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일자: 2024.10.19
코스: 백석.버스정류장/백석마을회관(시점)-동적.버스정류장-오마1호.방조제-오마1교
-오마2호.방조제-오마.간척 한센인추모공원.위령탑-추모공원삼거리-신흥배수장
-봉암1교-매동마을회관-동봉.버스정류장-봉서삼거리-녹동신항.연안여객선터미널
-녹동.만남의다리-녹동바다정원-녹동전통시장-도양읍사무소-녹동.버스공용터미널(종점)
인원: 나홀로 (이사. 곽차)
거리: GPS 13.83km (두루누비기준 13.2km)
시간: 널널.촬영&휴식포함/ 4시간21분
▶ 갈때 : 고흥69구간 마치고, 70구간 동시진행으로 인해 70구간 들머리 대중교통편 확인못함
▶ 올때 : 고흥70구간 마치고, 현지숙박으로 인해 70구간 날머리 대중교통편 확인못함
남파랑길 고흥 70코스 궤적
(10:51) 남파랑길 고흥 69코스를 마치고 '백석 버스정류장'옆 사각정자에
등산화를 벗고 올라 양발의 열기를 식힌후, 상처부위 치료하고...
준비해온 치킨햄버거 1개와 테라 캔맥주(大) 1캔으로 점심을 해결하며 52분 휴식후
연속해서 남파랑길 고흥 70코스를 이어가는데, 양 발바닥과 뒷굽치 상처부위로 인해
속력을 내지않고 최대한 천천히 진행하기로 한다.
(11:43) '백석마을회관' 옆 '남파랑길 70코스 안내판' 앞에서
두루누비&트랭글 앱 다시 켜고 좌회전하여 백석마을 길을 따라 진행하고...
매곡리(梅谷里) 백석(白石)마을은 옛날에 마을 앞에 염전이 많아
흰 소금을 백석(百石) 이상 생산하였으므로 흰 소금이 많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마을의 앞바다를 1979년에 매립, 간척하게 되면서 농토화되었다.
(11:47) '77번국도 천마로' 도로를 만나고,
우회전하는데, 마을 초입에 '백석마을' 오석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이곳에서부터 남파랑길은 위험한 '천마로' 도로 갓길을 따라
약 1.6km 정도 진행하게 된다.
그렇게 '천마로' 도로를 따라 진행하다,
(11:50) '동적 버스정류장'을 지난후 국도를 따라 좌측으로 휘어져 오른다.
매곡리(梅谷里) 동적(洞笛)마을은 본래 매곡에 속한 마을로서,
마을 앞에 '장고치'라는 고개가 있고 바로 그 아래 점대(笛, 피리 적)처럼
생긴 골짜기에 마을이 형성되었으므로 '점대형의 마을'이라는 뜻으로
동적(洞笛)이라 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렇게 진행하는데 도로 갓길에 '참깨'를 말린다고 늘부려져 놓았고...
(11:57) 도로 고갯마루를 넘으면 도로 우측에,
1km 전방에 '도양(녹동)'과 '고흥' 갈림길이 있다는 교통 표지판이 서 있다.
그렇게 진행하는데, 간혹 지나는 차량들이 과속으로 지나가서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ㅎㅎㅎ
좌측으로 '거금도'와 그 우측의 '소록도'를 바라보고...
(12:06) '도양 10km'를 알리는 교통표지판을 지나고...
(12:09) '매곡어촌계' 선착장을 지나는데,
선착장 앞쪽으로 '오마1호 방조제'가 좌우 횡대로 길게 뻗었다.
(12:10) '도양(녹동)'과 '고흥/풍양' 갈림길 교통표지판을 지나고...
(12:12) '고흥우주천문과학관 13km' 표지판을 지나고...
(12:14) 어선과 선양(煽揚) 크레인, 바지선들이
정박 중인 선착장을 바라보고...
(12:15) '천마로'에서 '유자로' 도로가 갈리는 삼거리에서 도착하고...
이곳에서 남파랑길은 좌측으로 방향을 바꿔
정면에 보이는 '오마2교'를 건너가게 된다.
그렇게 좌측의 '오마1호 방조제' 배수갑문을 바라보면서 '
오마2교'를 건너고...
