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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파랑길

해파랑길 부산3구간

답사일자: 2021.12.22

코스: 대변항(시점)-남산봉수대/봉대산-기장군청-기장경찰서-일광해수욕장-이천마을

-이동마을-온정마을-동백마을-신평소공원-칠암마을-문중마을-문동마을-임랑해수욕장(종점)

인원: 나홀로 (이사. 곽차)

거리: GPS 17.76km (두루누비기준 16.5km)

시간: 널널.촬영&휴식포함/ 4시간40분

 

▶ 갈때 : 개금집에서 부전역으로~ 광역전철 동해선 타고 오시리아역에서 하차,

139번 버스 환승하여 대변항 하차, 시점까지 도보 이동

▶ 올때 : 임랑삼거리 버스정류장에서 188번 버스타고 일광역버스정류장에 하차.

일광역에서 광역전철 동해선 환승하여 부전역으로, 110-1 시내버스 환승하여 개금집으로 귀가.

 

 

(09:10)  대변항입구 해파랑길 3코스 종합안내판

 

대변항입구 해파랑길 3코스 종합안내판 좌측에 있는 3코스 스탬프를 찍고

대변항으로 들어서며 해파랑길 3코스가 시작된다.

 

 

대변항(大邊港)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대변리에 있는 어항으로 기장9포중의 하나였던

무지포가 오늘날의 대변항인데, 대변이란 지명은 “대동고(大同庫, 창고)가 있던 갯가”란 뜻으로

“대동고변포(大同庫邊浦)”를 줄여서 대변포라고 한데서 유래되어 1914년 대변마을로 정착되었으며,

주변 바다에 플랑크톤이 풍부해 전국 최고의 미역양식장으로 각광 받고있는 곳이다.

기장멸치의 본고장이며, 이곳에서 생산되는 멸치는 영양과 맛에서 모두 우수해 젓갈과 횟감으로

인기가 높으며 국내 멸치 생산량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기장의 유일한 섬인 죽도 주변에서 채취되는 미역은 전국적으로 유명하며 인근 대변마을은

“한국 아름다운 어촌 100선”에 선정된 마을이다.

 

 

(09:15)  용암초등학교/ 구.대변초등학교 교정에 세워져 있는 척화비

 

척화비는 고종 때 섭정의 자리에 있었던 흥선대원군이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를 겪은 뒤 세운 비석이다.

대원군이 제국주의의 침략을 배격하고, 쇄국을 강화하기 위한 굳은 결의를 나타내고, 백성들에게 서양 열강의 침략에

대한 각성을 촉구하기 위해 신미양요 직후인 1871년9고종8) 4월에 서울과 전국의 중요한 곳에 세운 비석이다.

비문을 해석하면~

“서양 오랑캐가 침입하였는데 싸우지 않으면 곧 화친하는 것이요,

화친을 주장하는 것은 나라를 팔아먹는 것이다” 라는 것이다.

당초 대변항 방파제 안쪽에 세워져 있다가, 일제시대 항만을 축조하면서 바다에 던져버렸던 것을

해방후 1947년경 마을청년들이 인양하여 지금의 위치로 옮겨 놓았다.

 

 

대변항 멸치테마광장

 

대변항은 전국 유자망 멸치 어획량 60% 이상을 차지하는 전국 최대의 멸치 산지다.

기장 멸치의 대명사인 대변항에는 젓갈, 미역, 멸치 판매하는 점포와 멸치 전문식당이 쭉 늘어서 있는데, 

식당에서는 찌개, 조림, 튀김, 구이, 회 등을 판매하는데 현재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분위기가 예전만 못하다.

 

 

(09:20)  대변항갈림길

 

우측으로 계속 대변항을 끼고 죽성방향으로 가면 해안가를 돌면서 드림세트장과 황학대가 나오는데,

해파랑길은 좌측 봉대산 방향이다.

 

 

이후 첫번째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두번째 갈림길에서도 우측으로,

세번째 갈림길에서도 우측으로, 이후 산으로 올라간다.

 

 

(09:30)  월전마을갈림길에서 좌측 봉대산 방향으로 올라간다.

 

이후 몇개의 갈림길을 지난후 능선에 올라서니 (09:50)  남산봉수대갈림길이다.

좌측으로 해파랑길은 이어지지만 우측에 있는 남산봉수대로 간다.

