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스님의 법화경강해-21
♧진실한 가르침은 어렵지 않다♧
방편품의 취지는 진실한 가르침의 드러내어
진실과 방편의 다른점은 무엇인가를 잘 이해하도록 합니다.
진실한 가르침은 쉽고 방편의 가르침은 어렵습니다.
대개의 사람들은 수많은 세월동안 수행을 쌓아야 성불에 이른다는
방편의 어려운 가르침은 잘 수긍하면서 사람이 그대로 부처님이라는
진실하고도 쉬운 가르침은 오히려 이해를 못합니다.
부처님께서 성도(成道) 하시고 나서 이 세상이 그대로 진리의 세계(洗界)라고
선언하신 화엄경의 내용을 알아듣는 이가 없어서 하는 수 없이
『아함경』이라는 방편의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요즘 일반인의 법회에서도 "그대들이 온갖 감정과 모순과 번뇌망상을
지닌 채 그대로 부처님" 이라고 하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의아해 합니다.
너무도 쉽고 진실한 가르침인데도 그 말씀을 받아들일 만한 순수한 마음이 없어서입니다.
법화경의 정수라고 할 만한 참으로 쉽고도 진실한 말씀이 너무도 아까워서
다시 한번 소개하고 음미하여 봅니다.
인불사상의 핵심이며, 가장 평이하게 표현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경문: "사리불이여, 그대들은 내 말을 일심으로 믿고 이해하여 받아 지니도록 하라.
모든 부처님의 말씀은 거짓이 없고 진실하니라.
이승(二乘)이나 삼승(三乘)은 없고 오직 일불승(一佛乘) 즉 부처님만 있느니라.
과거의 사람들은 과거의 부처님을 만나 설법을 듣거나 보시를 행하며 계를 가지고
인욕을 하며 정진. 선정. 지혜 등으로 온갖 복과 지혜를 닦은 이들이 모두 이미 성불였느니라.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후 무수한 탑을 세워 훌륭하게 꾸미고
부처님의 사리에 공양한 사람들은 모두 이미 성불하였느니라.
어린아이의 장난으로 모래를 쌓아놓고 불탑이라고 하는 이들도 다 이미 성불하였느니라.
또 부처님을 위하여 여러가지 형상과 조각으로 갖가지 불상을 만든 이들도 다 이미 성불하였고,
어린아이의 장난으로 풀이나 나무나 붓이나 손톱으로 불상을 그린 사람들도 다 이미 성불하였느니라.
부처님의 탑이다 불상이나 탱화에 꽃이나 향 등 온갖 공양거리로
공양을 올린 이들도 이미 다 성불하였느니라.
기쁜 마음으로 부처님의 덕을 찬탄하는 노래를 부르거나,
설사 산란한 마음으로 꽃 한 송이 부처님께 공양한 사람들,
부처님께 예배하거나 단지 합장만 하여도 모두 이미 성불하였느니라.
손을 한번 들거나 머리를 약간만 숙여 불상에 공양한 이들도 차츰 수많은 부처님을 만나
무상도(無上道)를 이루어 한량없는 중생들을 제도한 뒤에 무여열반에 들었느니라.
산란한 마음으로 탑전(塔前)에 들어가서 '나무불'이라고 한 번만 외워도 이미 다 성불하였느니라."
강의: 성불하는 일이 이렇게 쉽습니다.
다시 한번 거듭 말씀드리지만, 경문의 가르침도 실은 표현을 하자니
그런 일을 인연으로 하여 성불하였다고 할 뿐입니다.
설사 그런 일을 한 적이 전혀 없어도 이미 모두들 성불한 것입니다.
불교가 무엇인지, 부처님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까지도
이미 완전한 부처님이라는 사실입니다.
산란심, 망상심으로 꽃 한 송이 바친 것이 무슨 공덕이 있어서
그것으로 성불을 말하겠습니까.
망상이 부글부글 끓는 마음으로 "부처님" 이라고 한 번 부른 것이
무슨 힘이 되기에 그것으로 성불을 말 하겠습니까.
전혀 그런 일이 없어도 이미 우리는 부처님입니다.
모든 생명 모든 사람들은 모두가 빠짐없이 부처님입니다.
아래에 수많은 수기를 주지만 그 곳에서 구체적인 부처로서의 이름이나 국토나
법이 유지되는 햇수 같은 것을 말하지만 그것은 모두가 형식인 것입니다.
그러나 다만 사람들이 확신을 갖지 못할 뿐입니다.
부처님의 지혜란 다름 아닌 자신이 조금도 부족한 것이 없는
부처님이라는 사실을 아는 일입니다.
