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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정맥-지맥

화왕지맥3차 (남통고개~창녕고개)

일자: 2014.11.16

산행코스: 남통고개/5번국도~×142~돌고개~×120~×201~×207~창녕고개/79번국도

인원: 홀로

GPS거리: 9.84  널널/5시간

 

부산서부터미널에서 07:00 출발하는 부곡行 시외버스를 타고 영산터미널에서 하차후

근처에 있는 영신버스정류장으로 이동하고~

08:10 출발하는 창녕行 군내버스를 타고 여초리 버스정류장에서 하차한다.

 

평화로운 여초리 지정마을의 전경

 

지난번 산행마친곳에 도착후, 화왕지맥2차산행이 시작된다.

 

5번국도 아래 뚫린 굴다리를 지나고~

 

곧바로 좌측으로 올라가 고속도로를 건너온 마루금을 만나야 하지만~

마루금은 다시 초곡리 도로로 내려오므로 160m쯤 되는 첫봉은 생략한다.

 

직진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따르다 중부내륙고속도로 아래 뚫린 굴다리를 지나고~

 

초곡리로 들어가는 도로/ ()디케이오스텍 간판이 걸린 삼거리 전경

 

지난구간 지나온 화왕산을 뒤돌아보고~

 

알쏭달쏭한 지형/ 어느곳이 마루금인지???

 

도로를 따르다 정면에 보이는 전원주택 옆길로 진행한다.

 

전원주택옆 시멘트임도길에 쇠사슬로 차단해놓았는데,

넘어가면 우측으로 수렛길이 이어진다.

 

그렇게 진행하면 묘가 연달아 나오고 묘 위로 길이 뚫려있는데 오르니 초장부터

가시잡목이 반기고, 계절이 계절인지라 온갖 접착성 풀씨들과 도깨비바늘(도둑놈가시)

지천으로 깔려있는데, 이넘들은 오늘 하루 내내 나를 따라다니며 괴롭힌다.

 

×107봉 정점에는 묘 2기가 자리하는데, 멧돼지가 온 산을 파헤쳐 놓았다.

 

이곳에서 장마면과 창녕읍 경계를 다시 만나고, 가시잡목이 무성한 좌측(서쪽)으로

내려서서 분두골 안부로 떨어졌다가 다시 오르면 숲속에 파란색 대형 수조(물통)가 있다.

 

잠시 완만한 등로가 이어지나 했더니 산길은 다시 가시잡목이 괴롭히고,

잠시 숨을 돌릴때마다 하는일이 도깨비바늘을 떼어내는 일이다.

 

×142봉에 오르고~

 

주위는 가시잡목이 둘러싸고 바닥에는 벌목이 덤불을 이루는 지저분한 봉우리다.

 

행님 잘계시죠?

 

계속 이어지는 ×126봉에 올라서니 허리높이의 잡풀이 무성한 공터다.

 

×126봉에서 좌측으로 바짝 꺾어지는 내리막길로 내려서니

오늘 처음으로 룰루랄라길이 이어진다.

 

그렇게 내려서면 전봇대에 전깃줄이 넘어가는 수렛길이 있는 안부인데~

 

좌측은 넓은 밭이고, 우측에는 철 파이프로 된 문이 닫겨있는데 개인소유 농장인듯하다.

 

다시 잡목구덩이의 오르막길을 오르니 묘지가 나타나고.

묘지로 이어지는 길을 내려서니1080번도로가 지나가는 돌고개다.

 

장마면과 창녕읍을 이어주는 2차선 아스팔트도로인데,

고개같지도 않고 그냥 평지처럼 보인다.

 

도로 건너편 밭둑을 지나 재령이공 묘 뒤로 오르니 길은 사라지고,

방향만 맞춰 가시잡목을 뚫고 오르다 묘지가 있는 80m쯤 되는 봉에서

배낭을 내리고 오늘 처음으로 휴식이다.

 

한참을 휴식후 다시 출발하니 등로는 우측으로 바짝 꺽어지고,

키 작은 소나무군락지를 지난다.

이후 다시 잡목구간이 시작되는데, 주위는 온통 도깨비바늘이 깔려있다.

잡목이 무성한 무명봉에 오르고 내려선다.

 

세월속에 묻힌 고갯길인데 좌측에는 알아보기힘든 낡은 나무판이 걸려있는데,

지도상 ×72봉 표기가 있는 월명촌 고갯길인듯 하다.

