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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파랑길

해파랑길 영덕19구간

답사일자: 2022.6.18

코스: 화진해수욕장(시점)-지경마을-지경교(포항시와 영덕군경계)-대게누리공원-부경2리마을-부경1리마을(부경항)

-장사상륙작전 전승기념공원-장사해수욕장-부흥리해수욕장-부흥1리마을-원척마을-원척항-구계마을(구계항,구계방파제)

-남호해수욕장-남호마을-삼사마을-삼사해안산책로-삼사방파제-삼사해상공원-오포3리마을-강구항(종점)

인원: 나홀로 (이사, 곽차)

거리: GPS 16.97km (두루누비기준 15.8km)

시간: 널널.촬영&휴식포함/ 4시간40분

 

 

▶ 갈때 : 포항18구간 마치고, 19구간 동시진행으로 인해 19구간 들머리 대중교통편 확인못함

▶ 올때 : 영덕19구간 마치고, 20구간 동시진행으로 인해 19구간 날머리 대중교통편 확인못함

 

 

 

해파랑길 18코스,19코스 종합안내판과 스탬프는 '화진해수욕장' 바다시청을 지난 

해수욕장 도로변의 샤워장과 화장실 우측에 세워져 있다. 

 

 

해파랑길 영덕19코스 출발 스탬프 찍고, (14:10)  '화진해수욕장' 해안도로를 따라 잠시 진행이다. 

 

잠시후 '투썸프레이스' 커피점 도착전에 우측 '화진해수욕장' 해변으로 내려가

백사장 좌측으로 해파랑길은 이어진다. 

 

***송라면 지경리(地境里)*** 

지경리는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송라면에 있는 리(里)이다.

이 마을 북쪽은 영덕군과 경계를 이루는 버드내(지경천: 地境川)가 흐르며 1리에는 지경,

2리에는 어사터와 염전(鹽田)이란 자연부락이 있는데, 1914년 지경리로 통폐합하였다.

 

지경(地境)은 청하현과 영해현의 경계에 놓인 땅이라 하여 불린 지명이다.

반공 피학살 현장비가 있다.

애기 방우라는 성혈식 고인돌이 산록에 산재하고 있다.

 

염전(鹽田)은 6.25전까지 300여 년 동안 소금을 구워오던 마을로서 어사터와 함께 2리에 속한다.

어사터는 버드나무가 울창하였다던 버드내 가에 형성된 마을이다.

 

어사터는 현재는 웃돔과 아랫돔으로 나누어져 있으나, 옛 마을은 그 사이에 크게 형성되어 있었다.

남서쪽 칼산 기슭에 도씨(都氏) 중시조인 고려 때 전리상서(典理尙書) 도충박(都忠朴)의 묘가 있다.

 

 

 

'화진해수욕장'

 

'화진해수욕장(華津海水浴場)'

경북 포항시 북구 송라면 화진리에 있는 해수욕장이다. 

백사장 길이는 400m, 폭은 100m, 평균 수심은 1.5m이다.

포항시에서 7번 국도를 타고 북쪽 영덕 방면으로 20km 지점에 위치한다.

작지만 나무가 많고 바닷물이 깨끗하며 냇물이 두 군데에서 흘러내려 담수욕도 할 수 있다.

 

 

 

(14:12)  '화진해수욕장' 백사장 좌측으로 진행이다. 

 

'화진해수욕장' 백사장이 끝나는 지점에서 해상테크길이 이어지고~

 

 

 

'화진해수욕장'을 뒤돌아보고~ 

 

 

(14:16)  테크길이 끝이나면 갯바위에 하얀 페인트 표시가 등로임을 알린다. 

 

 

그렇게 페인트 표시길을 따라 진행하면 멀리 '지경항 방파제'와 빨간 등대가 보인다. 

 

 

(14:20)  '비석바위' 

 

 

바닷가 정원을 예쁘게 꾸민 '화진펜션' 아래 탐방로를 따르고~ 

 

 

(14:25)  '호랑이바위' 

 

'화진펜션'을 지나 암반 위로 오르는 '돌 계단길'을 따라 올라서고~

 

 

 

'지경리 방파제'와 빨간등대가 지척이다. 

 

 

영일만 북파랑길 (호랑이 등오름길) 안내판 

 

 

(14:30)  '지경리 어촌계 공동작업장' 앞을 지나고~ 

 

 

(14:31)  '지경리'항 

 

 

(14:40)  '지경천'을 가로지르는 '지경교'를 건넌다. 

 

노후되어 1톤 이상 차량 통행이 금지된 '지경교'는 

포항시 송라면 지경리와 영덕군 남정면 부경리를 가르는 시·군계이다.

 

***남정면(南亭面)***

경상북도 영덕군의 최남단에 있는 면이다.

15개 법정리로 구성되어 있고 면 소재지는 장사리이다.

동해와 면해 있고 장사해수욕장이 유명하다.

남정천, 구계천, 장사천, 지경천 4개의 소하천이 바다 쪽으로 흐르지만,

워낙 유로가 짧은 소하천이어서 하천 유역에는 충적지가 거의 발달하지 않았다.

남정면은 조선시대에는 외남면(外南面)이었다.

읍치를 기준으로 할 때 가장 남쪽에 위치하기 때문에 '외남면'이라고 한 것으로 보인다.

『안동도회좌통지도』(영덕)에 '외남면'이 표시되어 있고, 그 일대에 남역(南驛: 지금의 남정리 남정 마을),

관현(館峴: 지금의 강구면 화전리 장고개로 추정), 장사진(長沙津)이 표시되어 있다.

