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일자: 2022.7.2
코스: 후포항(시점)-후포등기산등대공원/스카이워크는 출입금지-후포6리마을-거일2리마을-황금대게공원
-울진바다목장해양낚시공원/출입금지-거일1리마을-직산2리마을-직산1리마을/직산항-평해사구습지
-월송해변-월송정-구산해수욕장-구산2리마을-구산1리마을/구산항-봉산2리마을-봉산1리마을
-항곡마을갈림길-기성교차로-기성버스정류장(종점)
인원: 나홀로 (이사, 곽차)
거리: GPS 19.52km (두루누비기준 18.2km)
시간: 널널.촬영&휴식포함/ 5시간40분
▶ 갈때 : 울진23구간 마치고, 24구간 동시진행으로 인해 24구간 들머리 대중교통편 확인못함
▶ 올때 : 기성버스정류장에서 포항行 완행버스 타고 여러 도시들을 경유하여 포항시외버스터미널에 하차.
포항시외버스터미널에서 부산.사상/서부터미널行 버스이용,
부산.사상/서부터미널 하차, 지하철2호선 타고 개금집으로 귀가.
'후포항 한마음 광장' 우측 화장실 입구에 '해파랑길 23~24코스' 안내판과
24코스 출발 스탬프 박스가 세워져 있다.
해파랑길 23코스 완료후 인근에 있는 편의점에 들려 24코스 진행시 필요한 간식과 식수 보충하고~
24코스 출발지인 '후포항 한마음광장앞 공중화장실옆' 해파랑길 24코스 출발 스탬프 찍고~
(07:55) 해파랑길 24구간을 연속으로 이어간다.
현 후포항 24코스 출발점은 '고성 통일전망대'로부터 384.4km,
'부산 오륙도 해맞이공원'부터 385.5km로 해파랑길 총 구간 중 중간 지점 정도이다.
(07:57) '후포'항
'후포'항
동해 중부해역의 주요 어항(漁港)이며 꽁치·오징어·고등어·대게·붉은 대게·가자미 등
동해에서 나는 모든 어종의 집산지이다.
항구 주변에 선박 모양으로 지은 후포수산업협동조합과 후포수협회센터·어판장·
후포어시장·횟집 등이 대거 몰려있다.
한마음 광장을 가로질러서 간다.
(08:00) 대게가 일색인 횟집 골목 안을 지나고~
'보리수다방' 앞에서 '←백년손님 촬영지 240m, ←등기산 스카이워크' 안내판을 따라 좌측이다.
(08:04) '진 이발소' 바로 앞 이정표에서 우측 등기산 스카이워크 방향으로 간다.
계단길에는 예쁘게 자기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있다.
지나온 '후포'항을 내려다보고...
진행 방향 좌측으로, '그대 그리고 나'를 촬영하였다는 붉은색 지붕의 '박재천 집'이다.
90년대 말 가족극의 정점을 찍은 MBC 토·일 주말 드라마 「그대 그리고 나』는 1997년 10월 11일 시작해 1998년 4월 26일 종영된 58부작 드라마로, 방영 시기가 IMF 외환 위기와 맞물린다.
자고 일어나면 수많은 기업들이 부도를 내고, 수많은 사람들이 실직자가 되고, 벼랑 끝에 내몰린 사람들이
자살하던 그 암울한 시기에, 가난한 어촌 가정을 중심으로 한 형제들 간의 각기 다른 사랑 이야기를 다룬
이 드라마는 많은 사람들에게 위안이 되었고, 20% 후반 대에서 시작된 이 드라마는 종영 때는 66.9%라는 시청률을 기록하여 많은 사랑을 받았다.
최불암이 열연한 박재천 역은 왕년의 마도로스이고 현재는 바다낚시 안내인으로서, 동규의 아버지 역을
연기한다.
별명 '박 뻥'이 말해주듯 나이가 들어도 영원히 철날 것 같지 않은 홀아비 역할을 말이 더 이상 필요 없을
정도로 잘 표출해 많은 사람들에게 화제가 되었다.
자식들에게 번듯하게 해준 것 없이 그들의 앞길을 막고 있다는 자책감에 '피눈물을 흘리며' 부둣가에서
덩실덩실 춤을 추는 그의 열연은 특히 압권이었다.
전통찻집인 '도토리 집'을 지나고~
주변 탐방길에 스피커를 설치하여 감미로운 음악을 들려주는 곳인데, 평상에는 막걸리병이
있는 것으로 보아 차뿐만 아니라 막걸리도 한잔할 수 있는 장소다.
잠시 들려 막걸리 한잔하고 싶었는데, 아직 영업전이라 어쩔 수 없이 그냥 지나친다.
(08:08) 후포 등기산 등대 공원 입구
'후포 등기산 등대 공원'
아름다운 울진 후포 앞바다의 풍경을 담고 등대 전망대(약 11m)와 역사적인 등대 조형물 4개소,
무대 조형벽 및 관람석, 키스 조형물, 배 조형 벤치, 팽나무, 조형 앉음벽, 기억의 돌 등의 볼거리와
근교 스카이 워크와 함께 후포 바다의 멋진 추억을 간직한 곳이다.
그 밖에 신석기 유적관, 영남정, 데크로드 산책로 등이 조성되어 있다.
'신석기 유적관'
울진 후포리 신석기 유적관
울진 후포리 신석기 유적이 가진 고고학적 의미 및 문화적 가치와 울진의 유구한 역사를
국민에게 더 깊이 알리기 위해 현장 유적을 복원해 유적 전시관을 조성하였다.
후포리 신석기 유적은 유구와 유물 면에서 매우 독특한 성격을 보여 주고 있는 유적으로서,
1983년 경북 울진군 후포면 후포리의 후포항 동북쪽에 접해 있는 등기산 꼭대기에서
발견된 집단 매장 유적이다.
확인된 유구는 지름 4m 안팎의 불규칙하게 생긴 자연적인 구덩이였는데,
그 안에서 최소한 40인 이상의 사람 뼈가 출토되었다.
껴묻거리는 대부분 석제품으로 그 가운데 돌도끼 180점이나 출토되었는데,
이 많은 돌도끼로 사람 뼈를 덮었던 것으로 여겨지며, 다른 무덤 유적과는 달리
토기가 한 점도 부장되지 않은 점이 특징이다.
