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일자: 2023.10.14
코스: 여수해양공원(시점)-여수.연안여객선터미널-돌산대교.밑-영당지-국동항.수변공원
-여수해양경찰서.국동출장소-넙너리포구-히든베이호텔-여수 하수종말처리장-웅천해변공원
-웅천친수공원.해수욕장-장도.입구-선소유적.입구-장성마을.입구-소호동동다리.입구
-여수.소호요트장 주차장-소호요트장 버스정류장(종점)
인원: 나홀로 (이사. 곽차)
거리: GPS 16.65km (두루누비기준 15.6km)
시간: 널널.촬영&휴식포함/ 4시간48분
▶ 갈때 : 여수54구간 마치고, 여수55구간 동시진행으로 인해 55구간 들머리 대중교통편 확인못함
▶ 올때 : 소호요트장 버스정류장에서 (16:18) 도착한 87번 여수시내버스를 타고
(16:58) 여수종합터미널 건너편 버스정류장에 하차,
(18:00) 부산行(무정차) 시외버스를 타고 부산 서부(사상)시외버스터미널에 하차,
사상 지하철역으로 이동하고, 지하철2호선 타고 종점인 양산역에 하차,
양산역.버스정류장에서 16번 버스 환승하여 양산.내송집으로 귀가
오늘 2차로 목표했던 남파랑길 여수 54코스를 종료하니 (11:17)이다.
선채로 물 한잔하며 호흡 조절하고~
(11:20) 두루누비&트랭글 앱 다시켜고 남파랑길 여수 55코스를 연달아 이어간다.
'여수 해양경찰서 중앙출장소' 앞을 지나,
경찰 마스코트 포토존을 바라보고 '종포 해양공원'으로 진행하고~
'여수항 해양공원' 안내패널 바라보고~
(11:24) '섬섬 여수' 포토존을 지나고~
(11:25) '여수(YEOSU)'영문 글자 중 S 각자 조형물이
돌 의자와 함께 세워져 있는 곳을 지난다.
또 다른 경찰 마스코트 포토존을 지나는데~
돌산도 앞 바다에는 유람선이 떠 있다.
'여수해양공원 촉지형 관광안내판' 바라보고~
(11:28) 사선 형태의 기둥 조형물이 있는 광장을 지난다.
'장군도'와 그 뒤로 '돌산대교'를 바라보고~
그렇게 진행하면, 이제까지 이어오던 '동문동'을 지나
'여수시 중앙동'으로 행정구역이 바뀐다.
여수시 중앙동(中央洞)
전라남도 여수시 고소동·교동을 관할하는 행정동이자 법정동으로 동쪽은 종화동과 관문동,
서쪽은 남산동과 서교동, 남쪽은 바다, 북쪽은 군자동과 관문동에 각각 접하고 있으며,
항구가 있던 구시가지의 항구지역이다.
본래 여수군 여수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수동·정동·재동·죽동·행동·지동 등을
병합하여 동정이라 하다가 1946년 동정 일부를 갈라서 중장동으로 고쳤다.
1953년 행정구역 변경에 의해 중장동을 중앙동으로 명칭을 변경하고,
1997년 7월 25일 행정동 개편에 의해 고소동과 중앙동을 통합하여 중앙동으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1998년 2월 1일 행정동 개편에 의해 고소동·중앙동·교동을 통합하여 중앙동으로 변경하고,
1998년 4월 1일 여천군·여천시·여수시의 통합으로 여수시 중앙동이 되었다.
전라좌수영의 군선들이 정박하던 항구가 있었던 곳으로 내항으로 밀려오는 파도를 막기 위해
해변의 바닷물 속에 담장인 수장이 있어서 수장끝이라고 불렸던 지역이다.
수장동이란 이름과 좌수영성의 남문 장대가 있었던 곳이라서 남문밖, 구장대, 중장동 등의
여러 이름으로 불러오던 마을이 있었던 곳이다.
지금의 이름은 구 여수시의 중앙에 있다고 하여 1953년부터 사용하게 되었다.
해방 전 지리지에서 동 지명에 대한 기록은 찾을 수 없다.
다만 병합 전 교동은 『구한국행정구역일람』(여수)과 『신구대조』(여수)에 수록되어 있다.
또한, 고소동에 있는 고소대가 『신증동국여지승람』(순천)과 『여수군읍지』에 기록되어 있으며,
『1872년지방지도』(순천)와 『여수읍지』의 부도에 좌수영 동문 아래쪽으로 묘사되어 있다.
좌수영대첩비(보물 제571호)가 고소대에 있다.
충무동·동문동과 접하여 있고 여객선터미널 부근의 항구 지역으로 수산물시장이 자리하고 있으며,
중앙로를 중심으로 상가가 밀집된 시가지가 조성되어 있다.
교통은 중앙로가 동서 방향으로 지나면서 동쪽으로는 동문로가 되어 여수엑스포역 방향으로 지나고,
서쪽은 구봉로와 좌수영로가 되어 남북 방향으로 지나고 있다.
이 외에도 크고 작은 도로가 많이 있다.
(11:29) '2012 여수세계박람회' 마스코트인
'여니와 수니' 포토존을 지난다.
'여니'와 '수니'는 여수의 첫 글자인 여와 수를 따서 작명한 마스코트로, 어류의 먹이이자
바다와 연안을 지켜주는 생물자원인 '플랑크톤'을 모티브로 디자인되었다고 한다.
'여니'는 '열다(open)'에서 따와 여수세계박람회의 성공적인 개최를 염원하고,
'수니'는 '물', '우수한', '여성'의 이미지로 해양박람회의 상징뿐 아니라 우수하고
수준 높은 박람회를 표현하고 있다고 한다.
(11:32) '조개' 조형물을 지나고~
조개 모양 조형물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만' 회원에 2009년 11월에 가입하여, 2023년 여수에서
열리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만 연차총회'를 대비하기 위해 2019년에 세워졌다.
이 조형물은 좌대 포함 가로 2.6m, 세로 1.5m 규모로, 외형은 가리비와 전국 생산량의 70%를 차지하는
여수 새 고막을 본떴고, 내부는 여수만과 세계만 엠블럼을 새겼다.
직사각형의 표지석에는 '여수만은 여자만, 장수만, 가막만, 여수행만, 광양만의 5개만으로 이뤄져 있으며, 2009년 11월 세계 만 클럽에 등록했다'는 문구가 담겨있다.
'여수 레인보우' 포토존을 지나고~
(11:34) '이순신광장'에서 해안으로 진입하는 용 모양의
'보행육교'를 바라보며 진행이다.
'여수개항 100주년 기념조형물'과 '타임캡슐' 바라보고~
(11:36) '여수 밤바다 낭만 버스킹' 광장을 지난다.
'전라좌수영 거북선'을 바라보면서 진행하고~
거북선
임진왜란(1592년)이 일어나기 직전 이순신 장군의 지휘 아래 군관 나대용(羅大用)과
지역 선박 기술자들에 의해 건조된 함선이다.
임진왜란 당시 활약한 거북선은 단 세척이며 전라좌수영 선소(여수시 중앙동),
방답진 선소(여수시 돌산읍), 순천부 선소(여수시 시전동)에서 각 한 척씩 건조되었다.