남역은 조선시대 역원이 있었던 곳으로 『세종실록지리지』에도 그 명칭이 나온다.

장사진은 지금의 장사해수욕장을 나타낸 것이다.

남정면 면 이름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생겼다.

 

남정면 부경리(阜境里)

경상북도 영덕군 남정면에 있는 리(里)로, 부경 1리와 부경 2리로 이루어져 있다.

동쪽은 동해(東海), 서쪽은 남정면 양성리, 남쪽은 포항시 송라면 지경리, 북쪽은 남정면 장사리와 경계를 이룬다.

19세기 후기에 박씨 성을 가진 이가 마을을 개척하고 원진(元津)이라 하다가

뒤에 고부(高阜: 현재의 부경 1리)라 하였으며, 임진왜란 때 최씨 성을 가진 이가

마을을 개척하고 지경(地境: 현재의 부경 2리)이라 했다 한다.

조선시대에는 영덕현 외남면(外南面)에 속해 있던 지역이었으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고부동(高阜洞)과 지경동(地境洞)이 병합되면서

고부동의 ‘부’, 지경동의 ‘경’자를 따서 부경동(阜境洞)이라 하였고, 남정면으로 편입되었다.

그 후 1988년 5월 부경동에서 부경리로 지명이 변경되었다.

자연마을로 고부·지경·섬대마·원진·통시밋·어목골마을이 있다.

 

 

 

 

지경교를 건너 좌측 200m 거리에 위치한 '영덕 대게누리공원'은 '영덕 블루로드'의 첫 출발지로,

「나를 찾아 떠나는 아름다운 첫 대면」길인 「쪽빛 파도의 길(D코스)」가 시작되는 공원이다. 

 

 

영덕 대게 누리공원 -    주소: 영덕군 남정면 부경리 298-1

대게누리

대게 세상을 상징, 영덕을 대게 원조의 고장임을 알리기 위하여

세상이라는 의미의 순우리말인 ‘누리’로 담아 함축적으로 표현함  - 2012. 3 준공 

 

 

신라 향가 '헌화가' 탄생지는 이 지역 '굴곡포 거북바위'로 알려져 있다. 

 

그렇게 누리공원을 대강 둘러보고, 버스정류장 옆 스탬프 박스에 비치되어 있는

'영덕 블루로드' 리플릿 지도에 첫 출발 스탬프를 찍고 다시 해파랑길을 이어간다. 

 

 

 

영덕 영덕 블루로드

부경리 대게공원을 출발하여 강구항과 축산항을 거쳐 고래불해수욕장에 이르는

도보여행을 위해 조성된 약 64km의 해안길이다.

대게누리공원을 출발점으로하여 강구항까지를 쪽빛파도의 길(D코스),

강구항에서 영덕 해맞이공원까지를 빛과 바람의 길(A코스),

영덕 해맞이공원에서 축산항까지를 푸른 대게의 길(B코스),

축산항에서 고래불해수욕장까지를 목은사색의 길(C코스)이라고 한다.

 

 

 

(14:55)  다시 '지경교'로 되돌아나와 우측 해안가로 내려간다. 

 

 

'영덕 블루로드' 안내판 

 

 

(14:56)  이정표(↑장사해수욕장 1.8km, ←대게공원 0.2km)가 세워진 곳에서 직진이다. 

 

잠시후 '부경2리(지경 마을)' 마을회관을 지나고~

 

 

 

(15:00)  지경마을 안 길을 따라간다. 

 

 

(15:01)  '부경'항 방파제 

 

 

(15:03)  '부경1리'마을 

 

 

(15:05)  '부경1리(고부, 高阜)' 마을회관과 '부경'항을 지난다. 

 

 

(05:07)  갯바위 해상테크길을 따르고~ 

 

 

해상테크길이 끝이나는곳 아래는 어린이전용 해수욕장이다. 

 

 

(15:10)  이동통신 중계탑을 지나고~ 

 

 

(15:12)  '부경1리' 마을 표지석이 세워진 '7번국도 동해안로'를 따라간다. 

 

'새 천년 기념 마을숲' 표지석을 지나고~ 

 

 

 

'장사 상륙작전 전승기념관'으로 활용되고 있는 '문산호'가 조망된다. 

 

장사해수욕장 200m 앞 표지판을 지나고~

'장사해수욕장' 입간판을 조금 지나면 해파랑길은 우측 해변으로 방향을 바꾼다.

 

 

 

(15:20)  '장사상륙전 전몰용사위령탑'

 

 

'장사 상륙작전 전승기념관'으로 활용되고 있는 '문산호' 

 

LST-120(Landing Ship, Tank 120)은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미국 해군 《USS LST-120》으로,

한국 전쟁 당시 대한민국 해군에서 《LST 문산》으로서 활동했던, 전차 상륙함이었다.

1947년 2월, LST-120를 대한민국 정부에서 사들여 「문산」(이하 문산호)으로 명명하였고,

교통부 산하 대한해운공사에서 밀가루나 석탄를 운송하는 운송업에 종사하였다.

묵호항에서 석탄을 싣기 위해 정박하고 있다가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대한민국 해군 묵호 경비 부사령관 김두찬 중령의 전시 동원령에 의해 징발되었다.

당시 육군-경찰 합동부대인 묵호 전투부대가 1950년 6월 25일에 상륙한

조선인민군 해군 제549육전대에 맞서 싸우고 있었다.