울진 후포리 등기산 신석기시대 유적
"한반도 내 유일하게 192개의 간돌 석기가 한 곳에서 출토된 최대 신석기 시대 유적"
울진 후포리 등기산 신석기시대 유적은 1983년 울진 후포항 동북쪽에 접해 있는 등기산 정상
[경북 울진군 후포면 후포리 583번지 일원]에서 발견된 무덤 유적이다.
확인된 유구는 지름 4m 안팎의 불규칙하게 생긴 자연 구덩이로, 안에서 최소한 40인 이상의
사람 뼈가 출토되었다.
주된 장례법은 세골장(洗骨葬,죽은뒤 바로 묻지 않고 한동안 그대로 두어 시신의 살이 썩은 뒤
뼈만을 추려 묻는 장법)으로 추정되지만, 가지런한 유골의 배열도 보여 매장 후
간돌도끼[磨製石斧, 마제석부]로 덮었던 것으로도 추정된다.
매장자의 신원은 남녀의 성비는 비슷하고 나이는 대개 20대를 전후한 층이 많다.
껴묻거리[副葬品]는 석제품뿐으로 1983년 돌도끼 180점과 꾸미개 4점 등 총 184점이 출토되었으며, 2014년 돌도끼 8점이 추가 출토되었다.
돌도끼는 대부분 길이 20cm 이상 되는 크고 긴 것으로 가장 긴 것은 54cm에 이른다.
돌도끼들은 전체 표면과 양날 부분을 매끈하고 날카롭게 갈았다.
석질은 혼펠스 또는 편마암 계통의 것이 많다.
특히 유적의 연대는 신석기시대로 추정되는데, 다른 무덤 유적과는 달리 토기가 한 점도 부장되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우리나라에서 신석기시대 무덤이 조사된 예는 춘천 교동 유적, 통영 욕지도 조개무지 등이나,
한 구덩이에 많은 사람을 묻고 간돌 석기로 덮은 사례는 울진 후포리 신석기시대 유적 외에는
발견되지 않고 있다.
이처럼 울진 후포리 신석기시대 유적은 유구와 유물 면에서 매우 독특한 성격을 보여주고 있다.
신석기 시대는 B.C 10,000년 ~ 2,000년으로, 우리나라에는 제주 고산리, 울진 후포리·죽변리,
서울 암사동, 양양 오산리, 부산 동삼동 등에서 유적이 발견되었다.
자연 환경은 빙하가 녹고 따뜻해 진 시기로 동해의 해안선은 오늘 날의 해안선에 거의 근접한 형태였다.
사용 도구는 돌을 갈아 날을 세우거나 용도별 형태로 연마· 가공한 마제석기이고, 주거는 강가와 구릉에서
움집에서 정착생활을 하면서, 수렵과 채집생활과 더불어 농경 생활이 시작된 시기다.
좌측의 프랑스 코르두앙 등대와 우측 팔미도 등대 모형
영국 스코틀랜드 벨록 등대 전망대
독일 브레머 하펜 등대
우측 위로 가장 높은 언덕에 '후포등대'가 세워져 있다.
(08:10) 등기산 스카이 워크로 건너가는 구름다리
현수교인 등기산 보행교는 길이 42m, 폭 2m의 출렁다리로, 2017년 말에 준공되었다.
허걱!!! 이럴수가 시간이~
아직 입장시간이 아니어서 구름다리입구부터 출입을 못하게 막아놓았다.
정상적인 해파랑길은 구름다리를 건너 스카이워크에서 주변을 조망한후 해안도로에 내려서서
좌측 후포6리마을방향으로 길을 안내하고 있는데 구름다리입구에 출입을 막아놓으니 할수있나???
우회할수밖에...
망양정
망양정 뒤편 나무데크계단으로 우회하여 해안도로로 내려간다.
'후포 여객선 터미널' 바라보고~
'후포 스카이워크'
후포 스카이워크는 국내에서 가장 긴 스카이워크라고 하는데, 길이 135m, 폭 2m의 다리가
바다 위 20m 높이에 떠 있어서 끝에 서면 하늘로, 바다로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더욱이 텍 바닥 중 57m 정도의 구간이 투명 강화 유리로 조성되어 있어서, 유리 길을 가다
아래를 보면 쪽빛 바다 위를 걷는 듯한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있다.
(08:25) 정상적인 해파랑길과 합류하고~
등기산 스카이워크가 개방되어 출입이 되었다면 스카이워크에서 좌측 나무데크계단으로
내려서는 것이 정상적인 해파랑길 정코스다.
절개지 앞 낙석 방지 구조물
거대한 배, 고래, 대게 형상의 모자이크 조각 벽화를 만들어 시각적인 안정감을 주고 있는데~
이곳은 후포 4리 뱀골 마을이다.
저멀리에 있는 제동방파제를 바라보고~
'후포6리 박곡마을'을 지난다.
(08:28) 후포리 벽화마을 안내판
좌측 '후포 동부초등학교' 방향으로 계속 나가면 등기산 북쪽 마을을 따라
후포항으로 나서면서 벽화를 감상할 수 있겠지만 오늘은 생략이다.
'후포6리 호근발' 버스정류장을 지나고~
'후포6리' 해변
(08:34) 도로옆 테크길로 올라, 도로 건너편에 있는 '후포 보건 진료소'를 지나서 간다.
(08:38) '후포6리 평해 광업소 사택' 버스정류장을 지나고~
'후포6리' 평해 광업소 앞에서 지나온 스카이워크를 뒤돌아 보고~
제동방파제
해변으로는 출입 금지 표지판과 원형 철조망이 쳐져 있는데~
한국공항 평해 광업소는 한진그룹의 한국공항에서 부대사업으로 운영하고 있는 석회석 채광 광업소로,
철강업체인 포스코에 양질의 제철용 석회석을 공급하고, 대기오염 방지를 위한 화력발전소 탈황용 석회석을 한국전력에 공급한다고 한다.
바다로 길게 뻗어나간 이 시설은 선적 컨베이어 벨트와 십로더(Ship Loader)로 광업소 야적장에 적재된
석회석을 대형 선박에 바로 선적하는 시설이다.
