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해파랑길

해파랑길 삼척~동해28구간

답사일자: 2022.8.21

코스: 부구삼거리(시점)-부구1리마을-나곡해변/나곡1리마을-나곡3리마을-도화동산

-갈령재/경북 울진군에서 강원도 삼척시로-월천1리마을-솔섬(비해파랑길)-호산삼거리

-호산버스정류장(종점)

인원: 나홀로 (이사, 곽차)

거리: GPS 11.45km (두루누비기준 10.9km)

시간: 널널.촬영&휴식포함/ 3시간

▶ 갈때 : 개금집에서 노포동.동부시외버스터미널으로~

포항行 시외버스를 타고 포항시외버스터미널에 하차,

포항시외버스터미널에서 울진行 시외버스 타고 울진종합버스터미널에 하차,

터미널부근 한식부페식당에서 점심 해결한후 울진군청으로 도보이동하고

울진군청앞 농협중앙회버스정류장에서 (11:30) 부구行 농어촌버스타고

부구1리 버스정류장에서 하차, 시점까지 도보이동후 트레킹 시작

▶ 올때 : 같은날 삼척~동해 29구간 동시진행으로 인해 28구간 날머리 대중교통편 확인못함

오늘 진행할 해파랑길 28코스는 '울진구간'이 끝이나고 '삼척~동해' 구간으로 바뀌면서,

행정계도 경상북도에서 강원도 땅으로 들어서게 된다.

진행할수록 부산에서 거리가 멀어지고 특히 코로나19 여파로, 시외버스와 농어촌버스 등의

운행횟수도 많이 줄어 대중교통을 이용해 시간을 맞추기도 쉽지가 않다.

그래도 할수있나!!! 내가 좋아서 진행하는 해파랑길...

앞으로는 그때의 상황따라 현지에서 1박~2박 또는, 심야버스도 자주 이용해야 할 듯하다.

부구삼거리

해파랑길 28구간 시점에 있는 해파랑길 27코스,28코스 종합안내판과 스탬프는

'대가 돌솥밥' 음식점 옆 우측에 세워져 있다.

(12:15) 해파랑길 28코스 스탬프 도장찍고~

부구천 좌측 도로를 따라 진행하면서, 해파랑길 28코스가 시작된다.

부구리(富邱里)

마을에 거북 모양의 바위가 있으므로 신령이 내린 바위라 하여 마을 이름을

영구리(靈龜里)라 하다가, 부구천(富邱川) 건너 염전리(鹽田里)의 '염(鹽)' 자와 구(龜)를

쓰기 쉬운 '구(邱)' 자로 바꾸어 염구리(鹽邱里)가 되었다.

그 후 행정구역 개편 때 흥부동(興富洞)의 '부(富)' 자와 염구동의 '구(邱)'자를 따서

부구리(富邱里)라 하였다.

부구리는 부구 1리, 부구 2리, 부구 3리의 행정리로 이루어져 있다.

해파랑길이 지나는 '부구 1리'는 동쪽은 매봉산(鷹峰山) 지맥이 동해안에 접하여

동재곶(東峴串)을 이루고, 서쪽은 뒷골 송골목(項)을 넘어 부구 2리와 접하고 있으며,

남쪽은 부구천(富邱川)을 건너 울진원자력발전소와 배골재(梨項嶺)를 경계하여 신화 1리가 있다.

북쪽은 만호곡(萬戶谷)과 오목골이 있고 나곡 1리 석호리(石湖里)가 있다.

부구천 기수역을 바라보고~

(12:21) '북면 노인복지회관' 앞을 지나고~

(12:22) '북면 119 안전 센터' 앞을 지나면, 해안 도로는 좌측으로 휘어져 나간다.

(12:24) '북면 흥부 장터'

'북면 흥부 장터'는 울진군의 대표적인 독립만세 운동이 발생하였던 곳이다.

1919년 3월 1일 시작된 독립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가운데, 울진군에서는 동년 4월 10일

'매화 만세운동'에 이어, 4월 13일 오후 1시를 전후해 북면 '흥부 장터'에서 5일장을 맞아 주민들과

장꾼들이 대규모로 만세 시위운동을 벌였다.

당시 만세 시위운동으로 인해 주동자로 지목된 전병항·남병표·김일수 등 3인이 징역 7개월을,

황종석 외 7명이 각각 징역 4개월 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또한 이곳 부구리의 흥부 장터는 예로부터 울진과 봉화를 잇는 '십이령 보부상길'의 출발점이자

울진장· 죽변장과 함께 해산물의 집산지였다.

때문에 보부상들이 이곳에서 사들인 해산물을 등에 지고 백두대간을 넘어 봉화·춘양장까지

가서 물건을 팔았고, 돌아올 때는 내륙의 농산물과 공산품들을 가져와 이곳에 풀었다고 한다.

이를 놀이로 만든 '십이령 바지게꾼 놀이'가 2019년 12월 13일부터 15일까지 열린

'제1회 죽변항 수산물 축제'에서 선을 보였는데, 옛 조상들의 지역 농·수 특산물 판로 개척의

애환과 삶, 축제의 놀이성을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수산물을 지게에 지고 북면 흥부 장터에서

봉화 춘양장까지 열두 고개를 넘나들던 보부상들의 희로애락을 담고 있는 놀이라고 한다.

'북면 흥부 장터' 앞 방파제 벽화는 세월의 무게 때문인지 지금은 빛이 많이 바랬다.