문산호는 퇴각하는 묵호 전투부대를 포항으로 탈출시켰고, 3일 뒤 해군본부의 명령에 따라

재정비한 묵호 전투부대를 태우고 묵호로 다시 출향하기도 하였다.

9월 14일, 문산호는 제1독립 유격 대대의 장사 상륙작전을 지원하기 위해 출항하였다.

대대원 772명을 태우고 장사에 도착했으나, 곧 태풍 케지아(Kezia)에 의해 해안가에 좌초되었다.

간신히 상륙한 대대는 1주일간 조선인민군 제2군단의 주의를 끌었고,

그들과의 전투에서 문산호의 황재중 선장과 선원이 전사하였다.

생존자들은 9월 19일 USS 헬레나(CA-75)를 기함으로 한 제7함대 포격임무대(bombardment Task Force)의

지원으로 엄호 받으며 대한민국 해군의 LST 조치원호를 타고 철수하였다.

문산호는 장사리 해안가에 좌초되어 버려진 뒤 그대로 잊혔다가, 1991년 3월 6일에 발견되었다.

장사 상륙작전을 기념하기 위한 전승기념공원을 조성하기 위한 레플리카(Replicas: 복제)로 재현되었고,

좌초된 실제 문산호는 아직 바닷속에 있다고 한다.

 

 

장​사 상륙 작전(長沙上陸作戰)

1950년 6월 25일 미명을 기하여 북한군의 기습 남침으로, 아군은 낙동강을 최후 방어선으로

적과 치열한 공방전을 계속하고 있을 때, UN군 총사령관 맥아더 장군은 총 반격전을 위한

인천 상륙을 결심하고, 동해안 장사동 적 후방 작전 상륙의 양동작전 명령을 하달함으로써 시작된 전투이다.

장사상륙작전은 1950년 9월 14일~15일 경상북도 영덕군 남정면 장사리에서 벌어진 상륙작전으로,

작전명 '174고지'라고도 한다.

육본 직할 독립 제1유격대대(대대장 이명흠)는 학도병으로 구성된 대원 772명, 지원요원 56명과 함께

LST 문산호(2,700톤급)》로 부산항을 9월 13일 15시경 출항, 다음 날 새벽 5시경

장사동 해안 상륙지점에 도달하였으나, 케지아호 태풍(파고 3~4m)으로 문산호는 좌초되고,

적의 포화속에 대원들은 구국 일념의 투혼으로 악전고투 끝에 상륙에 성공, 적 후방 교란·보급로 차단,

퇴각로를 봉쇄하고, 적의 전의를 상실케하여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키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작전명 174고지는 원래는 8군에 떨어진 명령이었으나, 인민군 복장을 입고 특수 작전을 해야 하는 사정상

북한군과 외모가 비슷한 남한 출신 학생들인 학도병에게 작전명 174를 맡긴 것이다.

이 상륙전에서 아군은 학도대원 등 139명이 전사하고 92명이 부상을 포함하여 수십 명의 행불자를 발생시켰다.

원래는 3일간 상륙한 뒤 귀환할 예정으로 총기 등의 물자도 3일 치만 지급되었다.

그러나 문산호가 좌초되어 돌아오지 못하고 총알과 식량이 부족해진 가운데에서도

7번 국도 차단 임무를 계속 수행하였다.

인천 상륙 작전이 성공한 후 고립된 학도병들을 구출하러 '조치원호'를 보냈지만,

죽기 전까지 싸웠던 북한군에 의해 대부분 전사하였다.

배가 상륙하면 배까지 위험해질 가능성이 있어 철수 명령이 떨어졌다.

상륙작전에 동원되었던 문산호 (LST-120)는 1991년 3월쯤에 난파선으로 발견되었다.

그 후 육군본부에서는 이 전투에 참전한 유격대원에게 우국청년(의사)이라 칭하였다.

 

 

 

 

장사 상륙작전을 다룬 곽경택·김태훈 감독의 《장사리 : 잊혀진 영웅들》 영화가 2019년 9월 25일에 개봉되었다.

 

 

 

(15:23)  '영덕 블루로드' 안내판 & '해파랑길' 18코스,19코스 종합안내판 

 

 

'장사 해수욕장' 

 

 

(15:42)  '7번국도 동해안로'로 올라 '장사리정류장'을 지나 도로갓길을 따라서 간다. 

 

 

(15:45)  '장사삼거리' 

 

 

(15:52)  '부흥리 해수욕장' 

 

***부흥리(富興里)***

경상북도 영덕군 남정면에 있는 리(里)이다.

자부랑리, 빗물리, 신흥리 등을 병합하면서 자부랑(慈富, 者夫郞)의 부(富)자와

신흥(新興)의 흥(興)자를 따 부흥리라 하였다.

 

부흥1리는 도천리 앞산인 봉황산 주령(主嶺이 봉황의 머리에 해당하는 형국이므로

날아가지 말라는 뜻으로 날미(飛勿, 나루끗)라 불렀다 한다.

부흥2리는 날밋 서쪽에 새로 된 마을로 신흥(新興)이라 하였고, 혹은 지형이 봉황이

알을 품고 있는 형국으로 봉황의 새끼는 아름답다 하여 가추(佳雛)라 하였다.

부흥3리는 가추 서쪽에 있는 마을로, 부자가 많이 생긴다고 하여 자부(慈富)라 하였는데

지금은 자부랑(者夫郞)이라고 한다. 

 

 

 

해파랑 이정표는 우측의 '경운대 연수원' 방향이다. 

