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일자: 2022.8.22
코스: 31구간 진행전 공양왕릉(비해파랑길) 답사-레일바이크궁촌정거장(시점)-사래재
-동막3리마을-동막교-교가1리버스정류장-교가1리마을-덕산해변입구/덕봉대교-맹방해수욕장(종점)
인원: 나홀로 (이사, 곽차)
거리: GPS 9.92km (두루누비기준 8.9km)
시간: 널널.촬영&휴식포함/ 2시간30분
▶ 갈때 : 삼척~동해30구간 마치고, 31구간 동시진행으로 인해 31구간 들머리 대중교통편 확인못함
▶ 올때 : 삼척~동해31구간 마치고, 32구간 동시진행으로 인해 31구간 날머리 대중교통편 확인못함
(10:05) 해파랑길 30구간을 마치고, 물 한잔하고 잠시 쉬다가 이곳 해파랑길에서 우측으로
잠시 떨어져 있는 '공양왕릉'을 보고 이곳으로 다시 와서 해파랑길 삼척~동해 31코스를
연속으로 이어가기로 한다.
해파랑길 31구간 시점에서 우측으로 바라본 '공양왕릉'
해파랑길 31코스를 시작하기전에 해파랑길에서 벗어나 있는 '공양왕릉'을 보러간다.
'공양왕릉'은 해파랑길 30코스,31코스 종합안내판앞에서 우측으로 250m거리에 위치한다.
'공양왕릉'
삼척 공양왕릉(恭讓王陵, 강원도 기념물 제71호)
고려 왕조의 마지막 임금인 공양왕과 그의 두 아들의 묘로 전해지고 있다.
일명 궁촌 왕릉으로 불린다.
고려 공양왕 4년(1392) 7월에 이성계가 조선 태조로 즉위하였다.
태조는 8월에 공양왕을 폐하여 공양군으로 봉하고 강원도 원주로 보내어 감시하였다.
조선 태조 3년(1394) 3월 14일에 공양군과 그의 두 아들의 귀양지를
삼척시 근덕면 궁촌리로 옮기고 한 달 뒤인 4월 17일에 모두 죽였다.
공양왕릉은 삼척과 경기도 고양시 두 곳에 있는 것으로 전해지는데,
문헌의 기록이 부족하여 어느 쪽이 왕릉인지 확실히 알 수 없다.
이곳 삼척 공양왕릉에 대한 기록은 현종 3년(1662) 삼척부사 '허목'이 쓴 「척주지」와
철종 6년(1855) 김구혁이 쓴 「척주선생안」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곳은 헌종 3년(1837) 가을에 삼척부사 이규헌(李奎憲)이 고친 뒤,
1977년 삼척군수 원낙희(元珞喜)와 근덕면장 최문갑(崔文甲)의 노력으로 새롭게 단장되었다.
매년 음력 4월 27일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공양왕은 왕비와 세자, 시녀들과 함께 강원도 원주로 유배되었다가 나중에
강원도 간성으로 옮겨지면서 공양군(恭讓君)으로 봉해졌다.
그리고 3년이 지난 1394년(태조 3)에 강원도 삼척으로 다시 유배지를 옮긴 지 한 달 만인
4월 17일에 반역을 꾀한다는 누명을 쓰고 왕자 석(奭), 우(瑀)와 함께 살해재에서 교살당하였다.
교살 당한 이들은 인근 동산에 매장되었는데, 지금의 강원도 삼척시 원덕면 궁촌리 공양왕릉이라고 한다.
공양왕릉은 봉분이 모두 4개인데 가장 남쪽에 있는 것이 공양왕릉, 2개는 두 왕자,
나머지 하나는 시녀 또는 말의 무덤이라 전해진다.
오랜 세월이 흘러 공양왕릉이 퇴락하자 1837년(현종 3) 가을에 강원도 삼척부사 이규헌(李圭憲)이
개축하였고, 1942년 3월 20일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장 김기덕(金基悳)과 지역의 인사들이
다시 개축하였다.
최근에는 1977년 6월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장 최문갑(崔文甲)이 허물어진 봉분을 다시 쌓았다.