(12:28) 방파제가 끝나는 곳, 동재곶(東峴串) 산허리 중간으로 난 도로를 따라 잠시 올라간다.

작은 해안가 기암괴석들을 바라보고~

(12:32) '부구 해수욕장'

(12:35) '부구 해수욕장'이 끝나는 해식애를 돌아넘기 위해 테크 탐방로로 올라간다.

지나온 '부구 해수욕장'을 뒤돌아 보고~

절벽 끝으로 난 테크 탐방로를 돌아 나가면, '나곡 해수욕장'이 눈앞에 펼쳐진다.

(12:39) '나곡1리 석호동'으로 들어서면, 낮은 방파제에 '대게' 형상을

머리에 이고 있는 어물 건조 지지대가 줄지어 있다.

북면 나곡리(羅谷里)

울진군 북면에 속하는 법정리로, 나곡 1리에서 나곡 6리까지 여섯 개의 행정리로 이루어져 있다.

해안에 소금을 굽던 벌이 있었으므로 나실 또는 나곡이라 하였다.

나곡 1리는 석호(石湖), 나곡 2리는 곡리(谷里), 나곡 3리는 나실(羅室), 나곡 4리는 태촌(胎村),

나곡 5리는 만호곡(萬戶谷), 나곡 6리는 고포(姑浦) 등의 자연마을 이름으로 불린다.

나곡 5리는 부구리와 인접한 원자력발전소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거주하는 아파트촌을 형성하여

일명 만호곡으로 불리고 있다.

강원도 삼척시와 인접한 나곡 6리는 해안의 수심이 얕아 전국적으로 유명한 울진고포미역을

생산하고 있다.

(12:40) '나곡 해수욕장'

석호방파제 등대 땡겨보고~

'나곡1리' 쉼터 정자 앞을 통과하고~

(12:43) '석호교'를 건너고~

'나곡'항 방파제 공사가 한창이다.

(12:44) 해파랑길은 '나곡1리 동회관' 앞에서 좌회전하여 '울진북로' 도로로 올라간다.

(12:47) '울진북로' 도로에 올라 우회전하고~

'울진북로'는 울진군에서는 제일 북쪽에 있는 도로라는 이름이다,

이 도로가 예전 동해안 7번 국도인데, 한때는 동해안에서는 없어서는 안되는 중요한 도로였다.

지금의 7번 국도는 '동해대로' 라는 이름으로 시원하게 뚫린 4차선 도로지만~

하여튼, 이제부터 해파랑길은 도로를 따라 계속 진행하게 되는데,

도로 갓길이 좁아 왕복 차량에 주의 해야 하는 구간이다.

우측 800m 떨어져 '나곡 바다낚시공원'과 '「함부로 애틋하게)」 드라마 세트장이 있는데,

시간 관계상 생략하게 되어 아쉽다.

'나곡 바다낚시공원'은 울진군 북면 나곡리 산 80-20에 있으며, 나곡 바다낚시공원 바로 옆에

2016년 7월부터 9월까지 방송된 KBS 수·목 미니시리즈 「함부로 애틋하게(2016)」 드라마세트장이 있다.

이 드라마는 ‘미안하다, 사랑한다(2004)’의 ‘이경희’ 작가의 작품으로, 청춘스타 수지와 김우빈이

주인공으로 출연한 작품이다.

어린 시절 가슴 아픈 악연으로 헤어졌던 두 남녀가 안하무인 슈퍼 갑 톱스타와 비굴하고 속물적인

슈퍼을 다큐 PD로 다시 만나 그려가는 까칠하고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다룬 멜로드라마다.

이 세트장은 남자 주인공인 준영(김우빈 분)이 불치의 병을 판정받고 노을(수지 분)과 함께 보냈던

별장으로, 동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숲속에 지어진 모든(modern) 한 느낌의 건물로, 아름답게

배치된 조경이 잘 어우러져 멋진 전경을 자랑한다고 한다.

특히 흔들의자에 앉아 바다를 내다 볼 수 있는 테라스와 드라마의 소품들이 그대로 남아있어서

카페와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고,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2층 침실과 욕실도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서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고 한다.

(12:52) 한국가스공사의 '천연가스 공급 시설' 건물을 지난다.

(13:02) '나곡3리' 마을 앞을 지나고~

우측으로 보면, 멀리로 '나곡 해변'이 보이는듯 하다.

(13:04) 지금은 완전히 폐허로 남은 나실 '만남의 광장' 앞을 지난다.

(13:06) '나곡교'

'나곡교'를 건너며 우측으로 바라보면, '나곡천' 끝 지점이 '나곡 해수욕장'이다.

(13:07) '삼척 50km' '원덕 8km' 교통 표지판을 지나고~

(13:09) '통일안보 해안생태탐방로' 안내판을 지난다.

'산불조심'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13:15) '나곡 교차로' 삼거리

'나곡 교차로' 좌측에는 '나곡 태실' 표시판이 세워져 있다.

나곡리 태실(羅谷里胎室)

조선 왕실의 족보인 《선원록(璿源錄)》에 의하면, 광해군은 2명의 왕비에게서

1남 1녀의 자식을 얻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즉, 문성군 부인 유씨(柳氏)에게서 1598년(선조 31)에 폐세자 질(桎)을 낳았으며,

숙의 윤씨(尹氏)에게서 광해군 11년(1619년)에 옹주를 낳았다.

나곡리 태실 비석 전면에는 「萬歷四十七年六月二十三日生 王女阿只氏胎室」이 새겨져 있는데,

萬歷(만력)은 명 황제 신종(만력제)의 연호로 47년을 환산해 보면, 1619년 광해군 11년임을 알 수 있다.