잠시 도로변을 따라 진행하다,
(12:17) 좌측 '오마1호 방조제' 위로 올라서서, 방조제 길을 따라간다.
'오마1호 방조제'는 풍양반도 '매곡'에서
예전에는 섬이었던 '오동도(梧桐島)' 사이 843m의 방조제다.
오마도(五馬島) 간척공사는 고흥군 도양면 봉암반도와 풍양면 풍양반도에 이르는
총 2,753m의 방조제를 그 중간의 오마도와 오동도를 연결하여 쌓는 것이다.
기대효과는 1,000정보(330만 평으로 소록도의 2배 정도 크기)의 농토가 새로 생기어
음성 나환자 1,500세대 및 일반 영세농가 1,500세대를 입주시켜 일반인과 음성 나환자들이
함께 생활하는 이상적인 농촌을 건설하여, 벼 3만 석, 보리 2만 석 등
총 5만 석(약 2,500여 톤)의 양곡을 증산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RN리폼드뉴스, 고흥 오마 간척 소록도 한센인 추모공원, 2021. 11. 1]
이후 방조제 길을 따라 진행하다 우측의 '매곡' 앞바다 바라보고...
그렇게 진행하면 이제까지 이어지던 '풍양면 매곡리'에서
'도덕면 오마리'로 행정구역이 바뀌는데 정확한 경계지점은 잘 모르겠다.
고흥군 도덕면(道德面)
전라남도 고흥군 남서부에 있는 면으로 북동쪽에는 고흥호, 서쪽에는 보성만,
북쪽에는 득량만, 남쪽에는 거금수도가 있다.
남쪽 해안에는 삼호방조제가 조성되어 있고,
그 안쪽에는 간척으로 이루어진 농경지가 널리 펼쳐져 있다.
고려시대 도양현에 속했으며 1441년 흥양현에 속했다.
1973년 7월 고흥군 도양면(道陽面)이 도양읍으로 승격되면서
이듬해 도양읍에 도덕출장소를 설치하여 도덕·신양(新陽)·가야(柯也)·
용동(龍洞)·봉덕(鳳德)·오마(五馬) 리를 관할하게 하였다.
1983년 2월 전국 행정구역 조정에 따라 도덕출장소를 도양읍에서 분리하여
도덕면으로 독립시켰다.
현재 면 소재지인 도덕리를 비롯하여 신양리, 가야리, 봉덕리, 오마리, 용동리의
6개 법정리와 31행정리를 관할하고 있다.
도덕리는 1914년에 덕흥(德興)·도촌(道村)·봉동(鳳洞)·북어(北禦)가 합쳐져서 만들어졌는데,
도촌과 덕흥을 조합한 지명이다.
가야리(柯也里)는 『호구총수』의 가야리(可也里)와 관련이 있다.
가야는 가장자리란 뜻으로 가야(可也)·가야(柯也)는 음을 취한 한자식 표기이다.
현재는 가상(柯上)·가동(柯洞)으로 분리되어 있다.
신양리의 장전(場前) 마을은 조선 시대의 장흥부 관할이었던 도양목장 앞에 있었던 것에서 유래하였다. 오마리(五馬里)는 『호구총수』에 기록되어 있는 오마도리(五馬島里)에 기원을 두고 있다.
넓은 농경지와 저수지(백옥, 내봉저수지)를 확보하고 있으며 벼농사을 주요산업으로 한다.
그리고 밭작물인 마늘·고추 등이 생산된다.
득량만과 고흥만에 면해있는 해안가는 갯벌이 발달되어 있는데
이곳에서는 김·굴 등의 양식업도 활발하다.
교통은 27번 도로가 도양읍과 풍양면으로 연결하며 면의 북쪽에 용동해수욕장이 위치한다.
문화재로는 고흥 신호리 석주(전남문화재자료 185)가 있고 도촌마을에 민속유물전시관이 있다.
도덕면 오마리(五馬里)
전라남도 고흥군 도덕면에 있는 리(里)이다.
남해바다에 있는 지역으로서 육지와 매우 가까이 있는 작은 섬 지역이다.
조수가 나가면 육지와 이어지는 것이 특징이다.