 

다시 잡목이 무성한 오르막길이 시작되고~

×120봉에 오르니 넓은 묘터앞에 오동나무 한 그루가 있는데,

묘터주위만 널찍할 뿐 다른곳은 잡목투성이다.

 

×120봉에서 좌측으로 꺾어지는 등로는 잡목이 빽빽해 틈새를 찾아 겨우 빠져나간다.

 

그렇게 이어지는 등로를 따라 오르니 GPS고도가 ×138봉을 가르키는데,

지도상 등산고개로 되어있지만 고개가 아니고 봉우리다.

 

이곳에서 좌측으로 200m더 진행하면 등산(燈山 ×147)이 있는데, 길만 좋으면

갔다 오겠지만 길도 지저분할뿐더러 특별한 봉우리 같지도 않아 그냥 패스한다.

 

등산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꺾어 진행하면 능선 좌측은 깎아지른 절개지인데,

등산과 138봉 사이의 골짜기를 깎아내고 창녕쓰레기소각장 건물을 만들어놓았다.

 

좌측 아래로는 깎아자른 수직 절벽이라 한발이라도 헛디디기라도 하면

곧바로 아래로 추락하겠다.

 

좌측으로 바라본 등산(燈山 ×147) 전경

 

절개지 가장자리를 따라 진행하는데 우측 비탈은 가시잡목투성이고, 

열심히 가위질 해대며 선답자의 흔적을 따라 절개지 날등을 조심하며 넘어간다.

 

그렇게 절개지를 겨우 빠져나와 쓰레기소각장 옆 안부에 내려서고,

잡목숲 오르막길을 올라 풍화되어 잘게 깨어져가는 바위지대를 지난다.

 

묘지가 있는 ×164봉을 오르고~

뒤돌아보니 화왕산이 멋지게 보인다.

 

햇살 따뜻한 묘지한켠에 자리를 잡고 막걸리 한잔하며 이른 점심을 해결하고~

다시 ×201봉을 향한 오르막길이 시작되는데, 오를수록 미국자리공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201봉 정상부의 전경

 

북으로 이어지는 성지산(200.2) 갈림길이고, 창녕읍, 유어면, 장마면의 삼면봉이다.

정점은 물론이고 주변 비탈 전체가 미국자리공이 점령한 상태인데,

한여름에 이곳을 지날려면 고생꽤나 하겠다.

 

물 한잔하고 좌측으로 내려서서 안부를 지나 ×207봉 오르막길을 오르니

이곳에는 가시잡목과 칡넝쿨이 갈길급한 사람의 발길을 붙잡고 늘어진다.

 

악전고투하며 산불초소가 있는 ×207봉에 오르고~

오늘 구간 최고봉이다.

 

화왕산에서 이어 온 산줄기가 잘 조망된다.

 

유어면 우포늪의 물까지 보이고, 그뒤로 산그리메가 이어진다.

 

산불초소뒤쪽 창녕고개로 내려가는 길은 온통 칡넝쿨과 가시투성이고,

도무지 뚫린 구멍이 없다.

 

방향만 확인하고 가위질 해대며 빽빽한 잡목지대 내리막길을

내려오니 능선이 갈라지는데, 창녕고개로 이어지는 능선은 좌측이다.

양 다리와 팔뚝에 빨간줄이 여러개 그어지고~

 

어느순간 안 보이던 시그널들이 하나씩 보이고 길 자국도 선명하게 드러난다.

묘지가 있는 ×126봉을 지나고, 조망도 없는 잡목 무성한 산길에

아무 생각없이 GPS만 들여다보며 이리저리 진행한다.

 

그렇게 풀숲을 헤치며 진행하는데 갑자기 앞이 확 트이며 

전기철선 울타리가 나오는데, 건너편은 전부 감나무밭이다.

 

"고압전기주의" 리본이 걸려있지만 건드려봐도 전기가 통하지않아 전기철선을 타넘고

푸른 물탱크가 있는 안부에서 전방 우측으로 돌아가는 과수원길을 따라 진행한다.

 

뒤돌아보니 산불초소가 있는 ×207봉이 잘 조망된다.

 

우측으로 이어지는 과수원 능선을 따라 진행하고~

 

능선이 내려가는 지점에서 전기 울타리를 다시 넘어 내려가니 두 번째 감나무 밭이 나오고

아래에 하얀 시멘트길이 보이는데, 앞에 보이는 봉우리 하나 더 넘어야 창녕고개다.

 

파란 물통이 있는 안부로 내려와 뒤돌아본 마루금

 

다시 잡목구덩이의 오르막길을 오르니 묘지가 나타나고.