 

 

(09:52)  남산봉수대

 

부산광역시 기장군 기장읍 죽성리 봉대산에 있는 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의 봉수대다.

건립된 시기는 고려 초기인 985년으로 추정되며, 특히 13세기 이후 왜구들이 자주 해안에 출몰하면서

연변 봉수의 기능이 중요해진 것으로 여겨진다.

조선 시대에도 이미 1461년(세조 7) 이전에 남산봉수대가 존재하였으며, 이는 고려 시대에 있었던

봉수대가 계승된 것으로 추정된다.

연대는 원형을 상실한 채 흔적만 남아 있고, 연소실 등은 확인할 수 없다.

봉대산의 정상에 있는 까닭에 연소실을 무너뜨리고 평평하게 하여 지적 측량의 원점으로 삼고 있다.

1995년 12월 15일 부산광역시 문화재 자료 제2호로 지정되었다.

 

 

남산봉수대 아래 죽성리와 좌측방향의 조망

 

남산봉수대 아래 우측방향의 조망

 

달음산 땡겨보고~

 

(10:00)  남산봉수대갈림길로 되돌아 나온후 기장문화원 방향으로 직진이다.

곧 체육시설을 지나고~

 

 

(10:05)  무양마을갈림길에서는 우측으로 진행하여 능선을 내려선다.

 

(10:15)  기장문화원갈림길에서 우측 우신네오빌아파트 방향이다.

 

(10:18)  작은저수지가 있는 죽곡지에서 좌측 방향이다.

 

기장군청 뒷편 우측의 달음산, 월음산을 바라보고~

 

이후 우신네오빌아파트와 논.밭을 지나고 (10:25)  도로로 내려서서 우측이다.

 

이후 해파랑길은 죽성사거리방향으로 진행하지 않고 우측의 기장군청으로 들어간다.

 

(10:30)  기장군청으로 들어가는데 도로 우측의 보건소앞에는

코로나19 검사를 받기위해 많은 시민들이 줄을 서고있다.

 

(10:35)  기장군청앞에서 우측 죽성교를 건너고~

 

7번국도/ 기장대로를 따라 기장체육관, 기장경찰서를 연달아 지난다.

 

 

 

(10:52)  일광삼거리 도로갈림길에서 우측 일광해수욕장 방향으로 진행하고~

 

 

(10:57)  황금부동산이 있는 갈림길에서 우측 삼성천옆 소로따라 간다.

 

잠시후 소로에서 차로로 나와 우측 일광해수욕장 방향으로 간다.

 

 

(11:05)  일광해수욕장

 

(11:10)  삼성대(三聖臺)

 

고려말 정몽주, 이색, 이숭인의 세 성인이 유람하였다고 전해지는 삼성대(三聖臺)는

기장군 일광면 삼성리 삼성마을 남쪽에 있는 해변일대를 일컫는다.

지금은 바닷가 백사장 한 가운데 있는 언덕진 곳으로 삼성대 보다 일광해수욕장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옛 문헌인『기장현읍지(機張縣邑誌, 1899) 명승조에 삼성대는 “군(郡)에서 동쪽 10리에 있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차성가(車城歌, 1860)』에는 “삼성대 좋은 약수 만병회춘 화전이요”라고 약수터에 대한 내용만 소개하고 있다.

삼성대의 이름 유래는 세분의 성인이 이곳에 와서 경치를 즐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전하는데,

삼성이란 첫째로, 삼성교(三聖敎)에서 모시는 환인천제, 환웅대왕, 단군왕검의 세분 성인이라는 설.

둘째로, 신라의 원효대사(元大師), 의상대사(義湘大師), 윤필 선생(尹弼先生)이라는 설.

셋째는 고려말기 세분의 성인, 목은(牧隱) 이색(李穡),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도은(陶隱) 이숭인(李崇仁)의

세 분을 칭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러한 세 가지의 주장들은 그럴 듯한 해석은 될 수 있으나, 아무런 근거가 없고,

이곳 기장지역의 지리적 자연환경과는 맞지 않는 가설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삼성대란 이름은 어디서 유래된 것일까?

그것은 샘섟대라는 옛 이름에서 유래를 찾을 수 있다.

샘은 남쪽에 있는 약수 샘을 말함이고, 섟은 배를 매어두는 곳을 말한다.