여수시는 임진왜란 당시 거북선 건조지로서 역사를 재조명하고 원형에 가까운 거북선을
건조하고자 학술조사와 자문 회의 결과를 토대로 2013년에 현 위치(전라좌수영 선소 옛 터)에
전라좌수영 거북선 창제귀선(創製龜船)을 제작, 전시하고 있다.
(11:38) 우측 도로 건너편으로 '이순신광장'과
'충무공 동상'을 보면서 지난다.
(11:40) 공원 끝자락에는 '여수 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져 있는데~
시대의 아픔을 곱씹어 평화로 승화시켰으면 하는 바람인데,
외면을 넘어 왜곡하는 사람들이 그 소녀들의 부모 입장에서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여수 평화의소녀상(麗水 平和─ 少女像)
여수 평화의소녀상은 이순신광장 북쪽에 있다.
건립 기금은 여수 지역 170여 개 단체와 1,546여 명의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았으며, 김서경·김운성 조각가 부부가 제작하였다.
제막식은 2017년 3월 1일 치러졌다.
여수 평화의소녀상 뒤쪽에 세워진 소녀상 평화비 전면에는
신병은 시인의 시 「귀향」을 박정명 서예가의 글씨로 새겼으며,
뒷면에는 여수 평화의소녀상 건립을 위해 기부한 사람들의
이름과 단체명이 새겨져 있다.
여수 평화의소녀상은 여수평화나비에서 관리하고 있다.
(11:40) '좌수영 음식문화거리' 입간판을 지나고~
좌수영(左水營) 음식문화거리
여수시 중앙동에 있는 음식 특화 거리로, 중앙동은 예전부터 음식점들이 밀집한 곳이었다.
2012년 세계박람회 개최지로 여수시가 결정되자 여수 지역의 특색 있는 음식 문화를 전하기 위하여
2009년 좌수영 음식문화거리를 조성하였다.
이 거리에서는 여수 지역의 대표적인 음식인 아귀탕과 아귀찜, 서대회, 게장백반, 해물삼합 등을
비롯한 다양한 음식들을 맛볼 수 있다.
그렇게 '좌수영 음식문화거리' 입간판을 지나면,
이제까지 이어오던 '중앙동'을 지나 '여수시 교동'으로 행정구역이 바뀐다.
여수시 교동(喬洞)
전라남도 여수시에 있는 법정동으로 동쪽은 중앙동, 북쪽은 충무동,
서쪽은 서교동과 각각 접하고 있다.
북쪽에는 종고산이 자리하고 남쪽은 바다와 접하고 있어 전체적으로 북쪽이 높고
남쪽이 낮으며, 북에서 남으로 연등천(蓮燈川)이 흘러 남해로 유입되고 있다.
교동은 고지대 집단 주거 지역과 교동 사거리를 중심으로 4개의 상권 지역이 형성되어 있다.
본래 여수군 여수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상정(上井)·구동(龜洞)·성동(城洞)·
하정(下井)·종동(鍾洞)·석정(石井)·천동(川洞)·포동(圃洞)·석교리(石橋里)·교동(喬洞)·추동(秋洞)·
탕암(宕岩)·연동(蓮洞)이 통합되어 일본식 지명 표기인 서정(西町)이 되었다.
1920년대 바다를 매립하면서 지형이 병의 목처럼 보여 ‘병모가지’라 하였다가 지명을
한자로 바꾸면서 교동(喬洞)이 되었다.
1946년 일제 잔재 청산의 일환으로 정(町)을 동(洞)으로 개편할 때 서정 일부를 분할하여 교동이 되었다.
1960년 바다를 매립하면서 신교동과 구교동이 형성되었다.
1998년 삼여통합에 따른 행정구역 통폐합으로 행정동인 중앙동(中央洞) 관할이 되었다.
교동 내부에는 동서 방향을 연결하는 중앙로가 있고, 그 중앙로를 사이에 두고 북쪽과 남쪽에
시가지가 길게 형성되어 있다.
북쪽은 상가 빌딩 지역이고, 남쪽은 생필품 상점 지역이다.
바다 인근에는 선어 소매시장을 중심으로 풍물시장과 아침 재래시장이 형성되고 물양장 주변의
건어물 상회와 선박 부품 판매점이 밀집되어 있다.
주요 기관으로는 국민은행 여수지점, 광주은행 여수지점 등이 있고, 시설로는 여수연안여객선터미널,
교동시장, 여수 수산시장이 있다.
이 밖에 상설시장인 중앙시장과 꿈뜨락몰 등의 문화시설이 있다.
구 여수권 경제의 중심지였으나 점차 여천 권역으로 그 역할을 내주고 있다.
이후 연안여객선 터미널 주차장을 길게 진행하고,
(11:42) 또 다른 '좌수영 음식문화거리' 입간판을 지난다.
(11:44) '여수.연안여객선터미널' 사거리 갈림길에서 좌회전하고~
365개의 섬이 있다는 여수는 그 어떤 지역보다도 연안 여객선터미널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육지와 연결된 섬만 4개 이고 그 외에도 사람이 사는 유인도가 49개라고 하니 그곳들을 오가는
교통수단은 당연히 중요할 것이다.
그렇지만, 모든 섬이 이곳에서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섬과 가까운 곳의 육지에서 간단히 넘어가는 곳도 있고 작은 섬은 큰 섬을 거쳐서 가는 경우도 있다.
'여수 밤바다코스 갯가길 1-1코스' 원형 표지판을 지난다.
우측 도로 건너편에 '여수.수산시장' 입구를 지나고~
(11:47) '연등천'을 가로지르는 '남산3교'를 건너간다.
'연등천' 기수역 멀리로 '거북선대교' 바라보고~
연등천(蓮燈川)
호랑산(虎狼山, 470m) 산록에서 발원하고, 여수시 둔덕동에서 하천이 시작된다.
둔덕동과 미평동·문수동·오림동·연등동·남산동을 차례로 통과하면서 대체로
'S'자 형태를 이루며 남동쪽으로 흐르다가 여수 여객선터미널 근처에서 바다로 빠져나간다.
길이 5.65㎞, 유로연장 8.74㎞, 유역면적 17.31㎢로, 섬진강 권역의 섬진강 남해권
수계(水系)에 속해 있는 지방 2급 하천이다.
한때 미평동 일대 농경지에 농업용수를 공급하였으나 1960년대부터 하천 주변에
공장들이 들어서 수질이 악화되고, 수량도 감소하였다.
하천을 따라 국도 17호선이 지나간다.
그렇게 '남산3교'를 건너면, 이제까지 이어오던 '교동'을 지나
'여수시 대교동'으로 행정구역이 바뀐다.
여수시 대교동(大橋洞)
전라남도 여수시의 남산동·봉산동을 관할하는 행정동으로 동쪽은 중앙동,
서쪽은 국동과 접하고 있으며, 대교동 지역 중심에는 예암산[남산]이 자리하고 있다.
남산동과 봉산동을 통합한 행정지명으로 돌산도와 연결되는 돌산대교가
자리하고 있어 지역의 명칭을 대교동이라 하였다.
1897년(고종 34) 여수면 봉서리, 남산리로 부르다가,
1914년 봉서리 · 봉강리 · 국포리를 병합하여 구봉산 아래에 있다 하여 봉산리라고 하였다.
1953년 행정구역 변경에 의하여 봉산동, 남산동으로 각각 개칭하였다.
1998년 여수시·여천시·여천군 통합으로 봉산동과 남산동을 통합하여
전라남도 여수시 대교동이 되었다.
