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일자: 2022.12.3
코스: 진해드림로드.입구(시점)-마진터널-장복산갈림능선1쉼터-장복산갈림능선2정자쉼터
-장복산길도로-양곡교-웅남동 행정복지센터-봉암교.교차로--봉암교-봉암2 삼거리
-자유무역정문.사거리-김주열 열사상-육호광장.교차로--임항선그린웨이 입구-가고파꼬부랑길 갈림길
-몽고정-마산지검.사거리-마산항.입구/경동메르빌 106동 앞(종점)
인원: 나홀로 (이사. 곽차)
거리: GPS 15.24km (두루누비기준 14.9km)
시간: 널널.촬영&휴식포함/ 4시간20분
▶ 갈때 : 경남 양산.사송집에서 양산역으로 이동하고~
지하철2호선 타고 사상역에서 하차, 사상 서부시외버스터미널에서 마산行 시외버스를 타고
마산시외버스터미널에 하차,
도로건너편 시외버스.버스정류장에서 162번버스타고 진해문화센터.버스정류장에 하차후
들머리까지 도보이동
***진해, 창원방향에서 오는차는 창원편백 치유의숲 (구.여좌검문소) 버스정류장에 정차하나
마산에서 장복터널을 지나오는 차는 창원편백 치유의숲 (구.여좌검문소) 버스정류장에
정차안하고 진해문화센터 앞에 정차함***
▶ 올때 : 창원9구간 마치고, 창원10구간 동시진행으로 인해 9구간 날머리 대중교통편 확인못함
'남파랑길 창원9구간 궤적'
창원9코스 들머리인 '진해 드림로드' 입구
남파랑길 창원 9코스 안내판
답사준비를 마치고 (07:50) 두루누비&트랭글 앱켜고 남파랑길 9구간 시작하며
보행로가 없는 도로를 따라 나가는데, 차량 통행량이 별로 없어 다행이다.
도로 우측위로 '소나무 보호수'를 알리는데, 수령 300년, 높이 22m, 흉고 3.2m의 보호수다.
(08:00) '마진터널' 앞에 도착하고~
'순직비'
순직비 가운데에 청동 해군 마크가 있고 그 위에 군인들 이름이 새겨져 있다.
해군 하사 전판수·윤병옥, 해군 병장 김영식·박기서·서안식, 해군 상병 나상경·장경인,
해군 일병 이남호 이렇게 8명이다.
해군 마크 오른 편 돌판에는 이 순직비를 세운 이유를 새겨 놓았다.
1979년 8월 25일 태풍 '주디'가 우리나라에 상륙했다.
주디는 당시 경남 지역으로 상륙해 도내 피해가 막심했다.
전국적으로 107명이 숨져 우리나라 최악의 자연재해 중 상위권을 기록하고 있다.
이 태풍으로 당시 진해 제황산이 무너지면서 18명이 숨졌다.
그리고 장복산 정상도 무너져 내리면서 가까운 마진터널을 덮쳤다.
당시 마진터널은 진해라는 군사 도시로 통하는 핵심 도로였으므로
출입구 검문소에 군인들이 상주했다.
순직비에 적힌 당시 상황은 이렇다.
"마진터널을 경비하던 해군 헌병대 소속 고 하사 전판수 등 군인 8명은
폭우가 쏟아져 내리기 시작한 오후 2시경부터 저녁까지 초비상 근무를 계속하고 있었다.
도로가 침식되어 마산에서 진해까지 도보로 귀가하는 약 3,000명의 통행인과
200여 대의 차량으로 교통혼잡은 극에 달했다.
저녁 7시경 통신이 두절되고 정전이 된 상황에서 터널 입구에 낙석이 있자
이들 8명은 즉시 교통 차단기를 쳐서 입구를 봉쇄하고 손전등 불빛에 의지해
터널 안에 꽉 찬 인파와 차량을 안전지대로 대피시키던 중 느닷없는 굉음과 함께
쏟아져 내린 산사태에 휩쓸려 꽃다운 목숨을 잃었다."