자연마을에는 신흥, 불무, 오마, 은전이 있다.
신흥은 괴발도에 새로 생긴 마을이란 뜻이고
불무는 옛날 이 섬에 물이 없어 불모도라고 부르다가
불무섬으로 바뀌었으며 그 이름을 따 불무가 되었다.
오마는 오마리의 주된 섬으로서 섬의 모양이 봉황과 같아 봉도라고도 부르고
은전은 움밭굼이라고 부르다가 한문으로 음전 즉 은전으로 바뀐 것이다.
(12:26) '오마1호 방조제' 끝 지점 배수갑문 직전에서
우측 아래 '천마로' 도로로 내려서고...
잠시 '천마로' 도로갓길을 따라 나가 '오마1교'를 건너간다.
그렇게 '오마1교'를 건너서 옛 '오동도'로 들어서면,
(12:29) 좌측에 '멍이섬' 식당이 보이는데 영업을 하는지는 확인하지 않았다.
이후 '옛 오동도' '천마로' 도로를 따라 진행하다,
'오마2호 방조제' 위에 올라서서 진행하고...
'오마2호 방조제'는 '오마1호 방조제' 연결 섬인 '오동도'에서 지도상 '봉도(鳳島)'로
표시된 은전마을의 '오마도(五馬島)'를 연결하는 350m의 방조제다.
'오마2호 방조제' 끝에서 우측 '천마로' 도로로 내려서고,
(12:39) 옛 '봉도(鳳島)'의 '은전마을' 고개 직전 동쪽 마을 바라보고...
(12:40) 남파랑길 이정표가 세워진 갈림길을 만나고,
70코스 종점까지 9.5km로 표시하고 있다.
이후 우측의 시멘트 농로길을 따라 진행하고...
(12:45) 농로 'Y자' 갈림길에서 우측 편의 대단위 축사를 바라보면서,
좌측 임도로 진행하고...
그렇게 농로를 따라 진행하다 우측으로 대단위 '태양열 발전 단지' 바라보고...
(12:50) '은전마을' 입구 비닐하우스 앞에서
우측 야산 위로 진행이다.
(12:54) '제주양씨 세천묘소'를 지나고...
좌측아래로 '은전마을 방파제' 바라보고...
(12:59) 전원주택이 있는 고갯마루로 올라간다.
전방 좌측으로 '소록도'에서 '거금도'로 이어지는
'거금대교' 땡겨보고...
이후 빨간화살표 남파랑길 시그널을 바라보며 진행하고...
(13:09) 오늘구간 최고봉인 능선 봉우리로 오르고...
그렇게 능선 봉우리를 넘어서면,
'오마 간척 한센인 추모공원' 위쪽 전망대 쉼터다.
이후 추모공원으로 내려서는데, 남파랑길은 좌측 탐방로로 이어지지만,
(13:14) 우측 중앙 통로를 통해 공원 중앙에 위치한 '위령탑' 방향으로 내려서고...
오마 간척 사업은 1962년 6월 군의관 출신 소록도 병원장 조창원이 한센인들의
사회복귀 사업을 추진하면서 시작되었다.
조 원장이 병원장에 취임할 당시 소록도에는 이미 완치되어 전염성이 없는 음성환자가
2,000여 명이나 되었지만, 사회는 한센병에 대한 무서움과 뿌리 깊은 불신 탓으로
이들을 전혀 받아주지 않고 문둥병이라 배척하였고, 심지어 호적이 없는 경우도 있어
‘소록도 ○씨’로 본적을 만들어 주기도 하였다고 한다.
더구나 완치된 음성환자 300여 명에 대해 처음으로 귀향을 추진하였으나 이웃은 물론
심지어 가족들까지도 이들을 받다주지 않아 소록도에 그대로 눌러 앉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이들이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삶의 터전을 마련해 주기 위한 필요에 의해
오마 간척 사업을 추진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바닷물이 빠지면 뭍과 연결되고, 바닷물이 들면 섬으로 바뀌는 고발도, 분매도, 오마도,
오동도, 벼루섬 5개 섬을 연결하는 간척지를 구상하였는데, 이 5개의 섬을 이은 모양새가
말(馬)을 닮았다고 하여 '오마도(五馬島)'라 불리는 곳이었다.