숙의 윤씨에게서 태어나 박징원(朴澂遠)에게 시집간 옹주의 출생 연도가 나곡리 태실비의

출생 연도와 같으므로 이 태실의 주인공이 광해군 옹주이다.

나곡리 태실 위치는 나곡 교차로에서 원덕 방향 도로 왼쪽의 ‘나곡 4리’ 표석 따라 들어서서,

태봉마을 바로 앞 검성리로 가는 방향의 태봉교 옆 산길로 200m 떨어진 태봉산 정상에 위치한다.

태실 비석 뒤편 태실이 있었던 곳은 파헤진 채로 남아있어, 태함과 태항아리 등은

도굴범들에게 도굴된 것으로 추측된다.

 

 

 

(13:16) 나곡리 자전거 쉼터를 지나간다.

무릇...

으아리...

백일홍/배롱나무꽃...

그렇게 도로를 따라 길게 오르다 도로 좌측편에 '정수 레미콘' 공장을 지난다.

(13:27) '나곡6리' 고포마을 삼거리갈림길

이곳에서 해파랑길은 계속 직진이지만, 자전거 길은 우측 '나곡6리(고포마을)' 방향으로 갈린다.

삼거리 갈림길에는 「울진 고포돌미역 / 조선시대 임금님의 진상품」 입간판이 세워져 있다.

고포마을 해안은 지역특성상 인근의 민물이 유입되지 않아 맑고 깨끗한 청정해역으로 고려 때부터 품질을 인정받아 왕실에 진상한 돌미역이 생산되는 곳이다.

그리고, 고포마을의 또 다른 특징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경북 울진과 강원 삼척으로

갈린다는 사실이다.

20여 가구가 모여 사는 이 작은 마을은 그 중간을 가르는 좁은 '고포월천길'을 경계로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월천 2리와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나곡 6리로 나누어져,

고작 몇 미터 떨어진 앞집에 전화를 걸 때 지역번호를 눌러야 하고, 지방선거 투표소가 다르며,

길 건너의 아이들은 같은 학교에 다닌 적이 없고, 심지어 이장도 두 명이라 한다.

삼척시와 울진군은 도로를 경계로 마을 회관을 겸하는 펜션을 각각 하나씩 세웠는데,

'삼척 고포마을 펜션'과 '경북 고포마을 펜션'이다.

실효성 적은 상징 싸움에 쓸데없이 예산이 낭비되는 현장이다.

마을이 나뉘게 된 역사는 1963년에 울진군이 강원도에서 경상북도로 편입되면서 일어난 일인데,

오래 살았고 여전히 남은 주민들은 빨리 그 옅은 경계를 없애고 싶지만, 각 지자체는 어로구역을

단 한 평도 상대에게 내어주기 싫고, 더구나 최고급 돌미역 생산지로서의 마을 브랜드는 결코

상대에게 뺏기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돌미역을 함께 따고 논밭을 함께 일구는 주민들의 삶을 보이지 않는 선 하나가 나누고 있는 게

벌써 59년째인데, 아직도 해결의 실마리는 요원한 실정이라 한다.

1968년의 무장공비들은 하필이면 정확히 이 마을을 통해 들어오는 바람에

'울진/삼척 지구 무장공비 침투사건'이라는 비교적 긴 사건 명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예전에는 해파랑길 28코스가 이곳 갈림길에서 우측 '고포월천길'로 진행하여 '고포항'을 거쳐

북쪽의 갈림길로 나서는 것으로 되어 있었으나, 무슨 이유에선지 이 코스가 생략되고

지금은 바로 '울진북로'를 따라 진행하게 되어 길이도 상당히 짧아지게 되었다.

(13:32) '강원 샘물 총판'을 지나는데, 이곳도 문을 닫았고,

상가를 임대한다는 플래카드가 붙어있다.

(13:34) '이보혁 휼민 유애비(李普赫 恤民遺愛碑)'

이보혁 휼민 유애비(李普赫 恤民遺愛碑)는 '관찰사 도애비(觀察使 道愛碑)'라고도 하는데,

비석 전면이 많이 마모되어 글씨가 희미하지만, 「觀察使李公普赫恤民遺愛碑

(관찰사이공보혁휼민유애비)」 라 적혀 있고, 비문 양쪽에는 국화문으로 짐작되는 문양이

종으로 5개씩 새겨진 특이한 형태의 비석이다.

뒷면에 「擁正十二年建立(옹정12년건립)」이라 표기되어, 1734년(영조 10)의 연기가 남아있다.

이 비는 조선 후기 영조 때 만든 관찰사의 선정비라는 데 의의가 있지만, 이보혁은 명인전에 나오는

인물이 아니므로 휼민(恤民)이란 글씨가 의심스럽다는 의견도 있다.

(13:36) 또 다른 '나곡6리(고포마을)' 갈림길

예전 해파랑길 28코스는 고포항에서 이 갈림길로 올라서는 길로 진행되어 왔다.

'고포' 정류장 반사판과 혼자놀기시전중... ㅎ

'월천2리' 표지석에 '진상미역 고포마을'이 새겨져 있다.

삼척(三陟) 원덕읍(遠德邑)

강원도 삼척시에 속하는 읍으로, 월천리, 호산리 등 11개 법정동을 관할하고 있다.

