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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알프스둘레길

영남알프스둘레길7 (청도.운문 신원삼거리~청도.금천 임당리)

일자: 2012.5.12

인원: 홀로

답사코스: 청도.운문면 신원리 염창마을~국시당~용신소~오진마을입구~방음동.새마을동산~방음동경로당~무적암

~영담한지미술관/보갑사~안마을못~화전민집터~정거고개(쇠등)~쌍무덤.폐축사~청도.금천면 임당리.김씨고택~임당리마을회관

거리: 14.35㎞/ 6시간10분 휴식포함.널널하게

 

언양버스터미널에서 09:00 남대구행 완행버스를 타고 09:40 신원삼거리에 하차하고~

신원리 본동 염창(鹽倉)마을은 운문사의 소금 창고역할을 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신원삼거리에서 69번 지방도를 따라 잠시 진행하면 우측으로  1908년 문명보통학교라는 이름으로

개교한 유서 깊은 학교인 문명분교를 지나고~

 

신원교를 지나면 대리마을인데, 오랜 옛날부터 솥 굽는 가마가 있다고 해서 솥계라고 불리는 곳이다.

 

대화슈퍼 맞은 편 밭이 바로 신라 때부터 솥을 구웠던 가마터라고 하는데, 지금은 한창 공사중이다.

 

잠시후 운학사 표지판 앞에서 좌측 마을길로 들어서고, 골목끝 민가에서 우측 대나무숲 쪽 묘지 위로 올라

좌측 사면길을 따라 진행하고~

 

또 다른 즐거움

 

10:00 국시당 바위벼랑 제단앞에 도착하고~

수백 년 된 굴참나무에 당줄이 메여져 있는데, 이 나무가 바로 매년 정월대보름이면 주민들이 나라의 무사 안녕을

기원하며 제사를 지낸다는 국시당나무인데~

제사를 지낼 때 부정한 사람이 끼어 있으면 음식 담긴 그릇이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는 전설이 함께 전한다고 한다.

 

 

뒤돌아본 대리마을과 그 뒤쪽으로 우뚝 솟아있는 복호산의 전경

 

대리마을의 노거수, 또 다른 이름으로 할배국시당 나무라고 한다.

 

다시 69번 지방도로로 되돌아나와 청도 방향으로 진행하다 신원1교를 지나고~

 

좌측 아래로 바라보면 운문천과 신원천이 합수되는 지점에 낮고 길게 뻗은 절벽이 보이는데 마치 용의 몸통처럼 보이고,

그 아래가 바로 용신소인데 이 하천을 특별히 무적천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잠시후 신원1교 다리를 건너면 무적(舞笛)이라고 불리는 곳인데~

 

피리 소리에 맞춰 춤을 춘다는 의미인 무적(舞笛)은 옛날 신라의 왕이 이곳의 아름다운 주변 풍광에 반해

피리 소리에 맞춰 춤추며 놀았다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고~

예전에는 이곳 숲이 엄청 울창했는데 한국전쟁 때 이곳에 숨어 있던 빨치산부대를 토벌하려고

벌목을 한 이후로 듬성듬성해졌다고 한다.

 

10:20 하얀집민박안내판에서 좌측 하천으로 내려서서 용신소에 도착하고~

 

뒤편 절벽을 용의 몸통으로, 웅덩이에 담긴 바위는 용의 머리로 보고 용이 물을 마시는 곳이라고 해서

붙은 이름인데 실제로 용머리를 닮은 바위가 웅덩이에 걸쳐 있어 신비감을 더한다.

 

보기좋다.

 

우측 멀리 옹강산을 바라보고~

 

땡겨본다.

 

그렇게 룰루랄라 진행하다 신원2교를 건너고~

10:40 옹강산 등산로 출발점인 오진마을 입구를 지난다.

 

10:55 짧은 오르막길을 올라 고갯마루 정자 쉼터를 지나고~

 

 

 

 

고갯마루를 내려서니 우측 아래로 운문호 상류가 펼쳐지는데~

예전에 비해 수량이 많이 줄었는 것 같고, 수몰 마을의 옛 골목길과 다리 돌담 등의 흔적만 휑하다.

 

 

 

11:10 방음리 말음마을 입구 삼거리에 도착하고~

 

우측에 있는 방음동 새마을동산에서 잠시 쉬어간다.

 

새마을동산은 청도군 운문면 방음리 출신 홍영기 농촌지도자가 마을 주민과 함께 농촌개량사업을 하던중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72 324일 현지를 찾아 2시간에 걸쳐 시찰한 후 새마을운동 선진마을로 격찬하고

새마을조성비 2500만원을 하사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현재 문명교육재단 홍영기 이사장이 지난 1989 3월 사비를 털어 박정희대통령 방음동 혜림비와

새마을 상징 보조비, 새마을 정각 등을 세우고 주변 조경을 하고 전시실에 박 전 대통령이 시찰하는 전경 사진을

전시하는 등... 새마을동산을 조성해 그 정신을 알리고 있다.

 

 

 

 

 

 

 

대통령과 주민들이 함께 찍은 사진, “새마을 정신(精神)”이라는 박 대통령의 친필 글씨 등은 새마을 운동 발상지라는

경북 청도에서도 가장 모범적인 마을이 바로 이곳 방음리였다는 것을 반증하는 흔적들인데,

하지만 그렇게 모범적이었던 마을도 운문호 호수에 잠겨 버렸다.

