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일자: 2023.12.20
코스: 연등리.독대마을회관(시점)-화덕삼거리-화덕마을회관-송곳산.아랫자락 임도길 진행
-심포마을.방조제-심포마을.표지석-예동회관-여호제.저수지-우모도-계도.배수문-여호마을
-여호.해양출장소-여도진로/여호마을 표지석-방내마을회관-명주교-강산방조제선착장.갈림길
-점암면.오산교차로-신성삼거리-간천.버스정류장(종점)
인원: 나홀로 (이사. 곽차)
거리: GPS 24.98km (두루누비기준 24.7km)
시간: 널널.촬영&휴식포함/ 6시간38분
▶ 갈때 : 고흥64구간 마치고, 현지숙박으로 인해 65구간 들머리 대중교통편 확인못함
▶ 올때 : 간천.버스정류장에서 (13:43) 과역터미널행(과역~남열) 고흥군내버스타고,
(14:12) 과역버스터미널에 하차
(14:32) 과역버스터미널에서 벌교.순천경유 여수行 시외버스타고
(15:28) 순천종합버스터미널에 하차, 대합실에서 대기하다가
(15:50) 부산行 시외버스를 타고 광양, 동광양(중마), 사천휴게소 경유하여
부산 서부(사상)시외버스터미널에 하차,
인근 합천돼지국밥 식당에 들려 수육백반과 대선소주 1병으로 저녁 해결하고
사상 지하철역으로 이동,
지하철2호선 타고 종점인 양산역에 하차,
양산역에서 16번 버스타고 양산.내송집으로 귀가
남파랑길 고흥 65코스 궤적
12월20일
(05:00) 기상하고, 어젯밤 (21:50) 취침에 들어가 한번도 안깨고 7시간10분 푹 잤다.
이상하게 밖에서 자면 이렇게 잘자니 역시 체질이다~ ㅎ
이후 라면을 끊여 이른 아침 해결후 씻고 볼일(?)보고~
(05:50) 하룻밤 숙박했던 '평강의쉼터' 펜션을 나와 남파랑길 65코스 시점으로 도보이동이다.
연등리.독대마을회관 뒤편 남파랑길 고흥 65코스 안내판과
65코스 시작점 사각 패널이 있는곳이 남파랑길 고흥64코스 종점이자 65코스 시점이다.
(06:05) 두루누비&트랭글 앱 켜고,
남파랑길 고흥 65코스 시작이다.
'독대마을 옥림정' 정자 쉼터 옆
'독대마을과 우물 유래' 설명판 다시한번 더 읽어보고~
독대마을은 과역면의 가장 북동쪽에 위치한 마을로서 옛날 지명은 지형이
거미와 같이 생겼다 하여 거미 독(蝳) 자를 사용하여 독대(蝳垈)가 되었다가,
홀로 입향하여 터를 잡았다 하여 홀로 독(獨) 자를 써서 독대(獨垈)가 되었다.
임진왜란 때 흥양현감 배흥립(裵興立)이 충무공 휘하에서 많은 공을 세웠으므로
장군의 ‘충현비’가 이곳에 건립되었다가 2001년 과역면 소재지 현충탑 비석거리로 이설되었다.
'독대회관' 앞을 지나, 우측으로 '독대.버스정류장'을 바라보면서
'과역로' 도로를 따라 진행하고~
(06:10) '독대교'와 '배수문' 직전 갈림길에서,
'과역로' 도로를 벗어나 우측 '원연동길'로 방향이 바뀌는데~
남파랑길 이정표는 시점에서 0.3km, 우측 종점까지 24.4km를 가리키고 있다.
이곳에서 직진하는 '과역로' 도로를 따라 계속 진행하면 바로 '화덕삼거리'로 연결되는데,
남파랑길은 우측으로 우회하여 '역ㄷ자' 형태로 진행하도록 되어있다.
위험한 차도를 피한다는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우회로로 정해졌겠지만,
전체 거리가 긴 코스인 만큼 이런 구간은 단축하여도 되지 않을까하고 생각해 본다.
그렇게 우측 '원연동길'로 진행하여 농가 앞 세 갈레 갈림길에서,
'독대농장' 방향의 중앙 우측으로 휘어지는 길로 진행하고~
(06:16) 전봇대의 남파랑길 빨간 화살표 방향 표지기가 있는
'ㅓ자' 갈림길에서 좌회전하여, 직선 농로를 따라 길게 진행이다.
그렇게 직선 농로를 따라 진행하는데 어둠속이라 볼게 있어야지...
괜히 일찍 진행했나하는 후회감이 들기도 하다. ㅎ~
이후 직선 농로 중간 정도의 수로를 건너면,
'연등리 독대마을'에서 '호덕리 화덕마을'로 행정구역이 바꿔진다.
과역면 호덕리(虎德里)
전라남도 고흥군 과역면에 있는 리(里)이다.
바다쪽으로 튀어나온 반도에 위치하고 있는 해안 지역이다.
자연마을에는 호덕, 여동, 화덕이 있다.
호덕은 마을 옆에 호덕산이 있으므로 붙은 이름이고
여동은 꽃이 많아 화려한 마을이란 뜻으로 아름다울 려(麗) 자를 사용하여 여동이라 하였고
화덕은 마을 뒷산 모습이 화로와 같이 생겼다 하여 화덕이라 부르게 되었다.
(06:31) 그렇게 직선 농로를 따라 끝까지 진행하여,
또 다시 '과역로' 도로에 올라서서 좌회전하고~
(06:33) '화덕삼거리'에 위치한 '화덕 버스정류장'을 지나는데,
남파랑길 이정표 시점 방향 표시가 차도 방향으로 가리키고 있다.
