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대사(西山大師, 1520-1604)
묘향산 원적암에서 칩거하며 많은 제자를 가르치던
서산대사께서 제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거울을 보다가 빙그레 웃으며 한마디 했다.
八十年前渠是我 (팔십년전거시아)
八十年後我是渠 (팔십년후아시거)
팔십 년 전에는 네가 나였는데
팔십 년 후에는 내가 너로구나.
그리고 다음과 같은 임종게를 남기시고,
많은 제자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가부좌(跏趺坐)를 하고 앉아
잠든 듯 입적(入寂) 하셨다고 합니다.
살아 있는 게 무언가?
숨 한번 들여 마시고 마신 숨 다시 뱉어내고...
가졌다 버렸다, 버렸다 가졌다.
그게 바로 살아 있다는 증표 아니던가?
그러다 어느 한 순간
들여 마신 숨 내뱉지 못하면
그게 바로 죽는 것이지.
어느 누가, 그 값을 내라고도 하지 않는
공기 한 모금도 가졌던 것 버릴 줄 모르면 그게 곧 저승
가는 것인 줄 뻔히 알면서 어찌 그렇게 이것도 내 것
저것도 내 것, 모두 다 내 것인 양 움켜쥐려고만 하시는가?
아무리 많이 가졌어도 저승길 가는 데는
티끌 하나도 못 가지고 가는 법이리니
쓸 만큼 쓰고 남은 것은 버릴 줄도 아시게나.
자네가 움켜쥔 게 웬만큼 되거들랑
자네보다 더 아쉬운 사람에게 자네 것 좀 나눠주고
그들의 마음 밭에 자네 추억 씨앗 뿌려 사람 사람 마음속에
향기로운 꽃 피우면 천국이 따로 없네,
극락이 따로 없다네.
生縱何處來 (생종하처래)
死向何處去 (사향하처거)
生也一片浮雲起 (생야일편부운기)
死也一片浮雲滅 (사야일편부운멸)
浮雲自體本無實 (부운자체본무실)
生死去來亦如然 (생사거래역여연)
생이란 어디로부터 왔다가
죽음이란 또한 어디로 가는 것일까
생이란 한 조각 뜬구름이 일어남이요
죽음이란 한 조각 뜬구름이 멸하는 것이로다.
뜬구름 자체가 본래 실이 있는 것이 아니니
나고 죽고 오고 감이 모두 그와 같도다.
千計萬思量 (천계만사량)
紅爐一點雪 (홍로일점설)
泥牛水上行 (이우수상행)
大地虛空裂 (대지허공렬)
천 가지 계획과 만 가지 생각이
불타는 화로 위의 한 점 눈(雪)이로다.
진흙 소가 물 위로 걸어가니
대지와 허공이 갈라지는구나.
*게(偈): 산스크리트어 가타(Gatha)를 한자음으로 표기한 것이다.
한어(漢語)로는 "송(頌)"이라 번역한다.
산스크리트어와 한어를 합쳐 "게송(偈頌)"이라고도 한다.
부처를 찬양하거나 깨달음을 읊은 말이다.
*임종게(臨終偈): 입적할 때, 또는 수행을 통해 얻은 깨달음을
후인들에게 전하는 마지막 말이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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