묘지로 이어지는 길을 내려서니 79번도로가 지나가는 창녕고개다.

 

장마면과 유어면을 이어주는 2차선 아스팔트도로인데, 

이곳도 고개같지도 않고 그냥 평지처럼 보인다.

퍼질러앉아 건너편을 바라보니 잡목이 무성한 봉이 어서오라고 하지만,

다리도 아파오고 가시잡목이 무성한 능선의 연속이라 그렇게 갈 의욕도 안생긴다.

 

이곳에서 오늘구간 마무리하고~

잠시 쉬고 있는데 건너편에서 지나가는 차량이 클락션을 울린다.

너무나도 쉽게 히치당하고 ㅎ~ (태워주신 기사님 정말 고맙습니다)

 

영산터미널 인근에서 내린후 근처 목욕탕으로 직행하여 땀냄새 제거하고,

차 시간이 남아 영산터미널 근처에 있는 남산호국공원내에 있는

영산 만년교와 연지못을 둘러보고~

잠시 후 도착한 부산行 버스를 타고 부산집으로 향한다.

 

영산 만년교(靈山萬年橋) 전경

 

우리나라에는 보물로 지정된 다리가 5개가 있는데,

순천 선암사 승선교(仙巖寺昇仙橋: 보물 400), 여수 흥국사 홍교(興國寺虹橋:보물 563),

벌교홍교(筏橋虹橋: 보물 304), 고성 건봉사능파교(高城乾鳳寺凌坡橋: 보물 1336),

그리고 이 곳 영산 만년교(靈山萬年橋 보물564) .

특히 만년교는 는 조선후기 남부지방의 홍예교 축조기술의 백미로서 학술적 가치가 크다.

 

 

만년교는 길이가 약 13.5m 너비가 3m의 홍예라는 무지개 모양의 돌다리인데

남천교 양쪽의 자연 암반을 주춧돌로 삼아 홍예라는 반원형 아치모양의 구조를 걸쳤으며

홍예는 아랫쪽이 윗쪽보다 좁도록 다듬은 화강암을 반원형으로 쌓아 다리의 무게가

옆으로 작용하게 한 석구조물을 말한다.

 

 

이 구조방식은 우리나라에서는 석빙고의 천정이나 무지개다리를 만드는 기술로

사용하였으며 홍예석의 윗면에는 자연석으로 쌓았고 그 위에 흙으로 덮어

다리를 완공하는 공법을 사용해서 만들어서 만년을 간다는 다리이다.

 

 

만년교는 원님이 다리를 고쳐 주었다고 하여 ()다리 라고도 하며

이 다리의 경계에 세워진 남천석교비(南天石橋碑)에 의하면 정조 4(1780)

석수 백진기(白進己)가 축조하였고, 고종 29(1892) 현감 신관조(申觀朝)

석수 김내경(金乃敬)을 시켜서 중수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본래 남천에는 나무다리가 있었는데 홍수 등으로 자주 떠내려가자 홍예교인

만년교를 원님과 마을주민들이 자발적으로 홍예교를 축조했다고 한다.

다리 입구에는 비석이 하나 있는데, 만년교가 처음 완성될 무렵 이 고을에는

신통한 필력(筆力)을 가진 13살 난 신동(神童)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다리가 완공되던 날 밤 소년의 꿈속에 나타난 노인은 자신이 산신임을 자처하며

듣건대, 네가 신필(神筆)이라고 하니 내가 거닐 다리에 네 글씨를 새겨놓고 싶다.

다리의 이름은 만년교로 정하겠다.”고 말하였다.

노인이 사라진 뒤 소년은 먹을 갈아 萬年橋의 석 자를 밤을 새워 써 놓았다고 한다.

다리 입구에 남아 있는 이 비석은 글씨가 기운차고 살아 움직이는 듯 가히

명필임을 알 수 있는데 끝에는 十三歲書’”라고 씌어 있었다고 한다.

 

영산 연지못

 

 

 

예부터 영산 고을의 진산인 영축산은 불덩어리의 형상을 띈 산이므로

고을에 화재가 자주 일어날 수 있다 하여 "불은 물로 다스린다"

오행 사항에 의거 불기운을 억누르기 위해 만든 인공 연못이다.

못 안에는 다섯개의 인공 섬이 있는데 이것은 영산에 있는 남산의 청룡이 낙동강으로

흘러 가 버리는 것을 막기 위해 용의 알처럼 인공 섬을 형상화 한 것 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