『태조실록』과 『양촌집(陽村集) 』 등을 통해 1395년(태조 4)에 고려 왕조의 왕씨들을 위해
강원도 삼척과 강화, 거제 등지에서 수륙재(水陸齋)를 지내게 했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궁촌리에서는 3년마다 어룡제(漁龍祭)를 지내는데, 제를 지내기 전에
반드시 공양왕릉에서 먼저 제사를 올린다고 한다.
그리고 음력 4월 17일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주관으로 매년 제향을 올린다.
그러나 공양왕릉은 이곳 궁촌리 외에도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에도 있다.
『세종실록』에 ‘안성군 청룡에 봉안했던 공양왕의 진영을 고양군 무덤 곁에 있는 암자로 옮기라고
명령했다’는 기록을 근거로 문화재청에서 공식 인정했고, 1970년 사적 제191호로 지정했다.
반면에 강원도 삼척의 공양왕릉은 1662년(현종 3) 삼척부사 허목이 편찬한 『척주지』와
1855년(철종 6) 삼척부사 김구혁이 쓴 『척주선생안』에 이곳이 공양왕릉이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을 근거로 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3년마다 왕릉 앞에서 제사를 지내는 풍습과 공양왕릉·궁촌(宮村)·궁기(宮基)·
원평(院坪)·궁촌해변·궁촌초교·궁촌교 등 공양왕과 관련된 지명이 남아 있다.
궁촌은 임금이 유배되어 머물던 마을이었으며, 궁기는 공양왕의 맏아들 왕석(王奭)이 살았던 곳이며,
원평은 마방(馬房)이 있던 곳이다.
고려조의 왕릉은 대개 군사분계선 이북에 있다.
남한에 남아 있는 것은 강화도의 석릉[21대 희종의 묘]과 홍릉[23대 고종의 묘], 그리고 공양왕릉뿐이다.
'공양왕릉'은 별도의 호석(護石, 둘레석)이나 문인석도 없이,
낡은 상석(床石)만이 무덤 앞에 놓여 있다.
가장 큰 무덤이 '공양왕'의 무덤이고, 공양왕 묘 좌측의 두 개는 왕자 석(奭), 우(瑀)의 무덤이고,
왕자 묘 가장자리 묘는 말 또는 시녀의 무덤이라고 추측한다.
'레일바이크 궁촌역' 주차장끝 도로입구 해파랑길 31코스 시점으로 되돌아나와
(10:35) 해파랑길 31코스 출발 스탬프 찍고~ 해파랑길 삼척~동해 31코스를 연속으로 이어간다.
해파랑길 31코스는 해파랑길 30코스,31코스 종합안내판앞에서
'궁촌버스정류장'을 지나며 구 7번 국도인 '삼척로'를 따라 진행하면서 시작된다.
근덕면 궁촌리(宮村里)
궁촌리는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에 있는 법정리로, 고려 공양왕(恭讓王)이
왕위를 조선 태조 이성계에게 물려주고 원주(原州), 간성(杆城)을 거쳐
이곳으로 거처를 옮겼다 하여 궁촌(宮村)이라고 하였다.
궁촌리는 근덕면의 남부에 위치하여 남쪽은 매원리, 북쪽은 동막리에 각각 접한다.
1914년 가래, 대길곡, 선왕, 대흥, 양지, 구마, 갈전 등의 자연마을을 합하여 궁촌리라 하였다.
1950년 추천과 대길곡을 합하여 추천리, 선왕과 대항을 합하여 선흥리,
양지를 개칭하여 양지리, 구마와 갈전을 합하여 구마리 등 4개 마을이 되었다.
궁방산(宮房山)은 서남쪽 끝에 자리하며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고,
사라치(沙羅峙)와 고돌치(古突峙)가 있다.
추천(楸川)은 궁방산과 한우봉 밑에서 발원하여 궁촌리, 매원리 사이로 흘러
추라(楸羅) 해안으로 흘러간다.
궁촌리는 공양왕이 최후를 맞은 지역으로, 공양왕과 관련된 지명과 다양한 전설이 전해진다.
범일국사가 창건하고 사명대사 등이 중창한 영은사도 위치한다.
(10:37) 사래재를 향한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10:40) 황영조 국제마라톤 공인코스 25km지점을 지나고~
쑥부쟁이...