(08:41) '거일2리' 어촌계에서 세운 '용치곶' 표지석
이곳 '용치곶'이 후포면과 평해읍이 갈리는 면계이다.
지금까지 후포면 후포리를 지나 평해읍 거일리로 들어서게 된다.
울진군 평해면(平海邑)
북쪽으로 기성면(箕城面), 서쪽으로 온정면(溫井面), 남쪽으로 후포면(厚浦面)에 접하고,
동쪽으로 동해에 면한다.
남대천(南大川)이 읍의 중앙을 가로질러 서에서 동으로 흐르고,
북쪽 경계를 따라 황보천(黃堡川)이 흐른다.
이들 하천의 하류지역인 평해리·월송리(月松里) 일대에 울진군 내에서 가장 넓은 충적평야(평해들)가
펼쳐지며, 양 하천 하구 부근에는 넓은 사빈(砂濱)과 사구(砂丘)가 발달하였다.
주요 산업은 농업과 어업으로, 평해들을 중심으로 벼농사가 주업이고 밭농사로 수박·배추 등을 재배한다.
연안에서는 명태·오징어·쥐치·꽁치 등이 많이 잡히고 미역 양식도 성하며, 거일리(巨逸里)·
직산리(直山里) 등의 어촌에서 주로 이루어진다.
특히 울진대게 원조마을인 거일리, 은멸치가 특산물인 직산리는 해마다 전국 바다낚시꾼과
관광객들이 즐겨 찾고 있다.
남쪽의 학곡리(鶴谷里) 지역에는 석회암층이 분포하고 있어 석회암 채석 광산이 있다.
평해리는 동해 고속화도로와 평해∼영양(英陽) 국도의 분기점이기도 하다.
문화재로는 평해향교대성전(平海鄕校大成殿:경북문화재자료 160),
관동 8경 중 제1경인 월송정(月松亭), 황만영 기념비(黃萬英記念碑),
월궁사 석불좌상(月宮寺石佛坐像), 월송리 비석군, 직산 1리 3층 석탑 등이 있다.
평해읍 거일리(巨逸里)
동쪽으로 동해와 인접해 있는 반농반어촌이다.
마을 서쪽에는 새석골못이, 남쪽에는 박씨골못이 분포하고 있어 수원이 풍부한 지대이다.
자연마을로 거일, 구암, 박실, 수수밭골 마을이 있다.
거일 마을은 지형이 기(게) 알과 같이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구암마을은 마을 앞 남쪽 바닷가에 개 모양의 바위가 있었다 하여 이름 붙여졌다.
박실마을은 지형이 박처럼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수수밭골마을은 수수밭이 많았다 하여 이름 붙여졌다.
'거일리' 해변 모래가 많이 유실되었다.
(08:45) 보행자 탐방로 좌측으로 자전거 도로가 시작된다.
방파제를 새로 쌓으면서 보행자 탐방로를 넓게 새롭게 조성한 길인가 보다.
(08:55) '울진대게 원산지 마을 / 거일2리' 표지석
'거일2리' 해변
(09:01) '거일2리'항
(09:02) '거일2리' 방파제 위에 조성된 '대게 공원'
마을의 수호신으로 통상 세우는 대장군, 여장군을 대게 집게발로 세웠고~
옛날 방식의 대게 잡이 어선 모형
대나무 마디에 '울진 대게'와 '울진대게 유래비'를 새겼다.
울진대게 유래비
『동국여지승람』과 『대동지지』 등에 자해(紫蟹, 자줏빛 게)로 기록된 울진대게는 14세기 초엽인
고려 시대부터 울진의 특산물로 자리 잡아 왔으며, 우리 고장 주민들은 울진대게를 엣부터 황금색이
짙은 「참대게 또는 박달게」, ‘다리 모양이 대나무와 같이 곧다’ 하여 죽촌(竹寸),
죽육촌(竹六寸)이라고 불러왔다.
특히 「해포(蟹浦)」, 「해진(蟹津)」, 기알게(지형이 게 알을 닮은 바닷가라는 뜻)로 불리는 거일리는
울진대게의 주요 서식지이자 해양생태계의 보고로 알려진 왕돌초와 맞닿아 있는 마을로서
그 지명에서 알 수 있듯이 울진대게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울진군은 전국에서 가장 많은 생산량과 우수한 품질을 자랑하는 울진대게 자원의 서식지와
생태환경을 보전하고 울진대게의 정통성을 바로 세우기 위해, 군민의 뜻을 모아 대게잡이의
역사적 현장인 거일 마을에 울진대게 유래비를 세우고 이를 역사와 후대에 전승하고자 한다.
2003년 4월 12일 울진 군수
대형 대게 상
(09:06) '울진 거일리 해상 낚시공원'
코로나19 감염 확산으로 임시 휴장한다는 플래카드가 걸려있다.
해상 낚시 공원에는 바다 한가운데로 낚시 잔교(棧橋)가 설치되어 있는데, 해상산책로와 포토존,
휴게시설 등을 포함해 총 연장 470m의 잔교가 평균 높이 5m 내외로 설치되어 있는데, 낚시터의 경우
동시 200명까지 가능하며, 감성돔과 돌돔 등이 많이 잡힌다는 입소문을 타고 이미 유명 낚시 명소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09:07) '거일2리(게알)' 어촌계 앞을 지나고~
어촌 정보 사랑방으로 어민들이 이용하고 있는데, 펜션식 민박으로도 활용되고 있는가 보다.
(09:09) 'Y자' 갈림길
'해안도로'를 따라 바로 가도 되는데, 좌측 마을 안길로 진행하라고 해파랑길이 알린다.
안전을 위해 마을 안길로 안내하고 있는가 쉽다.
'거일2리' 해변
갈매기 형상을 붙인 건조줄 거치대
또 다시 해안 도로길과 마을 안길로 갈리는 갈림길을 만나고,
이번에는 해안 도로길을 따라 진행이다.
(09:23) '거일1리' 어촌체험 휴양마을 펜션'을 지나서 간다.
'거일1리' 교통 표지판
평해읍 거일(巨逸) 1리는 마을 지형이 기(게) 알과 같이 생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거일1리' 해변
(09:31) '포항공대 평해 연수원' 앞을 지나면서, '거일1리'에서 '직산2리'로 들어선다.