 

 

신 '부흥교' 아래로 통과하고~ 

 

 

(15:55)  '부흥2리'인 가추마을 표지석을 지난다. 

 

 

(15:56)  구 '부흥교'를 건너고~ 

 

 

'장사천' 기수역을 바라보고~ 

 

 

신.부흥교 아래 '지하통로'를 통과한다. 

 

 

(15:58)  '부흥리' 사신당(社神堂) 

 

건물 앞에는 세 마리의 황금 거북과 여러 개의 황금 거북알이 장식되어 있다.

 

 

 

(16:02)  '부흥리'항 

 

 

'부흥리'의 거대한 벽화 

 

 

남정 바다 - 모련 김인수

끈 바람이 앉아 있었다 / 그해 가을 꽃빛 자국들 //

구월강 길섶에 / 붉게 떠오르던 저물녘 //

스미지도 가라앉지도 못한 채 / 갈빛 향기로 / 그리움에 걸리어 있었다 //

노을 따라 / 어둡살 밀며 다가오는 물결 //

무릎이 젖어도 이내 / 바람에 마르고 / 텅 비어 흔들리던 / 그 바닷가 7번 벤치 //

한 장 바람에도 / 깊이 내려앉은 가을 / 가을 가랑

 

 

 

경북 영덕군 남정면 부흥리 마을이 경상북도에서 주관한 ‘2017년 토털 경관디자인 조성 사업’에

선정되어 총사업비 15억 원으로 2017년 3월부터 2018년 12월까지 추진되었다.

토털 경관디자인 사업은 지붕도색 및 벽화 조성을 위주로 한 경관개선 사업,

깨끗하고 보행이 편안한 거리 조성 사업, 이색적인 문화공간 및 휴게공간 조성 사업,

해안마을 특성에 맞는 조형물 설치사업, CPTED 디자인을 적용한 유해환경개선 사업,

도시미관을 고려한 옥외광고물 디자인 사업 등이다.

 

 

 

(16:05)  '유미펜션' 앞 바닷가 갯바위 위에 설치된 덱 전망대에는, 대형 고기 머리 포토존이 설치되어 있다. 

 

 

사진 틀 모양의 포토존 

 

 

(16:07)  해변 탐방로 철문을 닫아놓았지만 편법으로 통과하고~ 

 

 

(16:12)  다시 7번국도가 지나는 '동해대로'에 올라서서 테크탐방로를 따라서 간다. 

 

 

(16:15)  도로 건너편으로 '장사 해돋이 휴게소'를 지난다. 

 

예전에 '경보화석 박물관'이 있었는데 지금은 폐쇄되었다. 

 

 

 

(16:17)  '원척리' 마을 표지석이 있는 갈림길에서 우측 '원척리'로 들어선다. 

 

***원척리(元尺里)***

경상북도 영덕군 남정면에 있는 리(里)이다.

영덕현 외남면 소속으로 조선 인조 년간에 원씨 성을 가진 사람이 터를 잡고 마을을 개척하였는데,

'동해바다와 산언덕을 자로 재듯 조화롭게 하였다'하여 원척이라 하였다.

1914년 일제에 의한 행정구역 개편 시 원척동으로 하여 남정면에 편입되었다.

자연마을인 '새새쪽'은 동리 북쪽에 있는 마을이고, '마새쪽'은 동리 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원척리 마을 입구에서  해변길로 내려서니 영덕 블루로드 이정표가 우측 계단 아래로

'경보화석 박물관 건너편 0.5km'를 알린다. 

 

 

(16:22)  '원척리' 동신당(洞神堂)을 지나고~ 

 

동신(洞神)은 마을 사람들이 함께 믿는 수호신(守護神)으로,

마을 사람들은 보름에 동신에게 안녕과 무사를 기원하는 제를 지낸다.

 

 

 

(16:23)  '원척'항 

 

 

'원척마을' 뒷길로 진행하다 다시 마을 밖으로 나가, 테크다리를 건넌다. 

 

 

(16:31)  이후 야산 밭지대를 지나고~ 

 

 

(16:33)  '영덕수산' 입간판을 보며 다시 7번국도가 지나는 '동해대로'에 올라선다. 

 

 

구계항 거리표시가 잘못된 이정표 

 

이정표 설치할때 인부가 두 개의 이정표를 서로 바꾸어 세웠는가 보다.

 

 

 

(16:36)  '천하잡보 방학중 이야기' 안내판 

 

***천​하잡보 방학중 이야기***

옛날 경상도 영덕이란 고을에 방학중이란 사람이 살았다.

방학중은 가난하여 밥 굶기를 밥 먹듯이 하며 살았다.

땡전 한 푼 없는 신세라 제삿날 돌아오는 게 겁이 날 지경이었는데, 어느 날 제삿날이 다가오자

풀을 뜯고 있는 이웃집 황소를 끌고 조상님 산소에 가서 젓가락을 황소 등짝에 얹어놓고 제사를 지냈다.

“아이고 조상님, 오늘은 황소 한 마리를 통째로 올리니 많이 많이 잡수십시오”하니 조상님도 웃지 않고는 못 배겼다.

장날이 되자 방학중은 설렁설렁 읍내로 나갔다.

술집에서 떠드는 소리가 들려 엿보니 성질 고약하기로 소문난 젊은 양반이 음식을 차려놓고 친구들이랑 놀고 있었다.

방학중은 젊은 양반을 골탕 먹이기로 하고 술상에 끼어들어 음식을 먹게 해달라고 졸랐다.