그렇게 구 7번 국도인 '삼척로'를 따라 길게 진행하다 보면, 좌측으로 '신 7번국도 동해대로'가
바로 옆으로 나란히 진행하고 있다.
(10:50) 사래재
공양왕과 관련한 역사적인 이름의 고갯길인데, 궁촌리에서 동막리로 넘어가는
해발 90m의 고개인데, 고개 이름이 '살해재(殺害峙)'다.
살해골과 대왕골 사이, 대왕산(186.5m, 옛 이름 고돌산) 북쪽 기슭의 구 7번 국도 상에 있다.
살해재란 이름은 고려의 마지막 왕인 공양왕이 두 왕자와 신하 500여 명과 함께
이성계가 보낸 금부도사에 의해 살해된 장소라 하여 붙여졌다.
살해재를 불교계에서는 사라치(紗羅峙)라고 불렀고, 고려의 종지부를 찍은 곳이라 해서
사가들은 위치(位峙)라 기록하기도 하였는데, 해파랑길 안내 표지판에는 「사래재」로 표기되어 있다.
(10:51) 구 7번 국도인 '삼척로'를 따라 내려서면 행정계는 어느순간 '동막리'로 바뀐다.
근덕면 동막리(東幕里)
동막리는 삼척시 근덕면에 있는 법정리다.
동막리의 중앙에는 마읍천이 흐르며, 물길 동쪽을 막아 논을 개간하였다 하여 동막(東幕)이라 하였다.
동막리의 동쪽은 바다, 서쪽은 노곡면, 남쪽은 궁촌리, 북쪽은 광태리와 부남리와 각각 접한다.
동서 8㎞, 남북 4㎞이다.
신촌, 한나루, 식송, 동막, 내평, 토점, 양지, 음지, 대평 등의 자연마을이 합쳐진 법정리이다.
궁방산은 마을 서남방에 솟아 있다.
북쪽에 삼태산의 산줄기가 동으로 뻗어 있으며, 그 가운데 삿갓봉이 가장 높다.
남쪽에는 사라치가 있다.
마읍천은 동서로 흐르다가 다시 부남리로 북류한다.
동막리에는 범일국사가 창건한 신흥사가 있다.
대진(大津)에는 어항이 있어 해산물이 풍부하며, 낚시터로 유명하다.
(10:59) 건설 중인 '동해선 철교' 아래를 통과하고~
(11:00) '현대오일뱅크주유소'를 지나고~
(11:03) 우측으로 '백도라지 가공공장'을 지난다.
예전 기관지가 안좋아 어머니가 기관지에 좋다며 정성껏 고아서 준
도라지청이 생각나는 장면이다.
백도라지는 도라지 몸통이 하얗다고 붙은 이름이 아니라 초롱 모양의 도자리 꽃이
백색이면 '백도라지', 보라색이면 '자도라지'라고 한다.
통상 약용으로 사용하는 것은 백도라지다.
땅이 넓은 삼척에서도 도라지를 많은 심는 모양인데 우리나라 도라지 생산량의
40% 이상이 강원도라고 한다.
내가 좋아하는 새콤한 도라지 무침이 갑자기 생각나 입맛을 돌게 한다.
도라지를 나물로 먹는 민족은 우리나라 밖에 없다고 한다.
(11:07) 황영조 국제마라톤 공인코스 27km지점을 지나고~
(11:08) 좌측으로 427번 지방도로, 우측으로 '대진항'이 갈라지는 원형교차로 삼거리를 지난다.
동막3리 (구)성지마을 표지석
'동막리' 하면 제일 먼저 예전에 본 팝콘이 휘날리는 "웰컴 투 동막골"의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르기도 하지만, 이곳의 '동막리'라는 이름은
마읍천 물길 동쪽을 막아 논을 만들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11:11) 동막교를 건너고~
'마읍천'
마읍천 (麻邑川)
하천 길이 30.91㎞, 유역 면적 149.91㎢로, 강원도 삼척시의 '사금산(1081.5m)'과 '문의재'에서
발원하여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덕산리 '덕봉산'을 거쳐 동해로 흐르는 하천이다.