『호구총수』(순천)의 여수읍에 사철리(沙鐵里)가 표기되어 있는데 이곳은 대교동 봉산지역이다.
『여수여천향토지』에 의하면 조선 시대 말엽 봉산리에 사철(砂鐵)이 생산되면서
사철고(沙鐵庫)를 신설하여 '새철'이라는 마을 지명이 전한다고 한다.
『조선지형도』에서는 구봉산 남동쪽에 위치하며 봉강리와 국포리 사이 해안지역으로 묘사되어 있다.
돌산대교와 돌산공원 등 관광지구와 연계된 개발 잠재력이 있는 지역이며,
외지 관광객이 많이 찾는 봉산동 게장백반거리와 참장어[하모]거리가 들어서 있다.
(11:49) 이후 좌측으로 '여수수산물 특화시장'을 보면서 진행하다,
'갓김치 백화점'을 지나고~
(11:52) '돌산 갓 김치거리' 입간판을 지난다.
이후 '남산로' 도로를 따라 길게 진행하고,
(11:55) 'Y자' 갈림길에서 좌측 아랫길로 진행하고~
(11:59) 해안 끝까지 내려서기 직전에
우측 좁은 해안 마을 골목길로 들어서고~
'여수해안 자전거길/ 가막만 코스' 안내판이 서있고,
담벼락에는 자전거 벽화가 보인다.
그렇게 골목길을 빠져나오면 '돌산대교'의 모습이
한걸음 더 가까이 다가왔다.
돌산대교(突山大橋)
전라남도 여수시 남산동과 돌산읍 우두리를 연결하는 다리로
너비 11.7m, 길이 450.2m로 1980년 12월에 착공하여 1984년 12월에 완공되었다.
돌산대교는 진도대교와 함께 국내 최초로 사장교로 설계되었으나
진도대교 보다는 2달 늦게 완공되었다.
사장교로서 미려한 경관을 갖추기 위하여 외팔보공법(free cantilever method)을
도입하여 시공하였다.
하부구조는 2기의 교각으로 지지되며, 상부구조는 3경간 연속 강 박스거더를 가진 다리로,
주탑은 A자형이고 케이블배치는 방사형으로 되어 있다.
중앙경간이 290.7m, 양측경간이 각각 85m로 되어 있으며 탑의 높이는 62m이다.
교탑의 기초는 압축공기 케이슨공법으로 해저암반층까지 침하시킨 대형 우물통기초 위의
철근콘크리트 교각 위에 세워졌다.
다리의 건설로 섬에서 생산되는 농수산물의 육지출하가 활발하여지고 육지의 관광객들이
섬에 드나드는 데 편의를 제공하게 되었으며, 차량운행비의 감소와 통행시간 감소에 따른
경비의 절감을 가져왔다.
'장군도' 바라보고~
동북방향으로 '여수'에서 가장 오래된 자연부락이라는 '고소동'을 바라보는데,
마치 달동네를 연상시키는 그림이다.
(12:03) '돌산대교' 밑을 통과하고,
당머리 해안선을 따라 우회하는 '해상 데크교'를 따라 진행이다.
'돌산도'와 '대경도' 사이로 보이는 바다그림 바라보고~
(12:05) 작은 포구가 있는 '당머리 참장어[하모] 거리'를 따라
'선창가 횟집' 사이를 지나, 우측으로 '하얀집' 앞으로 휘어져서 진행이다.
'참장어'는 '갯장어'라고도 부르는데 일본말로 '하모'라고 부르던
습관 때문에 '하모'라고 해야 제대로 알아듣는 사람들도 여전한 모양이다.
'일본'이 전 세계 장어 소비량의 70~80%를 차지한다고 하니, 그 문화가
우리 삶에 남아 있는 모양이다.
하얀집 벽면에는 '장어의 종류' 설명판을 비롯하여,
'참장어 엑기스' 판매 선전판도 크게 붙어있다.
(12:08) '당머리 참장어거리 입구'에서 우회전하고,
잠시 진행하다 좌회전하여 '여수 영당지' 옆을 지나고~
여수 영당지 출입문이 잠겨 있어서 내부는 보지도 못하고,
바깥에서 사진만 찍고 간다.
여수 영당지(麗水影堂址)
여수시 남산동에 있는 최영(崔瑩) · 이순신(李舜臣) · 정운(鄭運) · 이대원(李大源) 등
4위를 모신 당집으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특별하게 격식을 갖춘 제는 올리지 않고
출어를 하였는데, 기원을 올리지 않았을 경우 풍랑을 만나거나 고기를 잡지 못하고
빈 배로 돌아오기 일쑤였다고 전한다.
그래서 바다로 나가기 전 여수 영당지에다 쌀 두 말씩을 바치고 무사 항해를 기원했는데,
현재 진남제 행사 때 이를 재현하고 있다.
여수 영당지는 원래 남산 산록에 있었던 것으로 보아 동제당이었을 것으로 보이나
왜구들의 노략질이나 풍랑과 흉어로 인해 적지않은 고통을 당한 바닷가 사람들이
현재의 위치로 옮겨 용신당이나 해신당으로 삼았던 것으로 보인다.
당의 신격(神格)은 수군 장군으로서 바다를 가까이하면서 살아가는 여수 사람들의
읍락비보 원리를 지닌 신앙으로 평가된다.
(12:10) 도로 구간 위험 표지판을 보면서, '어항단지로' 도로를 따라 진행하여,
우측으로 '봉산119 안전센터'를 지나고~
'여수 수산업협동조합 냉동·냉장창고를 지나서,
우측으로 '특산품 전시판매장'을 보면서 계속 직진이다.
(12:16) 건어· 선어 판매 상가 아치형 입구를 지나고~
(12:17) '여수수협 수산물직매장' 끝에서 좌회전하여 진행이다.
(12:23) '국동항' 우측의 수변공원으로 들어서고,
상어 머리와 잠수부 조형물을 지나는데, 잠수부 오른팔이 잘렸다.
이후 '국동항 수변공원 광장' 아치 조형물을 지나고~
(12:26) '국동항' 안내 패널을 지난다.
국동항(菊洞港)
여수시의 여수반도 남동쪽 해안가에 위치한 국동(菊洞)에 있는 어항이다.
국동은 구봉산(九鳳山, 386m) 남사면 아래 포(浦)로써 지형이 국화(菊花) 모양으로 생겼다 하여
'국포(菊浦)', ‘국포진(菊浦津)’이라 하였고, 또한, 어민들이 굿을 하던 개(해변)라는 뜻의 굿개를
한자화하여 국포(菊浦)라고 했다는 설도 전한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 구봉산 밑에 위치하므로 '봉산리'라고 하다가, 1964년 신월동(新月洞)과
국동으로 분동하였다.
국동항은 호남의 대표적인 어항으로 여천ㆍ순천ㆍ광양 등 인접한 도시와 서울 및 수도권까지의
수산물 집배 기능과 함께 연근해는 물론 동중국해로 출어하는 어선들의 모항 역할을 맡고 있다.
입지조건을 보면 가막만의 여러 섬들이 파도와 바람을 막아줌으로써 천혜의 어항 조건을 갖추고 있다.
또한 어항 주변에 수산물 가공공장과 선박 수리업체 등이 밀집해 있어 제빙ㆍ냉동ㆍ냉장ㆍ
선수품 보급 등 종합 어항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12:27) '국동항 수변공원'을 벗어나고~
그렇게 '국동항 수변공원'을 벗어나면,
이제까지 이어오던 '대교동'을 지나 '여수시 국동'으로 행정구역이 바뀐다.
