가리'간이해수욕장이 끝나는 곳의 깎아지른 듯한 절벽 위쪽이 '조경대'인데
이가리와 용두리 경계지점이다.
조경대(釣鯨臺)
경상북도 포항시의 북구 청하면의 이가리 바닷가에 솟아있는 높은 절벽 바위이다.
원래 앞쪽의 동해 바다가 거울같이 맑게 비춰주므로 조경대(照鏡臺)라 하였는데, 1624년(인조 2)에
부제학 유숙(柳潚), 경주부윤 이정신(李廷臣), 청하현감 유사경(柳思璟), 송라역찰방 변효성(邊孝誠)이
이곳에서 술을 마시며 놀다가 마침 임씨라는 사람이 고래를 잡는 것을 보고 신기하게 여겨
유숙이 조경대(釣鯨臺)로 고치고 시를 읊으면서 한자 이름이 바뀌었다고 전해진다.
『신증동국여지승람』(청하)과 『여지도서』(청하)에는 조경대가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해동지도』(청하),
『영남지도』(청하), 『여지도서』(청하)의 지도 등 고을에서 직접 그려 올린 지도에는 조경대가 나와
조선 후기에 중요한 곳으로 인식된 것으로 보인다.
해월(海月) 황여일(黃汝一, 1556~1622)은 유람기 「유내영산록(遊內迎山錄)」에서 조경대의
아름다운 풍광을 읊었는데, "북쪽 바다 위의 하늘은 광활하고, 서쪽 산엔 구름이 우거졌으며,
가까이에는 기이한 바위들이 빽빽하게 서있다"라고 하였다.
모래지치...
(11:27) 최근에 조성된듯한 '조경대' 아래 해변길을 진행하는데,
앞쪽에는 '용두1리'간이해변과 월포해수욕장이 길게 펼쳐져 보인다.
청하면 용두리(龍頭里)
청하천의 하구인 용산 머리 북쪽에 형성된 마을이다.
새마을(1리), 새터· 오두, 허후리(이상 2리)와 같은 자연부락과 화지동 일부를 합하여 1914년 용두리라 하였다.
새마을[새마리] : 용두1리다.
용산 기슭에 자리했던 용산리가 이동하여 일군 마을이다.
해변엔 풍광 좋은 조경대가 있는데, 옛날 조선조에는 정자가 있어 이곳에서 백일장이 열리도 했었다.
원래는 조경대(照鏡臺)라 했는데 인조 2년 유축이 이곳에서 놀고 있을 때 마침 이 앞에서 고래를 잡는 장관을
구경하게 되자, 이름을 바꿔 조경대(釣鯨臺)라 부른 것이 오늘에 이른다.
그 북편 사장에 포항종합제철 연수원이 근년에 건립되었다.
오두리(鰲頭里)· 허후리· 새터 : 용두2리다.
새터는 오두리의 이좌도가 명당터를 찾아 이사를 와서 새로 개척한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허후리는 개포에 수군만호가 있을 때 외곽 수비대의 지휘소가 있었다 하여 불린 지명이다.
오두리는 산의 모습이 마치 자라[鰲]와 같은데, 그 머리 부분에 마을이 형성되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학봉 김성일이 어린시절 이곳에서 자랐다는 구전이 있다.
용두1리[새마리] 간이해수욕장
(11:29) '용두1리'간이해수욕장 뒷편 송림숲을 따라 진행하고~
(11:31) 20번 해안도로로 다시 나가니, 해파랑 이정표가 월포해수욕장이 1.5km를 알린다.
(11:32) '포스코 월포 수련원'을 지나고~
20번 해안도로를 진행하다 우측 용두해변으로 들어서는 입구에 있는 정자에 배낭을 내리고
준비해온 햄버거와 캔맥주로 점심 해결하며 휴식이다. (11:35~11:50)
(11:51) 월포해수욕장이 0.9km 남았음을 알려준다.
(11:52) '용두리'간이해변
'용두1리 마을'을 지나고~
(11:58) 서정천 위로 20번 국도가 지나는 '용두교'를 건너서 간다.
