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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파랑길

해파랑길 강릉38구간

답사일자: 2022.10.12

코스: 오독떼기전수관(시점)-학산교-오동교-장현저수지-모산봉/103m-경포중학교

-단오문화관-창포다리-중앙성남전통시장-월화거리-남항진해변-솔바람다리(종점)

인원: 나홀로 (이사, 곽차)

거리: GPS 17.94km (두루누비기준 17.4km)

시간: 널널.촬영&휴식포함/ 4시간55분

▶ 갈때 : 강릉37구간 마치고, 38구간 동시진행으로 인해 38구간 들머리 대중교통편 확인못함

▶ 올때 : 강릉38구간 마치고, 39구간 동시진행으로 인해 38구간 날머리 대중교통편 확인못함

강릉 바우길 6구간

​예부터 ‘동대문 밖 강릉’이라고 했습니다.

동대문 밖을 나가서는 강릉이 가장 살기 좋다는 뜻인데,

강릉은 삶과 문화와 예술이 함께 어우러진 도시입니다.

강릉단오제는 유네스코가 선정한 인류문화유산으로

천년의 향기가 깃든 축제 한마당입니다.

남항진 바닷가에서 출발하여 먹거리가 풍부한 강릉 중앙시장을 거쳐

강릉 단오의 주신 범일국사가 태어난 학산마을의 굴산사까지

역사와 문화가 함께 하는 길입니다

(12:10) 오독떼기전수관에서 해파랑길 강릉37구간을 마치고,

학산 표지석과 화장실이 있는 테크쉼터로 되돌아 나온후 배낭을 내리고 준비해온

햄버거와 테라 캔맥주 큰거 1캔으로 점심시간을 갖고 잠시 쉬었다가

해파랑길 38구간 출발 스탬프 찍고, 다시 오독떼기전수관으로 되돌아간후

두루누비&트랭글 앱켜고 해파랑길 38코스를 시작이다.

(12:25) '강릉 오독떼기 전수회관'

강릉 바우길 6구간을 역순으로 출발하는 셈이기도 하다.

해파랑길과 바우길 안내판 앞을 지나고~

(12:29) 굴산사지 당간지주 갈림길인 '굴산교' 앞에서 직진해서 간다.

원래의 해파랑길은 굴산교를 건넌후 바로 좌회전하여 어단천(於丹川)을 우측에 끼고

진행하도록 되어 있으나, 나는 어단천 좌측 도로변에 있는 '조순' 선생 생가 탐방을 위해

굴산교를 건너지 않고 직진해서 간다.

어단천(於丹川)

강원도 강릉시 구정면 일대를 흐르는 총 길이 2.0km의 준용하천이다.

섬석천의 제1지류이자 남대천의 제 2지류로서 강릉시 구정면 구정리에서 발원하여

동쪽으로 흘러 남대천에 합류된다.

어단천(於丹川)이라는 이름은 고려 말기에 고려의 충신들이 낙향하여 강릉에 머물면서

제단을 만들고 임금을 향해 망제를 올렸다는 ‘어단리(於丹里)’의 이름에서 유래하였다.

어단천에 있는 교량으로는 1992년에 가설된 칠성교가 있다.

(12:35) '조순 선생' 생가 입구

'조순 선생' 생가

대문이 굳게 잠겨 있어 먼 발치에서 생가를 조망해 보고 발길을 돌린다.

우리나라 경제학의 대가 조순(趙淳, 1928.2.1~2022.6.23)

전 서울특별시장, 정치인. 호는 소천(小泉). 백미(白眉) 로 유명하다.

학산리 출신으로, 강릉 중앙 국민학교를 졸업 후 서울대학교 상과 대학 전문부를 졸업하고

미국의 보든 대학에서 경제학 학사 및 석사,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54년 육군사관학교에서 교관으로서 영어를 강의했고, 미국 유학을 마치고 1968년부터

1988년까지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케인즈 학파의 일원으로서 많은 학문적 업적과 제자를 남겨 한국의 경제학계에서

"조순 학파"라고 회자되는 인맥을 구축하였다.