국동(菊洞)
전라남도 여수시에 있는 법정동이자 행정동으로 서북쪽으로 구봉산과 접하고
동쪽은 봉산동, 서쪽은 월호동과 각각 접해 있다.
어항단지가 있는 국동(菊洞)은 굿개라고 부르던 지역을 한자로 고친 국포(菊浦)에서
유래한 동의 이름이다.
여수의 굿개의 경우도 지금은 국포(菊浦)가 변한 국동으로 기록하고 있지만
1789년 조선시대의 마을 이름이 기록된 『호구총수』에서는 한자로 ‘구ㅅ포[仇叱浦]’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는 지명의 이두 표기법으로 ‘굿포’로 읽힌다.
여기서 한자 질(叱)은 ‘ㅅ’이나 ‘ㅈ’받침 역할을 하는 이두 표기방법이다.
굿개를 소리 나는 대로 기록한 국포(菊浦)란 한자는 글자의 의미와는 상관없는 소리글이었지만
이를 해석하려는 시도로 많은 전설과 유래들이 만들어지게 되어, 국화 모양의 지형에서
유래하였다는 터무니없는 전설도 만들어지게 되었다.
일제강점기 이전부터 '국포(菊浦)'라 부르던 지역으로 1914년 구봉산 밑에 위치하므로
봉산리라고 하였다.
1953년 봉산리 일부를 국동으로 고쳤다.
1962년 동 명칭을 신국동(新菊洞)으로 개칭하였다가 1964년 신월동(新月洞)과 국동으로 분동하였다.
『여수군읍지』에 현내면의 관할 동으로 국포가 기록되어 있으며 국포진(菊浦津)도 수록되어 있다.
『조선지지자료』(여수)에는 포구이름으로 국포가 있으며 항두진(項頭津)이 국포리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1872년지방지도』에도 좌수영성 서쪽 해안가에 국포가 묘사되어 있다.
『조선지형도』에도 구봉산 남동쪽, 봉산리 서쪽 해안가에 국포리가 있다.
동 지명은 구봉산 아래의 포(浦)로서 지형이 국화 모양으로 생겼으므로 마을 명칭을
국포로 한 데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
또한, 어민들이 굿을 하던 개(해변)라는 뜻의 굿개를 한자화하여 국포(菊浦)라고 했다는 설도 전한다.
국동 지역은 조선시대 내례만호진이 설치되었다고 전해지며,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여수읍 국동이 되었으며, 1953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예로부터 전해오던 국개마을을 중심으로
여수시 국동이 되었다.
이후 인구의 자연증가로 300여 가구를 이루어 오던 중 자연적인 포(浦)의 매립과 인구의 급증으로
1962년 동(洞)의 명칭을 신국동(新菊洞)으로 개칭하였으며,
1964년에는 신월동(新月洞)과 국동(菊洞)으로 분리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수산물의 집산지인 어항단지를 중심으로 항만시설이 들어서 있어 여수를 선적으로 하는 어선들이
정박하는 국가 어항이 있다.
항구 주변은 수산물 가공공장과 선박 수리업체 등의 중소업체가 집중된 준공업지역이며,
구봉산을 배경으로 하는 배후지역에는 아파트와 주택지역이 있다.
산업 분야의 고급전문 인력양성의 요람인 전남대학교 여수캠퍼스[구 여수수산전문대학]가 관내에 있다.
(12:30) '대경도 대합실' 앞을 지난다.
'대경도'를 건너다 보고~
대경도(大鏡島)
여수시 월호동에 딸린 섬으로, 여수항에서 남쪽으로 약 0.5km 지점에 위치한다.
면적 2.32㎢, 해안선 길이 11.7km이고, 주변의 야도 · 가장도 · 소경도 · 송도 등
부속 도서와 함께 여수항의 서수도를 가로막는 천연 방파제 역할을 한다.
고려 시대의 어느 후궁이 귀양 와서 살게 되면서부터 ‘경도(京島)’라고 불렀다고 하며,
섬 전체가 고래처럼 생겼다고 하여 ‘경도(鯨島)’라 부르기도 한다.
일제 강점기에는 섬 주변 바다가 거울과 같이 맑다고 하여 ‘경호도(鏡湖島)’라고 불렸다.
현재는 경도를 이루는 섬 중에 큰 섬을 ‘대경도’라 하고, 작은 섬은 '소경도' 부르고 있다.
대경도는 갯장어로 유명하다.
여수에서는 ‘갯장어’를 ‘하모’ 또는 ‘참장어’로 부른다.
대경도 입구에는 갯장어 샤부샤부 전문 식당 여러 곳이 영업 중이다.
갯장어는 맛이 좋아 예전에는 전량 일본으로 수출하였으나
지금은 거의 내수로 소비된다고 한다.
이후 길게 이어지는 '국동항 선착장'을 따라 진행하다,
(12:36) '(사)여수 수산인협회' 건물을 지나고~
(12:37) 남파랑길 이정표가 서 있는 곳에서,
우회전하여 진행하고~
(12:40) 여러 선박회사와 '자연의 집' 식당이 있는 건물 앞에서 좌회전하고,
1분후 만나는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들어서서 다시 우회전하여 '국동항 선착장'을 따라 진행이다.
(12:44) '여수낚시레저 스포츠센터' 건물 앞을 지나,
'국동항'에 정박 중인 수많은 선박들을 바라보면서 진행하고~
(12:47) '여수해양경찰서 국동출장소' 앞을 지난다.
그렇게 '여수해양경찰서 국동출장소'를 지나면,
이제까지 이어오던 '국동'을 지나 '여수시 월호동'으로 행정구역이 바뀐다.
여수시 월호동(月湖洞)
전라남도 여수시 신월동·경호동을 관할하는 행정동으로 동쪽은 국동,
서쪽으로는 웅천동, 남쪽은 가막만과 접한 바다, 북쪽에는 구봉산[388m]이 있고,
이 산줄기가 서쪽으로 이어져 있어 높은 산지를 형성하고 있으며,
구봉산에서 흐르는 물 줄기가 가막만으로 흘러들고 있다.
구봉산 남동 지역과 가막만을 건너 대경도, 소경도, 가장도, 야도 등
남해안의 3개 유인도와 13개 무인도 지역까지 포함한다.
또한, 남쪽은 확트인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법정동으로 신월동(新月洞)과 경호동(鏡湖洞)이 있다.
신월동은 본래 여수면 지역이며 1914년 신월리가 되었다.
경호동은 1896년 돌산군 경호면이 되었다가 두남면 경호리가 된다.
1914년 여수군 경호리로 개칭되었으며, 1973년 동이 되었다.
1998년 시군통합 때 신월동과 경호동의 합성 지명인 월호동으로 개칭하였다.
『돌산군읍지』에는 경호면에 대경도, 소경도 등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구한국행정구역일람』(돌산)에는 두남면에 경호리가 수록되어 있다.
『신구대조』(여수)에 여수면에 신월리, 화정면에 월호리가 각각 기록되어 있다.
『1872년지방지도』(순천)에서 좌수영 남쪽의 섬으로 대경도(大鏡島)와
소경도(小鏡島)가 묘사되어 있어 이 지역 일대로 보인다.