'용두교'를 건너다 우측 해수와 담수가 만나는 기수역을 바라보고~
그렇게 용두교를 건너면 '용두2리'인데 해파랑길 이정표가 우회전을 알리고~
'월포해수욕장' 0.3km 남은 지점이다.
(12:02) 도로가 좌측으로 휘어지는곳 우측 쉼터는 관리가 거의 되지 않는 듯 지붕에 잡풀이 나 있다.
'월포해수욕장' 입구 이정표
잠시후 화장실을 지나고~
이곳 주위에서 '용두리'를 지나 '월포리'로 들어서게 된다.
청하면 월포리(月浦里)
월포리는 월포만을 끼고 있는 청하면의 연안 최대 마을이다.
1리는 적은포, 2리는 개포, 3리는 월아구와 중휘리를 합친 마을인데,
1914년 월아구의 『월』자와 개포의 『포』자를 취하여 월포라 이름하였다.
적은포·소근포[1리]
월포천변 월현산 남쪽 산기슭에 형성된 마을이다.
개포가 군사기지 항구일 때 이 마을 앞에 강물을 따라 올라와 작은 어선들을 정박할 수 있었기에 '적은포라 하였다.
지금은 방어리와의 사이에 100여m의 방파제가 완공되어 있다.
개포·낫개[2리]
청하천과 월포천이 날라온 토사가 퇴적되어 형성된,
육지와는 샛강으로 인하여 따라 떨어진 새터에 신라 때 수군만호진영기가 설치되었던 마을이다.
월아구· 중휘리[3리]
월아구[들막·달래두들]는 고인돌군으로 추정되는 큰 어금니 모습의 바위들이 있는,
달이 뜨는 언덕이란 뜻으로 불리는 마을이다.
중휘리[중휘라리]는 수군만호가 개포에 있을 때 이곳에 중군 지휘소가 있었던 곳으로 추정된다.
월포초등학교 동편 늪지는 옛날 청하천이 이리로 흐른 흔적이며,
이곳에서 화살촉과 칼 등의 병기류가 출토되었으며, 고인돌로 추정되는 입석 1기도 남아 있다.
현재 월포 침례교회와 우체국이 있다.
(12:06) '월포해수욕장'
월포해수욕장은 백사장 길이가 900m, 폭 70m, 총 107,786㎡의 백사장에 하루 50,000명을 수용할 수 있다.
물이 맑으며, 수심이 얕고 민박이 잘 형성되어 있다.
난류와 한류가 교차되는 곳으로 동물성 프랭크톤이 많아 꽁치 등 바닷고기가 풍부하여
월포 방파제에서의 낚시는 일품이다.
조용한 분위기와 깨끗한 물로 점차 관광객이 늘고 있으며, 주변에는 포스코 휴양소와 청소년 적십자 수련원이 있다.
또한 남쪽 방향으로 해안선을 따라 2㎞ 내려가면 이가리 해안의 솔밭과 암석으로 자연발생유원지가 있어
해수욕과 삼림욕을 함께 즐기기에 좋은 곳이다.
(12:15) '청하천'을 가로지르는 '월포 다리'를 건너고~
다리 초입에는 갈매기를 형상화 한듯한 거대한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월포 다리'를 건너 잠시 진행하면 해파랑길은 우측이다.
이곳부터 월포리에서 방어리로 행정구역이 바뀐다.
청하면 방어리(方魚里)
다래산 동편 산기슭에 자리한 어촌으로서 처음 마을이 형성된 곳은 서편 언덕배기 제당이 있는 주변이라 한다.
마을 어귀 해변의 큰 바위가 말 같다 하여 '말바윗골'이라 불렀는데, 방어가 잘 잡히는 현 위치로 마을이 이동된 후
방어진(方魚津)이라 부른 데서 방어리라 불리게 되었다.
국립 수산 진흥원 영일수산종묘배양장이 있고, 방어리 침례교회가 있다.
(12:21) '월포항 & 방파제'
해안가 해상테크길이 시작된다.