'포항공대 평해 연수원'은 평해읍 직산리 해동분교였었는데, 폐교되어 지난 2002년 8월
포스텍(포항공대)에서 5억 4,000여만 원에 낙찰받아 리모델링을 거쳐 현재 교직원ㆍ학생의
연수원(평해 연수원) 및 숙박시설로 활용되고 있다고 한다.
평해읍 직산리(直山里)는 마을 북쪽으로 남대천이 흐르고, 서쪽으로 등기산을 비롯한
남산들이 넓게 펼쳐져 있다.
1916년 행정개편 때 저장리(猪場里)와 직고리, 상남산리, 하남산리가 통합되면서,
직고리(直古里)와 남산리(南山里)에서 각각 ‘직(直)’자와 ‘산(山)’자를 따 ‘직산(直山)’이 된 마을이다.
자연마을로 남산 밑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남산 마을'과,
직고개 서북쪽에 있는 마을로 지형이 불무(풀푸)처럼 생겼다 하여 이름 붙여진 '불뭇골 마을',
용바우가 있다 하여 붙여진 '용바우'가 있다.
(09:38) '직산2리(염수골) 버스정류장'을 지나고~
'직산2리' 해변
잠시후 '울진대게로'를 좌측으로 보내고, 우측의 해변로인 '제장로'로 따라서 간다.
(09:44) '직산'항
(09:46) '울진바다목장 체험관' 옆을 지난다.
'직산'항 방파제의 빨간등대와 하얀등대를 바라보고~
'룰루랄라~'가 아니고~
이곳에서부터 식수도 바닥이 나고, 아~ 고행의 길이 시작된다. ㅎ
(09:56) '직산1리'로 들어서고~
(09:59) '직산1리 마을회관'을 지난다.
(10:06) '펜션 꿈꾸는 바다' 앞에서 해파랑길은 좌측 소나무 숲길로 이어진다.
물론, 해안 도로를 따라 가도 되지만, 햇볕을 피하는것도 한 방법이라~ ㅎ
울창한 소나무 숲 사이 수렛길을 따라 잠시 진행하고~
다시 도로로 나서고, (10:14) '남대천'을 가로지르는 '월송정교'를 건너서 간다.
'월송정교'에서 바라본 동해 방향의 기수역 전경
울진 남대천(蔚珍南大川)
경상북도 울진군 온정면 백암산(1,003m) 남쪽에 있는 삼승령(747.3m) 등에서 발원하여
남동류하여 북면 하당리를 지난 후 울진읍으로 들어와 비래봉산 부근에서 동해로 유입하는 하천으로,
왕피천과 광천 다음으로 큰 하천이다.
길이는 28.5㎞이며, 남대천의 상류인 온정리에는 백암 온천이 들어서 있다.
하곡은 감입곡류의 형태를 띠고 있으며, 중류 구간에는 좁은 곡저평야가 그리고 하구 부근에는
남쪽의 왕피천과 인접하여 수산리 일대에 충적평야가 형성되어 있는데, 이 충적평야는
빙기·간빙기의 해수면 변동과 관련하여 발달한 지형이다.
남대천 하구인 고성리에서 읍남리에 이르는 지역의 하도는 모래의 퇴적으로 하도의 폭이 좁아지고 있다.
현재 남대천 하구 부근의 하폭은 약 250m 내외이나 평상시에는 20~30m에 불과하며 하구에는
석호가 형성되고 있다.
길이 213.3m, 폭 16m의 대형 '월송정교'를 건너 서면, 직산리에서 월송리로 행정계가 바뀐다.
평해읍 월송리(月松里)
대부분의 면적이 평지로 이루어져 있는 전형적인 농촌이다.
마을 동쪽으로 예방산들, 북서쪽으로 화구뒤계들, 서쪽으로 우실들이 넓게 펼쳐져 있다.
북에서 동쪽으로 황보천이 흐르고 있으며, 전체적인 토지는 비옥한 편이다.
자연마을로 월송, 달표, 정산 마을이 있다.
월송 마을은 관동팔경의 하나인 월송정이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달표마을은 본래 아질달이라 하였는데, 조선 태종 5년에 달표로 개칭하였다.
정산 마을은 조선시대 때 향회를 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월송정교'를 건너 갈림길에서 우측 도로를 따라서 간다.
(10:20) 별 특징없는 갈림길에서 해파랑길은, 도로 우측 해변 방향의 해송 숲길로 들어간다.
와우!!! 그늘이다. ㅎ~ 이제야 살것같네~
넓은 방풍림 숲길에서 해파랑길 안내 표시를 따라서 진행하고~
'사구습지탐조대'를 지나고~
(10:28) '평해 사구 습지 생태공원 안내도'
평해 사구(平海沙丘) 습지(濕地) 생태공원은 배후 습지를 활용한 생태공원
동해안의 훼손되지 않은 해안사구와 푸른 바다가 어우러진 천혜의 아름다운 자연을 느끼고
호흡할 수 있는 차별화된 생태공원이다.
울진군에서는 자연유산인 해안사구와 습지를 활용한 체험형 힐링공간을 만들어 놓았는데,
기수역 관찰대, 생태 관찰대, 조류 관찰대, 사구 전망대, 해안 전망대 및 광장과 쉼터,
야외무대 등으로 꾸며 놓았다.
평해 사구(平海沙丘) 습지(濕地)를 바라보고~
사구(沙丘)를 돌아 '월송정'으로 진행한다.
(10:36) ‘월송정(越松亭)’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월송리 362-8[월송정로 517]-
월송정은 관동팔경(關東八景) 중의 하나로 동해를 바라보며 서 있으며, 주변은 소나무에 둘러싸여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고 있다.
이 정자는 조선시대 강원도 관찰사 박원종(朴元宗, 1467~1510)이 연산군 때 창건하였다고 하나,
안축(安軸, 1282~1348)의 「취운정기(翠雲亭記, 1331)」에 의하면 1312년(고려 충성왕 4)에
이미 기록되고 있어 훨씬 이전에 세워졌음을 알 수 있다.