 

새마을정자

 

 

새마을동산 뒤편에 있는 남양 홍씨 가문의 재실 겸 묘택인 운암정사(雲巖精舍)

 

 

다시 방음리 말음마을 입구 삼거리에서 막바우골쪽으로 방향을 바꾸고~

 

방음리경로당을 지난다.

 

보갑사 내 영담한지미술관.

 

영담 스님의 한지 작품을 전시하고 있는곳인데 가는날이 장날인가???

공사중으로 잠시 휴업상태다.


미술관 건너편 작은 지계곡인 무적골을 따라 오르고~

 

12:00 높이 30m정도 되는 바위폭포인 무적암을 구경하고~

 


다시 영담한지미술관으로 되돌아 나오고,
12:15 임도를 따라 계곡 상류로 향한다.

 

12:35 안마을못을 지나고~

 

또 다른 즐거움

 

 


12:50
갈림길을 만나고~

 

이곳에서 임도를 버리고 우측으로 내려선 후 작은 계곡을 건너고~

 

근처 적당한 공터에 자리잡고 점심을 해결한후 13:35 출발이다.

 

잠시후 폐허가 된 옛 화전민 밭터와 집터를 지나고~

 

여기서 주 계곡을 버리고 집터 위 우측으로 20m쯤 가다 지계곡을 만나  골짜기를 따라 오른다.

13:50 지능선을 만나고~

좌측으로 오르니 옛길의 특징을 제대로 맛볼 수 있는 갈지()자 길이 시작되고~

14:32 지능선 갈림길을 만나고, 직진하니 길이 확 넓어진다.

 

14:35 세월속에 묻혀있는 고갯길인 정거고개에 도착하고~

 

이 고개는 또 다른 이름으로 쇠등이라고도 불리기도 하는데

옛날 방음리 사람들이 동곡장이나 청도장에 소 팔러 갈 때 넘던 고개라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전 도롱굴산에서 억산으로 진행하면서 지나갔던 곳인데 당시 희미한 산길에는 리본들이 주렁주렁 달려있고,

그때 함께 산행했던 그 친구들은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그렇게 옛 추억을 회상하며 “독종골만당" 봉우리를 바라보고~


잠시후 내려서니 환상적인 옛길이 이어지고~

산허리를 돌아서 내려가는 이 길은 산행로와는 달리 그 흔한 리본 하나 보이지 않는 깔끔한 길인데,

직선이다 싶으면 어느새 갈지자로 이어지고, 다시 부드러운 곡선 길이 이어진다.

 

 

15:10 쌍묘와 폐축사를 잇따라 지나고~

 

 

 정면 저 멀리로 학일산이 눈에 들어온다.

 

 밭지대를 지나고, 축사를 지난후 마을 길로 들어서고~

 

 

 

15:35 동네 중간쯤에서 우측으로 다리를 건너고, 전신주에 임당2표시가 된 난간없는 다리다.

 

잠시 골목으로 100m쯤 진행하면 고래등 같은 대저택이 나오는데~

중요민속자료 제245호로 지정된 통정대부 정삼품 김씨고택. 일명 임당리 내시집으로 알려진 고택이다.

 


마을의 중심에 해당하는 위치에 자리 잡은 이 조선시대 가옥은 궁중 내시의 신분으로 통정대부 정3품의 관직에까지 올랐던

이색적인 내력을 지닌 김일준(金馹俊)이라는 인물이 만년에 낙향해 건립한 집이라고 한다.

이 마을에 임진왜란 전부터 400여 년간 내시가계가 이어왔다고 알려져 있지만~

김일준이라는 인물이 정확히 어느 시대의 인물인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다만 강희 이십오년 병인 윤사월이란 연기가 표시된 기와가 사용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청나라 강희제 20,

1685년 전후로 예상할 수 있지만 건물의 전체적 구조는 19세기 양식을 취하고 있어 적어도 이마저 분명하지 않다.

현재로서는 19세기 초반에 건립됐을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7동으로 된 김씨고택은 안채(6), 사랑채(4), 중사랑채(7), 큰고방채(4), 소고방채(4),

대문채(5), 사당(3)으로 구성돼 있는데 배치가 다소 특이하다.

 

대문에서 사랑마당을 거쳐 안마당으로 출입하는 중문까지 모든 통과 공간을 사랑채에서 한눈에

볼 수 있게 해 일반 사대부 저택보다 한층 더 엄격하게 내외공간이 구분돼 있는 것이다.

게다가 사랑채에서 집 안팎의 출입, 특히 안채의 출입을 철저히 관리(감시)할 수 있게 돼 있다는 점도 눈에 띈다.

사랑채의 마루를 두르고 있는 목판마다 보통 사람의 양쪽 눈 간격 정도의 거리를 가진 구멍이

나 있는 것도 특징인데, 이 구멍으로 집주인은 감시의 눈을 번득였을까???

내시가 집 주인이었음을 감안하면 어쩌면 이같은 엄격함을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다시 다리로 되돌아 나온후 개울을 따라 잠시 내려서고

15:50 임당리 마을회관 앞 버스정류소에 도착후 이번구간 마무리를 하고~

 

 

 

 

이후 시간이 많이 남는데, 어차피 걷는 것이 취미이자 특기가 아닌가???

도보로 대천버스정류장으로 이동하고~

17:08 도착한 언양행 버스를 타고 아침에 진행한 순서를 역으로 하여 부산집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