[경남도민일보, 이서후 기자, 2016. 5. 18]
'순직비'앞에서 잠시 묵념시간을 갖고 '마진터널' 입구 우측 숲길로 올라간다.
마진터널
1949년 개통한 마진터널은 창원시 성산구와 진해구를 잇는 길이 372m,
높이 4.5m 왕복 2차로 터널이다.
지난 1985년 장복터널이 개통되기 이전까지 당시 옛 마산시와 진해시를 연결하는 핵심 도로였다.
그러다가 1999년 안민터널까지 개통되자 지금은 차량 통행이 뜸한 곳으로 변했다.
등로 좌측으로 현위치 표시목을 지나고~
급경사의 데크 계단길이 시작된다.
그렇게 급경사의 오르막길이 끝이나는 능선에 올라서니
(08:10) 어지러운 이정표와 쉼터 정자가 있는 '장복산' 정상 갈림길이다.
능선 우측으로 1.3km 떨어진곳에 '장복산'이 위치하는데, 남파랑길은 쉼터정자 직진 방향의
'숲속 나들이길(안민약수터 10.2km)' 방향으로 내려서야 한다.
잠시 호흡조절시간을 갖고 내려서서 편백 숲 사이로 이어지는 '숲속 나들이길'
등로를 따라 진행이다.
남파랑길 표시가 붙어있는 이정표를 지나고~
오솔길을 따라서 룰루랄라~ ㅎ
'마진도로' 갈림길에서 직진이다.
(08:30) '양곡·신촌'과 '장복산' 정상이 갈리는 능선에 도착하고~
사각 정자에 배낭을 내리고, 준비해온 따뜻한 커피와 토스트로
간단하게 아침을 해결하며 휴식이다.
이곳 정자 쉼터를 지날 때 주의하여야 한다.
이정표의 남파랑길 안내 표시는 '양곡·신촌' 방향에 붙어있어서 이정표 방향 따라
자칫 능선으로 진행해 가기 쉬운데, 그 길로 가면 알바이고,
바른 남파랑길은 능선 좌측 아래의 좁은 등로인 '송골 농장 가는 길'로 들어서야 한다.
초반 완만하게 이어지던 오솔길이 우측으로 급하게 휘어지며 돌길을 지나고,
다시 좌측으로 휘어지며 내려서고 좁은 숲길을 지난다.
이후 편백 숲길로 내려서고, 지그재그로 이어지는 급경사 내리막길을
내려서면 도로가 보이기 시작하고,
(09:02) 테크계단을 통해 내려서면 '마산'과 '진해'을 연결하는 구 도로인 '장복산길'이다.
'마산'과 '진해'를 연결하는 구 도로인 '장복산길'로 내려서서 우회전하여 진행하고~
좌측으로 '송골 농장' 입구를 지나고~
우측으로 '경주 최씨' 선산을 보면서 도로를 따라 내려간다.
'보현사 입구 삼거리' 장복산길 위로는 2번 국도인 '남해안 대로'로 진입하는
램프 교량이 좌우로 길게 이어지고~
(09:08) '진해대로' 앞 횡단보도를 건너기 위해 '신호등 조작 버튼'을 누른 후
잠시 기다렸다가 횡단보도를 건너간다.
(09:13) '양곡로 버스정류장'을 지나고~
'진해대로' 도로 좌측 아래로 내려서는 길로 내려간다.
'창원 마산교' 램프 교량 밑에서 남파랑길은 '양곡 소공원' 방향으로 이어지고~
(09:19) '양곡천'을 가로지르는 '양곡교'를 건너서 우회전하여 진행이다.
양곡천 생태하천 복원사업이 한창이다.
우레탄 포장 탐방로가 시작되고~
(09:26) '양곡 소공원' 도착이다.
'산성산 숲속 나들이길 안내도'와 '양곡 소공원 종합 안내판'
다시 '양곡천' 다리를 건너 좌회전하여 '양곡천'을 따라 직진해서 진행하고~
좌측으로 '양정 2교'와 그 앞 '양곡 중학교'를 보면서
'양곡천' 우측 탐방로를 따라 진행이다.
이 날씨에 장미라니!!!