원래 월송정은 이곳에서 남서쪽으로 약 450m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오래되어 없어진 것을 1980년
현재의 위치로 옮겨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 기와집으로 2층 누각(樓閣)을 지었다.
월송(越松·月松)이라는 이름이 생기게 된 유래는 이곡(李穀, 1298~1351)의 「동유기(東遊記, 1349)」
기록이 가장 오래되었다.
「동유기」 에는 "평해 군청에서 5리 되는 곳에 이르면 소나무 만 그루 가운데에 월송정이 있는데,
사선(四仙이 유람하다가 우연히 이곳을 들리지 않고 지나갔기 때문에 월송(越松)이란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라고 되어 있다.
또한 옛 군지의 기록에 신라시대 네 명의 화랑[四仙인 영랑(永郞)·술랑(述郞)·남석(南石)·안상(安祥)이
이곳에서 노닐며 쉬었다거나, 어떤 사람이 중국 월(越) 나라 소나무[松]를 가져와 심었다는 이야기,
그리고 밝은 달[月]이 떠올라 소나무 그림자가 비치었다는 이야기 등 여러 설이 전해온다.
특히 조선 성종(成宗)이 화가(畵家)에게 전국의 활터에 세운 정자[射亭] 중 경치가 가장 뛰어난 곳을
그려 오게 하였는데, 이때 월송정이 뽑혔다는 이야기도 전해오며, 수많은 시인·묵객들이 즐겨 찾았던
유서(由緖) 깊은 곳이다.
월송정은 1326년(충숙왕 13) 존무사(存撫使) 박숙(朴淑)이 처음으로 지었는데, 당시에는 경치를
감상하는 정자의 역할보다 왜구의 침입을 살피는 망루로서의 역할이 더 컸다고 한다.
이후 왜구의 침입이 잠잠해진 조선 중종 때 반정공신이었던 박원종(朴元宗)이 강원도 관찰사로 내려와
정자(亭子)로 중건하였고,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 낡아서 무너지자 1933년 이 고을 사람 황만영(黃萬英)·
전자문(全子文) 등이 다시 중건하였으나, 일본군이 강제로 철거하여 터만 남았다.
1969년 울진 출신의 재일교포로 구성된 금강회(金剛會)의 김정문(金正門)·박선규(朴善奎)·
김익만(金益萬)을 비롯한 80여 명이 정자를 신축하였으나 옛 모습과 너무 달라 해체하였고,
1980년 지금의 정자로 복원하였는데, 현판은 최규하(崔圭夏) 전 대통령의 친필이다.
경치가 아름다워 관동팔경 중 가장 남쪽에 위치하며, 관동팔경에는 간성의 청간정(淸澗亭),
강릉의 경포대(鏡浦臺), 고성의 삼일포(三日浦), 삼척의 죽서루(竹西樓), 양양의 낙산사(洛山寺),
울진의 망양정(望洋亭), 통천의 총석정(叢石亭) 등이 있다.
월송정 2층 누각 위로 올라서니, 여러 개의 편액(扁額)이 시선을 끄는데~
越松亭 - 騎牛子 李行
滄溟白月半浮松 (창명백월반부송) 넓은 바다 위로 밝은 달은 솔 숲에 걸렸는데
叩角歸來興轉濃 (고각귀래흥전농) 소를 타고 돌아오니 흥이 더욱 깊구나
吟罷亭中仍醉倒 (음파정중잉취도) 시를 읊다가 취하여 정자 가운데 누웠더니
丹丘仙侶夢相逢 (단구선려몽상봉) 단구의 신선들을 꿈속에서 만나네
右는 高麗藝文館大提學이었던 騎牛子李先生의 詩也라 先生은 以平海黃氏의 外孫으로
謫居白巖山下하여 自號白巖居士하고 每月夜에 騎牛하여 遊越松亭하니 此詩는 卽其時所作也라
玆에 幷金節齋白巖居士贊하여 刻而揭之니라
(오른쪽은 고려 예문관 대제학 기우자 이 선생의 시이다.
선생은 평해 황씨의 외손으로 백암산 아래에 귀양 와서 살고 있었으므로 스스로 호를 백암거사라고 하였다. 매양 달 밝은 밤이면 소를 타고 월송정에서 노닐었는데 이 시도 그때 지은 것이다.
이에 절재 김종서 공의 백암거사 찬을 아울러 새겨서 함께 걸어둔다.)
白巖居士贊(백암거사찬) - 節齋 金宗瑞(절재 김종서)
余巡到平海遊越松亭 / 有感騎牛子李公作贊(여순도평해유월송정 / 유감기우자이공작찬)
내가 순시하다가 평해에 이르러 월송정을 둘러보다가 기우자 이공의 시에 느낀 바 있어 찬을 하노라.
猗歟白巖先生展也(의여백암선생전야)여 勝國藎臣(승국신신)으로
憂治世則闢異端而崇正學(우치세즉벽이단이숭정학)하고
處亂朝則捄賢士而斥小人(처난조즉구현사이척소인)하니
浩瀚乎其文章이密勿乎其經綸(호한호기문장 밀물호기경륜)이라.
아름답도다! 백암 선생이여!
고려의 충직한 신하로 치세를 근심하여 이단을 배격하고 바른 학문을 숭상했으며
어지러운 조정에 처하여 어진 선비를 찾고 소인배들을 물리쳤으니 박식하도다! 그 문장이여!
치밀하도다! 그 경륜이여!
於功名에何曾屈志而冒榮(어공명 하증굴지이모영)이리오
在節義에不必殺身而成仁(재절의 불필살신이성인)이니
誰知騎牛之浪跡(수지기우지낭적)이
實與叩馬而同倫(실여고마이동륜)이리오
공명에 어찌 일찍이 뜻을 굽혀서 영화를 꾀했으리오.
절의가 있다고 반드시 몸을 죽여 인을 이루는 것은 아니니
소를 타고 떠돌아다닌 행적이 실로 말고삐를 잡고
무왕의 출정을 말렸던 백이 숙제와 같은 인륜임을 누가 알겠는가.
海上有松(해상유송)하고 松上有月(송상유월)하니
千秋萬歲兮(천추만세혜)여 髣髴相見其精神(방불상견기정신)이리라.