《척주지》에 따르면 1630년(인조 8) 삼척부사 이준(李埈, 1560~1635)이 재임할 당시에는

근덕과 원덕을 합한 지역을 덕번이라 하였는데, 궁촌 남쪽을 덕번하 또는 원덕번이라 하였다.

원덕읍은 이 원덕번에서 유래하였고, '삼척부에서 먼 덕번'이라는 뜻이다.

원덕읍 내에는 가곡천과 호산천이 흐르고, 하구에는 호산항과 호산해수욕장이 있다.

가곡천과 호산천은 태백산지로부터 급경사를 이루며 동해로 흐르기 때문에 곡류가 심하며,

이에 따라 월천해수욕장·고포해수욕장 등 사빈 해안이 많다.

해안을 따라 임원항, 노곡항, 작진항 등이 천혜의 양항을 이루지만 규모는 작다.

원덕읍 월천리(月川里)

월천리는 삼척시 원덕읍에 있는 법정리로, 본래 월라리(月羅里)라 불리다가 나중에

마을 동쪽의 월봉(月峯)과 가곡천(柯谷川) 하구에 위치한 입지 때문에 월천이라 하였다.

남쪽은 울진군, 북쪽은 호산리와 접하는데, 월내진, 고포, 시장촌, 삼성곡, 갈마곡 등의

자연마을이 합쳐진 법정리이다.

서남쪽의 갈령(葛嶺)은 안일왕산이라고 하였는데 남북을 연결하는 가장 험준한 곳으로

알려졌지만 동해 고속화도로 확장으로 이동이 편리해졌다.

갈령 동쪽 봉수산(熢燧山)에 옛 봉수대가 남아 있는데, 현재는 성황당을 만들어

정월대보름에 제를 지낸다.

또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고포 미역은 예로 진상품이었을 정도로 품질이 좋다.

그렇게 고포마을 갈림길을 지나 좌 울진, 우 삼척을 가르며 도로를 따라 잠시 오르다가

좌측으로 보면, 7번 국도 '동해대로'가 길게 이어지는데, 이곳 아래로 '고포터널'이 지나가고 있다.

도화(道花)동산의 꼭대기에 있는 '쉼터 정자'가 보인다.

경상북도 도화(道花)는 백일홍(배롱나무)이고, 도목(道木)은 느티나무다.

(13:48) 울진 도화동산 표지석

뒷면에는 '2000년 4월 12일 강원도에서 울진군으로 넘어온 사상 최대의 산불이

23,794ha의 피해를 입히고 22시간 만에 진화하였고[실제는 8박 9일간 불탐]

이곳에 도화동산을 조성하였다'라고 표기하고 있다.

2000년 4월 산불을 진화하고 그 장소에 도화동산을 조성한 뜻을 새기고 있지만

2022년 4월 울진에서 발생한 산불을 피하지 못하고 예전 산불의 기억을 품고 있는

도화동산이 또 타고 말았다고 한다

실화에 의해 일어난 것으로 추정한다고 하지만 이 또한 인간의 이기심이 야기한 결과임이 분명하다.

슬프고 가슴아픈 현장이 아닐 수 없다

예전부터 산불이 많았던 이 강원도에는, 현대에 들어와 1990년대 이후의 기록적인 산불로는

1996년 강원도 고성 산불이 있었는데, 피해 면적이 3,800ha에 피해액이 227억 원이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 최악의 산불로 기록되고 있는 동해안 산불이 2000년 4월 7일 고성에서 발생하여

15일까지 무려 8박 9일 동안 계속되었다.

최초 고성 군부대 소각장에서 쓰레기를 태우다 발화하여 초속 26m가 넘는 강풍을 타고 삽시간에

삼척시, 동해시, 강릉시, 울진군 일대까지 번져 여의도 면적(8.4㎢)의 30배에 달하는 산림 23,448ha가

잿더미가 되었고, 850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되었으며, 피해액도 1,000억 원이 넘는다.

당시 이 불은 울진 원전 코앞까지 진행되어 자칫 대형 참사로 이어질뻔 하였으나,

무려 연인원 12만 5,500명이 넘는 소방인력이 동원되어 필사적인 소방 진압으로 막아냈다.

이후에도 2005년 강원도 양양의 산불로 낙산사가 소실되고 973ha의 피해 면적에 394억 원의

재산피해가 발생하였고, 2016년 강원 삼척과 강릉, 경북 상주에서 대형 산불이 일어났으며,

2017년에도 5월 6~7일에 걸쳐 강릉·삼척지역에 산불이 발생, 200ha의 산림이 탔고,

2019년 4월 4일에도 고성군에서 산불이 발생하여 삽시간에 속초와 강릉·동해·인제 일대로

화마가 번져 주민 4000여 명이 대피했고, 사망 2명, 부상 11명, 1757ha에 달하는 산림과

주택, 시설물 총 916곳이 전소되는 피해가 발생했다.

2022년 3월, 한반도에 기후위기 재난이 현실로 나타났다.

울진·삼척 산불은 기후위기가 어떻게 재난으로 이어지 는가를 생생히 보여주었다.

울진·삼척 산불은 213시간 만에 주불이 진화됐다.

산불이 휩쓴 면적은 2만 923㏊, 서울시의 3분의 1이 넘는 면적이 불탔다.

지금까지 가장 피해 면적이 넓었던 2000년 4월 동해안 산불(2만 3,794㏊) 이후 최대 면적이다.

피해액은 2,261억 원으로 동해안 산불 피해액 1,000억 원보다 두 배 이상 크다.

통계 작성이 시작된 1986년 이후 단일지역 산불로 최장기간, 최대면적 피해를 기록했다.