조순· 정운천 공저(현재는 전성인, 김영식도 공저자) '경제학 원론'은

한때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경제학 원론 교과서였다.

육군사관학교 교관 시절 노태우 대통령을 가르쳤던 인연으로, 1988년 노태우 정부에 입각하여

1990년까지 경제기획원(현 기획재정부) 장관 겸 부총리를 지냈다.

이후 1992년부터는 한국은행 총재를 지냈다.

遵道行己 奉天受命(준도행기 봉천수명)

도를 따라서 몸을 행하고, 하늘을 받들어 명을 받노라

2008년 7월 조순

이 바위에는 다분히 작위적이지만 신령한 사연이 전해 온다고 표석에 적고 있다.

2002년 태풍 루사가 강릉지방에 큰 피해를 남기고 지나간 뒤 농경지 복구에 필요한

흙이 부족하게 되자 조순 선생이 자신 소유의 임야의 흙을 주민들에게 제공했는데,

채토 작업 중에 직경 5m의 둥근 반석과 3.8m의 긴 바위가 나왔다고 한다.

다음 날 바위를 정돈하려고 가 보니 긴 바위가 톱으로 자른 듯 반으로 쪼개져

현재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에 조순 박사의 친필 경구를 새겨 집 앞에 세웠다는 것이다.

다시 도로를 따라 잠시 진행하면, 어단천 우측 편에 '조철현 고가'가 보인다.

조철현 가옥(曺喆鉉家屋, 강원도 문화재 제87호)

강원도 강릉시 구정면(邱井面) 학산리에 있는 고가로 6.25 전쟁 때

폭격을 받아 무너졌는데 1953년 중창했다.

중부지방의 가옥은 대개 ㅁ자집 형태이지만 이 집은 대문간채 없이 ㄷ자집 형태이다.

지붕은 기와로 된 팔작지붕이다.

도로 쪽에서 곳간의 후면이 보이고, 흙담을 따라서 돌면

먼저 사랑채의 툇마루가 눈에 들어온다.

(12:41) '학산교'에서 기존 해파랑길과 합류하고~

좌측 '범일로' 도로를 따라 해파랑길은 이어진다.

이후 '범일로'를 따라 진행하다 '정의윤 가옥' 입구에서 좌측 소로로 들어선다.

(12:46) 강릉 만성 고택(晩惺 정의윤 가옥,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93호)

강릉 만성 고택은 고종 31년(1894)에 안채를 지었고, 1915년에 사랑채를 지었다.

전체적으로 안채와 사랑채, 서당방이 연결되어 ㅁ자 모양의 배치를 이룬다.

본채 앞에는 대문간채가 있으며, 중앙의 솟을대문을 중심으로 좌우에 외양간, 광, 방이 있다.

대문간채는 한국전쟁 때 불타 없어졌다가 2003년에 복원되었다.

안채는 부엌· 안방· 안대청· 건넌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안대청은 여름을 나는 공간으로 사용되었다.

가옥 전체는 흙과 돌로 만든 기와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단아한 한옥의 아름다움을 갖추었다.

정의윤 고택을 지나 건너편 '강릉 고시원' 방향으로 진행하는데,

오래된 은행나무가 눈길을 끈다.

사거리갈림길에서 해파랑길은 직진이다.

강릉 고시원 앞에서 좌측 임도를 따라 진행하고~

(12:52) 얕은(?) 고개마루에 올라선다.

우측 저 멀리로 백두대간의 삽당령과 석병산이 조망되고~

이후 잡풀이 무성한 고개를 넘어서면 구정면 소재지인 '여찬리'로 들어서게 된다.

여찬리(余贊里)

예전에 개오동 나무가 많아 봉황이 날아와 놀았다 하여

봉양리(鳳陽里)라고 하다가 여찬리로 바뀌었다고 한다.

여찬리 가운데로는 구정천이 장현 저수지로 흘러들어가고,

남쪽에는 산 능선이 지나면서 동쪽으로 넓은 들을 끼고 있다.

2015년 7월에 개관한 엄마꿈박물관[마마세계저울박물관]이 있다.

엄마 꿈 박물관은 저울과 저울에 대한 자료 4,000여 점이 소장되어 있는

대한민국에 유일의 저울 박물관이다.