거리 표시 1.5km는 우회해 온 거리를 표시하고 있는데,
바로 '과역로' 도로를 따라 진행한다면 거리가 약 6~700m는 줄어들 것이다.
그렇게 우회전하여 '화덕마을'로 진행하고~
(06:38) 도로 좌측 편에 '효열부 남양 홍씨비'와
'효열부 수원 백씨 기적비', '효부 김경숙여사 기적비'가 나란히 조성되어 있다.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이상하게도 내 눈에는 호남 지역에는
유독 효열부, 효부 기적비가 눈에 많이 띄는데,
혹시 가문의 체면을 위해서는 아닌지하고 생각해 본다. ㅎ~
이후 '화덕교회' 입구와 '화덕마을' 정자 쉼터 및
'화덕마을회관'을 우측으로 차례로 바라보면서 직진하여 진행하고~
화덕(火德)의 옛 마을명은 '터예'라 하였는데, 옛날 소태봉에서 풍수들이
동쪽으로 뻗어 있는 능선을 따라 대명지(大明地)가 있다고 하여 이곳에 마을이 형성되었고,
이 마을이 번창할 것이라 하여 '집터 대(垈)' 자와 '예도 예(禮)' 자를 써서
'대예(垈禮)'라고 불러오다가, 일제강점기 1914년 지방행정구역 통폐합 시
마을 뒷산의 형국(形局)이 화로(火爐) 형상이라 하여 화덕(火德)으로 고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후 남파랑길 빨간 화살표 방향표지기가 가르키는 방향을 따라
우측의 마을 안길로 진행하고~
그렇게 '화덕마을'을 벗어나 남파랑길 빨간 화살표 방향표지기가
가르키는 방향을 따라 직진 농로를 따라 진행이다.
(06:47) 직진 농로를 벗어나 남파랑길 빨간 화살표 방향표지기가
가르키는 방향을 따라 좌회전하는데~
갑자기 카메라 전원이 나가 작동이 되질 않는다.
아니!!! 이럴수가...
카메라 밧데리를 바꿔봐도 전원이 오지않고...
잘 찍지는 못해도 남파랑길 진행하면서 사진 찍는게 유일한 낙인데...
ㅠㅠㅠ~
찝찝한 마음을 가지고 진행이다.
(06:50) 또 다시 우회전하여 농로를 가로질러 '송곳산' 방향으로 진행하고,
이 구간은 지도를 보면 '남해'의 다도해를 바라보면서 걸을 수 있는 해변과 인접한 길처럼 보이는데,
실상은 우거진 나무가지로 인해 좌측의 바닷가는 전혀 조망이 안되는 곳이다.
그렇게 '송곳산' 아랫자락 골짜기로 이어지는 임도를 따라 진행하는데,
어둠은 서서히 물러가고 나름의 독특한 풍경을 선사하는데 누군가 임야를 나름 관리한 모양이다.
그러는 어느순간 카메라를 전원을 켜보니 불이 들어온다.
오오~ 이렇게 기쁠수가~ ㅎㅎㅎ
아까는 왜 전원이 안들어 왔는지 참 미스테리다. ㅎ~
(07:16) 좌측아래로 독립가옥(?)이 있는 해안으로 나가,
정면 '백일도'와의 사이 바닷물이 빠진 갯벌을 바라보고~
다시 우측 숲속으로 이어지는 오르막 임도를 따라 진행하고~
(07:22) 우측으로 파란물통이 있는 고개 정점에서 오르막길이 끝이나고,
잠시후 쓰레기 불법투기 금지 안내판이 세워진 곳을 지난다.
(07:24) 좌측 아래로 해변으로 내려가는 갈림길에서,
직진하는 임도를 따라 진행하고~
(07:26) 이 한적한 곳에 무슨 용도로 쓰이는지??? 알수없는
창고(?)로 보이는 대형건물을 지난다.
(07:28) 좌측 아래로 조망이 트이는데, '백일도'를 비롯한
'남해'의 다도해 섬 군락은 그렇게 큰 감흥이 일어나지 않는다.
아마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것이 아닌,
수평으로 바라보는 다도해의 풍경이 극히 제한적이라 그런가???
(07:29) 좌측 아래로 독립 농가가 있는 삼거리에서,
남파랑길 빨간 화살표 방향 표지기가 가르키는 우측 임도로 진행하고~
그렇게 '송곳산' 아랫자락 골짜기로 이어지는 임도를 따라,
좌우로 걸려있는 남파랑길 리본을 바라보면서 길게 진행이다.
그렇게 진행하면 이제까지 이어지던 '호덕리'에서
'과역면 신곡리'로 행정구역이 바꿔지는데 정확한 경계지점은 잘 모르겠다.
과역면 신곡리(新谷里)
전라남도 고흥군 과역면에 있는 리(里)이다.
바다쪽으로 튀어나온 반도에 위치하고 있는 해안 지역이다.
자연마을에는 구곡마을, 심포마을, 신기마을, 인학마을이 있다.
구곡은 마을 좌우에 있는 오병산의 줄기가 아홉 골짜기라 하여 붙은 이름이고,
심포는 과거에 바닷물이 마을 앞 150m까지 들어왔다 하여
깊을 심(深) 항구 포(浦)를 사용하여 심포란 이름이 되었다.
신기는 제방 축조 이후 새로 터를 잡은 마을이란 의미이고,
인학마을은 마을 뒷산이 학처럼 생겼고 과거 부자의 이름 중
인(仁) 자를 따서 지은 이름이다.
(07:59) '신곡리 심포마을' 앞 바다로 내려서는데,
지금은 썰물이라 물이 빠져 직진해 갈 수 있지만, 밀물일 때는 우측 둑길위로 지나야 할 듯하다.