'사금산(1081.5m)'과 '문의재'에서 발원하여 삼척시 노곡면 '상마읍리' '중마읍리'를 거쳐
거의 직선상으로 흐르다가, 삼척시 노곡면 '하마읍리'에서 '삼척시 노곡면 '주지리' 도마재(道馬峙)에서
흘러드는 지류와 합류하여 북동쪽으로 흐른다.
다시 삼척시 근덕면 '동막리'에서 북쪽으로 방향을 돌려 흐르다 , 삼척시 근덕면 '교가리'에서
삼척시 노곡면 '우발리'와 들입재(野入峙)에서 발원한 무릉천(武陵川)과 합류하여 동쪽으로 흐르다가
소한천(蘇澣川, 蘇漢川)과 합류하여 덕봉산을 거쳐 동해로 유입한다.
(11:13) 동막교를 건너자말자 우측 마읍천 둑길따라 해파랑길은 이어진다.
(11:21) 건설 중인 '동해선 철교' 아래를 통과하고~
좌측으로 첫번째 축사를 지나고~
어느분의 해파랑길 31구간 후기를 읽어보니 축사에서 나오는 악취가 고약하다는데,
오늘은 냄새가 하나도 나질 않는다.
(11:27) '7번국도 동해대로' 아래를 통과하면 행정계는 '동막리'에서 '부남리'로 바꿔진다.
근덕면 부남리(府南里)
부남리는 본래 「불안골」, 「부란골(富蘭谷)」이라 부르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부남리가 되었다.
부남리는 근덕면의 동남부에 위치하여 동쪽은 바다, 남쪽은 동막리,
서쪽은 광태리, 북쪽은 교가리와 덕선리에 각각 접한다.
동서 4㎞, 남북 3㎞이다.
양아산은 동쪽 해안을 돌아 솟았고, 수양산은 북쪽에 있다.
마읍천은 동막리에서 휘돌아 북류하면서 부남리를 지나 교가리로 흘러간다.
(11:31) 해파랑길 31코스 4km 지점을 지난다.
마읍천 둑길따라 계속 이어지는 해파랑길
좌측으로 컨테이너박스가 무더기로 있는데 뭐하는곳인지???
좌측으로 넓은 옥수수밭이 펼쳐지고 있다.
좌측으로 두번째 축사를 지나고~
이곳 역시도 축사에서 나오는 냄새가 하나도 나질 않는다.
(11:42) 잡풀속에 묻혀있는 당집(?)을 지나고~
그렇게 멀어보이던 부남교가 지척으로 다가온다.
(11:45) 부남교를 건너고~
부남교를 건너며 마읍천에서 낚시중인 강태공을 바라보고~
(11:47) '부남1리 버스정류장'
'부남1리 버스정류장'이 있는 사거리갈림길에서 직진하여 '부남마을'로 들어간다.
'부남리' 표지석이 색다르게 다가온다.
'부남마을' 농로를 따라 해파랑길은 이어지고~
'부남마을' 하늘에 종이매가 떳다. 다들 조심하라구~ ㅎㅎㅎ
우측으로 세번째 축사를 지나고~
이곳 역시도 축사에서 나오는 냄새가 하나도 나질 않는다.
'부남마을' 농로따라 계속 이어지는 해파랑길
(12:01) 전방에 멋진 쉼터 발견!!!
한우 농가 앞에 있는 커다란 소나무 아래에서 배낭을 내리고 간식하며 10분 휴식이다.
아까부터 쉴 공간이 마땅치 않아 쉬질 못했는데, 이곳은 소나무 그늘이 햇빛을 막아 주는 멋진곳이다.
(12:13) 이후 마을안쪽으로 연결된 좌측의 긴 수로를 따라 해파랑길은 이어지고~
(12:21) '삼척한우영농조합법인' 축사를 지나는데~
이곳은 소 울음보다 개 짖는 소리가 더 많이 난다.
혹시 개농장 아냐???
제법 규모가 있는 한우 농가가 많았던 부남리 마을길을 벗어나면
(12:25) '교가1리/오리' 버스정류장이 있는 도로를 만나고, 우측마을은 '교가1리'마을이다.
근덕면 교가리(交柯里)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에 있는 법정리다.
교가리는 고구려의 파리현(波利縣)과 통일신라의 해리현(海利縣) 소재지였으며,
교가역(交柯驛) 및 평릉도찰방(平陵道察訪)의 소재지였다.