그 밖에 조선시대 도자기류 등도 소장하고 있다.

마을 내에 원주-강릉 간 KTX 경강선이 지나간다.

(12:56) 물막이 보를 통해 섬석천(剡石川)을 건너고~

섬석천(剡石川)

구정면과 왕산면 경계의 칠성대[953.6m]를 최고봉으로 하는 일련의 산줄기로부터

북사면으로 흐르는 작은 계곡의 물들이 칠성 저수지와 동막 저수지에 저장되고,

이 저수지로부터 흘러나온 물들이 구정면 장현저수지의 물과 합해져 동해로 흘러나가는 하천이다.

(13:00) '구정면 사무소' 앞에서 우회전하고,

곧바로 '여찬리 마을회관' 앞을 지나간다.

'KTX 강릉선' 아래를 통과하고~

(13:04) '여찬리' 및 '봉양 마을' 표지석 옆을 지난다.

이후 해파랑길은 '오동교'를 우측에 두고 도로를 건너고~

섬석천(剡石川) 둑길을 따라 계속 직진이다.

'여찬교' 역시 우측에 두고 계속 직진하고~

해파랑길 이정표를 지난다.

(13:16) '장현 저수지'

장현저수지(長峴貯水池)

강릉시 구정면 여찬리, 내곡동, 장현동에 걸쳐져 있는 저수지로 신석동,

월호평동으로 물이 흘러들어가는 저수지로 1947년 9월 완공되었다.

2002년 태풍으로 제방이 붕괴되어 하류 마을에 심대한 피해를 입혔으며,

2004년 12월 복구하였다.

저수지의 둑을 쌓는 형식은 필댐(fill dam) 방식이며 제방길이 206m,

제방 높이 16.06m, 총 저수량 2,197,100㎥이다.

저수지 인근에는 송파정, 장안성, 왕고개, 장안재, 진재 등이 있다.

 

 

 

'장현 저수지' 가장자리 보강공사가 한창이다.

장현 저수지 부근 'T자' 갈림길에서 우회전하고~

지금까지 진행해 온 '구정면'을 벗어나 강릉시 '강남동'의 '장현동'으로 들어선다.

강남동(江南洞)

강원도 강릉시의 동쪽에 위치한 동으로, 북쪽 경계에는 남대천(南大川)이 흐르고,

가운데는 섬석천(剡石川)이 흐르고, 관내에는 장현저수지가 있다.

동명은 남대천 남쪽에 위치하므로 그렇게 하였다.

노암동, 장현동, 유산동, 박월동, 담산동, 운산동, 신석동, 월호평동의

8개 법정동을 관할하고 있다.

장현동(長峴洞)

강릉시 강남동에 속한 법정동으로, 노암동 진재등에서 넘어오는

‘긴 재에 있는 마을’이란 뜻에서 생긴 이름이다.

가을을 알리는 코스모스...

(13:25) '성불사'를 지나고~

영덕농원을 지나간다.

영덕농원을 지나는데, 갑자기 사과가 얼마나 맛있게 보이는지

과수원 주인장에게 사과 몇개를 살려고하니 사과2개를 그냥 준다.

진짜 꿀맛같은 사과!!! 잘 먹었습니다. ㅎ

(13:30) 산불 감시초소를 지나고,

한국 폴리텍 대학으로 이어지는 포장도로를 따라 진행이다.

'성불사 500m' 표지판을 지나는데, 바우길 이정석이 함께 세워져 있다.

(13:34) '한국 폴리텍 대학' 진입도로 우측의 '모산 등산로'로 들어서고~

이후 좌측은 '강남동'의 '노암동'과 우측의 '장현동' 사잇길을 따라 등산로가 이어진다.

그렇게 시원한 소나무 숲길을 진행하다 보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좌측길은 능선 길이고 우측길은 사면길인데~ 난 당연히 사면길로 진행이다. ㅎ

폐 고가 수로 밑을 통과하여 건너편 계단길을 올라서고~

능선 갈림길에 올라서고, 급 좌회전하여 모산봉 방향으로 올라간다.