조 원장은 소록도 주민들에게 이들 구상을 제안하여 먼저 동의를 얻어, '오마도 개척단'을 창설한 다음, 1962년 6월 정부로부터 정식 사업 인가를 받아 그해 7월부터 방조제를 쌓는 공사에 들어갔다.
당시 소록도 주민 5,300명 중 완치되어 전염성이 없는 음성 환자는 3,300명 정도였다.
그들 중 작업이 가능한 인원이 2,000명 정도였는데, 작업 가능 인원 전원으로 2개 작업대를 편성하여
1개 작업대가 한 달씩 교대로 공사에 투입되었다.
방조제 축조는 지금처럼 중장비가 없던 시절이라 삽과 곡괭이, 손수레를 이용한 순수 인력으로만
제방을 쌓아 바다를 메우는 난공사였다.
온전하지 못한 육신을 지닌 한센인들은 내 땅을 가질 수 있다는 희망 하나로 바다를 메워
제방을 쌓는 대 역사에 자발적으로 참여했다.
조수 간만의 차가 8m 정도로 크고 수심도 깊어 언제 마무리될지 모를 난공사로 힘겹게 쌓아올린
제방이 폭풍우에 휩쓸려 나가면 다시 쌓기를 반복하였으며, 심지어 공사중에 사망하거나
다치는 불상사도 다반사였지만 어떠한 역경도 이들을 막지는 못했다.
그렇게 2년여의 힘든 공사를 통해 공정의 80%(당국은 60%라고 평가) 정도가 진척되어
완공을 목전에 두고 있을 즈음, 한센인들이 들어온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인근 주민들이
문둥이들과 함께 살 수 없다는 이유로 극렬하게 반대하고 나섰다.
당시 한센병 환자에 대한 흉흉한 소문과 뿌리 깊은 불신 탓으로, 한센인들에게 땅을 내주면
안 된다는 반대의 목소리가 거셌던 것이다.
때마침 치러진 총선을 앞두고 표를 의식한 정치권이 힘없는 소록도 한센인들 대신
주민들의 손을 들어줬다.
새 터전에서 새 삶을 살아보려던 한센인들의 노력이 한순간 물거품으로 변하게 된 것이다.
피땀 흘려 일한 한센인들은 자신들이 간척 사업을 거의 다 해 놓고도 그 땅에서 밀려났다.
육신이 온전하지 못하다고 세상에서 외면을 당했는데, 또다시 고통과 차별, 모멸감을 느끼며
돌아서야 했던 것이다.
이후 간척 사업권은 보사부에서 전라남도로 넘어갔는데, 한참 뒤에 전라남도가 마무리했다.
간척지 조성은 고흥군에서 1988년 완공하여 일반 주민들에게 분양하였는데, 방조제를 막아
간척지를 만들자고 첫 삽을 뜬지 무려 26년 만이었다.
결과적으로 오마도 간척사업은 정부의 대 한센인, 대 국민에 대한 사기극이 되고 말았다.
한센인들을 얘기할 때 자주 인용되는 이청준의 장편 소설 〈당신들의 천국〉은
오마도 간척에 나선 한센인들의 애환과 얘기를 담고 있는데, 이 소설은 1975년 ‘신동아’에
연재되기 시작했으며, 문학과 지성사에 의해 1976년 단행본으로 간행되었다.
'한센인 추모공원 위령탑'
위령탑 주탑은, 한센인들이 바다를 형상화 한 원형의 물 위에 삽과 곡괭이,
등짐을 지면서 제방을 쌓고 있는 모습을 형상화하였으며,
일부 인부는 언제 저 먼 곳까지 제방을 다 쌓을 수 있을까 바라보는
형상을 하고 있어서 가슴이 뭉클하다.
'한센인 추모공원 위령탑' 뒷쪽 병풍처럼 둘러쳐진 벽면 바라보고...
한하운 시인의 '보리피리 불며' 시와
오마도 개척단 김형주 부단장의 '아으 슬프도다'란 애곡(哀哭) 글과 함께,
꽃말인 '나를 잊지 마라'란 글귀와 함께 '물망초' 꽃이 새겨져 있다.