그렇게 '송곳산' 아랫자락 임도길을 나오면 갯벌 해안 위로 긴 계곡이 있는 '범벅골'을 지난다.
다른 지역에도 '범벅골' 또는 '범박골'이라는 지명이 있는데,
범처럼 생긴 바위가 있는 골짜기의 의미라고 한다.
그런데 이곳의 지명에 대한 유래나 설명은 찾을 길이 없다.
(08:00) 그렇게 낮은 시멘트 길을 건넌후 삼거리에서,
우측 '딸기와 바우네 집' 표지판을 바라보고 좌회전하여 진행하고~
(08:03) '심포길'이라고 적힌 등불 하나가 덩그러니 길옆에 세워져 있다.
과연 불이 켜지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아마도 길 안쪽에 있는 '딸기와 바우네 집' 농장에서 세워둔 듯 하다.
(08:03) 우측으로 '심포마을'로 연결되는 삼거리 갈림길에서 좌회전하여,
현재 한참 공사중인 방파제 둑길을 따라 좌측으로 갯벌을 바라보며 진행하고~
어디까지 '섬'이고 어디까지가 '육지'인지
구별이 안되는 겹겹이 산으로 둘러싸인 바다다. ㅎ~
(08:06) 그렇게 방조제 끝까지 나가 우회전하여,
남파랑길 빨간 화살표 방향 표지기가 가르키는 '심포길' 농로를 따라 진행이다.
그렇게 정면으로 보이는 잘록한 고개를 향해 완만하게 오르는데,
조금이라도 오르막길이 나타나면 무거워지는 내 두다리... ㅠㅠㅠ
한걸음 한걸음 천천히 진행이다.
(08:17) 좌측에 돌탑으로 담을 쌓아놓은 건물이 있는,
도로 고갯마루를 넘어서고~
그렇게 잠시 내려서면 정면으로 고흥의 명산인
'팔영산'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08:22) '심포마을' 입구 표지석이 있는 갈림길에서 좌회전하는데,
도로명이 '쌍정자길'로 바꿔져 있고~
(08:24) 그렇게 '쌍정자길' 도로를 따라 약 70~80m 정도 진행하다,
나오는 갈림길에서 우측 농로로 들어서는데 65코스 종점까지 16.6km 남아있다.
(08:25) 'ㅓ자' 갈림길을 만나고, '수량 조절기'에 붙어있는 방향 표지기 따라 좌회전하여
좌측의 야산 자락 아래로 이어지는 농로를 따라 길게 진행하고~
(08:36) 사거리 갈림길에서 남파랑길 빨간 화살표 방향 표지기가
가르키는 방향 따라 좌회전하여 진행이다.
그렇게 진행하면 이 즈음에서 이제까지 이어오던 '과역면 신곡리'에서
'점암면 화계리'로 행정구역이 바뀌는데 정확한 경계지점은 잘 모르겠다.
고흥군 점암면(占岩面)
전라남도 고흥군 중서부에 있는 면으로 동쪽은 남해의 여자만(汝自灣, 순천만)에 면하고,
서쪽은 두원면(豆原面), 남서쪽은 포두면(浦豆面), 남동쪽은 영남면(影南面),
북서쪽은 일부가 득량만과 연결되어 있고, 북쪽은 과역면(過驛面)에 접한다.
고흥군에서 가장 면적이 넓은 면으로 산지가 대부분이다.
면 소재지인 천학리를 비롯하여 11개 법정리와 39 행정리를 관할하고 있다.
역사적으로는 면의 관할을 두고 몇차례 개편이 있었는데 조선시대 산내면과
산외면을 통합하여 1907년에 흥양군(현 고흥군) 점암면이 되었다.
지명은 바위가 산재하는 지리적 환경에서 유래하였다는 설이 있다.
『호구총수』의 동리를 살펴볼 때 조선 시대에도 점암면에 해당하는 지역이었다.
『여지도서』에 의하면 민호 790호, 남자 2,213명, 여자 2,299명이었다.
이들 중에서 여호리(呂湖里)는 여도(呂島)에서 유래하였다.
『호구총수』, 『구한국행정구역일람』에는 여도리(呂島里),
『조선지지자료』에는 여도포(呂島浦)가 기록되어 있다.
여호리는 1914년에 생겨났다.
이곳에는 수군만호가 거주하였던 여도진(呂島鎭)이 있었다.
『1872년지방지도』에 의하면 그 여도진성은 성곽을 둘렀는데 남쪽과 서쪽에 문루가 있다.
여도진성은 1491년(성종 22)에 축성되었으며, 진성의 둘레는 1,100자이다.
성안에는 네 개의 공공시설이 그려져 있는데 이름은 기재되어 있지 않다.
『청구도』에는 병사 1,200명, 곡물 2,100석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점암면의 금사리는 본래 조선시대 전라좌수영(全羅左水營)이 설치되어 있던 곳으로
이곳에 종 3품(從三品) 수군첨절제사(水軍僉節制使)가 주둔하였고,
사도진 첨사는 회령포(會寧浦: 장흥), 달량(達梁: 영암), 여도(呂島: 점암면 여호리), 마도(내발리),
돌산도(突山島: 여천)의 7개 수군 만호진을 휘하에 두었다.
여호리(呂湖里) 또한 전라좌수영 사도진에 속한 여도진(呂島鎭)이 설치되어
종 4품 수군만호(水軍萬戶)가 주둔하였다.