계속 산길로 등로가 이어지나 했는데, 등로는 다시 '모산로' 도로로 내려서고~

(13:53) '모산로'를 건너 '모산 초교' 버스정류장 옆으로 들어서서,

좌측의 '모산봉' 방향 등로로 올라간다.

이후 급경사의 오르막길이 계속 이어지고,

모래고개 갈림길 이정표를 지난다.

(14:07) 모산봉 정상

강릉 부사의 집무실인 칠사당에서 남쪽으로 바라보면 보이는 작은 봉우리가 모산봉이다.

산세가 마치 어머니가 어린아이를 업고 가는 모습으로 생겼다 하여 「모산(母山)」

혹은 밥그릇을 엎어 놓은 것 같다고 해서 「밥봉」이라고도 하고,

볏짚을 쌓아놓은 것 같다는 뜻의 「노적봉」, 인재가 많이 배출된다 하여 「문필봉」으로도 불린다.

예로부터 모산봉은 강릉으로 들어오는 재앙을 막아주고 정신적 위안을 주는 봉우리로 알려져

이곳을 향해 집을 지으면 잘 산다는 속설이 전해온다.

그러다 조선 중종 때 강릉 부사가 강릉에서 큰 인물이 많이 나오는 것을 두려워해

모산봉 정상을 석자 세치(약 1m) 깎아내렸다고 한다.

그러다 2005년 강남동 주민들은 모산봉의 정기를 다시 세우기로 하고 6개월 동안

산꼭대기에 흙을 날라 산을 돋우어 105m의 옛 모습을 찾게 되었다.

모산봉 정상에 서면 예전보다 훨씬 더 넓고 가까워진 동해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후 모산봉에서 내려서는 등로는 급경사 내리막이다.

그렇게 모산봉 등산로 입구로 내려서고~

(14:21) '7번 국도 동해 대로' 굴다리 밑을 통과한다.

이후 해파랑길은 '양지뜰 요양원'을 지나고~

(14:28) '유산골길'을 지나 '모산로'로 올라서서 좌회전하여 진행이다.

좌측 편으로 문을 닫은 '강릉 전축 박물관' 앞을 지나고~

'삼흥사' 앞에서 우측 경포중학교 방향으로 진행이다.

좌측의 경포중학교, 우측의 노암 초등학교 사이 도로를 따라 진행하고~

(14:36) 노암 육교를 건너 해파랑길은 직진해서 간다.

'강릉교육지원청'

신화아파트 정문을 지난다.

(14:45) '강릉 단오공원' 앞 이정표

'강릉단오 산림공원'

'강릉단오제 전수교육관'

강릉단오제

단옷날을 전후하여 펼쳐지는 강릉 지방의 향토 제례 의식으로, 1967년 중요무형문화재,

2005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이 축제에는 산신령과 남녀 수호신들에게 제사를 지내는 「대관령 국사성황 모시기」를

포함한 강릉 단오굿이 열린다.

그리고 전통 음악과 민요 오독떼기, 관노가면극(官奴假面劇), 시 낭송 및 다양한 민속놀이가 개최된다.

4주 동안 계속되는 단오제는 신에게 바칠 술을 담그고 굿을 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며,

이 굿에서는 신목(神木), 그리고 깃털·종·대나무 등으로 만든 제물인 화개(花蓋)가 중심 역할을 한다.

이 축제는 유교·무속·불교의 제례 의식이 공존한다는 점이 특징으로 강릉 지방 사람들은

신들에게 드리는 제사를 통해 자연재해를 입지 않고 평화롭고 풍요롭게 살 수 있다고 믿었다.

해마다 많은 방문객이 강릉단오제의 여러 제례 의식에 참석하는가 하면, 단오선 부채 만들기,

신에게 바칠 술 담그기, 관노가면극의 가면 만들기, 수리취떡 만들어 먹기,

창포물에 머리 감기 등의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강릉단오제의 전승 기능은 단오 제례, 단오굿, 관노가면극 등 3가지 부문으로 나뉘어 전승되고 있다.

단오 제례는 기본적으로 유교 의례의 규범을 따르고 있으며 복식을 갖추고 산신제와

송신제 등 제례의 식을 치른다.