『조선지형도』에서 구봉산 남서쪽의 신월리와 대경도를 포함한 경호리 일대가 묘사되어 있다.
30.15㎞의 해안을 끼고 있는 신월동과 해안에 이루어진 경호동과의 통합으로
대다수 주민들이 어업에 종사하고 있다.
교통은 시도 5호선이 지나는 구봉로와 통일로가 해안을 따라 국동에서 시청까지 이어져 있으며,
주요기관으로 전남개발공사 경도개발사업단, 하수종말처리장, 한화사업장이 있다.
(12:48) '소경도 대합실' 앞을 지나 '선착장'을 지나고~
'소경도 선착장' 포구에도 다양한 선박들이 정박 중이고,
앞쪽에 보이는 섬은 '야도'다.
이후 인근에 위치한 'CU24시 편의점'에 들려 간편도시락 구입하고,
점심을 해결하면서 17분 휴식후 다시 출발이다.
(13:07) 다시 '국동항' 해안 어항단지 길을 따라 길게 진행하고~
(13:15) '넙너리 선착장'을 지난다.
넙너리는 전라남도 여수시 신월동에 전해오는 전래 지명으로,
넘너리, 넙내리, 넘노로도 불린다.
어원은 '넓다는 뜻'의 「너븐」과 '파도가 닿는 해변'이란 뜻의 해안 지명
「너리」가 결합된 말인 「너븐너리」가 줄어 「넙너리」가 되었다.
본래의 넙너리는 한화 여수공장이 들어선 통일로의 남서쪽 일대이지만
지금은 신월동 '넘너리 안길' 일대를 넙너리마을로 부르고 있다.
넙너리는 정부 수립 후인 1948년 국방경비대 14연대가 창설되어 군부대로 이용되다,
1948년 10월 19일 제주 4·3진압을 반대하는 좌익 병사들의 반란을 시작으로 한
비극적인 여순 사건의 발발지가 되었다.
그 뒤 결핵요양소를 거쳐 한화 여수공장이 들어서 생산 시설로 이용되고 있다.
(13:17) 여수해양경찰서 신월출장소 앞을 지나,
자전거 길 가막만 코스를 따라 '신월동' 해안도로를 길게 진행이다.
(13:24) '히든베이 호텔'을 바라보며 진행하고~
해안도로 포토존을 지난다.
(13:26) '신원어촌계' 경고판을 지나는데,
바로 히든베이 호텔 밑을 지나고 있다.
멀리로 '소호동'과 '웅천동'의 아파트단지를 바라보고~
(13:29) 해안도로 'Y자' 갈림길에서 우측 오르막길로 진행하고~
(13:32) '히든베이 호텔' 진입로인 '신월로' 진입도로와 만나고,
좌회전하여 도로를 따라 가는데 이 계절에 어울리지 않는 '겹벚꽃'이 활짝 피었다.
(13:35) '신월로' 본 도로와 만나고,
좌회전하여 길게 진행이다.
좌측 아래로 '동성 자동차 운전학원' 주행코스 뒷편으로
'가막만' 바닷가 바라보고~
(13:39) 신월동 '신근마을 버스정류장'을 지나고~
(13:42) '월호동 4통 게시판' 앞을 지나고,
연달아서 '서남교회앞 버스정류장'을 지난다.
(13:45) 보행로와 자전거도로가 구분되어 이어지는데,
이 도로는 '신월동 해안길'로 '여수시 하수종말처리장'까지 약 1.2km의 직선도로다.
'가막만' 바닷가 바라보고~
(13:50) 좌측 아래 해변에 슬라브 집 한 채가 덩그러니 놓여있는데,
주변을 살펴보니 텃밭을 비롯 운동시설과 쉼터도 보인다.
벽면에 붙은 선전판으로 유추해 보면, 2019년 7월 25일 EBS 한국기행에서
이곳 '청각 냉채'를 여름철 별미로 소개하였는가 보다.
(13:51) '14연대 주둔지' 안내 패널을 지나고~
신월로가 직선으로 쭉 뻗어있는 이곳은 사실 일본군이 만든 해상 비행장이 있던 곳이다.
지금은 흔적이 거의 남지 않았지만 활주로 흔적과 비행장 시설들이 남아 있다고 한다.
14연대 주둔지라는 안내가 있었는데 바로 일제가 패망한 다음 신월 비행장에 주둔한 국군부대이다.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아픈 역사 중의 하나인 여순 시건의 시발점이 된 부대이기도 하다.
(13:59) '도심권역 관광안내도'가 부착된 이정표를 지나고~
(14:02) '신월동공용차고지건너 버스정류장'을 지난다.
(14:04) '트라이애슬론[철인 3종]' 경기장 안내판을 지나고~
(14:06) '여수시 자전거도로 종합안내판'과
'하수종말처리장 버스정류장'을 연달아 지난다.
(14:08) '여수 하수종말처리장' 정문 앞을 지나고~
이후 '신월로' 도로가 우측으로 크게 휘어지는 지점을 지나면,
이제까지 이어오던 '월호동'을 지나 '여수시 웅천동'으로 행정구역이 바뀐다.
여수시 웅천동(熊川洞)
전라남도 여수시에 있는 법정동으로 북쪽으로 망마산과 대인산, 동쪽으로 구봉산,
남쪽으로 성주산이 둘러싸고 있다.
가운데 분지에 농지가 형성되어 있으며, 문수동 지역으로부터 고음천이 흘러들고 있다.
장도(長島)와 무인도인 두력도(斗力島)가 있으며, 모전·솔고개[松峴]·웅남· 웅서·중촌(中村)·
남촌(南村) 등의 자연마을과 중산(中山)·대산(大山:110m) 등의 야산, 고개인 멍덕매재,
골짜기인 무룡골 등이 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충무공 이순신이 어머니를 모셨다는 집이 웅천동 송현마을에 있으며,
당시에 공을 세운 다섯 충신을 모신 오충사가 있다.
신시가지로 지정되어 택지지구 조성을 진행하였으며 2022년 기준, 여수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살고 있는 동이다.
‘곰칭이’ 또는 ‘곰쳉이’라고 하였으며, 고음천(古音川)이라는 한자로 표기하기도 했다.
‘웅천(熊川)’은 ‘곰쳉이’의 한자 표기로, ‘곰’은 웅(雄)자로, ‘쳉이’는 소리 나는 대로
천(川)으로 표기한 명칭이다.
1897년 여수군 쌍봉면에 속하였다가
1949년 여수시 승격으로 여천군 쌍봉면 웅천리가 되었다.
1976년 여천지구출장소 쌍봉면 웅천리가 되었고,
1986년 여천시 승격으로 여천시 웅천동으로 분리되었다.
1998년 여천시·여천군·여수시가 여수시로 통합됨에 따라 신기동, 시전동과 함께
여수시 시전동으로 통합되었다.
주요 시설로 1946년에 준공된 웅천제1수지와 1946년에 준공된 웅천제2저수지가 있으며,
어항인 웅남항과 송현항이 있다.
유적으로 충정공 신도비와 월천공 신도비, 오충사(五忠祠), 정계생(丁戒生) 신도비,
정지엽(丁之燁) 효자문, 청룡재, 고인돌(웅남마을) 등이 있으며,
보호수로 수령 290년, 높이 25m, 둘레 5.2m의 팽나무가 있다.