젊은 양반은 먹는 것까진 좋은데 그 보답으로 무얼 하겠느냐 묻자 방학중은 자기 코를 싹 베어주겠다고 했다.

실컷 먹은 방학중은 주머니에서 칼을 쓱 꺼내 팽하고 코를 풀어 상 위에 올려놓았다.

좀 더럽긴 하지만 코 벤 것 여기 있다고 내어놓으니 젊은 양반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

술에 고기를 잔뜩 먹은 방학중은 그만 배탈이 났다.

그때 길가에 돗자리 장수가 보여 돗자리 하나를 펼쳐 둥그렇게 울타리를 치더니 그 안에 들어가 똥을 쌌다.

화가 난 돗자리 장수가 어서 똥을 치우라고 소리치니 방학중은 지금부터 똥 칠테니 구경이나

실컷 하라고 하고 막대기로 자기 똥을 치니 똥이 사방 팔방으로 튕겨나갔다.

세상에 이런 억지를 부리기도 했으니 천하의 괴짜요 별난 사람이었다.

한 번은 방학중의 이웃 중에 양선달이란 사람이 살았는데, 인정머리 없고 지독한 구두쇠였다.

방학중은 양선달의 돈을 떼어먹기로 맘먹고 돈 백 냥을 꾸었다.

그리고 당연히 돈을 갚지 않았다.

양선달은 아침저녁으로 찾아와 돈을 갚으라고 닦달했는데, 하루는 방학중이 죽은 척하고 아내더러 곡을 하라고 했다.

양선달이 와 보니 방학중이 죽어있으니 시체 앞에 절하고 “십 년째 돈놀이를 하였지만 단돈 한 푼도 떼인 적이 없는데

네놈이 죽는 바람에 처음으로 돈 백 냥을 떼였다. 아이고 분하고 원통하다” 하는 말을 남기고 돌아갔다.

그때부터 방학중은 양선달을 피해 조심조심 나돌아 다녔는데, 어느 날 산길에서 양선달과 딱 마주치게 되었다.

방학중은 꾀를 내어 죽어 저승에 갔다가 염라대왕이 아직 죽을 때가 아니니 돌아가라 해서 살아왔다고 했다.

그건 그렇고 이승으로 돌아오는 길에 양선달의 아버님을 만났는데 저승 문턱에 주막을 차리긴 했지만

사는 게 힘겹다고 하길래 양선달 아버님께 돈 백 냥을 대신 갚아드렸다고 했다.

양선달이 증거가 있어야 믿지 않겠느냐고 하자 방학중은 허리띠를 풀어 양선달의 목에 감고

지금 당장 같이 죽어 저승 가서 물어보자고 우겼다.

방학중이 금방이라도 죽일 듯이 덤비자 양선달이 돈 백 냥 받은 걸로 하겠다고 항복했다.

방학중은 강가에 날아온 청둥 오리떼를 자기가 키우는 오리라고 속여 한양 양반한테 팔아먹고, 대낮에 길바닥에

벌거숭이로 누웠다가 방학중의 불알을 베어가려는 놈들에게 오히려 불알 베어 죽은 아버지 원수를 갚으려 했다고 하여

돈을 받고, 남의 집 빨래를 걷어다 주막에 맡기고 술을 먹고 줄행랑을 놓고, 뒷간 빌려 쓴 값으로 오십 냥을 냈다가

본전 뽑겠다고 뒷간에서 오래 버텨 오히려 뒷간 주인이 백 냥 내고 뒷간을 쓰게 하는 등 별난 꾀주머니를

한껏 펼치고 다니면서 멋대로 한평생을 살았다.

그의 고향 경상도 영덕에 가면 어린애들도 방학중을 다 알고 있을 정도로 독특하게 세상에 이름을 남겼다.

 

 

 

7번국도 '동해대로' 우측 테크 탐방로를 따르다 우측 아래의 작은 해변을 내려보고~ 

 

 

(16:45)  구계항 1.2km 이정표와 블루로드 안내판을 지난다. 

 

 

(16:46)  도로건너편에 있는 '구계휴게소'를 지나고~ 

 

 

진행도중 우측 아래에 도로와 해변 중간 정도에 테크탐방로가 보이는데, 어디에서부터 연결되는지 알 수 없다. 

 

 

'금강 기사식당'을 지나고~ 

 

 

'W 펜션' 건물 우측 편으로 '구계'항과 방파제에 백색과 적색의 등대 세 개가 보인다. 

 

 

(16:53)  '구계리' 표지판이 우측으로 가리키는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진행한다. 

 

탐방로 우측에 구계항 0.3km 이정표가 있다.

 

***구계리(龜溪里)***

경상북도 영덕군 남정면에 있는 리(里)로, 구계천이 바다로 흘러든다.

구계리 동명의 유래는 마을 앞 바위의 모양이 마치 새우가 물에 떠 있는 형상과 같아

하부(鰕浮)라 하다가 변하여 구배, 구계가 되었다는 설이 있고, 마을 뒷산이 거북이 형국이고

깊은 계곡이 있어 구계(龜溪)라고 했다고도 한다.

자연마을로는 구계, 농방웃골, 불당골, 머시밭골, 백맛골, 웅굴골마을 등이 있다.

구계마을은 본 리가 시작된 마을이고, 농방웃골마을은 농처럼 생긴 바위가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불당골마을은 불당이 있던 곳이라 하여 칭해진 이름이고, 머시밭골마을은 모시밭이 있었다 하여 불리게 된 이름이다.