고흥반도의 최고봉인 팔영산의 북쪽 사면을 차지하는 면으로,
점암저수지의 수로 유역인 북서부와 사정천(沙亭川)·팔영천(八影川)·성기천(聖基川) 등의
시냇가에 약간의 평지가 펼쳐져 있으며, 면 전체에 관개를 위한 소규모 저수지가 많이
분포하는데 북서쪽의 점암저수지의 규모가 크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모시풀·고구마 등이다.
연안에서 숭어와 낙지가 잡히고, 굴 양식도 많이 한다.
교통로는 면을 일주하여 고흥∼과역 간 지방도로 이어지는 군도(郡道)가 있다.
사찰로는 능가사(楞伽寺)가 있으며,
문화재로는 능가사 사적비(전남유형문화재 70), 대룡리(大龍里)·성기리(聖基里)의 고인돌군,
신안리(新安里)·신안교의 고인돌, 김완장군 충현비각(金浣將軍忠賢碑閣),
능가사 범종(梵鐘:전남유형문화재 69)이 있는데 능가사 범종은 1698년 주조한 종으로
타종소리가 점암면 전체에 울려퍼진다고 한다.
점암면 화계리(花溪里)
전라남도 고흥군 점암면에 위치한 리(里)이다.
포구 앞에 자리한 마을로, 간척사업으로 인해 농토화된 지역이다.
자연마을로는 화전, 예동, 신전, 당치가 있다.
화전마을은 마을이 연꽃밭(섶밭)이라는 뜻에서 화전(花田)으로 칭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예동마을은 옛날 배가 닿는 곳에서 고개를 넘는 지점에 형성됐다 하여
마을 이름을 한때 "배월금"이라 불리어 오다가, 후에 예의를 숭상하는 마을이라는 뜻의
예동(禮洞)으로 개칭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당치마을은 마을 뒷산의 지형이 돼지형이며 마을의 터는 돼지 구유형으로 되어 있고
산허리 지점에 당(堂)이 있어 마을명을 당치(堂峙)라 불리어 왔다.
신전마을은 1952년에 신전저수지가 방조되면서부터 아랫동네가 살기 좋은 곳이라 하여
'새점'이 '신점'으로 다시 신전(新田)마을로 고친 후 오늘에 이르고 있다.
(08:39) 좌측으로 컨테이너 박스가 있는
'T자' 삼거리 갈림길에서 우회전하고~
(08:40) '예동마을' 입구 갈림길에서 좌회전하여,
정면 좌측으로 '예동마을'을 바라보며 진행이다.
(08:45) '예동마을회관' 앞에서 좌측 9시 방향으로,
방향을 바꿔 진행하고~
예동(禮洞)마을은 옛날 배가 닿는 곳에서 고개를 넘는 지점에 마을이 형성됐다 하여
'배월금'이라 불려 오다가 마을 앞에 대룡나무[대롱나무의 誤記인 듯]가 많아
대룡나무의 꽃을 비유하여 '약동', '예동'이라 하였다가, 1956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화계리에서 분리되면서 예의를 숭상하는 뜻으로 '예동(禮洞)'이라 고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후 남파랑길 빨간 화살표 방향 표지기가 가르키는 방향 따라
진행하여 '예동마을'을 빠져나간다.
좌측 멀리로 또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는 '팔영산' 모습이다.
(08:52) 'T자' 농로 갈림길에서 우회전하여 진행하고~
(08:56) '여도진로' 도로로 올라서서 좌회전하는데,
남파랑길 이정표의 시·종점 거리 표시가 오류다.
남파랑길 이정표에는 시점 15.7km, 종점까지 9km로 표시하고 있으나,
실제는 10.6km 진행해 왔으므로 남은 거리는 14km다.
그렇게 좌회전하여 '2차선' 아스팔트 도로인 '여도진로'
도로를 따라 길게 진행하고~
(09:06) '여호제(呂湖堤).저수지'를 좌측으로 바라보며 진행하고~
'여호제.저수지'를 중간지점에서 이제까지 이어지던 '화계리'에서
'점암면 여호리'로 행정구역이 바꿔진다.
점암면 여호리(呂湖里)
전라남도 고흥군 점암면에 있는 리(里)이다.
바다건너 과제방축조사업이 활발하여 북쪽의 계도, 우모도를 연결하는 제방과
남쪽의 명주도, 강산리를 연결하는 제방이 남북으로 뻗어 있다.
여호리는 마을의 지형이 반도(半島)에 위치하여 여(呂)자 형으로 생겼고,
풍수지리상 연화부수(蓮花浮水)형의 지형이라 하여 생긴 지명이다.
여호리(呂湖里)는 여도(呂島)에서 유래하였는데,
『호구총수』에는 여도리(呂島里)로, 『조선지지자료』에는 여도포(呂島浦)로 기록되어 있다.
이곳에는 수군만호가 거주하였던 여도진(呂島鎭)이 있었다.
자연마을로는 여호, 방내마을이 있다.
방내마을은 마을 앞에 있는 산이 바가지(박)와 같이 생겼다 하여 박내라고 부르던 것이,
그 박의 향기로 둘러싸인 마을이라는 뜻의 방내(防內)로 바뀌었다.
이 마을의 앞 산을 안산(案山)이라고 하는데,
안산에는 옛날에 신선이 놀던 산봉우리라는 신선봉이 있다.
(09:10) '여호제.저수지' 끝 지점 '우모도' 표지석과 남파랑길 이정표가 있는 갈림길에서
'여도진로' 도로를 벗어나 좌측 '여호제.저수지' 제방 아래쪽 농로를 따라 진행하고~
그렇게 진행하는데 이곳도 섬과 섬 사이에 방조제를 쌓고 갯벌을 논으로 만든 공간이다.
동쪽으로 농로를 걷는 길에서는 바다 건너 '원주도'를 바라보며 진행이다.