오충사는 원래 선원리 가곡마을에 1847년(헌종 13)에 건립되어 정철(丁哲)·정인(丁麟)·
정춘(丁春)·정대수(丁大水) 등을 배향한 사당인데, 1868년(고종 5)에 헐린 것을
1946년에 재건립한 것이다.
청룡재는 1860년대에 건립된 서당이며, 충정공 신도비는 임진왜란 때 큰 공을 세운
정대수(丁大水)를 기리기 위해 세운 비이다.
(14:14) 자전거길 '가막만' 코스가 좌회전하여 '웅천어항' 방향으로 들어서는
'ㅓ자' 갈림길에서, 남파랑길은 좌측이 아니라 직진해서 진행하고~
(14:16) '웅천포레나아파트 버스정류장'을 지나고,
만나는 사거리갈림길에서 좌회전하여 '웅천로' 도로를 따라 길게 진행이다.
'웅천남7로'가 갈리는 도로사거리에서 횡단보도를 건너 스타벅스 건물을 바라보며 직진하는데,
갑자기 카메라(곽차)가 맛이가서 작동되질 않는다.
응급처치를 해봐도 말을 듣지않고~
아!!!! 나하고 13년을 같이 전국으로 돌아다닌 소중한 녀석인데 ㅠㅠㅠ~
카메라를 배낭(이사)에 갈무리하고, 잠시 선체로 물 한잔하며 호흡을 다스리고 다시 출발이다.
(이후로는 핸드폰으로 사진촬영하며 진행한다.)
(14:32) '웅천남5로'가 시작되는 도로사거리에서 좌회전하여,
'웅천 해변공원'으로 진행하고~
'포레나 디 아일랜드 아파트' 우측의 데크다리를 건너고,
좌측의 수로를 보면서 직진이다.
(14:35) 또 다른 도로를 만나고 횡단보도를 건너,
좌측의 수로를 보면서 직진하여 진행하고~
(14:37) 또 다른 도로 앞에서 남파랑길 빨간 화살표 시그널은
우측으로 길 안내를 하고 있는데~
우측으로 20m 정도 진행후 횡단보도를 건너 다시 맞은편으로 와야하므로,
차량통행이 뜸한 틈을 봐서 무단횡단하여 도로를 건너고~
좌측으로 수로를 끼고, 우측의 '웅천골든클래스 더마리나오피스텔'
공사현장 가림막 사이로 이어지는 둑길(?)을 따라 진행이다.
(14:41) '이순신마리나'를 좌측에 두고
우측으로 상가지역을 지나고~
(14:45) '이순신마리나' 방파제 끝에 있는 '지오클럽' 카페 옆을 지나면
'웅천친수공원'이 시작된다.
(14:47) 좌측 '물품보관함' 사이길로 진행하고~
(14:48) 특이한 형태의 '해수욕장'이 시작되는데,
인공 해수욕장인 '웅천 친수공원 해수욕장'이다.
웅천친수공원(熊川親水公園)
청정해역인 가막만을 활용한 여가 쉼터 조성과 친수공간을 활용한 토지이용의
극대화 및 해변 관광 인프라 구축을 위해서 신설하였다.
2007년 웅천 택지지구 매립 호안에 해변공원 설치를 계획하여, 인공 해수욕장
건설을 위해 2차례에 걸쳐 모래 포설 작업을 실시하였고, 송림 · 산책로 · 야영장 ·
화장실 · 샤워실 · 음수대 등 부대시설을 설치하여, 2010년 3월에 완공하였다.
인공 해수욕장의 모래사장은 60~100m의 폭으로 360m 길이이며,
8,359㎡의 목재데크를 설치하였다.
또한 2012년부터 카약 무료 체험행사를 운영해오고 있으며, 여름철 피서객과
시민들로부터 높은 인기를 얻고 있다.
친수공원에서 계단으로 내려오면 데크바닥이 이어지고,
또 모래해변이 있으니 전국 어디에서도 만날 수 없는 독특한 공원 해수욕장이다.
(14:55) 그렇게 '웅천 인공해수욕장'을 지나,
앞쪽의 섬 '장도'와 육지로 이어지는 다리입구로 내려서고~
예술의 섬 장도
GS칼텍스재단은 1단계 사업으로 2012년 5월 망마산 지역에 공연 및 전시를 위한
복합예술공간 '예울마루'를 개관하였고, 2단계 사업으로 2019년 5월 가꾸어가는
'예술의 섬 장도'를 조성하였다.
장도(長島)는 긴섬 또는 진섬으로 불리는데, 하루에 두 번 밀물 때 다리가 물속에 잠기는
'노둣길 진섬다리'로 연결되어, 물길이 열릴 때만 입출입이 허용되는 섬이다.
장도 섬으로 들어서면 예술가들이 영감을 받아 창의적인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창작 스튜디오가 있고, 섬 중앙부에는 장도 전시관이 있어 예술가들이 작품 세계를
펼칠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예술과 자연이 어우러진 아트카페도
마련되어 있고, 장도 내 둘레길과 휠체어/ 유모차 길을 따라 걸으며 자연을 통한
힐링을 경험할 수 있다고 자랑이다.
'장도'는 넉넉잡고 한 시간이면 다녀올 수 있는데,
오늘 남파랑길 3코스를 동시에 걷는 중이라 후일을 기약하고 남파랑길에 매진한다.
GS칼텍스 예울마루 개관1주년 기념으로 설치된,
'신치현 작가'의 '걸어가는 사람' 작품 바라보고~
그렇게 '웅천 친수공원'을 벗어나면, 이제까지 이어오던 '웅천동'을 지나
'여수시 시전동'으로 행정구역이 바뀐다.
여수시 시전동(枾田洞)
전라남도 여수시에 있는 법정동이자 행정동으로 관할구역은 법정동인 시전동과
신기동, 그리고 웅천동 일원이다.
구 여천시 지역으로 동쪽은 미평동, 서쪽은 학동과 경계하며 동쪽의 고락산과
남쪽의 망마산 북쪽의 비봉산 사이의 평지에 있는 지역이다.
시전동(枾田洞)은 시목(枾木)과 기전(基前), 선소(船所)마을을 합쳐 만들어진 동이다.
시목마을은 마을에 감나무가 많아서 감나무 골이라고 부르던 이름을 감 시(柿)와
나무 목(木)으로 훈차(訓借)하여 지은 이름으로 고려시대부터 소금을 만들던
조해소가 있던 곳으로 알려졌다.
기전마을은 터 앞이라고 부르던 마을 이름을 한자로 고쳐놓은 이름이며,
다른 이름으로 들몰이라 불렸다.
마을 동쪽 고락산(鼓樂山) 아래의 골짜기를 둥둥 골이라 하였는데, 골짜기에 들어서면
둥둥둥 하는 땅 울림이 있어서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고락산의 이름도 살펴보면 북을 치고 논다는 뜻이니 둥둥 골이란 이름을 의역한
땅 이름이란 것을 알 수 있다.
선소(船所)마을은 이름에 나타나듯이 배를 만든 마을이란 뜻으로 임진왜란 당시 순천부로
거북선이 만들어진 곳으로 알려졌다.
삼국시대에는 백제 원촌현, 통일신라시대에는 승평군 해읍현에 속하였다.
조선시대 1396년(태조 5)에는 순천부 여수현에 속했으며,
1896년(고종 33)에는 순천군 여수면에 속하였다.