'양곡천'을 건너는 데크 다리 난간에
'정이 있는 으뜸 웅남 당신의 희망입니다'란 조각 글자가 붙어져 있다.
(09:44) '웅남동 행정복지센터'
'신촌로'도로에 올라서고, 도로를 따라 '웅남동 행정복지센터' 앞을 지나간다.
'신촌로' 도로 건너편에 있는 '창원 양곡동 우체국' 앞을 지나고~
'유신상가 버스정류장'을 지난다.
(09:51) '신촌광장 삼거리'
'신촌 광장'에는 '정밀공업 진흥의 탑'이 세워져 있다.
정밀 공업 진흥의 탑
경상남도 창원시 성산구 신촌동 신촌 광장에 설치된 25m 높이의
조형물로 1979년 건립하였다.
이 탑은 창원시가 통합되기 이전 창원, 마산, 진해의 경계 지역에 설치되어
창원공단의 관문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 탑은 받침대 부분과 몸체가 대리석으로 축조되었으며,
몸체에 「정밀 공업 진흥의 탑(박정희 전 대통령이 1972년 9월 쓴 친필 휘호)」
글자가 동으로 새겨져 있고 그 위에 대한민국 대통령 문장인 봉황 두 마리와
가운데 무궁화가 새겨진 동판이 부착되어 있다.
꼭대기 부분은 정밀 기술만이 세계 제조업 시장을 주도할 수 있다는 취지로
미사일 모형으로 제작하였다.
'신촌 광장 삼거리'에서 횡단보도를 통해 좌측 '신촌로' 도로를 건너 '신촌광장'에 진입한뒤
'공단로'를 따라 잠시 진행하다 횡단보도를 통해 직진방향 '공단로' 도로를 건너고,
'GS칼텍스 주유소'앞에서 좌회전하여 횡단보도를 통해 '공단로' 도로를 건너 또다시 좌회전이다.
(09:59) 우측으로 (주)한국해양크랭크샤프트 공장을 끼고 '공단로'를 따라 진행하고~
(10:03) '봉암교 교차로'
'봉암교' 우측 갓길을 통해 '봉암교' 아래를 빙돌아 통과하고~
(10:12) '적현로'에 올라선뒤 좌측으로 방향을 바꿔 '봉양로'가 지나가는
'봉암교' 좌측 보행로를 따라 '남천'을 건너간다.
'남천' 바라보고~
남천(南川)
경상남도 창원시(昌原市) 천선동(遷善洞)의 불모산(佛母山)에서 발원하여
창원시가지의 남쪽을 가로질러 서북방향으로 흐르다 마산만(馬山灣)으로
유입되는 하천이다.
낙동강남해권수계의 본류이며, 하류가 마산의 봉암동(鳳岩洞)에 접하고 있어
봉암천(鳳岩川)이라 하기도 한다.
유로연장 10.27㎞이며 유역면적은 110.96㎢이다.
창원의 도심지와 창원산업단지 사이를 흐르고 있어 강변을 따라
남천로(南川路)가 개설되어 있으며 주변에 공장 지대가 형성되어 있다.
경상남도 창원시 천선동 외 19개의 동과 마산시 봉암동의 1개 동 등,
2개 시(市) 22개의 동(洞)을 걸쳐 흐른다.
(10:19) '봉암교 버스정류장'을 지나고~
'S-OIL 주유소' 앞 삼거리 갈림길에서 남파랑길은
좌측 '문신미술관' 방향으로 방향을 바꾼다.
(10:22) '봉암 2 삼거리'
'봉암 2 삼거리'에서 우측의 횡단보도를 통해 도로를 건너고,
다시 좌측의 횡단보도를 통해 '무역로' 도로를 건너 우측 강변길을 따라 진행이다.
이후 '마산만'을 좌측에 두고 진행하는데 직진방향 저멀리에 있는
'무학산'이 조망되고~
'무학산'을 땡겨본다.
무학산(舞鶴山)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와 마산회원구에 걸쳐 있는 산으로 높이는 762m이다.
마산회원구 내서읍과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회성동,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교방동 사이에 위치한다.
남쪽으로 대곡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서쪽으로 꺾이면서 대산, 광려산, 봉화산 등으로 이어진다.