이제 산불은 기후위기 재난의 대명사가 되었다.

울진·삼척 산불로 인해 산불은 국가적 재해·재난 중 가장 위험한 재난으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울진·삼척 산불이 이렇게까지 커진 원인은 유례없는 겨울 가뭄에 있다.

울진을 비롯한 경북과 강원 동해안은 작년 12월부터 올해 3월 초순까지 극심한 건조에 시달렸다.

대구지방기상청 자료에 따르면 2021년 겨울철(2021년 12월~2022년 2월) 대구·경북 강수량은

6.3㎜(평년 대비 ­67.5㎜, 7.1%에 해당)로 역대(1973년 이후) 최소치였다.

2021~2022년 겨울 경상북도와 강원도 동해안의 가뭄은 기후위기의 한 단면이다.

이러한 강원도 지역에서의 연례행사처럼 끊이지 않는 산불은, 봄철에 많이 발생하는데,

이 시기가 남고북저형의 기압 배치로 서풍이 태백산맥을 넘을 때 대기 상층에 있는 따뜻한 공기로

인해 초속 30m 가까운 돌풍으로 변하기 때문인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매년 1만 2,000여 명의 산불감시원을 배치·운영하고 있지만, 국토의 약 64%에

달하는 산지를 모두 담당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숫자다.

산림지역의 비율과 소나무숲의 비율을 고려하여 대형산불의 위험이 높은 곳에는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감시 인력을 배치해야 한다.

특히 강원도 영동지역과 경북 동해안권은 현재의 3~5배 수준으로 산불감시인을 늘려야 할 것이다.

산불을 좀 더 효율적으로 감시할 수 있는 CCTV 등의 감시 장비도 늘려야 한다.

또한 감시인과 감시 장비를 한층 효율적으로 결합할 수 있는 산불 감시체계의

고도화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

기후위기 상황에 대응 가능한 산불진화 매뉴얼을 만들고, 헬기부터 산불 진화차량

그리고 진화 조직과 인력의 접근과 전개까지 새로운 차원에서 준비해야 한다.

'도화동산' 위의 '팔각 정자'에 올라 사방을 둘러본다.

지나온 방향~

가야할 방향~

그렇게 사방을 바라보며 일망무제를 즐기다가 다시 주차장으로 내려서서,

북쪽의 '도화동산' 표지석을 지난다.

(13:55) 드디어 길고 긴 '오르막 차로 끝' 교통 표지판을 지나고~

경상북도에서 세운 '치산녹화' 표지석

치산녹화를 기원한 표지석이 무색하게도 산이 온통 타 버렸으니,

언제즈음이나 초록색으로 복구가 가능할지... 안타까운 마음 뿐이다.

(13:57) 갈령(葛領)에 올라서고~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과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의 경계가 되는 고갯마루인 갈령(葛領)

앞쪽에 '평화와 번영 강원시대 강원도' 표지판이 반기고~

갈령재를 지나면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에서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으로 넘어간다.

부산 오륙도에서부터 한발 한발 뚜벅이처럼 울산, 경주를 거쳐 포항, 영덕, 울진을 지나

강원도까지 올라왔다.

대단한 내 두 다리에게 치하를... ㅎㅎㅎ

(13:58) '자유 수호의 탑'

'자유 수호의 탑' 양쪽 날개 아래에 '삼척·울진 지구 자유 수호기'가 새겨져 있다.

 

'1·21 사태(事態) 또는 김신조 사건'

이 사건은 김일성의 명령으로, 1968년 1월 13일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민족보위성 정찰국의

124부대 소속 31명이 조선인민군 정찰국장인 김정태로부터 청와대 습격과 요인 암살 지령을 받아,

대한민국 국군의 복장과 수류탄 및 기관단총으로 무장하고, 1월 17일 자정을 기해 휴전선

군사분계선을 넘어 야간을 이용하여 1월 21일에 대한민국 수도권에 잠입하였다.

이들은 청운동의 세검정고개의 창의문을 통과하려다 비상근무 중이던 경찰의 불심검문으로

정체가 드러나자, 수류탄 및 기관단총을 쏘면서 저항하였다.

한국군·경은 비상경계태세를 확립하고 현장으로 출동하여 소탕 작전을 벌였으며, 경기도 일원에

걸쳐 군경 합동 수색전을 1월 31일까지 전개하였다.

현장에서 비상근무를 지휘하던 종로경찰서장 최규식 총경은 총탄에 맞아 사망하였고,

124부대 소속 31명 중 29명이 사살되고 김신조는 투항하였다.

당시 유일하게 생포되었던 김신조의 이름을 따서 김신조 사건이라고도 한다.

이 사건으로 향토예비군이 창설되었다.

'울진삼척 지구 무장공비 침투사건(蔚珍三陟武裝共匪浸透事件)'

북한은 1968년 10월 30일부터 11월 2일까지 3차례에 걸쳐 울진·삼척지구에 무장공비 120명을

15명씩 조를 편성, 수차례에 걸쳐 침투시켜 국군 군복· 신사복· 등산복 등으로 위장하여

게릴라전을 펴게 하였다.

초기에는 산간 부락 거점화를 위하여 주민들을 상대로 위조지폐를 뿌리면서 공산주의 선전과

동시에 노동당 입당과 유격대원 지원 신청서 서명을 강요하였고 의도대로 되지 않자

이내 학살과 약탈 등 만행을 자행하였다.