백맛골마을은 백마산 밑이 된다 하여 칭해진 이름이며, 웅굴골마을은 우물이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17:00)  '구계'항 

 

 

구계마을 우측으로 방파제가 길게 이어진다. 

 

갈증이 밀려와 구계마을 e마트 편의정에 들려 캔맥주 큰거 하나 구입하여 원샷하니 속이 션하다.

 

 

(17:11)  '킹앤퀸 무인텔' 앞으로 올라서면 또 다시 7번국도 '동해대로'다. 

 

 

(17:15)  '남호 해수욕장/ 영남대학교 수련원' 입간판을 지나 우측 해변길로 이어간다. 

 

***남호리(南湖里)***

경상북도 영덕군 남정면에 있는 리(里)로, 조선시대에 역전(驛前)으로 불렸다.

냄불, 남역불, 내무뿔로도 불렸는데 이는 남역 앞에 있는 벌(모래사장) 가에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내목불(川木沙) : 개척 당시 바닷가 중간에 내가 흐르고 양 주변에 큰 버드나무가 번성하여 내목불이라 하였다 함.

 

 

 

(17:17)  '남호 해수욕장' 

 

다시 7번국도 '동해대로'로 나서서 '빠담빠담' 펜션 앞을 지나고~

'동해 비치관광호텔'을 지난다.

 

 

 

(17:22)  남호리 안내판이 있는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들어선다.

 

 

(17:24)  '남호 회관'과 정자 쉼터 앞에는 '남정천'을 건너는 예쁜 흰색의 보행자 다리가 있는데, 

일명 '꽃다리'로 불리는 다리다. 

 

 

꽃다리 위에서 좌측으로 바라본 '동해대로'상의 '남호교'와 그 뒤의 구.남호교 

 

 

뒤돌아본 '남호해변' 

 

 

'파도 위에서 춤추기' 멋진~글귀

 

 

나옹선사 법어

 

 

(17:27)  이정표(삼사해상 산책로까지 0.59km)를 지나 차량 통제 로프를 넘어간다. 

 

 

(17:30)  '남정'항 

 

 

잡목과 돌이 뒤섞인 진행하기 까탈스런 해변이 이어진다. 

 

 

(17:34)  잠시 해변을 지나다 좌측 가드 로프 탐방로로 올라서니 '바닷가 솔밭 펜션' 앞이다. 

 

다시 7번국도 '동해대로' 우측 탐방로를 따라 진행하고~ 

 

 

 

(17:36)  남정면 남호리를 벗어나 강구면 '삼사리' 관내로 들어간다. 

 

***강구면(江口面)***

경상북도 영덕군의 남쪽에 있는 면으로 북쪽으로 영덕읍, 서쪽으로 달산면(達山面),

남쪽으로 남정면(南亭面)과 맞닿아 있고, 동쪽으로 동해에 면한다.

강구면은 조선시대 원래의 오보면(東面, 元烏保面)의 하저(下渚), 금진(金津), 소하(小下)의 3개 동과

중남면(中南面)의 상검(上劍), 하직(下直), 상직(上直), 화전(花田), 소월(素月), 삼사(三思), 강구(江九)의

7개 동이 합쳐져 10개 법정리로 강구면으로 새로이 탄생한 면이다.

면 소재지는 오포리이다.

강구항이 있고 오십천 물이 강구항을 통해 바다로 유입한다.

이때 면 이름은 강구항이 있는 강구리 명칭을 땄는데, 강구리는 오십천 하구라 해서 '강구(江口)'라고 불렀다.

『해동지도』(영덕)에 '강구진(江口津)' 명칭이 표시되어 있다. 『여지도서』(영덕지도)를 보면,

이곳을 삼강(三江)이라는 지명으로 표기하고 있다.

오십천과 두 개 소지류들이 이곳에서 합쳐지기 때문에 '서망'이라고 한 것 같다.

 

삼사리(三思里)

경상북도 영덕군 강구면에 있는 리(里)이다.

오십천이 남동쪽의 바다로 흘러드는 해안지역으로, 논농사와 수산업이 주로 이루어지는 곳이다.

신라 때 시랑(侍郞) 벼슬을 한 세 사람이 숨어 살았다 하여 삼사리라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삼시랑, 넓적방우, 늘팽잇골, 주막거리, 효자각모퉁이마을 등이 있다.

삼시랑마을은 본 리가 시작된 마을로, 지명유래 또한 삼사리의 그것과 같다.

넙적방우마을은 넓고 평평한 바위가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늘팽잇골마을은 늪이 있었다 하여 칭해진 이름이다.

주막거리마을은 주막이 있었다 하여 불리게 된 이름이다.

 효자각모퉁이마을은 효자각의 모퉁이 앞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오늘같이좋은날' 음식점 앞을 지나고~

곧바로 '삼사리 피전 경로당'을 지난다.

 

 

 

(17:40)  '영덕 삼사 해상 산책로' 

 

233m의 삼사 해상 산책로는 2011년에 완공되었다.

바다 위를 걸어보는 묘미와 산책로 끝에서 조망해 보는 삼사리와 망망대해가 볼 만한 곳이다.

 

 

영덕블루로드 안내판 

 

 

삼사마을을 지나는데 이름이 '쿠키'라는 녀석이 얼마나 살갑게 따르는지~ 

 

우리집에 있는 짱이 녀석이 생각도 나고~

이 녀석과 한참을 놀다가 간다.