샘섟대를 이곳 방언으로 세성대라 불렀다.

이 샘은 파도가 넘실거리는 바닷가에 있어 희귀하고,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고

물이 풍부하게 솟아 보약처럼 귀중하다 한다.

그리하여 이곳을 샘이 있는 섟이라 불렀는데, 이는 이 지방의 방언으로 세성이라 불렀던 것 같다.

세성은 한자 표기로 井泊인데 소리나는 데로 삼성대(三聖臺)로 불리게 된 것으로 보는 게 타당한 것 같다.

갯가를 천대하던 조선시대에 묘하게 성인 성(聖)자를 썼던 것으로 보아 옛날 이곳에 펼쳐져 있는 백사장과 해송 사이로

넘실거리는 파도는 신선이나 성인들이 노닐만한 아름다운 곳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지금은 해송과 백사장이 많이 사라져 옛 정취만 못해도 강송정과 남쪽 백사장에는 해송림이 남아있다.

 

 

이곳에 고산 윤선도 선생 시비가 세워져 있는데~

 

35세 때인 1621년 8월, 일광의 삼성대(三聖臺)에서 동생과 작별하며 지은 '증별소제(贈別少弟)'는 울림이 깊다.

“증별소제(贈別少弟)”

네 뜻을 따르자니 새로운 길 얼마나 많은 산이 막을 것이며 세파를 따르자면 얼굴이 부끄러워짐을 어찌하리오

이별을 당하여 오직 천 갈래 눈물만이 너의 옷자락에 뿌려져 점점이 아롱지네.

 

 

(11:20)  이천항 해안길 강송교

 

1997년 기장문인협회가 세운 '갯마을표지석

 

표지석에 적힌 소설 속 한 구절이 향수를 자극한다.

'상수도 징용으로 뽑혀가고 말았다. 허전했다.

생각 끝에 해순이는 전 남편의 제삿날 다시 갯마을을 찾았다.

그녀는 갯마을이 더 좋았다.'

소설가 오영수(1914~1979)의 소설 '갯마을'(1953년)의 무대인데 동명의 영화도 여기서 촬영됐다.

소설의 배경인 강송정(江松亭)과 느티나무, 느릅나무, 당집 등이 남아 있어 문화기행 장소로 제격이다.

 

 

해풍으로 오징어를 말리고 있는 해안가

 

(11:25)  이천항

 

이천마을의 옛 지명은 '이을포(伊乙浦)'. 얼개, 즉 '연결한 개'라는 의미다.

개는 갯가를 뜻하는 포(浦)로, 개를 이었다는 뜻이라고 한다지만 이는  말뚝[梁]을 이어 얼개를

만든 것에서 유래했을 것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1530]에 “이을포(伊乙浦)는 현에서 동쪽 6리에 있다.

어량(魚梁)이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어량[강물의 물살을 막기위해 일광천 하구 조수가 밀려드는

지점에 소나무 말뚝[梁]을  나란히 이어지도록 연결하여 '얼개'를 만들어놓고 이 얼개에 통발을 놓아

고기를 잡는 시설]을 이곳에서는 ‘일개’ 혹은 ‘이을개’라 불러 지명이 유래되었다고도 전한다.

이천리는 이을포와 마을 앞을 흐르는 ‘하천 천(川)’ 자가 합성되어 비롯되었다.

 

 

이후 이천마을끝 해녀복지회관 앞에서 좌측 한국유리공업 담벼락 좁은길을 따라 간다.

 

그러다가 자갈해안을 따라 진행하고~

 

다시 차로로 나와 해안도로를 따르다 우측에 있는 이동마을로 들어간다.

 

 

(11:45)  이동항

 

이동마을의 옛 지명은 '바둑개'인데 바둑돌이 갯가에 널려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이를 기포(基浦)라고 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1530] 산천조(山川條)에 “검은 바둑돌이 산출된다 하여

기포(基浦)라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호구총수(戶口總數)』[1789]에 “기장현 동면(東面) 기포”가 있어 조선 전기부터 마을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후 마을끝에 있는 삼기물산앞에서 좌측으로 올라서고~

(11:48)  해안도로를 따라 간다.

 

(12:02)  해안도로옆 테크길~

 

(12:08)  해동소원성취사& 법고 모형의 화장실

 

(12:11)  해파랑길은 우측에 있는 온정마을로 들어간다.