또 다른 각도에서 바라본 '팔영산' 땡겨보고~
(09:20) 농로 'ㅓ자' 갈림길에서 남파랑길 방향 표지
안내 따라 좌회전하고~
(09:24) 작은 농수로 다리를 건너 우회전하여,
비포장 수레길을 따라 진행이다.
그렇게 '우모도'로 들어가는 간척지는 아직 경지화가 완벽하게 안되었는지,
갈대밭과 웅덩이들이 드문드문 나타난다.
(09:26) 콘크리트 농로 'Y자' 삼거리에서 좌회전하여 진행하고~
(09:27) 작은 야산 앞 'T자' 삼거리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진행이다.
'우모도'와 이어지는 방조제 위에 올라서서 바닷가 바라보는데,
어디가 '섬'이고 어디가 '육지'인지 구별이 전혀 안되는 바다다. ㅎ~
이후 방조제 우측 아래 보행로를 따라 진행하고~
(09:33) 방조제 끝 지점에서 우회전하는데,
과거 방조제로 연결되기 전에는 앞쪽 '우모도(牛毛島)'는 육지와 떨어져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우모도' 앞에서 우회전하여 진행하는데,
우측으로는 넓은 습지가 펼쳐져 있고~
이곳을 농지로 만들지, 개발할지, 그냥 습지로 둘지 모를 일인데...
정면 멀리로 '팔영산'이 공룡 등뼈 형상으로 펼쳐져 보인다.
(09:37) 'T자' 삼거리 걸림길에서 좌회전하여,
'우모도' 우측으로 이어지는 시멘트포장길을 따라 진행하고~
(09:38) '우모도' 끝 지점에서 앞쪽 '계도(鷄島)'로 이어지는,
방조제 초입에 들어선다.
이후 '여호마을' 앞 방조제 길을 따라 진행하다
좌측 편으로 '원주도'를 바라보고~
우측 편으로 또 다른 각도의 '팔영산' 땡겨보고~
(09:43) '계도 배수문' 앞에 배낭을 내리고,
준비해온 단팥빵과 커피 한잔으로 간식하며 6분 쉬었다가 간다.
(09:49) 다시 출발하여 '계도'로 들어서서,
'역C자' 형태로 '계도' 산허리를 돌아서 진행하고~
(09:53) 그렇게 '계도'를 지나 다시 앞쪽의 '계목섬'으로
이어지는 방조제를 따라 길게 진행하고~
정면으로 '여도진성' 있었던 '여도'를 바라보고~
'여도진성'은 '조선 성종'때에 쌓은 성이라고 하는데 지금은 흔적만 남아 있다고 한다.
주위의 섬들로 둘러싸인 천연의 요새로 '조선시대 전라좌수군'이
'여자만' 일대를 지키는 핵심 역할을 했다고 한다.
(10:00) '계목섬' 배수문을 지나서 '계목섬'으로 들어서고,
이후 남파랑길 빨간 화살표 방향 표지기가 가르키는 방향 따라 진행이다.
(10:05) '여도진로' 도로로 다시 올라서서 좌회전하는데,
예전 1994년에 폐교한 '화계초등학교 여주분교' 터 임을 알리는 경고판이 세워져있다.
(10:08) 이후 '여호마을'로 들어서서,
남파랑길 빨간 화살표 방향 표지기가 가르키는 방향 따라 진행하는데~
남파랑길은 우측 마을 안길로 길 안내가 되고 있다.
그렇게 마을 안 길을 지나고~
(10:10) 이후 '여호항' 포구로 나서서, 좌측의 '여호항' 바라보고~
'여호항' 앞바다의 뜬 방파제 좌측에 황색 등대가,
우측에 적색 등대가 서 있고,
우측 방파제에 백색 등대가 세워져 있다.
(10:13) '여수 해양경찰서 여호출장소' 직전에서 남파랑길은
우측 '남산(102.0m)' 방향으로 올라간다.
지나온 '여호항' 뒤돌아보고~
(10:17) 두 갈래 갈림길에서 좌측 길로 진행하는데,
좌측 아래로 보면, '묵도'가 바다 위에 동그랗게 떠 있다.
바다 너머 건너편은 '여수' 땅인데,
저 길을 다 걸어서 '여자만' 바닷가를 돌아서 온 것이다.
장하다. 내 두다리... ㅎ~
이후 '남산' 산허리를 따라 진행하다,
좌측 아래에 있는 뜬 방파제 좌측에 황색 등대, 우측에 적색 등대 바라보고~
그렇게 '남산' 산허리를 돌아나가며 좌측 아래를 보니,
새로 생긴 듯한 도로가 보인다.
(10:27) 'ㅏ자' 삼거리 갈림길 임도에서
남파랑길 안내 따라 우회전하여 진행하고~
'여수 해양경찰서 여호출장소' 앞에서 우회전 대신 직진하여
해안길로 계속 진행한다면 앞에 보이는 곳에서 이곳으로 올라설 수도 있겠다.
이후 남파랑길은 해안으로 내려가지 않고 우측으로 '남산'을 두고
좌측으로 '응치산'을 바라보면서 진행하고~
(10:31) '응치산'과 '남산' 사이의 계곡으로 내려가는데,
콘크리트 바닥에 빨간 화살표 표시기를 붙여 놓았다.
이후 수레길따라 내려서서 포장 농로를 만나고,
좌.우측의 밭에 굴 껍질을 가득 쌓아놓았는데 무슨 용도인지는 잘 모르겠다.
(10:39) 이름을 알 수 없는 소류지를 지나고~
(10:42) '여호마을' 표지석과 남파랑길 이정표(↓시점 16.7km, ←종점 8.0km)가 있는,
'여도진로' 도로를 만나 좌회전하여 이후 0.8km를 도로 따라 가게 된다.