(12:32) '방어리'항
(12:37) 'Selbia' 펜션 앞 해변로가 해파랑길이다.
(12:40) '수산과학원 사료연구센터'를 지난다.
양식장에서 물이 배수되는 곳을 지나고~
지금까지 청하면 관내 해안을 지나왔는데, 이곳 해송수산 앞에서부터
청하면 방어리에서 송라면 조사리로 면계가 바뀐다.
포항시 북구 송라면(松羅面)
동쪽은 동해로 열려 있고, 북쪽은 죽장면(竹長面)과 영덕군 남정면(南亭面), 서쪽은 죽장면(竹長面)·신광면(神光面),
남쪽은 청하면(淸河面)과 접한다.
본래 청하현 북면(北面)이라 했으나, 1914년 군면 통폐합 때 종6품의 찰방이 파견되어 많은 속역을 거느렸던
송라역(松羅驛)의 이름을 따서 송라면이라고 하였다.
면의 서쪽 경계를 따라 내연산(內延山)·향로봉(香爐峰) 등이 솟아 있어 고산지대를 이루고, 동쪽으로 점점 낮아지지만,
해안 부근에 천마산(天馬山)·어유산(魚遊山)·봉화산(烽火山) 등 경사가 급한 산들이 분포해 있다.
서부산지에서 발원한 광천(廣川)은 중산리(中山里) 일대에 협곡을 만들고 여러 개의 폭포를 이루면서 동류하다가
보경사(寶鏡寺) 부근에서부터 곡저 충적평야를 형성하고, 하구 부근에는 너비 1㎞ 정도의 충적평야를 이룬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콩 등이고, 화진리(華津里)에서는 각종 어패류가 잡힌다.
영덕~포항 국도가 지난다.
문화재로는 보경사(寶鏡寺), 보경사 원진국사비(圓眞國師碑:보물 252), 보경사 부도(浮屠:보물 430),
보경사 5층석탑(경북유형문화재 203), 보경사 적광전(寂光殿:경북유형문화재 254),
보경사의 탱자나무(경북기념물 11), 보경사 대웅전(경북문화재자료 231) 등이 있다.
송라면 조사리(祖師里)
다래산[달래산, 월현산(月現山)]의 북동 산록에 형성된 마을이다.
고려말 원각조사(圓覺祖師)가 태어난 마을이라 하여 조사리라 불렸다.
조사의 생가 터에는 1913년 평양신학교 출신 허담(許膽) 목사가 조사리 침례교회를 설립하였으며,
동천장로교회(東天長老 敎會)라 하여 오늘에 이른다.
이 마을 북서쪽 언덕배기에는 김해허씨의 9형제가 세웠다는 구우정 (九友亭)의 흔적으로 작은 명비(明碑)가 남아 있고, 그 부근에는 일제시에 성도암지에서 발굴된 원각조사의 비가 옮겨 세워져 있다.
마을 서편 1㎞지점에는 마사지[馬斯池, 용천지(龍泉池)]가 있으며 근년에 포병부대가 들어서 있다.
조사리 해변과 조사리 방파제의 붉은 등대를 바라보고~
(12:51) '조사리'항
'예쁘다 넌 꽃처럼 예쁘다' 글씨가 적혀있는 '바다봄' 펜션을 지난다.
(12:55) 조사마을의 '용치바위'
'수용암바위'
(13:00) '조사리' 간이해수욕장
조사마을 해안가에서 다시 해안도로로 올라와 진행하고~
(13:01) 도로 좌측 맞은편 위에 원각조사비가 세워져있다.
원각조사비(圓覺祖師碑)
고려 우왕때 청하현 조사리에서 태어난 원각은 속성이 김씨이며,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여섯살때 사서를,
아홉살에 시경을, 열살에 서경을, 열한살에 주역을 읽어 시문은 물론 자연의 이치를 터득하게 되었다.
집에서 가까운 보경사 등 사찰에서 고승과 불법을 문답하고 불경을 보면서 참다운 생의 진리를 깨달았다고 한다.