 

 

(17:50)  '삼사'항 

 

 

MBC 드라마 '그대 그리고 나'의 촬영지 안내판 

 

가난한 어촌 가정을 중심으로 한 형제들 간의 각기 다른 사랑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로 최불암을 비롯

김혜자, 박원숙, 박상원, 최진실, 차인표, 송승헌 등 당대 톱 배우들이 출연해서 화재를 불러 모았던 작품으로,

2006년에는 일본 위성채널 ‘CS 방송’에서 전파를 타기도 하였고, 이에 인기를 얻은 송승헌은

일본에서 팬미팅회를 가지기도 했다고 한다.

 

 

 

(17:55)  삼사항 중간, 이어도 대게회 음식점 앞에서 좌측 골목길로 간다. 

 

 

(18:00)  삼사해상공원 입구 

 

삼사해상공원(三思海上公園)

​경상북도 영덕군 강구면 삼사리에 있는 해상공원으로, 1988년부터 개발된 종합 유원지이다.

9m 높이의 인공폭포를 비롯하여 20m/t 급의 천연 공작 매화석, 기둥 분수와 연못,

이북 5도민의 망향을 달래기 위해 1995년에 세운 망향탑, 경상북도 개도 100주년을 기념하여

세운 높이 420㎝, 지름 250㎝, 무게 약 29t의 '경북대종(慶北大鐘)' 등이 있다.

경북대종 아래 1만 900㎡ 규모의 삼사 해상 테마랜드에는 통나무 방갈로 11채와 음식점 등이 들어서 있다.

1997년부터 해마다 12월 31일과 1월 1일이면 이곳에서 해맞이 행사가 열린다.

 

 

 

국제 로터리클럽의 '초아의 봉사' 표지석 

 

 

(18:03)  '이북도민 망향탑' 

 

 

(18:07)  넓은 주차장 광장 & 식당가 

 

 

우측 탐방로를 따라, 대게 형태의 벤치 포토존을 지난다. 

 

 

BTS의 '화양연화' 뮤직비디오 촬영지인 '경정항' 안내판 

 

경정항은 이곳 삼사해상공원에서 20km 정도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BTS의 인기에 편승하여

영덕군 관내의 경정항을 자랑하고 있는 것이다.

화양연화(花樣年華)는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을 표현하는 말이라고 한다.

 

 

 

'하산 김한홍' 선생 해유가비 

 

광화문 육조거리 잡초가 무성하고 / 보신각 옛집 앞에 검은 옷이 횡행이라 /

북악산 늦은 송백 만상이 서글프고 / 자하동 호른 물은 여울 소리 목메이네 / (중략)

분하다 을사년에 국권추락 이 웬일고 / 영사관 협회부를 어렵쟎게 철폐하니 /

분기충장 이 같은 일 호소할 곳 어데런고 / 분통한 맘 서름겨워 통탄하고 돌아서서 /

서둘러 짐을 꾸려 미국 땅을 들어갈 새...

 

김한홍(金漢弘) 선생은 1877년 영덕군 강구면 하직리 태생으로, 1894년 향중의 시회(詩會)에서 장원을 하는 등

일찍부터 한시에 두각을 나타냈으며, 국운이 기울자 전국을 방황하다 26세 때인 1903년 진주에서 하와이에서

일할 노무자들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여기에 지원하여 그 길로 미국 하와이로 떠났다.

하와이에서 노무자로 일하다 대한제국 주(駐) 하와이 영사관에 발탁되어 협회부 서기로 근무했으며,

1905년부터는 샌프란시스코로 진출하여 장사를 하다가 1908년 귀국, 향리에서 칩거하다 일생을 마쳤다.

'해유가(海遊歌)'는 김한홍이 1903년 12월부터 1908년 8월까지 미국 하와이로부터 시작되는 외국 생활을 하면서

보고, 듣고 경험한 것들을 기록한 것으로 한양대 국문학과 박노준 교수가 한국 학회에서 발행하는

한국 학보 64호에 가사의 전문을 실어 ​'미국의 실상을 정확하게 보고 쓴 국내 유일의

국한문혼용 미국 기행기사라는 점에서 문학사적 의의가 크다'라고 평가하기도 하였다.

 

 

 

'바다의 빛' 

 

동해의 떠오르는 태양과 파도를 상징하는 '바다의 빛'이란 조형물이 광장 중앙에 자리 잡고 있다.

 

***바다의 빛***

산과 바다 강이 삼위일체의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풍광의 고장, 영덕

유구한 역사와 향기 높은 문화를 창조해온 영덕

동해의 떠오르는 태양과 파도를 상징하는 이 조형물은 영덕군민의 꿈과 희망, 영광을 상징하였으며

자연과 문화를 소중히 가꾸는 고장, 영덕의 미래가 하늘과 땅끝까지 영원히 밝게 빛나길 기원한 작품입니다.

2004년 1월 1일 영덕군

 

 

 

'삼사해상공원' 표지석 뒤에 작은 자연석 소공원이 조성되어 있는데, 그 앞에 거대한 화문석이 세워져 있고 

표지석 뒤편 언덕위에 멋진 '경북대종각(慶北大鐘閣)'이 보인다.

 

 

 

(18:12)  천하제일 화문석(天下第一花紋石) 

 

산지 : 경상북도 영덕군 지품면 속곡리 217-1 / 무게 : 20톤 / 무늬 : 매화공작 꽃돌

기증자 : 지품면 속곡리 새마을 지도자 이창영

화문석(花紋石)은 ​자연의 암석에 실제의 꽃과 흡사한 꽃무늬가 들어 있는 돌을 연마하여 감상할 수 있도록

한 것을 말하는데 보통 '꽃돌'이라 불리기도 하며, 수석 용어로 '화문석'이라 한다.