약 37분여 전인 (10:05)에 '여도진로'에 올라서서 좌측 '여호마을'로 진행했었는데,
만약 우측 도로를 따라 진행한다면 불과 260여 m [아래 맵소스 지도 상 청색 트랙] 만에
이곳에 도착하게 되는데, 남파랑길은 2.1km 정도를 빙 돌아서 오도록 길이 만들어져 있다.
이후 '여도진로' 도로를 따라 우측으로 지나온,
'우모도'-'계도'-'계모도'로 이어지는 방조제가 있는 바다를 바라보면서 진행하고~
(10:54) '방내마을' 표지석과 '방내.버스정류장'이 있는 삼거리에서 좌회전하는데,
직진 우측 도로는 '여호제.저수지'로 바로 이어지는 도로다.
이곳 '방내마을 입구 삼거리'에서 '여호제.저수지'까지의 도로 거리는
460~470m밖에 되지 않는데,
[아래 맵소스 지도 상 황색 트랙]
남파랑길은 5.8km를 빙 돌아서 이곳 삼거리에 도착하도록 되어있다.
이후 '방내길' 도로를 따라 고갯마루에 올라서서,
(10:58) '방내마을'과 '芳內洞' 표지석을 바라보고 'U자' 갈림길에서 좌측 도로를 따라 내려서고~
(11:00) 좌측 옆으로 '방내마을회관'을 바라보며 지나간다.
방내(芳內)마을은 마을 앞에 있는 산이 바가지(박)와 같이 생겼다 하여
'박내'라고 부르던 것이, 그 박의 향기로 둘러싸인 마을이라는 뜻으로
음차하여 방내(芳內)로 바뀌었다.
이 마을의 앞산을 안산(案山)이라고 하는데,
안산에는 옛날에 신선이 놀던 산봉우리라는 신선봉이 있다.
(11:04) '방내제.저수지'를 지나고~
(11:07) 그렇게 '방내재 저수지'를 지나 직진하여
'갯답들'을 바라보면서 진행하는데, 한 겨울인데 논에 물을 가득 채워놓았다.
왜??? 무엇때문에??? 물어 볼 때가 없으니,
왜 논에 물을 가득 채워놓았는지 궁금한 마음만 가지고 진행이다.
정면으로 '팔영산' 땡겨보고~
고도 608미터의 '팔영산'은 도립공원으로 관리되다가
2011년 '다도해해상국립공원'으로 편입되었는데,
북쪽 사면으로 8개의 암석 봉우리가 있다.
개인적으로 '팔영산'은 예전에 4번 올라 봤음으로 전혀 낮설지가 않다.
그렇게 직진 농로를 따라 진행하는데,
나그네의 기척에 철새들이 일제히 날아오른다.
(11:11) 농로 'ㅓ자' 삼거리 갈림길에서 좌회전하고~
(11:14) '방내마을' 방조제 전 농로 'ㅏ자' 삼거리에서 우회전하는데,
초입 농로에 물이 가득차 넘치기 직전이다.
(11:17) 2차선 포장도로인 '방내길' 도로로 올라서서 좌화전하여
도로를 따라 0.3km 진행하고~
(11:19) 좌측으로 썰물로 물이 빠진 '여자만(汝自灣)' 바닷가 바라보는데,
이곳은 바다에서 내륙으로 깊게 파인 만 안쪽이다.
(11:21) 직진 좌측방향의 방조제 입구로 올라서서,
앞쪽 '명주도(明珠島)'로 연결된 방조제 길을 따라 진행하고~
우측으로는 계속 '팔영산'이 따라오고~
좌측 멀리로 '팔영대교' 교각 땡겨보고~
(11:24) 방조제 끝 '명주도(明珠島)'로 들어서고,
우측으로 내려서서 '능가사로' 도로를 따라 진행이다.
이후 약 6분여 '능가사로' 도로를 따라 우측으로 빙 돌아 나가,
우측의 '재난대비 자동화설비' 건물 옆을 지나고~
(11:30) '명주교'를 건너는데,
'명주교' 좌측에 강산방조제의 배수갑문이 시설되어 있다.
그렇게 '명주교'를 건너면 이제까지 이어지던 '여호리'에서
'점암면 강산리'로 행정구역이 바뀐다.
점암면 강산리(江山里)
전라남도 고흥군 점암면에 있는 리(里)이다.
팔영산 북쪽 해안에 위치하고 있으며, 간척사업 후 평야가 조성된 지역이다.
자연마을로는 곡강, 신흥, 오산이 있다.
곡강마을의 지명은 마을 앞 강이 구비 돌아 흐른다는 뜻에서 유래되었다.
신흥마을은 마을 앞이 바다인데 마을이 포구로 형성되어 고금포(古今浦)라 불리어 오다가
1956년 행정구역 개편시 신흥으로 개칭되었다.
신흥은 곡강마을 서남쪽에 새로 생긴 마을이란 뜻이다.
오산마을은 마을 주변에 까마귀산이 있고 그곳에 고개(재)가 있으므로 까막재라하다가,
까마귀산을 뜻하는 한자명인 오산(烏山)으로 개칭되었다.
(11:31) 그렇게 '명주교'를 건너 좌측으로 휘어져 나가
'강산방조제' 제방길을 따라 진행하고~
길게 뻗어있는 방조제 정면 우측으로 '우각산'이
잘 조망되는 장면이다.
'강산방조제' 선착장 바라보고~
'강산방조제' 좌측으로 '팔영대교'가 모습을 나타내고,
'적병도', '둔병도', '낭도' 등 섬들도 조망된다.