단오굿은 본래 상당한 규모의 굿으로서 무격에 의해 전승되며 춤과 음악이 상당히 중요한 요소이다.

관노가면극은 본래 관노들이 연희하던 탈놀이이다.

1894년 노비제도가 혁파됨에 따라 전승이 위축되다가 1909년에는 전승이 중단되었다가

이후 임동권이 관노가면극을 복원하였다.

강릉단오제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강릉 출신 허균이 남겼다.

허균은 강릉단오제를 직접 보고 기록을 남겼는데 제사를 받는 대상이 김유신 장군이라고 썼다.

김유신은 어려서 명주에 유학하여 무술을 익히고 삼국을 통일한 후 죽어서 대관령 산신이 되었고

이 신이 영험하여 해마다 5월이면 대관령에 가서 신을 맞이하여 즐겁게 해 준다고 기록하였다.

 

 

 

(14:50) '강변로' 밑을 통과하는 굴다리를 지난다.

강변으로 나서고, 강릉 바우길 6구간을 따라 좌측으로 진행이다.

(14:53) '창포 다리'

'창포 다리' 위로 올라서면 예전에는 '강릉 관노가면극' 등장 인물상이 세워져

포토존으로 제공되고 있었는데 지금은 철거되고 없다.

강릉 관노가면극(江陵官奴假面劇)

강릉단오제 때 펼쳐지는 탈놀이로 춤과 동작을 위주로 한 국내 유일의 무언(無言) 가면극으로

관노(官奴)라는 특수한 신분에 의해 이루어진 놀이로, 등장인물은 양반광대, 소매각시,

장자마리 2명, 시시딱딱이 2명이다.

우리나라 다른 가면극에서 볼 수 있는 양반에 대한 신랄한 풍자나 저항의식보다는

단오제라는 제의를 중심으로 서낭제 가면 놀이의 전통을 충실히 엿볼 수 있어 흥미롭다.

관노가면극은 본래 단오제가 시작된 후 5월 5일 본제(本祭) 때 여러 서낭당을

돌아다니며 행했지만, 지금은 남대천변 가설무대에서 열린다.

'강릉 남대천'을 건너는 108m의 보도 육교를 건너간다.

'남대천' 상류 바라보고~

남대천(南大川)

강릉 남대천이라고도 한다.

강릉시 왕산면 목계리, 삽당령 북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성산면 구산리와

시 중심부의 남쪽을 지나 동해로 흘러드는 길이 51.3㎞ 하천이다.

구산리에서는 대관천, 하구부에서는 섬석천 등의 지류가 흘러든다.

강의 옛 이름은 성남천·남천이었으며 하류지역에 광제연이 있었다고 한다.

상류부의 산지에는 좁은 곡저평야가 띠 모양으로 발달했고 하류부의 해안지역에는

비교적 넓고 기름진 충적지가 발달해 있다.

영동의 제1도시인 강릉시의 중심시가지는 이 하천 하류 유역의 충적지상에 발달했다.

대관령에서 강릉시에 이르는 강의 북쪽에는 영동고속도로가 지나고

강릉시 노암동과 성남동 사이에는 영동선이 지난다.

이 강은 연어를 비롯한 은어·칠성뱀장어 등의 담수어가 서식한다.

또한 매년 열리는 강릉 단오제 행사가 남대천 변에서 개최된다.

유역 내에는 명주군왕릉을 비롯하여 문조대성전(보물 제214호), 대창리당간지주(보물 제82호),

수문리당간지주(보물 제83호), 굴산사지부도(보물 제85호)와 당간지주(보물 제86호),

강릉객사문(국보 제51호), 칠사당, 향헌사, 포은영당, 오봉서원터, 안국사터,

예국토성 등 수많은 유물·유적이 남아 있다.

'남대천' 하류 바라보고~

그렇게 '보도 육교'를 건넌후 직진하여 '남문동'으로 내려서고~

담벼락에 단오 전통놀이 벽화가 이어진다.