해상의 푸른 소나무와 같이, 소나무 위에 걸린 밝은 달과 같이,
선생의 기백과 절의는 천추만세에 이르도록 빛날 것이다.
※ (역주)
신신(藎臣) : 충성스러운 신하.
호한(浩瀚) : 사물이 풍부함(浩洋).
밀물(密勿) : 부지런히 힘씀(機密).
낭적(浪跡) :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정처 없이 이리저리 떠돌아다님.
고마이동륜(叩馬而同倫) : 옛날 중국의 은나라 말기 산둥반도에 있던 고죽국(孤竹國)의 왕에게
여러 아들이 있었는데 큰 아들은 백이(伯夷)요 셋째가 숙제(叔齊)이다.
이들은 은의 마지막 왕인 주(紂)의 학정을 피하여 수양산(首陽山) 아래에 숨어 살았는데
어느 날 주(周)의 무왕(武王)이 군사 3,000을 이끌고 수양산 아래를 지나 은나라를 치러 가자
이 형제는 제후(諸侯)의 나라가 천자(天子)의 나라를 공격함은 의롭지 못하다고 하면서
무왕의 말고삐를 잡았다는 고사임.
즉 고려조의 신하였던 이행의 절의(節義)를 중국의 백이 숙제와 같이 본 것임.
'월송정'정자를 내려서서 정면에서 보면, 경신년(1980년) 여름에 쓴
'최규하 대통령'의 월송정 편액이 걸려있다.
최규하(崔圭夏: 1919~2006)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10대 대통령으로서,
1975년부터 국무총리로 재직하다가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이 김재규에 의해 시해되자,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10월 28일 중앙 정보부장 김재규를 해임하고,
전두환을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장에 임명했다.
그해 12월 6일 통일주체 국민 회의에서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하지만 12월 12일 전두환 등이 일으킨 군사병변으로 실권을 잃은 채 대통령직에 있다가,
1980년 8월 16일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월송정을 나서서 소나무 숲길 사이로 난 탐방로를 따라 가면, 주변으로 울창한 송림이 둘러싸고 있다.
원래 이곳은 평해 왕씨의 종중 땅으로 ‘만 그루의 소나무가 십 리가 넘는 흰모래와 어울려 절경’을
이루었다고 전해진다.
그렇게 울창했던 송림은 일제강점기 때 모두 베어져 황폐해졌다가, 1956년 월송리 마을의
‘손 친후’라는 사람이 사방 관리소의 도움을 받아 해송 1만 5천 그루를 다시 심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10:43) '울진군 관광 안내판'
월송정 주차장 옆 카페와 화장실을 지나고~
(10:49) '황보천'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넌다.
'황보천'을 건너면서 바라본 동해 방향의 기수역 전경
황보천(黃堡川)은 경상북도 울진군 평해읍 북쪽 오곡리와 기성면 황보리 유역에서 발원하여
동해로 흘러드는 9km의 지방 2급 하천이다.
조선시대 때 노씨(魯氏)가 많이 살고 있던 마을에 큰 화재가 발생하여 노씨는 떠나가고
황씨(黃氏)가 남게 되자 자기들의 성씨인 황자와 그 마을에 있었다는 큰 보(堡)자를 따서
황보리라는 마을이 생겼고, 이 하천도 이 마을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다리를 건너서 우회전하면, 평해읍 관내에서 기성면 구산리로 들어서게 된다.
울진군 기성면(箕城面)
북·서·남쪽으로 원남면(遠南面)· 온정면(溫井面)· 평해읍에 접하고, 동쪽으로 동해에 면한다.
면의 중앙부를 정명천(正明川), 남쪽 평해읍과의 접경 지역을 황보천(黃堡川)이 동류(東流)하는데,
정명천 하구 부근에는 면에서 가장 넓은 기성 평야(箕城平野)가 있고, 해안에는 사빈과 사구가
연속적으로 발달해 있다.
기성면에는 천혜의 경관을 자랑하는 망양해수욕장과 구산해수욕장이 있고, 도 지정 문화재인
해월헌과 북천교비, 관동팔경의 하나인 월송정과 망양정, 성류굴과 불영계곡 등 관광명소가 있어
관광을 겸한 피서지로 알려져 있다.
기성면 구산리(邱山里)
굴미봉(掘尾峰) 아래 동쪽으로 바다와 인접하고 있어 구산포(邱山浦)라고 알려진
이 구산(邱山)은 동쪽으로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바다와 접하고, 서쪽은 황보 2리,
남쪽에는 평해읍 월송 2리 군무봉(軍舞峯)이 있으며, 북쪽은 봉산 2리와 인접하고 있다.
자연마을로는 운암, 백암, 도해암, 대풍헌 등이 있다.
구산리는 지형이 거북의 꼬리와 같다 하여 구미(龜尾)로 불러오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울진군 기성면 구산리(邱山里)가 되었다.
'구산리' 해변'둔덕 송림숲 사이로 진행하고~
(10:53) '구산리' 해변
송림숲으로 길게 이어지는 '구산 글램핑 앤 오토캠핑장'을 지난다.
(10:56) '구산 해수욕장'
구산해수욕장(邱山海水浴場)
관동팔경 중 가장 남쪽에 위치하고 있는 월송정 북쪽 해안에 자리하고 있는데,
백사장 길이는 400m, 수심은 1.5~2m, 경사는 15~20도로, 깨끗한 바닷물과 넓은 백사장,
완만한 경사, 울창한 소나무 숲으로 이루어져 가족 피서지로 적합하다.
주변에 월송정과 애월헌·노동서원·명계서원 등의 문화유적지와 백암산·백암온천이 있고,
후포 방파제 주위에는 스킨 스쿠버와 낚시·수상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
구산해수욕장 관리 서비스센터 앞을 지나고~
근처 매점에서 션한 캔맥주 큰거 1캔 단번에 원샷하며 갈증을 날려버린다. ㅎ
생수 구입하여 식수 보충하고~
'구산 해수욕장 오토캠핑장' 앞에서 좌회전 하여 해수욕장 입구로 나간다.
(11:06) '구산 해수욕장' 입구
고래를 타고 있는 소녀상과 거북 등에 올라탄 토끼상이 이채롭다.