(11:36) '강산방조제' 선착장이 있는 곳에서,
우회전하여 제방을 내려서고~
'능가사로' 도로를 건넌후 'ㅗ자' 갈림길에서
도로를 벗어나 '팔영산'을 바라보며 직진하고~
앞쪽 산 아래에 '강산리 오산마을'이 위치하는데,
오산(烏山)은 원래 강산에서 분동(分洞)된 마을로써, 당초 마을명을 까마귀 산이 있고
그곳에 고개(재)가 있으므로 '까막재'라 불러 오다가, 1956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까마귀산'을 한자로 표기하여 오산(烏山)이라 고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11:38) '오산양수장' 갈림길에서 좌회전하고~
(11:39) '오산양수장' 앞에서 또 다시 좌회전하여,
우측으로 휘어지며 직진해서 진행이다.
(11:44) 농로 'ㅏ자' 삼거리에서 우회전하여 진행하고~
(11:45) 얕은 야산 앞에서 좌측으로 방향을 바꿔,
'C자' 형태로 진행이다.
(11:51) 농로 'T자' 삼거리 갈림길에서
좌회전하여 진행하고~
(11:57) '능가사로' 도로에 접속하여,
우측으로 방향을 바꿔 진행이다.
(11:58) '843번 지방도로 능가사로' 도로에 올라 좌회전하는데,
남파랑길 이정표는 종점까지 3.1km 남았다고 알려준다.
(12:00) '점암면 오산교차로'로 들어서서,
직진 우측 방향 '나로도/ 영남' 방향의 '77번 지방도로 팔영로' 도로를 따라 진행하고~
'점암면 오산교차로'에서 좌측으로 가면 '팔영대교'를 거쳐 '여수'로 건너갈 수 있다.
남파랑길 여수 코스에서도 만났던 섬과 섬 사이의 다리를 통해
'여수'와 '고흥'을 오갈 수 있었던 바로 그 길이다.
'여자만' 가장 남쪽에서 방파제 역할을 하고 있는 '적금도', '낭도', '둔병도', '조발도'를 지나
'여수 화양면'에 닿는다.
'팔영산휴양림 5km' 교통안내판을 지나고~
(12:05) '팔영로' 도로 건너편으로 '영남면' 교통표지판을 지난다.
이곳에서 이제까지 이어지던 '점암면 강산리'에서,
'영남면 우천리'로 행정구역이 바뀐다.
고흥군 영남면(影南面)
전라남도 고흥군 중서부에 있는 면으로 동·남쪽은 남해의 해창만과
여자만(汝自灣, 순천만)에 면하고, 북·서쪽은 점암면(占岩面)과 접한다.
면 북부에는 고흥반도 최고봉인 팔영산(八影山:609m)을 비롯하여 서쪽에 우각산,
남쪽에 우미산 등 대부분의 지역이 높고 산지로 이루어져 있다.
팔영산은 다도해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자연휴양림이 있다.
면 소재지인 양사리를 비롯한 4개 법정리, 11개 행정리를 관장하고 있으며
고흥군에서 가장 인구가 적다.
『호구총수』의 동리를 살펴볼 때 조선 시대에는 점암면(占巖面)에 해당하는 지역이었다.
1966년 점암면 양사리에 양사출장소가 설치되었다.
1986년 양사출장소가 산내면(山內面)으로 승격하면서 분리되었다.
1989년 산내면이 영남면(影南面)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면의 북쪽에 팔영산이 위치하고 있으므로 그 남쪽에 위치한다고 하여 그렇게 명명하였다.
양사리(楊蛇里)에는 사포(蛇浦) 마을이 있고,
금사리(錦蛇里)에는 사도(蛇渡) 마을 · 만호(萬戶) 마을이 있다.
『호구총수』에도 기록되어 있다.
사도진과 관련된 마을이다.
『해동지도』, 『해동여지도』, 『대동여지도』, 『1872년지방지도』에 사도진이 묘사되어 있다.
특히 『1872년지방지도』(사도진)에는 내용이 매우 상세하다.
그것에 의하면 사도진은 성곽을 둘렀는데 남쪽과 서쪽에 문루가 있다.
성 안에는 객사를 비롯하여 관사(官舍) · 내아(內衙) · 군기(軍器) · 군관청(軍官聽) ·
창고(倉庫) 등이 있고, 성 앞에는 선창(船倉)과 주변의 섬, 진으로부터의 거리와
물의 깊이에 이르는 정보들이 기록되어 있다.
봉수와 관방도 묘사되어 있다.
특히 선소(船所)는 돌담을 원형으로 쌓았으며, 그 안에는 병선(兵船) · 전선(戰船) ·
사후선(伺候船)이 배치되어 있었음을 보여 준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사도진은 회령포 · 달량 · 여도 등을 관할하였다.
『청구도』에 의하면 첨절제사가 주둔하였고, 병사 2,100명, 곡물 3,200석이 있었다.
북서부와 남서부에 약간의 평야가 있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고구마·모시풀·고추 등이지만 생산량이 많지 않고
연안에서 숭어와 낙지의 어획이 많으며 금사리에서는 꼬막·굴양식을 한다.
명소로는 양사리에 남포미술관, 고흥 금사리 은행나무가 있다.
교통은 77번 국도가 지나며 팔영대교가 건설되어 여수 적금도와 연결된다.
영남면 우천리(牛川里)
전라남도 고흥군 영남면에 있는 리(里)이다.
팔영산 자락에 있는 산촌 마을이다.
자연마을로는 간천, 우암, 용암, 신성이 있다.