특히 강원도 평창에서는 당시 10살의 이승복 군이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는 말을 했다는

이유로 모친은 물론 7세, 4세 동생들까지 대검과 돌로 무참히 살해했다.

이런 광기 어린 만행들이 있었지만 주민들의 죽음을 무릅쓴 릴레이식 신고로 11월 4일부터

경북·강원 일부 지역을 ‘갑종 사태’지역으로 선포하고 대간첩작전본부를 구성하여 특전사를 비롯

군 병력과 전투경찰, 때맞춰 창설된 향토예비군까지 동원된 토벌작전이 전개되어 12월 28일까지

약 2개월간 공비 113명을 사살하고 7명을 생포하여 침투한 120명을 모두 소탕하였다.

이 작전에서 우리 측도 군경 예비군 33명이 전사하였고, 민간인 16명도 희생되었으며,

37명이 부상당하였다.

이 사태는 김신조 사태에서 일망타진된 민보성 산하 124군 부대에서 당시의 사태를 만회하려는

뜻도 있었지만, 당시 베트남에서 미군을 위시한 연합군이 베트콩의 게릴라전에 고전하던 상황을 본

김일성이 우리나라에서도 비정규전이 가능한지를 타진해보기 위해 벌인 군사도발이다.

이제 온전히 삼척 관내로 들어서면 '옛 동해휴게소'가 있던 자리에

넓은 공터와 주차장, 정수 레미콘이 위치하고 있다.

우측 산 아래로 이어지는 '신 7번 국도'가 새로 조성되기 이전에는

이곳 '구 7번 국도'가 상당히 붐볐는데, 고포터널과 월천 터널이 지나는

'신 7번 국도'가 개통된 이후부터는 대부분의 차량이 신 국도로 진행함에 따라

이곳 구 국도는 한산하기가 그지없다.

(14:01) 해파랑길 갈림길이다.

이곳에서 구.7번국도를 버리고 좌측 임도길로 해파랑길을 이어진다.

그늘진 벤치아래에 배낭을 내리고 10분 휴식이다.

'낭만가도' 안내판

강원도에서 조성한 '낭만가도(浪漫街道, Romantic Road of Korea)'는 새로운 길을 낸 것이 아니라,

7번 국도와 7번 국도 주변 풍광이 빼어난 지방도, 해안 도로를 연결했다.

고성에서 시작해 속초와 양양, 강릉, 동해를 지나 강원도 남쪽 끝 삼척까지 총거리 240㎞가

조성되어 있는데, 2009년부터 도로 표지판을 설치하고 편의시설을 정비하고 있다.

27개 중세(中世) 도시를 따라 340여㎞의 관광루트를 만든 독일의 '낭만가도'를 벤치마킹했다.

(14:11) 임도로 들어서면, 초입에 '삼척 수로부인길'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삼척수로부인길 : 바다와 산이 함께하는 옛길 관동대로 수로부인길(24km)

◆ 바다를 안고 걷다(7.5km) :

고포해변 → 옛 동해휴게소(현 위치) → 갈령재 → 월천교 → 호산뚝방길 → 옥원 2리[2.5H]

◆ 황희 정승을 만나러 가는 길(8.5km) :

옥원 2리 → 성황당 → 옛 7번 국도 → 소공대 → 소공령 → 성황목[3H]

◆ 옛이야기 속으로(8km) :

성황목 → 사기촌 → 자랑밭골 → 아칠목재 → 장호초교[2.5H]

삼국을 통일한 신라는 경덕왕 16년(757) 지방제도를 재편성하는 과정에서

동해안의 실직주와 하슬라주(강릉)를 합쳐 명주(溟州)라 하고,

실직주는 삼척군(三陟郡)으로 개명함으로써 '삼척'이라는 지명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통일신라시대의 문화유산으로 삼척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은 두 편의 향가인데, '헌화가'와 '해가사'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 두 편 노래의 작품 배경이 되는 곳이 어디인가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규명되지 않고 있다.

그렇지만 당시의 모든 상황과 주변 환경으로 미루어 볼 때 헌화가는 임원 지역,

해가사는 증산 또는 추암 지역의 해안 어느 지점으로 추측된다.

비포장 임도를 따라 정면 이동통신 중계탑을 향해 진행하고~

(14:14) 첫번째 갈림길 / 임도를 버리고 우측 좁은 오솔길로 올라간다.

해파랑길 이정표에 호산버스터미널까지 3.7km를 알린다.

(14:17) 얕은 고갯마루에 올라서면 큰 '돌무덤'이 반긴다.

국시댕이

옛길 고개를 넘는 사람들이 행로의 무사안녕을 기원하며 돌을 주워 침을 뱉고 던져 쌓은

‘돌무더기’인데, 일명 '구시'라고도 하며, 서낭당과 같은 기능을 가진 신령한 장소로 여겨지는 곳이다.

그러나 당집은 보이지 않는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당산림 가운데 참나무가 참말을 해서 엄나무가 엄두를 내고

자작나무가 제작을 해 당집을 지었다』 한다.

※'국시댕이'는 '산마루 길모퉁이에 있는 무덤'을 이르는 강원도 사투리.

(14:19) 두번째 갈림길 / 수풀을 헤치고 좌측으로 내려선다. (무심코 직진하기 쉬우므로 조심할 것!!!)

(14:20) 또 다른 큰 '국시댕이'를 지난다.