마을 가운데에 느티나무가 있으며, 이 나뭇가지가 상교(相交)한다 하여 교가리(交柯里)라 하였다.
교가리 동쪽은 덕산, 서쪽은 교곡리, 남쪽은 광태리와 부남리, 북쪽은 하맹방리에 각각 접한다.
동서 1.5㎞, 남북 3㎞이다.
하촌, 돈동, 하교곡, 대촌, 치동, 시장터, 오리곡 등의 자연마을이 합쳐진 법정리이다.
1950년 행정구역 개편 때 하촌을 옥계리라 하고 대촌과 돈동을 합하여 무릉리라 하였다.
하교곡은 도원리, 치동은 재동리, 시장터는 시동리, 오리곡은 오리라 각각 개칭하였다.
남쪽의 수양산에서는 옛날 총죽(叢竹)이 많이 났다.
북쪽에는 고청산과 구산, 동쪽에는 조산 등이 있다.
교가리 중심부로 동해고속화도로가 관통하며, 고려시대에 심어서 수령이 1200여 년으로
추정되는 느티나무가 있다.
1960년에 세운 관덕정이 있으며, 주변에는 역대 찰방(察訪)의 선정비(善政碑)가 있다.
환경농업특성화마을 표지석을 지나고~
(12:26) 해파랑길은 도로를 버리고 우측 '교가1리'마을로 들어간다.
(12:27) '교가1리' 마을회관을 지나고~
'교가1리' 마을 축사
여기는 축사에서 쇠똥 냄새가 조금 난다.
박주가리...
이후 '교가1리' 마을을 빠져나와 포장도로를 만나고, 잠시 방재로 도로를 따라 진행이다.
(12:37) '덕산교 버스정류장'을 지나고~
(12:39) 해파랑길 갈림길을 만나고~
이곳에서 도로를 버리고 좌측 '마읍천' 둑길방향으로 들어선다.
'마읍천' 둑길을 따라 연결되는 해파랑길
(12:42) '덕산교' 갈림길
해파랑길은 좌측의 '덕산교'를 건너지않고 직진 방향의 둑길로 이어진다.
우측 아래에 있는 '양봉장'을 지나고~
진행방향 좌측으로 '덕봉대교'와 '덕봉산'이 보인다.
'덕봉산'과 '마읍천'을 경계로 우측은 '덕산해변'이고 좌측은 '맹방해변'으로 나뉘어진다.
(12:51) 우측으로 '원전백지화기념탑'을 지나고~
40년 동안 이곳 '근덕면' 지역이 원전 지정과 철회를 두 번이나 반복했다고 하는데~
정권이 바뀐 현실에서 또 어떤 결론을 맺을지 알수가 없다.
(12:52) '덕산해변' 입구
'덕산해변' 입구에서 해파랑길은 좌측 '덕봉대교'를 건너 '맹방해변'으로 이어진다.
(12:54) '덕봉대교'를 건너고~
'덕봉대교'를 지나면서 바라본 '덕봉산'과 좌측의 '맹방해변' 과 우측의 '덕산해변'
'덕봉산' 땡겨보고~
덕봉산(德峰山)
덕봉산은 삼척시 근덕면 덕산리에 있는 해발고도 54m의 산이다.
과거에는 섬이었으나 현재의 덕산해변인 육계사주[육지로부터 돌출 성장하여 가까운 섬에
연결된 사주]에 의해 육지와 연결된 육계도(陸繫島)이다.
덕봉산은 산 모양이 물더덩[물독의 방언]과 흡사하여 「더멍산」이라는 속칭을 가지고 있었는데,
한자로 표기하는 과정에서 「덕번산(德蕃山)」이었다가 현재와 같이 덕봉산으로 변했다고 전해진다.
덕봉산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덕산도(德山島)는 삼척부 남쪽 23리[약 9㎞]인
교가역(交柯驛) 동쪽 바다 위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해동여지도』와 『대동여지도』에도 섬으로 묘사되어 있고 덕산(德山)이라고 적혀 있다.
덕봉산에 대한 기록을 통해서 덕산도는 본래 섬이었는데 후에 육지와 연결되어
이름도 덕산도에서 덕봉산으로 바뀌었다.
