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산에 오르는 이유는 한마디로 웰빙이다.
그 어떤 운동보다도 비용이 적게 든다.
등산화 하나 신고 그냥 오르기만 하면 된다.
얼마나 편하고 좋은가…
걷는 그 자체가 운동이다.
운동을 하면서…
다른 모든 경기는 반쪽의 승리로 귀결된다.
축구는 양쪽 편이 22명이 뛰면 11명은 승자가 되고
반대 편의 11명은 패자가 된다.
어찌 축구뿐이랴…
모든 경기가 이런 식으로 절반의 승리인 셈이다.
반면에 등산은 모두가 승리자다.
모두가 자기의 페이스대로 산에 오르고...
마음속에 응어리진 거,
산에 오르면서 가지고 갔던 화두
모두다 해결하고서 스스로 미소 짖고
내려오는 것이 바로 산이다.
그래서
仁者樂山(인자요산) -어진이는 산을 좋아한다.-이라고 한다.
산은 우리 모두를 포용한다.
산에 올라가서 아무리 밟고 파고 뒤집고 해도 화내지 않는다.
산은 우리에게 먹을 것을 제공한다.
산에 올라가서 보면 먹을 것이 많다.
산나물 더덕, 머루, 다래 등등...
산은 우리에게 휴식공간을 제공한다.
산에 올라가서 보면 그늘이 있고,
쉼터가 있고 온 몸을 휴식공간으로 제공한다.
산은 풀과 나무가 자라게 하고,
새와 짐승들을 불러들여 번식하게 한다.
산은 모든 생물들이 나아 자라게 하면서도
자기 것 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누가 와서 풀과 나무를 베어가더라도
자기 것 이라고 여기지 않고 기꺼이 내준다.
너그러움 그 자체 아닌가...
산은 구름을 돌리고 바람을 일으켜 세워서
하늘과 땅사이를 소통시키고
양기와 음기를 화합하게 하며 비와 이슬로 하여금
만물이 살아갈 여건을 만들어 주며
온 세상사람들은 그것을 먹고 살아간다.
이 정도면 그는 이미 성인의 경지인 셈이다.
그런 모습을 본받기 위해서 우리는
오늘도 내일도 산에 오르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산에 대해서 겸손해 질 필요가 있다.
그 어떤 운동보다 편가르기 하지 않고
모두를 승자로 만들어주는 산에게...
내가 산에 오르는 이유는
산을 사랑하는 철학이 있어서가 아니라
자연 속으로의 여행을 꿈꾸기 때문이고,
내가 산에 오르는 이유는
산을 올라야 하는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라
산에 오름으로 해서 비로소
내가 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며,
내가 산에 오르는 이유는
산 꼭대기에 올라 정상에 올랐다는
희열을 맛보기 위함이 아니라
자연 앞에서 내 스스로가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가를 깨닫고
겸손해 지고 싶어서이며,
내가 산에 오르는 이유는
겸손을 깨닫기 위함이 아니라 욕심에 대한
끝없는 고통을 산에서 자연 속에서
버리고 싶은 지극히 개인적인 이기심이다.
그러나
내가 산을 계속 더 올라야 하는 이유는
그 이기심을 비우고 좀더 멋진 삶으로의
여행을 꿈꾸기 때문이며,
모두를 사랑할 수 있도록
크고 아름다운 마음으로 채워질 공간을
자연의 넉넉함으로 부터 배우기 위함이다.
내가 산을 오르는 것은
결국 "사랑"을 배우기 위함이다.
태산이 높다 해도 하늘아래 뫼이로다.
산은 언제나 그자리 에 있어서,
산 아래 산이 없고 산 위에 산 없다.
不立山下不上 不山
산에 오르는 이유를 묻지 말며,
내가 산에 오르고
산이 인간을 안아 반겨줌으로서
그저 유유자적하며 산을 즐기자.
내가 산에 대한 애정을 느끼며
마음 속에 산을 담고
넘어야 할 산은 내 마음속에 있음을 깨닫고
높은 산은 높아서 좋고, 낮은 산은 편해서 좋다.
그저 산이 좋아 잊고 있었던 사람과 무심했던
자연과 내가 하나 됨을 느끼며
내가 나를 사랑하며 내 삶에 길을 간다.
산을 오를 때 나는 산이 된다.
가끔 어떤 이는 산을 왜 오르냐고 묻지만
산을 오른 사람만이 그 즐거움을 안다.
산을 오를 때 나는 나무가 된다.