(14:24) 세번째 갈림길/ 우측 수풀을 헤치고 진행한다. (뚜렷한 임도로 진행하면 안됨)

룰루랄라~ 해파랑길이 아닌 산파랑길... ㅎㅎㅎ

능선 우측으로 보면, 동해에 긴 뜬 방파제가 보이는데,

한국가스공사 LNG 비축기지 방호를 위한 방파제는 아닌지 알수가 없다.

가슴아픈 산불의 흔적들~

(14:35) 또 다른 '국시댕이'를 지난다.

한국가스공사 LNG 비축기지가 잘 조망된다.

이후 유인 남양홍씨와 순흥 안공 쌍분묘를 지나 내려서고~

(14:41) '월천1리 상월천' 마을로 내려서서, 우측 마을 길을 따라 진행한다.

월천리(月川里)

본래 월라리(月羅里)라 불리다가, 나중에 마을 동쪽의 월봉(月峯)과

가곡천(柯谷川) 하구에 위치한 입지 때문에 월천이라 하였다.

(14:45) 마을 중간을 가로지르는 '삼척로' 사거리에서 직진하여 도로를 건너

앞쪽 좌측에 '월천1리 마을회관'을 지난다.

마을회관 맞은편에 느티나무와 소나무 고목이 보이는데, 당집 바로 앞의 거대한 소나무는

삼척시의 보호수로 키 29m, 나무 둘레 4.6m, 수령 500년을 자랑하는 적송이다.

마을 회관 뒤편 마을 안길로 해파랑길은 이어지고~

작은 개울을 건너는 다리를 지나 우측 한국가스공사 비축기지 방향으로 진행하고~

(14:48) '7번 국도 동해대로' 밑을 지난다.

앞쪽 동해에 연한 가곡천 기수역에 거대한 가스 비축기지가 세워져 있다.

'T자' 도로갈림길에서 해파랑길을 좌측으로 이어지지만

(14:50) 우측 '속섬교'를 건너 그 뒤편에 유명한 속섬(솔섬) 소나무 숲을 보러간다.

속섬(솔섬)

속섬

속섬이라는 명칭은 '호수 안에 있는 섬'이라는 의미에서 유래되었다.

가곡천 하구의 월천해변과 호산천 하구의 호산 해변이 사주에 해당되며, 사주에 의해

막인 호수가 과거에 부용호(芙蓉湖) 또는 부신당(芙新塘)이라 부르던 곳이다.

사주를 구성하는 모래들은 호산천과 가곡천에서 운반해 온 물질들로 해저에 퇴적되었다가

연안류의 흐름과 활발한 파랑 작용으로 육지로 밀어 올려져 퇴적된 것들이다.

석호 안에 하천의 퇴적작용에 의해 생긴 모래 섬, 하중도(河中島)가 형성된 것이 '속섬'이다.

속섬에는 작은 소나무 숲이 있어 ‘솔섬’이라고도 부른다.

 

속섬은 영국 출신의 세계적인 사진작가인 마이클 케나(Michael Kenna)의 작품이

발표되면서 유명해졌다,

흑백사진으로 발표된 속섬의 모습이 한편의 수묵화를 보는 듯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호산 해변과 월천해변 주변에 삼척 LNG 제4생산기지가 건설되면서

속섬도 사라질 위기에 처하게 됐으나, 속섬 일대는 개발 지역에서 제외되었다.

마이클 케나의 '솔섬' 사진

삼척의 솔섬은 흑백사진으로 유명한 영국 사진작가 마이클 케나(1953년생)가

2007년에 촬영하여 한국에 알려 유명해진 곳이다.

마이클 케냐는 사진을 찍을 때 장노출을 통해 마치 수묵화 같은 사진을 만든다.

긴 시간 동안 미세하게 흔들리는 자연의 모습이 사진에 담기면서 그림 같은 작품을 만든다.

마이클 케나의 이 사진 한 장으로 인해 가스공사의 LNG 비축기지가 세워질 때

사라질뻔한 솔섬이 보존될 수 있었다고 한다.

대한항공 여행 사진 공모전에 입선한 '아침을 기다리며'

대한항공이 2011년 8월 '솔섬'과 유사한 구도의 공모전 당선 사진을 토대로

15초짜리 광고를 제작·방송하자 케나의 한국 에이전시인 공근혜갤러리가

대한항공을 상대로 3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이에 대한 서울 중앙지법에서 내린 판결은 다음과 같다.

『- 비록 이 사건 사진저작물과 이 사건 공모전 사진이 모두 같은 촬영 지점에서

‘물에 비친 솔섬을 통하여 물과 하늘과 나무가 조화를 이루고 있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어

전체적인 콘셉트(Concept)나 느낌이 유사하다 하더라도 그 자체만으로는

저작권의 보호 대상이 된다고 보기 어렵다.

- 빛의 방향은 자연물인 솔섬을 찍은 계절과 시각에 따라 달라지는데 이는 선택의 문제로서

역시 그 자체만으로는 저작권의 보호 대상이 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이 사건 사진저작물과

이 사건 공모전 사진은 각기 다른 계절과 시각에 촬영된 것으로 보인다. (중략)

- 따라서 이 사건 공모전 사진이 이 사건 사진저작물에 의거하여 창작되었는지에 관하여

나아가 살필 필요 없이 이 사건 사진저작물과 이 사건 공모전 사진 사이에 실질적 유사성이

인정됨을 전제로 한 원고의 저작권 침해 주장은 이유 없다.』

이와 같은 판결이 나온 데 대해 대법원 판례로 『사진저작물이 저작권으로 보호되기 위해서는

피사체의 선정, 구도의 설정, 빛의 방향과 양의 조절, 카메라 각도의 설정, 셔터의 속도,

셔터찬스의 포착, 기타 촬영 방법, 현상 및 인화 등의 과정에서 촬영자의 개성과 창조성이

인정되어야 한다.[대법원 2001.5.8.선고98다43366판결]』

(14:55) 다시 '속섬교'를 건너 해파랑길로 복귀하여 둑길 좌측에 '젤리피쉬 펜션'을 지나간다.