조사리 성혈바위
(13:05) '광천'을 가로지르는 '조사교'를 건너고~
곧바로 우측 '조사리'간이해변으로 들어선다.
(13:18) '포항 방석리' 마을 안으로 들어선다.
송라면 방석리(芳石里)
1914년 방화동(芳花洞)과 독석(獨石)마을을 합하여 방석(芳石)이라 하였다.
방화 도리산(桃李山)이 바위산인데다 옛날엔 복숭아와 자두나무가 많아서
꽃이 필 때의 아름다운 경치를 보고 마을 이름을 방화라 했다.
어래산 동편 산기슭에 1989년 건립된 한·미 해병충혼탑이 있다.
독석(獨石)마을 앞 바닷가에 검고 넓직한 큰 바위가 하나 외로이 있어 마을 이름을 검은돌, 딴돌, 독석이라 부른다.
한때 나포리라 부르기도 했으며, 백사장에 시장이 섰으므로 '한불장터'란 지명이 남아 있다.
마을 서편 어귀에 치성바위인 성혈식(性穴式) 고인돌 '애기방우'가 있다.
북동 해변에는 1966년 건립된 5인 해병순직비가 있다.
'방석항' 방파제 벽면에 '멸종 위기에 처한 해양 동물' 벽화가 이채로운데~
멸종위기에 처한 해양동물(황제펭귄, 붉은바다거북, 북극곰, 명태, 상어, 듀공, 고래상어,
흰돌고래,범고래, 흰수염고래)을 담은 벽화는 무분별한 남획과 같은 인간활동에 경고의 메시지로
자연과 환경을 잘 보호하자는 의미를 담은 작품입니다.
방석마을 어느 가정집의 해학적인 인형 조형물
이후 방석2리 경로당[어업인 복지회관]과 아쿠아벨 리조트를 지나면,
오늘 해파랑길 18구간 목적지인 화진리로 들어서게 된다.
송라면 화진리(華津里)
천마산(天馬山)과 도이산(桃李山-봉화산(烽火山), 104m) 북동 기슭에서부터 해안(海岸)에 걸쳐 형성된 마을로서
이진(耳津), 대진(大津), 화산(華山)과 같은 자연부락(自然部落)이 1, 2, 3리(里)로 각각 형성되어 있으며,
1914년 화진(華津)이라 이름하였다.
이진(耳津)·구진(龜津)
포구의 모습이 귀를 닮았다 하여 불린 지명이며, 일명 구진(龜津)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바닷가에
거북 모습의 큰 바위가 있어서 30여 년 전까지 여기에 동제사(洞祭祀)를 지내온 데서 연유 한 것이다.
대진(大津)
송라역(松羅驛)이 도이산(桃李山) 서북쪽 산기슭에 자리하고 있을 때, 원산(元山)과 동래(東來) 등지를 오가는
선박들이 정박하면서부터 마을이 동쪽 바닷가로 이동(移動) 하게 되고, 따라서 원래는 서피진(西皮津)이라
부르던 것을 대진(大津)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왜란 이후 한동안 이곳을 골곡포(骨谷浦)라 부르기도 하였는데, 이는 이 마을 북쪽 백사장에서 왜병 (倭兵)과
우리 수비병 간에 대혈전(大血戰)을 벌여 그 죽은 자들의 무덤이 썩은 숭이네 고랑에 가득하여,
백사(白沙)가 이동하면 유골들이 곳곳에 노출된 데서 불린 지명이다.
화산(華山)
화산(華山), 고송라(古松羅), 학교마을 등으로 불리는데, 이는 이 마을 동편 모래언덕과
백사장에 해당화가 많은 데서 연유한다.
(13:27) 화진1리 '구진(龜津)마을'로 들어서고~
마을 초입 벽면에 '앉은 줄다리기 전통문화 마을' 표시가 눈길을 끄는데,
계속 이어지는 다양한 벽화를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해변가 '하트무늬' 포토존
(13:30) '화진1리'항
'구진마을' 용왕당 앞에 '화진리 구진마을 앉은 줄다리기'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화진리 구진마을 앉은 줄다리기( 포항시 향토문화유산 무형 2016-1)
화진리 구진마을 앉은 줄다리기는 음력 정월 대보름 오전에 행해지는데, 앉아서 줄을 당긴다고 하여
'앉은 줄당기기'라고도 한다.