간천(艮川)은 음양오행으로 볼 때 마을 앞의 하천이 동쪽으로 흐른다 하여
팔괘 방위 중 동북쪽을 의미하는 '간(艮)' 자를 붙여 간천(艮川)이라 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우암(牛岩)은 옛날 도승이 이곳을 지나다가 마을 뒷산 남쪽 아래에 있는 바위에
소의 발자국이 깊이 찍혀 있는 것을 보고 쇠바위라는 마을 이름을 지었다고 하며,
후에 쇠바위를 한자로 고쳐 우암이라 부르게 되었다.
용암(龍岩)은 마을 앞 절벽에 유명한 용바위가 있어서 생긴 지명이다.
이 마을은 용바위 옆에 약 200평 정도의 넓고 평평한 바위가 깔려 있어
기암절벽의 관광지로 유명하다.
우두란 지명은 마을 뒤쪽으로 높은 우각산이 솟아있고 마을이 소의 머리에
해당되므로 마을명을 쇠머리라 부르던 것에서 유래하였고,
후에 이를 한자로 표기하여 우두(牛頭)가 되었다.
신성(新城)은 옛날 마을 앞에 세 갈래의 길이 나 있어 마을 명을 '삼거리'라 불러오다가,
1956년 행정구역 개편 시 마을이 차츰 커져 큰 마을로 번창하므로
새로운 성(城)에 비유하여 신성(新城)이라 개칭 현재에 이르고 있다.
(12:09) 그렇게 도로 고갯마루에 올라서고~
고개 정점에 '고흥 우주발사 전망대 8km' 선전 간판이 세워져 있고,
약간 내려서서 대형 '영남면' 표지석을 지난다.
(12:11) '신성마을' 교통표지판을 지나서,
'신성마을'로 들어서고~
(12:15) 도로 좌측편의 '신성마을' 표지석을 바라보면서,
계속 '팔영로' 도로를 따라 진행이다.
(12:17) 현재 도로 공사중인 '신성삼거리'에서,
좌회전하여 진행하고~
'신성삼거리'에서 '77번 도로'는 우회전하면 '영남/ 나로도' 방향으로 이어지고,
남파랑길 65코스 종점인 '간천마을'은 좌측 '해맞이로' 도로를 따라 이어진다.
(12:18) 이후 '해맞이로' 도로를 따라 진행하는데,
오늘 코스 중 제일 재미없는 길이다.
'신성마을'에서 '간천마을'로 향하는 '해맞이로' 도로는 '우각산'과 '우미산' 사이의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데, '팔영산'에서 발원하여 '우천제.저수지'를 거쳐 바다로 나가는
물이 흘러가는 경로이기도 하다.
'팔영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수량이 큰 강을 이루지는 않지만,
작은 개천을 통해 바다를 향해 묵묵히 흘러간다.
저 멀리로 남파랑길 65구간 종점인 '간천마을'이 보이기 시작하고~
(12:33) '돌담한옥펜션 300m' 안내판을 지나고,
'간천마을' 앞에 있으면 좋았을 '느티나무 고목 쉼터'가 마을 앞 약 9분 거리에 서 있다.
(12:39) 도로 좌측으로 '→우미산 정상' 이정표를 지나고~
(12:41) '효열부 정씨 기적비'를 바라보고~
바람개비로 장식해 놓은 '간천 사계절정원' 바라보고~
(12:42) 그렇게 간천마을'로 들어서면,
도로 좌측 편에 '간천.버스정류장'과 '간천마을'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간천(艮川)마을은 마을 앞의 하천이 동쪽으로 흐른다 하여,
팔괘 방위 중 북동(北東)을 의미하는 '간(艮)' 자를 붙여 간천(艮川)으로 이름하였다고 하는데,
'간(艮)' 자의 경우 통상 묘지의 향을 정할 때 '간좌(艮坐)' 향으로 쓰고
비석에도 표기하는 것은 여러 번 보았으나, 마을 이름에 '艮'자가 들어가는 것은 처음 본다.
(12:43) '간천.버스정류장' 맞은편에는
'남파랑길 고흥 66코스' 안내판이 세워져 있는데~
이곳이 남파랑길 고흥 65코스 종점이자, 고흥 66코스 시점이다.
오늘 남파랑길 진행은 여기까지...
목표했던 남파랑길 고흥 65코스도 무사히 도착했다.
두루누비&트랭글 앱 끄고 남파랑길 고흥 65코스를 종료한다.
오늘 6시간 38분간 24.98km를 걸었다.
지나온 남파랑길 65코스는 긴 코스임에도 불구하고
고흥의 명산인 '팔영산'을 바라보며 진행 할 수 있어서 지루하지 않았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팔영산' 봉우리를 바라보며 팔봉을 세면서 걸은 길이다.
이후 '간천.버스정류장' 벤치에 배낭을 내리고,
땀에 젖은 상의 갈아입고...
남은 음식 떨이하고...
'간천'에서 '과역'으로 가는 군내버스가 12:25에 이미 지나갔으므로,
다음 버스 시각은 13:40에 있다.
간천.버스정류장에서 (13:43) 도착한 과역터미널행(과역~남열) 고흥군내버스타고,
(14:12) 과역버스터미널에 하차
(14:32) 과역버스터미널에서 벌교.순천경유 여수行 시외버스타고
(15:28) 순천종합버스터미널에 하차, 대합실에서 대기하다가
(15:50) 부산行 시외버스를 타고 광양, 동광양(중마), 사천휴게소 경유하여
부산 서부(사상)시외버스터미널에 하차,
인근 합천돼지국밥 식당에 들려 수육백반과 대선소주 1병으로 저녁 해결하고
사상 지하철역으로 이동,
지하철2호선 타고 종점인 양산역에 하차,
양산역에서 16번 버스타고 양산.내송집으로 귀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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