덕봉산 주변에 맹방해변과 덕산해변이 있는데, 맹방해변에서 보면 섬이지만,
반대편 덕산해변과는 연결되어 있다.
덕봉산은 『척주지』에 “덕산은 해안에 있는 작은 섬으로 여기서는 전죽(箭竹)이 난다.
덕산에 옛날 회선대(會仙臺)가 있었는데 날이 가물면 여기서 기우제를 지냈다”고 기록되어 있다.
전설에 삼형제산이 강원도 양양으로부터 해상으로 떠내려 왔는데 그 하나는 덕봉산이 되고,
둘째는 삼척시 원덕읍 해망산이고, 셋째가 울진 비래봉[혹은 영해의 죽산]이 되었다고 한다.
또한 산 꼭대기에 심[산삼]물이 담긴 쇳독이 있다는 전설이 있으나 아직 쇳독을
발견한 사람은 없다고 한다.
고사에 따르면, 1572년(선조 5) 맹방리에 사는 홍견(洪堅)이 덕봉산에서 대(竹)가 우는 소리를 듣고
밤에 이슬을 밟으며 산에 올라갔고, 덕봉산에서 기도한 지 7일 밤에 소리 나는 곳을 찾아보니
한 그루에 다섯 개의 대가 있음을 발견하고 이것을 베어 화살을 만들어 무과에 응시할 때
사용하였더니 합격하였다고 한다.
(12:57) '덕봉대교'를 건너 우측 '맹방해변'으로 진행이다.
근덕면 하맹방리(下孟坊里)
본래 맹방(孟芳) 혹은 매향방(埋香芳)이라 불렸는데, 매향방은 향나무를 파묻었다 하여 나온 말이다.
1309년(고려 충선왕 원년) 용화회주 미륵의 하강을 기원하기 위하여 향나무 250그루를
맹방정(孟芳汀)에 파묻었다는 기록이 「고성 사선봉 매향비문(高城四仙峯埋香碑文)」에 있어,
이 마을이 고려시대부터 맹방이란 것을 알 수 있다.
이때 행해진 매향은 단순히 침향(沈香)을 분향 의식 용품이나 약재·각불재(刻佛材) 등으로
사용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당시의 민간신앙, 즉 미륵하생 신앙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즉 매침(埋沈)한 향을 매개로 하여 발원자(發願者)와 하생(下生)할 미륵이 연결되기를 기원하며
매향 의식을 행한 것이었다.
이처럼 매향은 미륵 하생 신앙과 직결된 하나의 민간신앙 의식 형태였다.
맹방은 조선 철종 때 상맹방리(上孟芳里)와 하맹방리(下孟芳里)로 분리되었다.
하맹방리는 근덕면의 북부에 위치하여 동쪽은 바다, 북쪽은 상맹방리, 서쪽은 노곡면,
남쪽은 교가리에 각각 접한다.
사방 각 3㎞이다.
수류곡, 솟골, 초당, 연봉정, 울원 등의 자연마을이 합쳐진 법정리이다.
갑봉산과 남쪽의 구산이 특이한 형상을 하고 있다.
소한천은 초당에서 나오는 물이 동으로 흘러 초당저수지를 이루고, 다시 동으로 흘러
교가천으로 들어간다.
(13:02) '맹방해수욕장'입구 주차장
(13:04) '맹방해수욕장' 입구가 해파랑길 31코스 종점이다.
(13:05) 해파랑길 31코스,32코스 종합안내판과 스탬프
해파랑길 31코스,32코스 종합안내판과 스탬프는 맹방해수욕장입구에 세워져있다.
오늘 3차로 목표했던 해파랑길 31구간도 무사히 도착했다.
해파랑길 31코스 완료 스탬프 찍고~
그런데 처음에 계획한 예상시간보다 엄청 빨리 도착했다.
시간이 너무 많아 지금 바로 마치기엔 너무 찜찜해~
(다음 해파랑길 32구간이 22.9km, 거리가 너무 길어 조금이나마 진행해 놓기로 한다.)
이후 물 한잔하고 맹방해수욕장 화장실에 들려 볼일보고, 잠시 쉬었다가
해파랑길 삼척~동해 32코스를 연속으로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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