백두대간 낙남정맥 기둥 줄기의 최고봉이다.
지리산 영신봉[1651.9m]에서 출발해 진주~마산~창원을 거쳐 김해 낙동강 하류에서 끝나는
약 230여㎞의 낙남정맥[정간]의 주요 봉우리 여항산~서북산~봉화산~광려산~대산~대곡산~
무학산[762m]~천주산 등이 인근 지역과 경계를 이루며 힘차게 뻗어 너른 바다와 그 기상을 겨룬다.
특히 무학산은 백두대간 낙남정맥 기둥 줄기의 최고봉으로 동쪽으로는 구(舊) 마산 시가지가
내려다보이고, 뒤로 마산항이 보이며 남쪽으로는 남해 뿐만 아니라 다도해의 풍광도 전망되고 있다.
억새 투성인 주봉과 서마지기를 중심으로 남북으로 길게 주능선을 펼치고 있는 서쪽 사면은
광려산과 마주하면서 경사가 급한 반면, 동쪽 사면은 산세를 열고 마산 일원을 포용하고 있다.
북쪽 능선은 경상남도 창원시의 천주산역과 이음을 맞대고 느긋하게 경사를 올리면서 두척골,
앵지밭골을 펼친다.
남쪽 능선은 대곡산을 통해 만날재까지 내리면서 그 서쪽 끝을 대산으로 흘러내리고 있다.
‘무학산(舞鶴山)’의 지명은 산세가 마치 학이 춤추는 듯 날개를 펴고 나는 형세와 같아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며, ‘두척산(斗尺山)’ 또는 ‘풍장산’이라고도 부르고 있다.
두척산은 원래 이 지역에 조창이 있어 쌀이 많이 쌓여 있는데, 그 쌀을 재는 단위인 ‘말(斗)’과
쌀이 쌓인 높이를 재는 단위인 ‘척(尺)’에서 유래된 지명이라고 한다.
신라 말기 최치원(崔致遠)[857~?]이 산세를 보니 학이 춤추는 듯 날개를 펴고 나는 형세와 같아
무학산(舞鶴山)이라는 이름이 유래하였다고도 하고, 일제 강점기 일본인들에 의해 붙여졌다고도 한다.
조선 시대의 기록에는 ‘두척산’으로 나타나 있다.
『여지도서[창원]』에 두척산이 “부의 서쪽 15리에 있다. 함안과의 경계를 이룬다.”라는 기록이 있고,
『영남지도』에는 두척산 봉산(斗尺山封山)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대동여지도[창원]』에는 읍치 북쪽의 천주산에서 서쪽 광려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 가운데
지점에서 남쪽으로 뻗은 산줄기에 두척산이 묘사되어 있고, 『조선지지 자료[마산]』에는
외서면 자산리(玆山里)에 무학산이 기록되어있다.
'자전거 안전운행 수칙 세 번째'
차량과 같은 방향인 우측통행으로 주행해야 한다는 안전운행 수칙 입간판을 지난다.
(10:34) '자유무역2공구 후문삼거리'
'마산만' 바라보고~
남파랑길 9코스 안내판을 지나고~
(10:39) '봉암팔용교 삼거리'
'팔룡교'를 건너고~
계속해서 보도와 자전거길이 구분되어 있는 보행로를 따라 진행이다.
'자전거 안전운행 수칙 하나'
안장높이, 핸들높이를 잘 확인하고 내 몸에 맞는 자전거를 탄다는 안전운행 수칙 입간판을 지난다.
(10:45) '자유무역3공구 삼거리'
자전거길과 보행로로 나누어지던 길이 좁은 길 하나로만 이어지는 길이 시작되고~
도로 건너편으로 'KC 월드카 플라자' 신축건물을 지난다.
'마산항 제3부두' 바라보고~
횡단보도를 통해 '무역로' 도로를 건너고,
좌회전하여 반대편 도로 보행로를 따라 진행이다.
(10:59) '제3부두 버스정류장'을 지나고~
'마산 자유무역지역 관리원' 앞을 지난다.