 

(12:15)  온정항

 

온정마을은 1970년 한수원(주)고리원자력본부로 인하여 집단 이주한 마을로써 주위환경은 좋은곳이나

관광객 등 많은 사람들이 평일에도 많이 찾아오는 바람에 사람들로 인하여 몸살을 앓고있는 실정이다.

 

 

(12:20)  쉼터

(10분 휴식)

 

(12:40)  동백항

 

동백마을의 형성 시기는 명확히 알수 없으나 조선시대에 송씨(宋氏), 남씨(南氏)가 정착하여 형성되었다고 전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1530]에서 확인되는 동백포(冬栢浦)에 있는 마을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이후 동백마을끝 파인글로우브 카페와 정자가 있는 갈림길에서 우측 해안가로 진행하고~

 

(12:52)  신평소공원

 

바닷가의 작은 공원에 배를 형상화한 조각물이 설치되어 있는데~

배 조형물 길이는 18.86m이고, 폭은 12m이며, 높이는 15.5m이다.

기장바다의 풍경과 아침 해를 감상할 수 있는 휴양시설로 일반 사진 촬영과 풍경 웨딩 촬영을

모두 할 수 있는 기장바다의 추억을 담을 수 있는 좋은 공간이다.

 

 

신평소공원 주위 갯바위

 

해국...

 

(13:00)  칠암항

 

칠암마을 앞에는 검은 바위가 있는데, 이를 옻바위라고 한다.

옻바위가 한자로 칠암(漆岩)인데, 칠(漆) 자가 쓰기 어려워 ‘일곱 칠(七)’ 자로 바뀌었다고도 하고,

마을 앞에 7개의 검은 바위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칠암마을 인근에 삼국 시대 유적이 발견됨에 따라 일찍부터 사람이 살았음을 추정할 수 있다.

칠암마을은 『호구총수(戶口總數)』[1789]에 의하면 기장현 중북면 칠포(柒浦)에 속하였고,

『기장현읍지(機張縣邑誌)』[1855]에는 기장현 하미면(下味面) 독이방(禿伊坊)이었으며,

『경상남도 기장읍지』[1904]에는 기장군 중북면 칠암리(漆巖里)였다.

칠암마을은 본래 농토가 별로 없어 보릿고개 시절에는 미역으로 연명하였다고 하는 빈촌이었으나,

1970년대 새마을 운동과 함께 방파제 시설과 동력 어선을 갖추고 붕장어 집산지로 명성을 얻으며

수협 위탁 판매가 활성화되었다.

1980년대에는 대대적인 호안 매립으로 횟집이 조성되고, 최근 문중마을과 연계해

먹거리 타운을 조성하였는데 특히, 칠암 지역은 기장 칠암 붕장어회[아나고]로 잘 알려져

기장군이 지정한 모범 음식점[생선회]이 7곳으로 가장 많다.

 

 

잘 말라간다~ ㅎ

 

칠암항의 갈매기등대와 야구등대. 그리고 붕장어등대

 

야구등대

 

정식 명칭은 칠암항 남방파제등대인데 야구글러브와 공과 배트를 한데 모은 형상이다.

가로 세운 배트 뭉툭한 윗부분에 등불이 들어오는데 녹등이 4초에 한 번 깜박인다.

 

 

갈매기등대

 

일자방파제 붉은색 갈매기등대의 정식 명칭은 칠암항 북방파제 남단등대다.

갈매기와 떠오르는 해를 조형한 등대인데 홍등을 4초에 한 번 깜박인다.

 

 

붕장어등대

 

일자방파제 노란색 붕장어등대의 정식 명칭은 칠암항 북방파제 북단등대.

월전마을의 장어등대처럼 붕장어 배배 꼬인 몸통을 조형한 등대인데 노란색 등불을 4초에 한 번 깜박인다.

 

 

(13:15)  문중항

 

문오동(文五洞)의 중간에 위치한 마을이라고 하여 문중(文中)으로 불렸다.

문오동은 중북면의 문동, 문상(해창마을), 문중, 문하(칠암마을), 문서(신평마을)을 이른다.

문중마을은 옛날 국씨(鞠氏), 손씨(孫氏)가 문동마을과 경계를 이루는 개천변에 정착하여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전해지는데, 문동마을이 형성된 이후 문중마을이 만들어졌음을 추정케 한다.