 

 

 

(18:13) 경북대종(慶北大鐘) 

 

경북대종은 경상북도 개도(開道) 100주년(1996)을 맞아 도민의 단결과 조국 통일 및 민족화합을 염원하며,

환태평양 시대의 번영을 축원하는 삼백만 도민의 큰 뜻을 담고 있다.

종의 모양은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성덕대왕신종(聖德大王神鐘, 국보 제29호)을 본(本)으로 삼아

천인상과 비천상을 새겨 넣었다.

대금부는 천인상은 문화예술의 고장을, 사과를 든 비천상은 경북의 풍요로운 결실을 상징한다.

경북대종의 총 사업비는 18억 원이 소요되었으며, 종각은 대지 2,410㎡ 규모가 지상 1층 66.1㎡,

지붕은 십자형 합각(合閣, 八作)으로 꾸몄으며, 대종은 지름 250Cm, 높이 420Cm,

무게 7,700관(약 31톤)으로 만들어져 있다.

이 중 무게 칠천칠백관의 칠천은 남북한 겨례 칠천만을 뜻하고, 칠백은 경상도의 명칭이 정해진

고려 충숙왕 원년으로부터 칠백 년을 가늠한다.

종각이 세워진 이곳은 경북 영덕 삼사해상공원으로 동해의 찬란한 아침 햇살이 영원히 비칠 영지(靈地)이다.

대종에서 울려 퍼지는 장엄한 종소리는 온누리에 평화와 사랑의 축복을 영겁에 전하리라.

그리고, 이곳 삼사(三思)'의 지명 유래는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해오는데, 하나는 '통일신라 시대에 세 사람이

시랑(侍郞) 관직을 지냈다'​해서 '삼시랑(三侍郞)'이라 하고, 또 하나는 '세 번 생각한다'라고 해서

'삼사(三思)'라고 부르는데 이는 '들어오면서, 살면서, 떠나면서 생각한다'라고 한다.

 

 

 

(18:15)  경북대종 종각 우측 도로를 따라 언덕에 올라서고~ 

 

 

우측 아래에 '영덕어촌민속전시관'을 지난다. 

 

 

(18:16)  도로갈림길에서 우측이다. 

 

 

(18:23)  급경사 내리막길을 내려서고 'ㅓ자' 갈림길 이정표를 보면서 급 좌회전이다. 

 

 

(18:26)  해변으로 내려서서 해안도로를 만나고 좌측으로 진행이다. 

 

 

'강구방파제'의 빨간 등대가 보이고~ 

 

 

(18:32)  이정표가 있는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내려선다. 

 

 

 '오포3리'로 들어서고~ 강구항까지 1.9km 남았다. 

 

***오포리(烏浦里)***

경상북도 영덕군 강구면에 있는 리(里)이다.

마을 뒷산의 형상이 ‘까마귀머리’ 같다 하여 오포(烏浦)라는 이름이 붙었다.

조선시대에는 영덕군 중남면 지역으로서 오개 또는 오포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신강구(新江口)와 합쳐져 영덕면으로 편입되었다.

1934년 4월 강구면이 신설되자 강구면에 이속되었고, 1988년 동(洞)이 리(里)로 개칭되어 오포리가 되었다.

동쪽의 오십천(五十川)을 가로질러 오천리와 강구리를 잇는 강구대교와 강구교가 놓여 있으며,

서쪽으로는 화정리와 원직리, 남쪽으로는 삼사리, 북쪽으로는 금호리와 접하고 있다.

자연마을로는 괘방과 신강구 등이 있다.

오포리에는 강구면 사무소와 강구 시외버스터미널, 강구 초등학교  그리고 강구 5일장이 열리는 강구시장과

일명 강구해수욕장으로도 불리는 오포리 해수욕장이 있다.

 

 

 

'오포3리' 간이해변 

 

 

(18:38)  '오포'항 중간쯤에서 해파랑길은 좌측으로 방향을 틀어 마을 안으로 들어간다. 

 

'오포'항 주변으로는 어지럽게 공사자재 등이 쌓여있고, 한창 공사중이라 '오포'항은 패스~다. 

 

 

 

(18:40)  '오포3리' 마을회관을 지난다. 

 

 

(18:43)  '오십천' 우측 주차장 위 2층에 길게 조성되어 있는 테라스 길을 진행하고~ 

 

 

(18:47)  다시 해안도로로 내려서서 '오포교'를 건넌다. 

 

 

(18:48)  7번국도 '동해대로'를 만나 우측으로 진행이다. 

 

(18:50)  오늘 구간 종점인 구 강구교 앞에 도착하고~

해파랑길 19~20코스 안내판과 좌측에 20코스 스탬프박스가 있다. 

 

 

 

오늘 해파랑길 19구간은 여기까지...

영덕 블루로드 D코스인 쪽빛파도의 길도 마친다.

 

 

오늘 2차로 목표했던 해파랑길 19구간도 무사히 도착했다.

(일몰시간을 놓치지 않으려고 시간에 쫓겨 진행하느라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 발바닥에 불난다. ㅎ)

다행이도 걱정했던 다리,발목 상태는 별 이상도 없다.

해파랑길 19코스 완료 스탬프 찍고~

오늘의 목적지(야영지)를 향해 go go go~

잠시 쉬었다가 해파랑길 20구간을 연속으로 이어간다.

 

해파랑길 영덕 20코스는 (구)강구교입구에서 (구)강구교를 건너면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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