도로 건너편으로 '마산항 제3부두' 정문을 바라보고~
창원 자동차 경매장인 '모터스 밸리' 앞을 지난다.
(11:04) '수출자유지역교' 다리를 건너고~
'수출자유지역교'를 건너면서 우측(북쪽)방향 바라보고~
(11:05) '자유무역 정문 사거리'에서 계속 직진 방향으로 진행이다.
도로명이 '허당로'로 바뀌고,
남파랑길은 '허당로'를 따라 6호광장 방향으로 이어진다.
허당로(虛堂路)
창원시 마산합포구 노산동 육호 광장과
합포동 자유무역 정문 사거리를 잇는 왕복 4차선의 도로이다.
독립지사였던 명도석 선생(1885~1954)의 호인
허당(虛堂)을 따서 지은 도로 이름이다.
(11:11) '합포 초등학교' 정문을 지나고~
'마산 용마고' 야구부. 씨름부 실내 훈련장 건물 앞을 지난다.
고.김주열 열사 흉상
김주열 열사 흉상
1960년 3월 15일 자유당 정권의 독재와 불의에 맞서 싸우다 산화한 김주열 열사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고자 2000년 3월 15일, 입학 동기인 마산상업고등학교(현 용마고)
37회 졸업생들이 뜻을 모아 교정의 양지바른 곳에 흉상을 세웠으나,
2005년 학교 담장 개방 공사로 현 장소로 옮겨졌으며, 3.15 의거 열사 김주열 기념사업회가
2008년 4월 11일 소공원과 기념 조형물을 조성하여 흉상을 이곳에 안치하였다.
김주열 열사 흉상 앞 횡단보도를 통해 '허당로' 도로를 건너고,
우회전하여 반대편 도로 보행로를 따라 진행이다.
도로 건너편에 있는 '합포동 행정복지센터' 앞을 지나고~
'합포교' 다리를 통해 '회원천'을 건너고~
회원천(檜原川)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회원동의 무학산 동쪽 사면 앵기밭골에서 발원하여
북동쪽으로 흐르다가 동남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회원동을 지나 창원시 마산합포구
중성동에서 교방천을 아우르고 마산합포구 상남동에서 바다로 합류되는 지방하천이다.
하천 수계는 본류와 1개의 소하천인 교방천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천연장은 3.6km, 유로연장 4.49km, 유역면적 8.21㎢이다.
회원천은 발원지인 최상류 구간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이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 초반에 걸쳐 추진된 하천 바닥 공사로 인해 콘크리트로 덮여 있다.
(11:23) '육호 광장 교차로'
마산시의 번화가인 육호 광장에 2004년 11월 로터리 체계에서 평면 신호체계로
바뀌면서 말(馬) 조각이 새겨진 문(門) 자 형상의 높이 5~8m 조형물이 8개 설치되었다.
경남대 임형준 교수가 제작한 '전진과 화합-3004'인 이 조형물은 5∼8m 높이의 기둥을
문(門) 자 형상으로 배치하여 세계를 향한 관문을 나타내고, 말 형상은 3·15의 도시
마산시민들의 자유와 민주를 향한 기상을 표현했다고 한다.
그러나 조각 작품은 공원에 설치해야 조화를 이루고, 도심에는 푸른 나무를 심어
좋은 환경을 만들어야 하므로 좋은 수종의 나무 몇 그루를 심었다면 빌딩과의 조화는 물론
환경에도 좋았겠지만, 교통섬에 11억 원이란 거금을 들여 조각 작품을 설치한 것은
도시행정의 기본을 무시한 발상이라는 의견도 있다.
또한 마(馬) 조각상이 한 몸이 되지 않고 머리, 다리, 꼬리, 목, 허리 등이 분리되어
표현됨으로써 이는 곧 죽은 말을 표현한다는 의견도 대두된다고 한다.
'대동빌딩' 앞에서 지하도로 내려서고~
이후 '교보생명' 건물앞으로 나가, 교보생명을 좌측에 두고 곡각지를 돌아
'천하장사로' 도로를 따라 서편으로 이어간다.