-아으 슬프도다! - 개척단 부단장 김형주-
오호 통재라!
오천 원생은 곡하노라!
우리의 비원의 숙원사업이었던 오마도 간척공사를
1962년 7월 10일에 착공하였으나
세계적인 대 기만극으로 1964년 5월 25일에
대단원의 막을 내렸기에
여기에 그 유래를 새겨 만천하에 고하노라
1964년 5월 25일 국립소록도병원 오천 원생 일동
애곡(哀哭)
오마도를 상징하는 말 5마리 형상 바라보고...
그렇게 내려서는데 정면 멀리로 '오마 3호 방조제'가
'봉암반도'에 연결됨을 알수있다.
오마도(五馬島)는 풍양반도와 봉암반도 사이 해안을 낀, 바닷물이 빠지면 뭍과 연결되고,
바닷물이 들면 섬으로 바뀌는 다섯 개의 섬인 고발도(古發島), 분매도(粉梅島), 오마도(五馬島),
오동도(梧桐島), 벼루섬 모양이 말(馬)의 형태를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일부 자료에는 벼루섬 대신 만재도(萬載島)로 표시되어 있으나 이는 오류인 듯하다.
만재도는 오마 방조제 바깥 해상에 위치한 섬으로, 공사 당시 만재도의 돌을 많이 사용하였다고 한다.
(13:22) 아치형 정문 밖으로 나서서 뒤돌아보고...
'오마 간척 한센인 추모공원' 현판과 함께 입구 좌·우측에
'추모공원 안내도'와 '오마권역 산책로 약도' 현판이 세워져 있다.
'오마권역 해양체험관' 바라보고...
(13:23) '천마로'에서 우측으로 '오마로'가 갈라지는
'오마삼거리'에 도착하고...
남파랑길은 '오마3호 방조제' 길과 '천마로' 대신
우측 아래의 '천마로'와 나란히 가는 농로를 따르도록 안내되고 있다.
그렇게 '천마로'와 나란히 가는 직선 농로를 따라 진행하고...
(13:38) 그렇게 직선 농로를 따라 지루하게 진행하다,
삼거리 갈림길에서 좌회전하고...
(13:39) '천마로' 도로를 만나고,
우회전하여 도로 갓길을 따라 진행이다.
(13:40) 도로 우측 건너편의 '신흥배수지'를 지나면
이제까지 이어지던 '도덕면 오마리'에서 '도양읍 봉암리'로 행정구역이 바뀌고...
고흥군 도양읍(道陽邑)
전라남도 고흥군 남서부에 있는 읍으로 동쪽은 풍양면(豊陽面),
서쪽과 북쪽은 득량만(得粮灣)에 면하고, 남쪽에는 바다 건너 거금도(居金島)가 있다.
남동쪽에 넓은 간척지가 전개되어 있으나, 북서쪽에는 해발고도 100∼200m의 구릉지가 많다.
유인도로는 소록도(小鹿島), 상화도, 하화도가 있고
그 밖에 상송도, 하송도, 긴솔섬, 실억도 등 7개의 무인도가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흥양)에 의하면 삼국 시대에는 신라 장흥부의 도량부곡(道良部曲)이었다.
지명은 이 도량부곡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고려시대 도양현이었으며 『호구총수』의 동리를 살펴볼 때 조선 시대의 도양면에 해당하는 지역이었다. 『여지도서』에 의하면 민호 544호, 남자 1,146명, 여자 1,249명이었다.
1914년 행정구역이 개편되면서 완도군 득량리를 병합하였다.
1973년 고흥군 최초의 읍으로 승격하였고 1983년 도덕출장소가 도덕면을 분리하였다.
현재 장계리, 관리, 용정리, 봉암리, 득량리, 소록리, 시산리의 7개 법정리와 38행정리를 관할하고 있다.
이들 중에서 봉암리(鳳巖里)의 북촌 마을은 녹도진 북문 쪽에 위치한 것에서 유래하였다.
『여지도서』, 『해동지도』, 『1872년지방지도』(녹도진)에는 그림으로 잘 묘사되어 있다.
특히 『1872년지방지도』에는 내용이 매우 상세하다.
그것에 의하면 녹도진은 성곽을 둘렀으며, 동서남북에 문루가 있다.