가끔 어떤 이는 다시 내려와야 하는데
왜 오르냐고 묻지만
산을 오른 사람만이 한 뼘의 성숙을 안다.
산을 오를 때 나는 하늘이 되고 바람이 된다.
새가 되고 때론 낙엽이 된다.
가슴에 얹힌 돌덩이 하나 산 꼭대기에 내려놓고
그리운 이름들 나무 꼭대기에 걸어놓고
한 발 한 발 내려 올 때면
마음에 남아있는 것은 생에 대한 겸허와 가벼움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산을 오른다.
내가 산에 오르는 이유는
나와 마음의 대화를 하고 싶어서이다.
정형의 틀에서 벗어나
침묵하던 내면의 소리를 들으며
소박하고 순수하던
나로 되돌려 놓고
깊이 사랑하고 싶어서이다.
산이 높고 낮음은 아무 의미가 없다
산다는 것의 고지는
어느 산을 정복하여도 늘 부족하기만 한
하늘의 높이 아니던가.
산은 말이 없다.
나도 말을 잃었다.
침묵이 버거울 때마다
가슴에 쌓인 체증이
거친 숨소리에 섞여 연방 튀어나온다.
걸음 걸음 발 밑에 밟히던 애증도
어느 즈음 아픔을 잊은가 보다.
자연 속의 나만 있을 뿐이다.
시원한 산바람이 온 몸을 휘어 감는다.
어떤 사람들이 산에 오른다.
또 어떤 사람들은 산에 오르지 않는다.
산에 오르지 않는 사람들은 산에 오르는 사람에게 묻는다.
산에서 내려올걸 왜 올라가느냐고?
산에 오르는 사람들은 보통 그냥 웃거나,
산이 있어 오른다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나는 왜 산에 오르는 것일까?
산이 있으니까 그냥 산에 오른다?
글쎄 내 스스로 생각해도 별로 근사한 대답이 아닌 것 같다.
그럼 산에 오르는 이유는? 목적은?
글쎄 꼭 이유나 목적이 있어야 한다는 법도 없는데…
아주 근사하거나 타당한 이유나 목적은 없지만
그래도 주말이면 산에 오르고,
산에 오르지 못하고 맞이하는 한 주는 왠지 모르게
상쾌하지 못한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는
소위 "등산 중독증"에 걸려버린 생활을 나는 사랑한다.
오래 전에 아이들과 산에 올라서
등산의 이점에 관해 이야기를 하였는데,
등산은 운동을 하고 땀을 흘리니 건강에 좋고,
나무나 풀 등 식물에 관한 지식을 얻을 수 있어 좋고,
나무, 흙, 바위 등을 직접 보고 느끼게 되어
자연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좋고,
힘겹게 산을 오르면서 끈기와 인내를 배울 수 있어 좋고,
정상에 올라 자신감과 성취감을 느낄 수 있어 좋고,
등등 끝없이 좋은 점을 나열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하지만 위의 모든 이점이라는 것이 배우고, 얻고
또 느끼는 지극히 인간 중심의 관점이 아닐 수 없어 씁쓸하다.
혼자서 늘 집 주위의 산에 오르다,
아니면 혼자서 3-4 시간의 일반산행을 하다가
10시간 이상의 장거리산행을 하다보면
육체적인 고통이 따를뿐만 아니라 가끔은
예상치 못하였던 사건들도 일어 난다.
산행 시간이 길다 보면 자신과의 대화도 자연스럽게 나누게 되는데
대화 내용에는 자신, 가족, 직장 등 나 자신의 생활에 관한 부분도 있고,
삶과 죽음, 종교 등 인간 존재의 본질에 관한 부분도 있다.
가끔은 산에 오르는 이유를 자문해 보는 경우도 있다.
그러는 가운데 언제부터인가 산에 오르는 이유를 생각해 내었다.
즉, 산에 오르는 이유는 "버리기 위해 산에 오른다” 이다.
산에 올라 탐욕을 버리고, 성냄을 버리고,
어리석음을 버리고 산을 내려온다는 것인데
어떻게 보면 이유라기 보다는 다짐에 가까운 내용이다.
산 속에서, 고통 속에서, 자신 앞에서 겸손하고
솔직해지다 보니 탐(貪), 진(瞋), 치(癡)의 放棄가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임을 깨닫게 되고 이를 실천하고자 노력하는 것이 아닐까?
곧 봄이다.
산은 온갖 신록으로 뒤덮혀서 산꾼들을 유혹할것이다.
이번 주말에는 산에 올라 산에 오르는 이유를
아니 산에 올라 새로운 다짐을 열심히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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