'원불교교구청 버스정류장'을 지나고~
(11:31) '북성로 사거리'
'북성로 사거리' 앞 횡단보도를 통해 '북성로' 도로를 건너고~
북마산 가구 거리(北馬山家具距離)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중성동 7-4번지 위치한 가구점 40여 개가
밀집한 가구 전문 거리이다.
1959년 이 거리[당시 마산 추산동] 최초로 중앙 가구사가 생겨나자
입소문을 타고 가구를 사기 위한 사람들로 발걸음이 잦아졌다.
이들의 발걸음을 잡기 위해 가구점들이 하나 둘 모여 들어
지금의 가구 거리를 형성하였다.
이렇게 모여든 가구 전문점들이 1995년에 49개 점포에 달했고,
이들을 한데 묶는 북마산 가구 상인회가 1995년 창립하게 되었다.
그 사이 북마산 가구 거리는 창원[구 마산] 지역 뿐 아니라 결혼이나 이사를
치루는 경남 일대의 소비자들이 한번쯤 들르는 거리로 자리매김하였다.
2000년에는 전국 가구 연합회 우수 가구 거리로 선정되었고,
2006년에는 한국 생활 가구 협회 우수 업체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북마산 가구 거리는 1959년 중앙 가구사가 생긴 이후 1990년대 가장 많은 수의
가구 전문점이 입주하였고, 2010년대 들어서는 40여 점이 입점해 있다.
현재는 친환경, 기능성 가구 등 가구 본연의 질뿐 아니라 거리를 찾는 이의
편의를 위해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어두운 밤에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조형물을 만들고, 가로등을 정비했다.
더불어 가구 거리를 찾는 손님들을 위해 200대[661.16㎡] 규모의
공영 주차장도 마련하였다.
직진방향의 '천하장사로' 도로 보행로를 따라 우측에 있는
'대화탕' 목욕탕의 높은 굴뚝을 보면서 진행이다.
(11:39) '임항선 그린웨이' 입구
임항선 그린웨이
경상남도 마산에 위치한 '임항선' 폐 철길을 활용하여 2015년에 공원으로 만든 것이다.
마산항 제1부두선 또는 마산 임항선(臨港線)은 경전선 마산역에서, 북마산역, 신마산역,
마산항역을 잇는 총연장 8.6km의 노선으로 1905년에 개통하여 2011년 2월 폐지되었다.
화물 전용 노선으로 전환되기 전에는 인근 농촌에서 마산으로 통학하는 학생 및
북마산역, 구마산역, 어시장 등으로 물건을 팔고 사러 나오는 상인 등 수많은 사람들의
주요 교통수단이자 소통의 장이었다.
철길을 오고 가며 추억과 삶의 애환을 고스란히 담아내었다.
이후 창원시는 도시재생 선도지역 사업의 일환으로 2015년 구 마산세관에서
석전사거리 개나리 아파트까지의 4.6km 폐 철길 구간을 '임항선 그린웨이'라는
공원으로 재탄생 시켰다.
길이 잘 정비가 되어 있어 걷기 좋고 곳곳에 시화와 벽화 그리고 철도 역무원 조형물이 있다.
'임항선 그린웨이'로 들어서서, 철로를 보행로로 바꾸어 조성한 산책로를 진행해 가는데,
동네 주민들이 애용하는 산책길인 듯 제법 많은 주민이 눈에 띈다.
'성호 초등학교' 담장에는 모자이크 벽화가 조성되어있고~
(11:44) ' 가고파 꼬부랑길 벽화마을'과 '문신미술관' 설명 패널을 지난다.
가고파 꼬부랑 벽화마을의 꼬부랑이란 이름이 붙은 연유는 워낙 가파른 고지대라
허리를 꼬부려야 오를 수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갑자기 기적소리가 들려오는듯한 착각을~
철도 건널목을 예전 그대로 재현해 놓았고,
역무원 모형도 사실적으로 제작 전시되어 있다.
'추산 정수장'과 '신신예식장' 스토리텔링 패널을 읽어보고~
'몽고정' 스토리텔링 패널도 읽어보고~
고려 말 1281년에 중국 원나라 세조가 2차례의 일본 정벌에 실패한 뒤 같은 해 10월에
남해안의 방어를 위해 지금 마산시 정수장 일대의 환주산에 군사를 배치하고 진을 설치하였다.