성곽안에는 객사를 비롯하여 관사(官舍)·내아(內衙)·관청(官廳)·군기(軍器)·군관청(軍官聽)·
사령청(使令廳)·사부청(射夫廳)·이청(吏廳)·화약고(火藥庫)·창고(倉庫)가 있고,
성 밖에는 선창(船倉)과 그 주변의 섬, 거리, 물길과 그 깊이에 이르는 정보들이 기록되어 있다.
봉수와 관방도 그려져 있다.
특히 선소(船所)는 원형의 돌담으로 이루어졌는데 그 안에는 병선(兵船), 전선(戰船),
일사후선(一伺候船), 이사후선(二伺候船)이 배치되어 있었다.
『청구도』에 의하면 만호와 함께 병사 1,000명, 곡물 2,600석이 있었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 외에 참깨·유채·마늘 등을 생산한다.
고흥반도의 남서쪽 끝에 위치하여 기후가 온화하므로 단감의 생산도 많다.
3면이 바다에 면하여 쥐치·삼치·복어·활선어 등의 어획이 많고,
김·미역·다시마·꼬막·바지락 등의 양식도 성하다.
육상 교통은 27번 국도를 통해 광주∼녹동, 여수·순천과 녹동 간에 정기노선버스가 있고,
녹동항은 해운항만청 연안항으로 지정되어있고 연안 도서를 연결하는 해상교통의 요지로 역할한다.
문화재로는 고흥 쌍충사(雙忠祠:전남기념물 128), 용정리 고분(龍井里古墳),
용정리 고인돌, 자양사(紫陽祠), 신양리(新陽里) 고인돌군, 용동리 고인돌군, 영주사,
소록리(小鹿里) 조개더미[貝塚] 등이 있다.
도양읍 봉암리(鳳岩里)
전라남도 고흥군 도양읍에 있는 리(里)이다.
도양읍의 읍소재지로 27번 국도의 끝자락에 위치한 남해바다 연안지역이다.
자연마을에는 신정, 북촌, 평화, 녹동, 봉서, 대봉, 동봉, 중촌, 봉산, 매동, 상화도, 하화도가 있다.
신정은 마을 지형이 정(丁)자 모양으로 생겨 지어진 이름이고
평화는 벼농사가 주업이므로 벼 화(禾)자를 사용해 지은 이름이다.
녹동은 녹도만호진성 내에 있었던 마을로서 녹동1구에서 녹동6구까지 있으며
연안일대 해상교통의 거점이 되는 녹동항이 위치한다.
봉서마을은 비봉산 아래 위치한 마을이며
대봉은 봉서 중에서 큰 마을이라서 개칭한 마을이며
매동은 매화 나무가 많아 붙은 이름이다.
또한 상화도와 하화도는 과거에 꽃이 만발한 섬이어서 꽃섬 즉
화도라 부르다가 둘로 나누어 부르게되었다.
(13:47) '오마3호 방조제'의 배수갑문 3호를 바라보며,
'봉암2교'를 건너고...
(13:49) 배수갑문 4호를 보면서 '봉암1교'를 건너간다.
(13:50) 이정표(←동봉방파제 1.7km, ↓해양자원체험시설 1.63km)와
삼호가든 입간판, 남파랑길 이정표가 있는 삼거리에서 좌회전하고...
(13:52) '봉산어촌계' 선착장 방파제를 지난다.
(13:59) '중촌어촌계' 어업구역 해안길을 진행하고...
작은 모래사장 바라보고...
(14:03) '매동마을' 어촌계 구역이 시작되는 곳에서,
남파랑길 이정표(70코스 종점 5.6km→) 안내 따라 우회전하여 진행이다.
(14:04) 이후 '매동호안길' 도로를 오르다 갈림길에서
좌회전하여 진행하고...
(14:10) 좌측으로 '常慕齋(상모재)'와 효자비들을 바라보고,
정면아래 '매동마을'로 진행이다.
좌측으로 '상송도'와 '하송도' 뒤쪽으로 '거금대교' 바라보고...
계속되는 '매동호안길' 마을 도로를 진행하고,
(14:16) '매동마을회관'을 지난다.