1897년(고종 34) 여수군 쌍봉면에 속하였다가, 1949년 8월 13일 여수시 승격으로
전라남도 여천군 쌍봉면에 속하였다.
1986년 1월 1일 전라남도 여천군의 여천시 승격으로 여천시 신기동으로 분리되었다가,
1998년 4월 1일 여수시·여천시·여천군 통합에 따라 전라남도 여수시 시전동이 되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얼이 살아 숨 쉬는 지역으로 여수국가산업단지 조성에 따른
계획도시로 건설된 신시가지가 자리하고 있다.
관공서, 학교 등 생활편의시설이 잘 갖추어진 지역으로 1998년 여수시·여천시·여천군
통합과 웅천택지개발 등으로 여수 제1의 중심지가 된 지역이다.
주민 60% 이상이 40세 이하로 젊고 활동적이며, 직업유형도 다양하다.
(14:57) '예울마루로' 도로로 올라서서, 좌측으로 30m정도 진행하다
횡단보도를 통해 우측 '예울마루로' 도로를 건너고~
(15:00) 남파랑길 이정표를 지나면, 우측 위의 '망마산' 자락에
공연 및 전시를 위한 복합예술공간 '예울마루'가 자리하고 있다.
(15:02) '예울마루 분수광장'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진행하는데,
급경사의 오르막길이라 두 다리가 천근만근~ ㅎ
'선소대교' 바라보고~
선소대교(船所大橋)
전라남도 여수시 시전동과 소호동을 연결하는 사장교이다.
이순신 장군의 장검과 순항하는 요트의 형상을 모티프로 하여 설계되었다.
총 길이 1,154m의 왕복 4차선 도로이며, 콘크리트 빔교인 PSC거도교는 330m,
비대칭 곡선 주탑 사장교는 220m, 진입 도로는 604m에 이른다.
또 다리 양측 면으로 자전거도로와 인도가 있어 여수 바다를 조망하며 산책할 수 있다.
2022년 6월 20일 임시 개통 후 교통량을 모니터링한 결과 일평균 1만 5000여 대의
차량이 선소대교로 우회 통행하여 출퇴근 시간대 웅천 생태터널 주변 상습 정체가
해소되고 도심권 교통 흐름이 크게 개선되었다.
여수시는 선소대교가 여수 지역 관광 랜드마크로 자리 잡기를 기대하고 있다.
(15:05) 이후 '망마산' 산허리를 오르는 임도를 따라 길게 진행하고~
'선소대교' 바라보고~
'쌍봉동,시전동'일대 바라보고~
(15:12) '선소유적 안내문'을 지나면 오르막길은 끝이나고,
드디어 내리막길이 시작된다. ㅎ~
(15:15) '선소유적' 입구에 도착하니,
'여수 선소유적' 설명 패널이 세워져 있다.
여수선소유적(麗水船所遺蹟)
1995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지정면적 18,541㎡. 여천 선소는 여천 앞바다에 접한 선소마을에 위치하며 임진왜란 이전에
설치되었다가 임진왜란 당시에는 전라좌수영 관하 순천도호부의 수군 기지로 이용되었다.
조선 헌종 13년(1847년)에 편찬된『호좌수영지(湖左水營誌)』에 그 위치가 분명하게 나타나 있고
18세기 초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호남읍지』의 지도에 표시되어 있지만 그 흔적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가 몇차례의 조사를 통해 그 전모가 하나하나 밝혀져 나가고 있다.
1980년해군사관학교팀에 의해 1차 조사가 이루어진 이후,
1985년명지대학교 한국건축문화연구소팀에 의해 2차 조사가 이루어졌고,
1994년 순천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3차 조사가 이루어졌다.
1980년에 이루어진 1차 발굴조사를 통해서 선소유적이 순천도호부 산하의 선소이며
임진왜란 당시 전라좌수영 본영 선소, 방답진 선소와 함께 거북선이 건조되었던
3개 선소 가운데 하나인 것으로 파악되었다.
아울러 그 동안 구전되어 오던 세검정과 군기고의 규모를 확인하였으며 이에 따라 1985년에는
세검정과 군기고가 복원되었다.
1994년에 이루어진 발굴조사에서는 풀뭇간으로 추정되는 지역에서 노벽 하부만 남은
단야로 2기가 확인됨으로써 조선시대 철기 제작기술을 알 수 있는 새로운 자료가 되었다.
(15:18) 좌측으로 '가막만' 최북단 해안을 바라보면서 진행하고~
(15:20) '선소유적' 주차장 입구로 나가서, '선소로' 도로를 만나 좌회전하는데,
남파랑길 이정표에는 종점까지 2.7km로 표시하고 있다.
그렇게 '선소로'로 들어서면, 이제까지 이어오던 '시전동'을 지나
'여수시 쌍봉동'으로 행정구역이 바뀐다.
여수시 쌍봉동(雙鳳洞)
전라남도 여수시 학동·학용동·안산동·소호동을 관할하는 행정동으로
동쪽은 시전동과 접하고 서쪽은 화양면과 소라면에 접하고 있다.
삼국시대에는 감평군[순천] 원촌현과 통일신라시대 승평군 해읍현에 속했으나,
조선시대 1396년(태조 5)에는 순천부 여수현에 속하였다.
1896년(고종 33)에는 순천군 여수면에 속하였고,
1902년 여수면이 쌍봉면으로 개칭되면서 두 지역의 이름 있는 산인
전봉산(戰鳳山)과 비봉산(飛鳳山)의 두 개의 봉(鳳)자를 따 쌍봉면이라 이름 붙였다.
1908년에는 쌍봉면을 현내면과 쌍봉면으로 분할하였다.
1914년 3월 1일 「조선총독부령」제111호에 의하여 행정구역이 개편되면서
쌍봉면 면사무소는 학동으로 옮기고, 11개 동·리로 조정되었다.
1949년 8월 13일 여수시 승격으로 여천군 쌍봉면이 되었다.
1976년 9월 1일 전라남도 여천지구출장소 쌍봉면으로 조정되었으며,
1986년 1월 1일 여천시 승격으로 학동·학용동·안산동·소호동을 담당하는 행정동으로 개편되었다.
1998년 4월 1일 여수시·여천시·여천군 통합으로 전라남도 여수시 쌍봉동이 되었다.
『구한국행정구역일람』(여수), 『조선지지자료』 등에 쌍봉면이 수록되어 있다.
『조선지형도』에서도 무선산과 안심산 남동쪽에 쌍봉면 일대가 묘사되어 있다.
여수시청이 소재한 여수시의 중심지로서 거북선공원과 흥국체육관, 시립도서관,
종합복지관 등 공공기관, 단체 등 각종 시설이 집중되어 있으며 공단사택, 아파트단지,
여수국가산업단지 이주택지, 상가지역 등이 형성되어 주민 욕구가 다양하다.
소호동에 4㎞의 해안선과 요트장이 있어 휴식공간으로 이용도가 높으며
대규모 아파트단지와 레지던스 조성 등으로 인구가 유지되고 있는 곳 중 한 곳이다.
(15:22) '나의 살던 고향 船所' 표지석과 함께
'선소부락' 표지석을 지나고~
'선소마을' 관련 기념비를 보니 마을 사람들의 마을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이 느껴진다.
(15:23) 'JC 기념탑'을 지난다.