몽고정은 이곳에 주둔한 군사들에게 마실 물을 공급하기 위해 만든 우물로 추정되고 있다.
우물 앞에 몽고정이라 쓰인 비석은 1932년에 일본인 단체인 고적 보존회가 세운 것으로,
전에는 고려정이라 불려 왔다고 한다.
(11:52) 14번 국도인 3.15 대로 옆에 '3.15 의거 기념탑'
1960년 3월 15일 있은 부정선거를 규탄하기 위해 모인 시위대에게
총격을 가하여 12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이는 4.19혁명의 도화선이 되었고 결국 정권은 무릎을 꿇었다.
가장 치열했던 투쟁 현장에 탑을 세워 마산 시민들의 기개와
의거 정신을 기리고자 한다.
교량 구간의 철로는 그대로 남겨 전시함으로써 예전 이 길이
철로였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다.
'임항선 그린웨이' 안내판을 지나고~
(12:02) '창원지방 검찰청 마산지청'을 지난다.
'창원지방 검찰청 마산지청' 앞에 서있는 '어부 부부상'은
서성동 광장인 분수 로터리에 있던 것을 이곳으로 옮겼다고 한다.
'마산지검 사거리'에서 횡단보도를 통해 '중앙동로'를 건너고~
'해안 도로' 우측으로 계속 이어지는 '임항로'를 따라 계속 진행이다.
최순애 시인의 '오빠생각'을 읽어보고~
오빠 생각 -최순애(崔順愛)-
뜸북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뻐꾹뻐꾹 뻐꾹새 숲에서 울 제/
우리오빠 말타고 서울가시며/ 비단구두 사가지고 오신다더니/
기럭기럭 기러기 북에서 오고/ 귀뚤귀뚤 귀뚜라미 슬피 울건만/
서울가신 오빠는 소식도 없고/ 나뭇잎만 우수수 떨어집니다./
일제강점기인 1925년, 소파 `방정환`이 만든 어린이 잡지 <어린이> 11월 호에
수원의 열두 살 소녀 `최순애`의 동시가 실렸습니다.
서울 간 오빠를 그리워하며 지은 시 「오빠 생각」이 입선한 것입니다.
1926년에는 마산에 살던 열여섯 살 이원수의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로 시작되는
「고향의 봄」이 <어린이> 4월 호에 역시 입상하여 실렸습니다.
「고향의 봄」은 홍난파 작곡가가 노래로 만들었고, 「오빠 생각」은 발표된 지 5년 후에
박태준에 의해 노래로 만들어지면서 일약 국민 동요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습니다.
「오빠 생각」을 읽은 이원수는 같은 잡지에 글이 실렸다는 핑계로 최순애에게 편지를 보냈고,
이내 답장이 왔고 이후 7~8년간 편지와 사진을 주고받으며 사랑을 키워 결혼을 약속하였고,
우여곡절 끝에 러브스토리에 성공하여 1936년에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최순애 작가는 윤석중, 이원수, 서덕출 등의 문인과 함께 ‘기쁨사’ 동인으로 활동하며
문학의 꿈을 키웠던 우리나라 1세대 아동 문학가였지만, 결혼을 하면서
활발히 작품 활동을 하지 못했고, 꾸준히 써 오던 동시 원고도 해방 이후
혼란스러운 과정에서 잃어버려 지금은 열 편의 동시만 남아 있다고 합니다.
(12:10) 경동 메르빌 106동 앞 광장 분수대 앞의 남파랑길 창원 10코스 안내판 앞이
남파랑길 9코스 종점이다.
남파랑길 창원 10코스 안내판
오늘 1차로 목표했던 남파랑길 9코스도 무사히 도착했다.
인근 공원 나무의자에 배낭을 내리고 '남파랑길 9코스'를 종료하고,
두루누비&트랭글 앱 끄고~ 잠시 쉬면서 간식으로 원기 보충하고
곧바로 남파랑길 창원10코스를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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