봉암리(鳳岩里) 매동(梅洞)마을은 옛날 이곳에 매화(梅花)나무가 많아
마을이 매화꽃으로 덮인다는 뜻으로 매동(梅洞)이라 한다.
(14:17) 사거리갈림길을 만나고,
좌회전하여 '동봉마을'을 바라보며 농로길을 따라 진행하고...
(14:20) '중촌 하수처리 중계펌프장' 옆을 지나고...
(14:22) 농로사거리 갈림길을 만나고,
우회전하여 '동봉마을'을 향해 진행이다.
(14:24) 빨간색 지붕이 눈길을 끄는 '동봉마을' 골목길따라 진행하는데,
마을 길은 '중동길'로 지정되어 있다.
봉암리(鳳岩里) 동봉(東鳳)마을은 비구산(현 비봉산) 줄기인 망산 밑에 마을이 형성되어 오다가
김복봉 입향조가 입향한 후 갓바구(笠岩)라 불려지다가, 그 후 봉암이라 고쳐 불렸으며
1945년 해방 이후 마을이 커지자 중촌(中村), 매동(梅洞)으로 분할되어 동봉이라 한다.
(14:25) '중동길' 해안도로를 만나고...
물이 빠져 갯벌이 드러나 있는 '동봉항' 앞바다의 '상송도',
'하송도'와 멀리 '거금대교' 바라보고...
(14:27) '동봉.버스정류장' 앞을 지난다.
그렇게 해안도로를 따라 진행하다,
(14:33) '대봉동봉길' 도로와 '동봉 앞바다 방조제' 길이 갈라지는 갈림길을 만나고...
'동봉 앞바다 방조제' 길 입구 쉼터 정자에 배낭을 내리고
물한잔하며 9분 휴식이다.
(14:44) '동봉 앞바다 방조제' 길로 올라서고,
방조제 길을 따라 길게 진행하고...
뻘 작업 후 이용하는 목욕탕 뒤로 '거금대교' 바라보고...
'상송도' 바라보고...
'하송도' 바라보고...
(14:59) '동봉 앞바다 방조제' 끝지점 '대봉마을' 선착장 앞에서
방파제 길은 우측으로 휘어지며 진행하고...
'대봉마을' 선착장 건너편으로 남파랑길 70코스 종점이 있는
'도양읍내'가 지척으로 다가온다.
(15:04) 약 1시간15분 전 '봉암1교'를 지난 삼거리에서 헤어졌던,
'77번국도 천마로'를 이곳에서 다시 만나고...
그렇게 좌회전하여 '77번국도 천마로'를 따라 진행하고...
(15:07) '봉서삼거리'에 도착후 '천마로'는 직진 방향으로 흘려보내고,
남파랑길은 좌측 방파제 길로 이어진다.
그렇게 좌회전하여 방파제길로 진행하다,
곡각지 끝에서 다시 좌회전하고...
(15:10) 다시 곡각지 끝에서 우회전하여 남쪽 '거금도' 방향으로
길게 뻗은 방조제 길을 따라 진행이다.
(15:13) '비봉로' 도로와 만나고,
남파랑길 방향 표지 따라 우측 횡단보도로 내려서서 횡단보도를 건너고...
그렇게 '비봉로' 도로를 따라 '녹동 신항' 방향으로 진행이다.
(15:18) '고흥 어선안전조업국' 건물을
좌측으로 바라보면서 직진해서 길게 진행하고...
(15:24) 좌측으로 '녹동 신항 연안여객선 터미널' 입구를 지나고...
이후 '녹동 신항' 옆으로 나란히 이어지는
'830번 지방도 비봉로'를 따라 '오션뷰 아파트'를 바라보며 진행이다.
(15:32) '녹동 만남의 다리' 위를 지나면서,
좌측 아래 '녹동항'을 바라보고...
그렇게 '녹동 만남의 다리'를 건넌후,
우측 편으로 '동두산 체육공원'을 바라보면서 진행하고...
(15:37) '녹동 용궁사' 앞을 지나는데, 용궁사의 손 도사가
운책 20권을 쓴 한국 최고 점술가란 광고판을 크게 광고를 하고 있다.