구산 해수욕장 입구에서 우회전하여, 구산마을, 구산항 표지석을 지나고~
(11:08) '구산2리' 표지석을 지난다.
(11:09) '구산 해안 소공원'을 지나고~
(11:12) '수토문화쉼터'를 지난다.
수토사 조형물
수토사(搜討使)란 울릉도와 독도를 지키는사람들을 말한다.
(11:13) '구산2리' 마을회관을 지나고~
'수토문화쉼터' 조형물과 트릭아트 벽화
(11:16) 울진 자전거도로 8~12코스 안내도
뒤편으로 넓은 '구산항'이 보이는데, 다른 항구와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규모가 큰 항구다.
(11:23) 대형 문어 형상 앞에 '울진 대게' 설명석이 자리하고 있다.
(11:26) '울진 수토문화 전시관'
'대풍헌'
蔚珍 待風軒(울진 대풍헌) - 경상북도 울진군 기성면 구산봉산로 105-2[구산리 202]
대풍헌은 동해안 해변의 작은 포구 기성면 구산리 마을의 중심부에 남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 건물은 원래 동사(洞舍)였으나, 18세기 말부터 구산포(丘山浦)에서 울릉도로 가는
수토사(搜討使)들이 순풍(順風)을 기다리며 머물렀던 장소가 되었다.
이 건물은 정면 4칸, 좌측면 4칸, 우측면 3칸의 일자형 팔작기와집으로 정확한 건립 연대는
알 수 없으나, 「구산동사중수기(邱山洞舍重修記)」에 의하면 1851년(철종 2)에 중수하고,
‘대풍헌’이란 현판을 걸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후 몇 차례 보수과정을 거쳐 여러 부분이 변형되어 2010년 해체·복원하였다.
또한 대풍헌 소장 문서는 삼척 진장과 월송 만호가 2~3년에 한 번씩 울릉도를 수토할 때
평해 구산항에서 출발한다는 것과 수토사 일행의 접대를 위해 소요되는 각종 경비를 전담했던
구산 동민들의 요청에 따라 부담을 경감할 수 있는 방책에 대해 평해군에서 결정해준 내용의
「완문完文」과 「수토절목搜討節目」이다.
그동안 문헌사료에 19세기 들어서면서 울릉도에 수토사를 파견했다는 기록이 거의 보이지 않았으나,
이 문서와 대풍헌에 의해 여전히 조선이 울릉도(독도)를 우리의 영토로 인식하였으며,
정기적으로 순찰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대풍헌은 조선시대 울릉도를 순찰하던 수토사들이 머문 장소로 그 역사적 의미가 크다.
'독도 모형 광장'
수토사가 이용하였던 '수토선' 배 모형.
이곳 구산항(대풍헌)에서 울릉도 태하리까지 직선거리로 144km라고 한다.
(11:30) '구산1리 마을회관'을 지나고~
(11:31) '구산'항
'구산1리' 버스정류장을 지나고~
(11:38) 도로 개설 이후 파괴되지 않고 살아남은 해안가의 입석 바위를 지난다.
(11:41) '백암 김제 선생' 시비
기성면 '구산1리'에서 해안 도로 따라 가면 구산리가 끝나고 봉산리가 시작되는 지점의 길 옆 암벽 중간에
오석 시구가 박혀있는데, 백암(白巖) 김제(金濟) 선생의 불사이군의 충정을 담은 시다.
백암은 고려 말 평해 군수로 봉직했는데, 이성계의 역성혁명 소식을 듣고,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면서 이 시 한 편을 남기고 1392년 12월 22일 일엽편주를 타고 동해로 종적을 감추었다고 한다.
후일 정조가 아우 농암(籠巖) 김주(金澍) 선생과 더불어 '해동의 백이·숙제'로 칭송하며 시호를 내렸다.
이 시는 동남쪽 해변 언덕 도해암(蹈海岩)에 새겨져 있었으나,
구산항 축조공사로 인해 지금의 장소로 이전하였다.
김제 선생의 위패는 현재 구산리에 있는 운암 서원에 모시고 배향하고 있다.
呼船東問魯連津(호선동문노연진) 배를 불러 동쪽 魯仲連(노중련)의 나루터를 묻노라
五百年今一介臣(오백 년 금일 개신) 오백 년 왕조의 초개같은 이 신하
可使孤魂能不死(가사고혼능불사) 외로운 이 영혼이 길이 남는다면
願隨紅日照中垠(원수홍일조중은) 붉은 해 따라가 중원 땅을 비추리
※ '노련진'은 옛날 중국의 한 충신이 나라가 망하자 투신자살하였다는 나루터의 이름을 일컫고,
'노중연'은 춘추전국시대 때 제나라 사람으로 공을 세워 왕이 작위를 주려고 했으나, 바닷가로 달아나
여생을 마쳤다.
백암(白巖) 김제(金濟) 선생의 불사이군의 충정을 담은 해설비
잠시 나가면 해안 끝에 최근에 조성된 듯한 백암 김제 충절시 시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11:43) '구산2리(갈매) 버스정류장'과 함께있는 '해양정' 쉼터 정자
배낭을 내리고, 비화식으로 준비해온 '핫앤쿡 쇠고기비빔밥'에다 '구산해수욕장' 매점에서 구입한
큰 캔맥주로 점심을 해결하며 40분 푹~ 쉬었다가 (12:23) 다시 출발이다.
(12:26) '봉산2리' 버스정류장을 지나고~
울진군 기성면 봉산리(峰山里)
동쪽은 동해에 접하고, 서쪽은 뒷산으로 봉수산(峰燧山)이 솟아 있으며,
남쪽은 구산 2리와 인접하고, 북쪽은 정명천(正明川)이 동해로 흐르는 하류로
기성리와 접하고 있는데, 해안의 암벽이 절경을 이루고 있다.
자연마을로는 항공(項谷), 춘향계(春香溪), 갈마봉(歇馬峯) 등이 있는데,
춘향계는 계곡에서 향긋한 물이 흐르고 있어 춘향계(春香溪)라 불러지고 있다.
갈마봉은 산의 모양이 말과 같다 하여 갈마봉(歇馬峯)이라 한다.