좌우 다리가 각각 네 개인 '기('게'의 방언)'를 닮았다고 하여 '기 줄당기기'라고도 한다.
해안 지역 주민들에게 게의 붉은색과 날카로운 발은 각각 벽사의 색과 형상, 그리고 무수한 알은
다산의 상징으로 인식되고 있다.
두 가지 명칭 중 마을 주민들은 '앉은 줄당기기'란 명칭을 주로 사용하며, 줄은 흔히 '동네 할뱃줄'이라 부른다.
줄은 원래 짚으로 만들었으나 약 50년 전부터 뱃일에 쓰이는 로프로 바꾸어 사용하고 있다.
줄을 앉아서 당기게 된 이유에 대해서 마을 주민들은 줄을 당기다가 넘어지는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그러나 단순히 사고 방지를 위한 것이라는 설명은 납득하기 어렵고 줄다리기 하는 여성의 모습이
흡사 출산하는 여성을 연상케 하는데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는 의식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구진마을 앉은 줄다리기는 이 지역의 독특한 문화이고 줄다리기 자체보다는 이 의식 행위가 가지는 의미를 새기고
일제강점기부터 지금까지 중단된 적 없이 전국에서 유일하게 행해지는 민간 의식으로서 가치가 높다.
(13:35) 화진2리 '대진(大津)마을'을 지나고~
(13:37) '화진2리'항
이후 지중해 풍의 '더케이프(THE CAPE)' 펜션을 지나면, 해파랑길은 직진 해변이 아닌
좌측으로 나가게 되는데, 이유는 앞쪽 해변에 군부대가 있기 때문이다.
(13:41) 군부대 좌측으로 새로 난 2차선 포장도로를 따라서 간다.
(13:52) 예전 해파랑길 갈림길을 만나고~
해파랑길 이정표는, 좌측 '화진1리 회관'에서 이곳으로 나오는 것으로 안내되고 있는데,
이길은 과거의 18코스 진행코스다.
(13:53) '대전천'을 가로지르는 '화진1교'를 건너고~
'국토종주(고성)동해안자전거길'은 직진이지만 해파랑길은 우측이다.
(13:55) '화진해수욕장'
화진해수욕장(華津海水浴場)
경북 포항시 북구 송라면 화진리에 있는 해수욕장이다,
백사장 길이는 400m, 폭은 100m, 평균 수심은 1.5m이다.
포항시에서 7번 국도를 타고 북쪽 영덕 방면으로 20km 지점에 위치한다.
작지만 나무가 많고 바닷물이 깨끗하며 냇물이 두 군데에서 흘러내려 담수욕도 할 수 있다.
화진해수욕장 해변탐방로를 따라 바다시청 및 파출소 앞을 지나고~
(14:00) 해파랑길 18코스 종점이자, 19코스 시작점 안내판 앞에서 해파랑길 18구간을 마친다.
해파랑길 18코스,19코스 종합안내판과 스탬프
해파랑길 18코스,19코스 종합안내판과 스탬프는 화진해수욕장 바다시청을 지난
해수욕장 도로변의 샤워장과 화장실 우측에 세워져 있다.
오늘 1차로 목표했던 해파랑길 18구간도 무사히 도착했다.
(18구간 진행시간을 총 6시간 예상했는데 무려 1시간이나 앞당겼다. ㅎ)
걱정했던 다리,발목 상태도 아직 별 이상도 없다.
해파랑길 18코스 완료 스탬프 찍고~
도로 건너편에 있는 편의점에서 션한 라떼 한병 구입해서 마시고,
10분 쉬었다가 해파랑길 19구간을 연속으로 이어간다.
해파랑길 영덕 19코스는 화진해수욕장에서 도로변따라 진행하여 해안가 우측으로 진행하면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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