영원한 생명의 존재요, 무한한 능력을 소유한 존재요,
만행(萬行) 만덕(萬德)을 다 갖춘 실로 위대한 존재입니다.
다만 스스로 갖추고 있으나 무엇이 영원한 생명이며, 무엇이 무한한 능력이며,
무엇이 만행 만덕인지를 모르고 있을 뿐입니다.
매일 매순간 쓰고 있으면서도 모르고 있습니다.
이렇게 글을 읽고 말소리를 듣는 이 사실이 곧 부처님으로서의 능력입니다.
책을 읽고 말을 듣는 그것을 잘 인식하십시오.
매일 밤마다 부처님과 함께 자고 매일 아침마다 부처님과 함께 일어나면서도,
아니 자신이 부처님으로 잠을 자고 부처님으로 일어나면서도 그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법화경은 그것을 깨우쳐 주는 가르침입니다.
그 가르침이 위에 소개한 경문입니다.
이보다 더 쉽고 진실한 가르침은 일찍이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부처님은 오래도록 비장해 두었던 최후의 가르침이라고 하셨습니다.
아무에게나 말할 수 없는 가르침이라고 하셨습니다.
경문의 말씀이 이러한 내용이라는 것을 이렇게 완전히 드러내어
설명하는 것도 아마 처음 있는 일이 아닌가 합니다.
법화경의 진실이 이제야 밝혀 졌습니다.
망상이 있어서 부처님이 아니라는 말을 많이들 합니다.
번뇌가 많아서 부처님이 못 된다는 말을 많이들 합니다.
방편으로 설한 경전에는 그와 같은 가르침도 많습니다.
몸에는 온갖 병고를 가지고 있고, 마음에는 숱한 번뇌가 끓어도
그 번뇌 있는 그대로 부처님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병고를 앓느라고 밤낮 없이 신음하고 고통스러워 하더라도 그 고통스러워하는
그 자체가 부처님의 신통이라는 사시를 알아야 합니다.
번뇌하는 부천처님이요, 신음하고 아파하는 부처님입니다.
번뇌없는 부처님은 없습니다.
신음하지 않고 고통 없는 부처님은 없습니다.
산란한마음, 망상하는 마음으로 "부처님" 하는 그 사람이
곧 부처님이라고 법화경은 밝히고 있습니다.
이보다 더 명확한 가르침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법화경은 최후의 가르침이요, 더 이상은 없는 가르침이라고 합니다.
참으로 아무에게나 말할 수 없는 가르침입니다.
부처님께서 비장해 두었던 소중한 가르침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은 전부가 부처님입니다.
부처님으로 받들어 섬깁시다.
부처님으로 받들어 섬기면 그도 행복하고 나도 행복하고 온 세상이 다 행복합니다.
나를 미워해서 나를 때리고 나를 욕하고 나를 음해하고 숱한 비방의 화살을 퍼부어 대는 사람,
그를 부처님으로 받들지 않는다면 그 아픔을, 그 분노를 어떻게 견딜수 있겠습니까.
달리 다른 길은 없습니다.
그들은 부처님으로 받들어 섬기는 길밖에 달리 해결의 길은 없습니다.
그들은 실로 부처님 이십니다.
테러를 응징하지 마십시오.
테러를 응징한다고 전쟁을 일으켜서 죄도 없는 무수한 사람들을
살상하는 일은 더 무서운 테러입니다.
다시 한번 제바달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만, 부처님과 모든 불교도의
만고의 원수인 제바달다를 세존은 스승으로 받들어 섬겼습니다.
옛날 세속에서의 태자시절부터 부처님께서 출가하여 깨달음을 이루고
교단을 세우고 크게 교화활동을 펴는 동안에도 제바달다가 죽을 때까지
얼마나 오랜 세월 동안 부처님을 괴롭혔습니까.
수많은 제자들과 교단을 괴롭혔습니까.
그런 제바달다를 부처님은 스승으로 불렀습니다.
부처님으로 수기하셨습니다.
그를 스승으로 부르기까지 세존은 얼마나 힘들었고 괴로웠겠습니까.
그와 같은 만고의 원결(怨結)을 세존은 그렇게 풀었습니다.
내가 부처가 된 것도 모두 그의 덕택이라고 법화경은 말합니다.
참으로 눈물겹고 가슴 저미는 절규입니다.
세존은 그를 진정으로 부처님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원결을 풀기 위해 그를 부처님으로 본 것이 아닙니다.
원결을 없애자고 스승으로 섬긴 것이 아닙니다.
세존은 그를 진정으로 스승으로 섬긴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진정 부처님이기에 부처님으로 수기하신 것입니다
▷다음에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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