(12:30) '봉산2리' 해변가의 기암
해안 도로를 따라 은근한 오르막길이 시작되고~
그렇게 오르막길을 올라서니 '봉산사' 입구를 지나서, 다시 도로를 따라 해변으로 내려간다.
'봉산1리 해변'이 시작되고~
(12:40) '봉산1리 버스정류장'을 지난다.
(12:44) 팔각 정자 봉수대 쉼터인데, 울진 표산 봉수대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蔚珍表山烽燧臺(울진 표산봉수대)
표산 봉수는 조선시대에 설치된 봉수대로 울진군 기성면 봉산리 봉수 마을 서쪽
해발 78.3m의 구릉 정상부에 방어벽을 쌓고 그 안에 방형의 연대 위에 원형의 연소실을 쌓았으며
주변에 2개의 오름 시설을 쌓았다.
표산 봉수는 영해(寧海)의 대소산(大所山)과 삼척 가곡산(可谷山) 사이를 잇는
간선 봉수(間線烽燧)에 속하였으며, 남쪽의 후리산(厚理山) 봉수대에서 신호를 받아
북쪽의 사동산(沙銅山) 봉수대에 전달하였다.
봉수대 쉼터 앞 해변에는 '물양장'이 제법 크게 조성되어 있다.
물양장(物揚場)은 수심이 4.5m 미만이고, 1천 톤 이하의 소형 선박이 접안하는 간이 부두시설을 말한다. 참고로 선양장(船揚場)은 소형 선박의 수리, 파랑(波浪)이나 고조(高潮)에 대한 피난, 월동, 보관 등을
위해 선박을 들어 올리거나 내리기 위한 시설이다.
계속 이어지는 '봉산리' 해변
(12:49) '추낭마을' 버스정류장을 지나고~
언제봐도 이쁜 야생화 '모래지치'...
(12:51) '추난개교' 다리를 건너면 '봉산1리'가 시작된다.
이 마을은 계곡에서 향긋한 물이 흐르고 있다 하여 '춘향계(春香溪)'라 불리는 마을인데,
'추낭' 혹은 '추난개'로도 불리고 있다.
그렇게 '봉산1리'로 들어서서 잠시 진행하면, 도로 좌측 편에는 공동묘지다.
(12:56) '봉산1리(항곡) 버스정류장'을 지나고~
완만한 해안도로 오르막길을 올라 (12:58) 1km전방으로 7번국도를 알리는 교통표지판을 지난다.
그렇게 오르막길을 올라서니 (13:04) 울진 공항 북쪽 도로를 지나게 되는데,
즉 '울진 비행훈련원' 담벼락이다.
울진 비행장(蔚珍飛行場)은 울진군 기성면 봉산리에 위치한 비행장이다.
원래 이곳은 일반 공항을 목표로 건설되었으나, 항공 수요 부족으로 건설이 지지부진하다가,
2010년 7월 '울진비행교육훈련원’ 개원에 맞추어 울진비행장이 준공되었다.
울진비행교육훈련원은 울진 비행장에 문을 연 조종사 훈련 기관으로, 울진비행교육훈련원의 운영주체는
항공대 비행교육원과 한항전 비행교육원인데, 각각 이 두 곳에서 조종사 지망생들을 선발하고
비행교육과 지상 학술을 교육한다.
이 과정은 유료로 진행되고 비행시간은 총 190시간 정도이며, 자가용 조종사 면장과
사업용 조종사 면장을 취득하는 과정이라고 한다.
500m전방으로 7번국도를 알리는 교통표지판을 지난다.
이 부근에서 행정계는 기성면 봉산리에서 잠시 기성면 정명리로 바뀌었다가,
척산천을 건너면 척산리로 다시 바뀐다.
(13:13) 기성 교차로에서 해파랑길은 우측 '기성' 방향이다.
(13:14) '봉산1리' 2km 표지석을 지나고~
(13:18) 도로 우측에 '황응청 효자비'가 있다.
효자 비각 안에는 '孝子通訓大夫行眞寶縣監黃應淸之閭(효자통훈대부행진보현감황응천지려)'란
비석이 안치되어 있다.
'매미'찾기놀이~
(13:23) '척산천'을 가로지르는 '기성교'를 건너서 간다.
'기성교'를 건너면 척산리로 들어서는데, '기성 어촌체험휴양마을' 입간판 우측
구.도로를 따라 해파랑길은 이어진다.
(13:26) 척산리, 척산1리 교통표지판을 연달아 지난다.
척산리(尺山里)
동쪽에는 기성리(箕城里)와 동해가 있고, 서쪽은 정명천(正明川) 상류가 흐르고 있으며,
남쪽은 탕건봉(宕巾峯)으로 둘러싸이고, 북쪽은 사동리(沙銅里)와 인접하고 있다.
뒷산은 금장산(金藏山) 지맥이 동쪽으로 뻗어 망질봉(望侄峯)이 되었다.
자연마을로는 서창(西倉), 망질봉(望侄峯), 화수정(花樹亭), 용당골 등이 있는데,
용당골(龍塘谷)은 마을 앞의 큰 못에 용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망질봉(望侄峯)은 서울로 과거를 보러 보낸 후 사람들이 산에 올라가서
매일 같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13:29) '기성 갈림 삼거리'에서 계속 직진이다.
(13:35) 해파랑길 24코스 종점인 '기성 공용정류장'에 도착이다.
해파랑길 24코스,25코스종합안내판과 스탬프는 기성버스정류장 우측
기성면 보건지소입구 담벼락앞에 세워져있다.
오늘은 여기까지~
기성버스정류장에서 해파랑길 울진 24코스를 마친다.
24코스 종료 스템프 찍고~
다시 기성버스정류장으로 가는데, (13:40) 포항行 완행버스가 도착한다.
제대로 답사마무리도 못하고 응급결에 포항行 완행버스를 타고 포항으로 향하면서
이틀간에 걸쳐 진행했던 해파랑길 21. 22. 23. 24 구간을 마무리한다.
이후 여러 도시들을 경유하여 포항시외버스터미널에 하차.
포항터미널 근처 사우나에 들려 땀냄새 제거하고~
포항시외버스터미널에서 부산.사상/서부터미널行 버스이용,
부산.사상/서부터미널 하차, 지하철2호선타고 개금집으로 귀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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