'7번 국도 동해대로'가 지나는 '월천교' 아래를 지나고,

해파랑길은 우측 '강변 공원'으로 이어진다.

(15:01) '월천 유원지' 안내판

(15:02) '월천교'를 건너고~

좌측 가곡천 상류 방향을 바라보고~

우측 기수역 방향을 바라보고~

가곡천(柯谷川)

강원도 삼척시 가곡면 풍곡리 덕풍계곡의 용소골에서 발원한 물길이 북류(北流) 하다가

북쪽의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신리 응봉산에서 남류(南流) 하는 도화천(桃花川)과

풍곡리에서 합류하여 동쪽으로 흐르면서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월천리에서 동해로 유입되는

43.5㎞의 하천이다.

동해에는 월천해변이 가로막고 있어 가곡천의 물길은 여기에서 멈추면서 속섬 호수를 이룬다.

가곡천은 개곡천(介谷川)이라고도 하며, 하구 부근에서는 지역 이름을 따서 월천(月川)이라고도 한다.

옛날 이 하천으로 목재가 운반되었다고 한다.

삼방산(현재 경상북도 봉화군 석포면) 일대의 목재가 조선시대 경복궁을 중건할 때

상량목(上梁木)으로 쓰였는데, 경복궁 삼척목(三陟木)으로도 알려져 있다.

베어낸 황장목은 도끼로 다듬은 후 바다까지 운반할 때 가곡천을 따라 동해 바다까지 운반하였다.

(15:08) 'S-oil' 주유소 앞을 지나고~

(15:10) '호산 해수욕장 입구 교차로'에서 우측 삼척 방향으로 진행이다.

'호산 삼거리'를 지나 좌측으로 휘어져 나가는 삼거리 초입에

(15:12) 신, 구 '관찰사한공익상영세불망비'가 나란히 세워져 있다.

관찰사한공익상영세불망비(觀察使韓益相永世不忘碑)

조선시대 강원도 관찰사 한익상이 선정을 베푼 덕을 기리고자 1836년(헌종 2)에 세웠다.

현재 1980년에 옛 비석의 내용을 그대로 새겨서 만든 비석과 함께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호산리 남쪽의 죽현(竹峴) 도로변에 나란히 세워져 있다.

비석 전면에는 「觀察使韓公益相永世不忘碑 / 旣停魚貢 又蠲還錢 海陸俱安 萬姓銘心」이,

후면에는 「道光十六年十一月 日」이 새겨져 있다.

旣停魚貢(기정어공) 세금으로 고기를 이미 다 바친 것을 중지하고

又蠲還錢(우견환전) 또 세금도 감하고 돈도 되돌려줌으로

海陸俱安(해륙구안) 어촌과 농촌이 함께 다 편안하다

萬姓銘心(만성명심) 만백성들이 마음 깊이 새겨 오래도록 잊지 않는다.

(15:14) '호산나들목교'가 지나는 '호산 교차로'로 내려서서, 우회전하여 '7번 국도' 밑을 통과한다.

 

이 지점에서 월천리에서 호산리로 리명이 바뀐다.

원덕읍 호산리(湖山里)

호산리는 삼척시 원덕읍의 법정리로, 본래 부신당(夫神堂)으로 불였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부호(芙湖)와 재산(才山) 두 자연마을을 합하여 호산리(湖山里)가 되었다.

부호는 고려시대 선녀 부용(芙蓉)이 해망산에서 내려와 놀았다 하여 붙여진 지명이며,

재산은 죽현(竹峴) 밑에 있었으므로 죽산(竹山) 또는 재산(才山)이 된 것이다.

호산리의 북쪽은 노곡리, 남쪽은 월천리와 접한다. 북쪽에 장치산이 있고,

그 산줄기가 동으로 이어지다가 해망산을 만들었다.

그 아래로 호산천이 바다로 흘러간다.

'호산 교차로' 좌측 대각선 방향으로 해파랑길 28구간 종점인 '호산 버스터미널'이 위치한다.

(15:15) '호산1교' 다리 입구 횡단보도를 건너면, 좌측으로 호산버스정류장이,

맞은편으로 해파랑길 28코스,29코스 종합안내판과 스탬프 박스가 세워져 있다.

종합안내판을 보니 변경된 해파랑길 코스가 아닌

예전의 해파랑길 코스를 아직도 수정없이 게시해 놓았다.

오늘 목표했던 해파랑길 28구간도 무사히 도착했다.

해파랑길 28코스 완료 스탬프 찍고~

물 한잔하고 잠시 쉬었다가 오늘 하룻밤 묵어갈 숙소가 해파랑길 29구간 중간부에 있어,

해파랑길 29코스 출발 스탬프 찍고~

해파랑길 삼척~동해 29코스를 연속으로 이어간다.

'해파랑길'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해파랑길 삼척~동해30구간  (0) 2022.09.02
해파랑길 삼척~동해29구간  (0) 2022.09.02
해파랑길 울진27구간  (0) 2022.08.15
해파랑길 울진26구간  (0) 2022.08.15
해파랑길 울진25구간  (0) 2022.0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