'명주 사랑채' 카페 앞 마당에서 커피 한잔하며 잠시 숨돌리고~

시나미-명주 [시나미는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조금씩’을 뜻하는 「시나브로」의 강원도 말임]

강릉은 삼국시대에 하슬라, 통일신라 때 명주(溟洲)라 불렸다.

명주동은 도시의 옛 지명이 동네 이름이 되었다.

그에 걸맞게 고려에서 조선까지 이어진 강릉대도후부 관아(사적 388호),

강릉부의 행정 읍성인 강릉 읍성, 일제강점기 적산 가옥 등이 자리한다.

강릉 시청도 2001년까지 명주동에 있었으니 약 1000년 동안 강릉의 중심 기능을 했다.

몇 해 전부터 오래된 것의 가치가 재발견되며 작고 아름다운 뉴트로 풍경이 부쩍 늘었고,

2019년 문화체육관광부 주관 ‘생활관광 활성화 공모사업’에 ‘시나미~ 명주 나들이’가

최종 선정되어, 명주동을 기반으로 하여 명주동 일대를 현지인들만의 먹거리와

볼거리를 즐기고, 현지인처럼 체험하고 여행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진행되는 일종의 관광 상품명이다.

‘시나미, 명주 나들이’는 명주 마실 코스(수~목요일)와 명주시나미코스(금~일요일)로

나뉘는데, 명주 마실 코스는 마을 해설 미디어 트레킹이 주를 이룬다.

빨래터나 성벽 등 미리 촬영한 명주동 골목 영상을 태블릿 기기로 보며 마을을 구경한다.

영상에는 무월랑과 연화 낭자의 사랑 이야기가 거리 연극처럼 담겼고, 이야기꾼 김시습,

그라피티를 하는 허난설헌 등 강릉의 위인이 등장해 흥미롭다.

명주시나미코스는 마을 해설사의 육성을 빌려 동네를 여행한다.

마을 해설사는 명주동 할머니들이다.

운이 좋으면 그들의 이웃집인 옛 적산 가옥을 들여다볼 기회가 주어진다.

할머니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가꾼 길가 화단 ‘작은 정원’도 반갑다.

‘작은공연장 단’

작은공연장 단은 교회 건물을 개조해 120석 규모의 복합 문화 공간으로 꾸몄다.

연극과 음악 공연 등이 펼쳐진다.

어풍루

어풍루(馭風樓)

조선 시대에 세워진 강릉 읍성의 남문으로, 강릉시 경강로 2007[남문동 164-1번지]에

있는 강릉의료원 앞 삼거리 부근으로 추정된다.

신선을 의미하는 어풍지객(馭風之客)에서 ‘어풍’을 따서 명명한 것으로 보이며,

‘어풍’은 바람이 많은 강릉 지역에서 바람의 힘을 잘 다스리고자 하는 의미도 담겨 있다.

『관동 읍지(關東邑誌)』에 의하면 남문인 어풍루는 동문인 가해루(駕海樓)와

함께 6칸의 규모였다고 한다.

지금은 일제에 의해 형체도 없이 사라졌지만, 남문동이라는 지명에서 확인되듯이

이 지역에 읍성의 남문이 있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15:02) '경강로'로 나서고~

도로 건너편에 '칠사당' 삼문이 보인다.

칠사당 삼문

칠사당(七事堂)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7호

조선 시대 지방 수령의 주요 업무인 칠사(七事- 호구· 농사· 병무· 교육· 세금· 재판· 비리 단속 )를

집무하던 곳으로, 강릉시 경강로 2045[명주동 38-1]에 위치하고 있다.

이 지역은 960년 이래로 조선 시대까지 강릉 지역의 읍치(邑治)[수령이 고을의 관한

업무를 맡아보는 관아가 있는 곳]가 자리하고 있었다.

ㄱ자형 건축물로 전면 7칸 측면 3칸이며, 정면 좌측에 누마루를 붙였다.

지붕은 겹처마 팔작기와지붕이며, 공포는 하부가 앙서, 상부가 쇠서인 이익공(二翼工) 형식이다.

본체의 좌측은 온돌방이고 중앙에 대청마루를 두었으며, 방 앞에 툇마루를 두었다.