(15:25) 'JC 선소체육공원' 표지석을 지나,
공원 끝부분에 있는 '마에스트로 강'이란 '낚시' 조각 작품을 바라보고~
그렇게 진행하면 도로명이 '동동로'로 바뀌고,
우측에 있는 '선소대교' 주탑이 충무공의 긴 칼 형상으로 세워져 있다.
'여수 선소유적'이 위치하던 이곳의 포구는 예로부터 '장생포'라고 하였다.
장생포는 고려 공민왕 초 왜구가 장생포로 침입해 왔을 때 유탁이라는 장수가
위엄을 갖춘 모습으로 적을 물리쳤다.
이것 때문에 병사와 주민들이 그의 공덕을 기리며 부른 노래가
‘장생포곡’이라고 『고려사』에 실려 있다.
그 장생포곡이 바로 고려 악학궤범에 실린 ‘동동’이라는 노래로,
고려 가요 ‘동동’의 탄생지가 이곳이라는 설이 있다.
(15:32) '장성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휘어지고,
고혜월 조각가'의 '봄의 왈츠'라는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이 작품은 자전거를 타고 해안을 달리는 친구와 리본을 돌리며 천진난만하게
노는 아이를 비롯하여 스케이트보드와 서핑 보드를 타는 이이의 모습을 표현한 작품으로
봄날의 새싹처럼 경쾌하고 싱그러운 리듬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란 설명이 붙어있다.
연이어 '선소~소호 명품거리' 조성내역 안내판을 지나고~
(15:36) '안산동 장성마을' 건너편 포구 방파제와
'장성마을건너 버스정류장'을 지난다.
안산동(安山洞)
원래 여천군 덕안면(德安面)에 속하였던 지역이었다.
1998년 여천군·여천시·여수시가 여수시로 통합됨에 따라 여수시 안산동이 되었다.
이 동은 법정동으로, 행정동인 쌍봉동(雙鳳洞) 관할하에 있다.
지명은 안심산에서 유래되었는데, 장성 · 지망이 · 짚은골(일명 深谷) 등의 자연마을과
골짜기인 수침골, 들판인 국개들 등이 있다.
장성마을은 고려 말에 유탁(柳濯)이 왜구를 물리친 곳이다. .
(15:38) 우측 도로 건너편으로 '동동공원'을 바라보면서 지나가는데,
'아이나래 놀이터'란 글자 안내가 세워져 있다.
아이들이 언덕 위에서 바다를 보며 '집라인'도 탈 수 있고
'거북선' 놀이기구를 비롯한 여러 기구를 통해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선소대교'와 '소호방파제' 바라보고~
(15:40) '조각가 한리리'의 '바람의 소리' 작품을 지난다.
바람의 소리 / 수평선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잔잔하게 일렁이는
파도의 모양을 나선형으로 표현한 작품입니다.
잔잔한 파소 소리와 함께 고기들의 이야기, 해초들이 파도에 춤추는 소리가
스프링관을 통해 우리의 귓전에 들려옵니다. 2009. 7
(15:42) 좌측 아래로 '항호마을' 표지석을 지나,
연이어 '항도마을입구 버스정류장'을 지나고~
이 즈음에서 '소호동'으로 동명이 바뀐다.
소호동(蘇湖洞)
원래 여천군 덕안면(德安面)에 속하였던 지역이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소제리(蘇堤里)와 항호리(項湖里)가 통합되어
여천군 소호리가 되었고, 1998년 여수시 소호동이 되었다.
이 동은 법정동으로, 행정동인 쌍봉동(雙鳳洞) 관할하에 있다.
소지개 · 목섬 · 소제 · 항호(項湖) · 송소(松所) 등의 자연마을과 고개인 소제고개,
무인도인 가덕도(加德島)가 있다.
어항으로 소호항·소제항·송소항이 있는데, 각각 항호마을·소제마을·송소마을에 있다.
(15:49) '여수 소호동우체국'을 지나,
이어지는 '소호로' 도로를 따라 길게 진행이다.
(15:54) '소호로' 좌측 해상에 설치된 해상보도교인 '소호 동동다리'로 들어서는데,
남파랑길 이정표가 이번코스 종점이 1km남았음을 알려준다.
소호동동다리
고려 후기 인 근 지역 장생포[전라남도 여수시 안산동 장성마을 앞 포구]에 왜구가 침입하자
장군 유탁(柳濯)이 왜구를 물리치려고 출전하니 왜구들이 놀라서 퇴각하였다.
이때 군사들이 기뻐하며 부른 노래가 「장생포곡」인데, 이 「장생포곡」이 『고려사』에 실려 있다.
또한 장생포곡이 바로 고려 악학궤범에 실린 ‘동동’이라는 노래로, 고려 가요 ‘동동’의 탄생지가
이곳이라는 설이 있어 이 다리의 이름을 소호동동다리로 확정하였다.
광장 2개소와 해변 데크 산책로로 이루어져 있고, 데크 산책로 길이는 742m, 폭은 3.5m이다.
어린이 놀이터 1개소와 배 모형 데크 조형물 1개소, 퍼걸러 2개소, 벤치 22개[광장 12, 데크 10],
조경 1식이 있다. 광장 내부에 2018년 하트 모양 포토 존을 새로 설치하였다.
'가막만' 바닷가에 떠 있는 '가덕도' 바라보고~
야간에 조명이 들어오면 더 멋진 경관이 펼쳐진다는 동동다리,
다음에 올때는 야간에 함 와야지... ㅎ~
(15:59) '동동다리' 중앙광장으로 들어서면,
'YEOSU LOVE' 글자 조형물이 반기고~
'소호 동동다리' 유래가 적혀있는 안내판 읽어보고~
(16:01) 다리 아래로 바다가 훤히 보이는
강화유리를 지나서~
(16:04) 또 다른 광장으로 들어서면, 주간에는 휑한 광장이지만,
야간에는 빛으로 화려하게 변한다고 한다.
사랑 마크 조형물 포토존과
'Yeosu Romantic Bus' 글자 조형물 벤치 바라보고~
(16:06) '소호 동동다리' 출구를 통해 '소호 요트장 주차장'으로 나서면,
입구 우측에 '海' 표지석이 세워져 있고~
해 표지석 뒷면에는 시가 새겨져 있는데,
판독 불가다.
곧바로 우회전하여 '소호로' 도로로 나가 좌회전하고,
'소호로' 도로를 따라 잠시 진행하면 이번 55코스 종점인 '소호요트장 버스 정류장'이다.
(16:08) 남파랑길 여수 56코스 안내판 앞에서.
'두루누비&트랭글' 앱 끄고 남파랑길 55코스를 종료한다.
오늘 남파랑길 진행은 여기까지...
목표했던 남파랑길 여수 55코스도 무사히 도착했다.
남은 물.간식 떨이하고, 배낭 갈무리하며 의관 재정비하고~ ㅎ
이후 소호요트장 버스 정류장에서 (16:18) 도착한 87번 여수시내버스를 타고
(16:58) 여수종합터미널 건너편 버스정류장에 하차,
여수종합터미널內 편의점에서 도시락과 컵라면 구입하여 이른 저녁을 해결하고~
(18:00) 부산行(무정차) 시외버스를 타고 부산 서부(사상)시외버스터미널에 하차,
사상 지하철역으로 이동하고~
지하철2호선 타고 종점인 양산역에 하차,
양산역.버스정류장에서 16번 버스 환승하여 양산.내송집으로 귀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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