문중마을이 속한 지역은 『호구총수』[1789]에 기장현 중북면 독이리(禿伊里)와 독포(禿浦)로,

『기장현읍지』[1831]에는 하북면 독이방(禿伊坊)으로 나타난다.

 

 

(13:20)  문동항

 

문동마을의 명칭 유래는 먼저 마을 뒷산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라는 설이 있다.

마을 뒷산을 옛날에는 민둥산[禿伊山]으로 불렀는데, 어감이 좋지않아 발음이 비슷한 문동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또 문산의 동쪽에 있어 문동으로 불렀다고도 전한다.

문동마을의 형성 시기에 대해서는 한씨(韓氏)와 이씨(李氏)가 정착하여 만들어진 마을이라는 것 외에는

알려진 바가 없으나, 문동마을의  본동마을이며, 인접한 해창마을에 조선 시대 조곡(租穀)을 보관하던

해창이 있었다는 점으로 볼때 조선시대부터 있었던 마을임을 알 수 있다.

 

 

문동어촌계의 전복양식장

 

고리원자력발전소가 많이 가까워졌다.

 

이후 노마카페앞에서 해안도로로 나와 우측 해안도로를 따라 진행하고~

 

 

(13:40)  임랑교

 

임랑도시숲끝에서 좌측 좌광천 옆으로 내려가 좌측으로~

임랑교 아래를 지나 임랑해수욕장으로 진행한다.

 

 

 

좌광천

 

(13:45)  부산 갈맷길 시작점(1코스 1구간) 이정목과 1코스 종합안내판

 

부산 갈맷길은 임랑해수욕장에서 시작된다.

 

 

(13:47)  임랑해수욕장

 

행정상으로는 부산광역시 기장군에 속하며 울산광역시의 경계가 되는 곳에 있는 해수욕장이다.

동쪽은 한국수력원자력 고리원자력본부가 건설된 봉화산이 위치하고 있고, 남쪽으로는 일광면 문동리와

문중리의 해안이 이어진다.

임랑 해안은 남동쪽으로 개방된 모래 해안으로 해안의 위쪽으로는 장안사 계곡에서 발원한 장안천이,

남쪽으로는 정관읍에서 발원하여 동쪽으로 흐르는 좌광천이 유입한다.

임랑강 맑은물을 따라 내린 모래가 백사장을 이루고, 백사장 주변에는 노송이 즐비하여 병풍처럼 푸른숲을 이루고 있다.

예부터 월내해수욕장과 함께 임을랑포[적을 방어하기 위한 주된 성책이 있는 갯가라는 의미의 지명]라 한다.

이곳 주민들이 아름다운 송림(松林)과 달빛에 반짝이는 은빛 파랑(波浪)의 두자를 따서 임랑이라 하였다.

차성가에서도 ‘도화수(桃花水) 뛰는 궐어(鱖魚; 쏘가리) 임랑천에 천렵(川獵)하고, 동산(東山) 위에 달이 떴으니

월호(月湖)에 선유(船遊)한다’라고 하여 이곳의 자연경관을 예찬하였다.

그리하여 이곳의 경관을 월호추월(月湖秋月)의 승경(勝景)이라 하여 차성 팔경의 하나로 여긴다.

이에 따라 옛사람들도 이곳 임랑천의 맑은 물에서 고기잡이하면서 놀다가 밤이 되어 송림 위에 달이 떠오르면

사랑하는 님과 함께 조각배를 타고 달구경을 하면서 뱃놀이를 즐겼다고 한다.

오늘에 와서는 이곳을 아름다운 해수욕장으로 단장하였다.

 

 

임랑 민박촌 벽화

 

(13:50)  임랑행정봉사실

 

해파랑길 종합안내판 & 4코스 스탬프

 

오늘구간 완료! 여기까지다.

오늘도 지난번과 동일하게 15km가 넘어서니 수술한 좌측 발목이 시큰시큰하다.

답사마무리후 (14:20) 임랑삼거리 버스정류장으로 이동, 188번 버스타고 일광역버스정류장에 하차.

근처 국밥집으로 이동, 뒤풀이겸 늦은 점심 해결하고,

일광역에서 광역전철 동해선 환승하여 부전역으로, 110-1 시내버스 환승하여 개금집으로 귀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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