(15:38) 예전 낚시에 빠져있을때 자주 온 '녹동항'에 다시 도착하고,
예전과 똑같이 크고 작은 어선들이 즐비하게 정박해 있다.
녹동항(鹿洞港)
고흥반도 남서쪽에 있는 국가 지정 어항으로 소록도와 거문도, 백도, 제주도를 여행하는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해상 교통의 중심지이다.
또한 인근 섬에서 생산되는 활어와 김, 미역, 다시마, 멸치 등 해산물의 집산지이기도 하다.
1971년 1종 어항으로 지정되었고, 1995년부터 2001년까지 녹동신항 건설 공사를 진행하여
현재는 구항과 신항으로 나뉘어 있다.
구항에는 녹동재래시장이 들어서 있고, 신항에서는 제주도와 거문도 여객선이 운항 중이며
3000톤 급 화물선 7척을 접안시켜 연간 69만 톤의 물량을 처리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고 있다.
현재 구녹동항을 관광과 어촌환경이 조화를 이루는 다기능어항으로 개발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며,
녹동-소록도-거금도간 연육교 가설 사업이 2008년 완료되었다.
(15:42) '녹동 음식거리' 대형 입간판 옆을 지나고...
(15:43) '녹동 바다정원' 입구에 도착하고...
'VR 존 가상현실 체험관'과 '바다정원'으로 들어가는 아치형 다리가 있다.
녹동항 바다정원
지름 80m, 둘레 251m, 면적 5,390㎡의 인공섬으로 바다 위에 떠 있는 정원을 형상화하고
찾는 이에게 휴식공간을 제공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으며 주변 경관을 관망하는 훌륭한 산책 코스이다.
정원과 바닥분수, 야외무대, 휴게쉼터, 각종 조형물 등을 갖추고 있으며 특히 오색빛의
화려한 조명으로 아름다운 야경을 볼 수 있다.
바다정원 입구에는 해저와 우주를 실감 나게 탐험하는 돔 영상관과 VR 체험관을 운영하고 있으며,
주말에는 문화예술단체의 상설화 공연 및 버스킹 공연도 이어진다.
장어거리 상가 건물 외벽에는 대형 LED 전광판과 미디어 파사드가 설치되어 있어
야간에 더욱 관광객들 눈을 즐겁게 한다.
그렇게 '바다정원'으로 들어가는 아치교 입구에서,
남파랑길 이정표 따라 우회전하여 '비봉로' 도로를 건너고...
'바다정원.버스정류장'을 좌측에 두고
동쪽 읍내 방향으로 진행이다.
(15:45) 완만한 오르막 '녹동중앙길' 도로를 따라
'청담빌라' 앞을 지나고...
(15:47) '남촌2교'를 건너고...
(15:48) '녹동전통시장' 입구를 지나면서,
좌측 안쪽으로 넓게 펼쳐진 '녹동전통시장'을 바라보며 진행이다.
(15:52) '녹동전통시장' 입구 지난 사거리에서 좌회전하여,
'녹동전통시장 버스정류장'을 지나 '녹동남촌1길' 도로를 따라 진행하고...
(15:55) '녹동전통시장' 동쪽 입구를 좌측으로 보면서 진행이다.
(15:57) 도로 우측으로 '도양읍 사무소'를 지나고...
(15:58) '봉암사거리'에서 우측의 횡단보고를 건너,
'녹동초등학교' 방향으로 진행하고...
(16:00) '녹동초등학교' 정문을 우측으로 보면서 진행하는데,
도로명이 '천마로'로 바뀌어있다.
그렇게 '천마로' 도로를 따라 직진하여 길게 진행하고...
(16:04) '녹동 버스공용터미널'에 도착이다.
'녹동 버스공용터미널' 초입 벽면에 세워진
'남파랑길 고흥 71코스' 안내판 앞이 남파랑길 70코스 종점이자 71코스 시점이다.
'남파랑길 고흥 71코스' 안내판 바라보고...
오늘은 여기까지다.
두루누비&트랭글 앱 꺼고 '남파랑길 고흥 70코스'를 종료한다.
이후 왔던길을 되돌아 진행하여
'도양읍 사무소' 인근에 있는 '산호모텔'에서 하룻밤 묵어간다.
(1박:3만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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