일제 강점기에는 이곳에 일본의 수비대가 있었고, 뒤에 강릉 군수의 관사로 쓰이다가

6·25 전쟁 때 민사 원조단에서 임시로 사용하였고, 1958년까지 강릉시장 관사로 사용되었다.

현재는 강릉 단오제에 쓰일 제례주를 빚는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강릉 대도호부 관아' 입구인 '아문(衙門)'

오호~ 통제라~

가는날이 장날이라고, 현재 강릉 대도호부 관아는 대규모 복원공사가

한창이라 출입불가다.

어쩔수있나??? 후일을 도모할수밖에~ ㅠㅠㅠ

강릉 대도호부 관아(江陵大都護府官衙)

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에 걸쳐 중앙의 관리들이 강릉에 내려오면 머물던 객사(客舍) 터이다.

조선 영조 때의 《임영지(臨瀛誌)》에 의하면 임영관은 936년(태조 19) 총 83칸 규모로 창건되었으며,

임영관이라는 관액(館額)은 1366년(공민왕 15) 공민왕이 낙산사(洛山寺) 관음에 후사를 빌기 위하여

신돈과 그의 종 반야를 데리고 왔다가 비에 막혀 강릉에서 10일간 머무를 때 썼다고 한다.

강릉 대도호부 관아의 규모는 전대청(殿大廳: 9칸), 중대청(中大廳: 12칸), 동대청(東大廳: 13칸),

낭청방(郎廳防: 6칸), 서헌(西軒: 6칸), 월랑(月廊: 31칸), 삼문(三門: 6칸) 등 총 313칸의 규모에

달하였으나, 1927년 일제강점기 때 강릉 공립보통학교가 세워지면서 객사문인 임영관 삼문

(국보 제51호)과 칠사당(강원도 유형문화재 제7호)을 제외하고 모두 강제 철거되었다.

1993년부터 강릉대학교 박물관 및 문화재연구소가 실시한 발굴조사 결과 《임영지》의 기록과

일치되는 고려 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건물 터 유구(遺構)로 행랑 터 3개소, 회랑 터 1개소,

중대청터 2개소, 다자형 석렬(石列)유구, 연도(煙道) 등이 확인되었고, 11~15세기의 고급 청자편,

16~17세기의 백자 및 분청사기 조이 출토되어, 2000년부터 본격적으로 복원작업이 추진되어

2023년에 마무리될 예정인데, 2014년에는 강릉 임영관지에서 강릉 대도호부 관아로 명칭이

바뀌었으며 현재에는 각종 문화 행사와 공연이 열리고 있다.

동​헌(東軒)

조선시대 지방 관서에서 정무(政務)를 보던 중심 건물로 관찰사·병사·수사(水使)·수령(守令)들의

정청(政廳)으로서 지방의 일반행정 업무와 재판 등이 여기서 행해졌다.

지방관의 생활 처소인 내아(內衙 : 西軒이라고도 함)와 구분되어 보통 그 동편에 위치했기 때문에

동헌으로 불리게 되었다.

아사(衙舍)·군아(郡衙)·현아(縣衙)·시사청(視事廳) 등으로 부르기도 하였다.

강릉 임영관 삼문(국보 제51호)

강릉 임영관 삼문(江陵臨瀛館三門)은 강릉 객사인 임영관(臨瀛館)의 정문으로,

국보 제51호로 지정되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층 맞배집 3문으로서 남향이며 주심포 양식이다.

앞면과 옆면만 단을 두어 쌓은 기단은 원래의 모습이 아니라 보수된 것이고,

초석은 자연석을 거칠게 다듬은 화강석으로 비교적 둥근 모양이다.

그 위에 바깥 기둥은 배흘림의 원기둥을, 건물 중앙부의 기둥은 민흘림의 4각 기둥을 세웠다.

지붕은 맞배지붕에 장연만 사용한 홑처마 집으로 고려 시대 건축의 특징을 보여준다.

전해 오는 말에 따르면, 승려 범일(梵日)이 관사(官舍) 터에 절을 지었으나 병화(兵火)로 소실되고

그 문만이 남아 있다가 그 자리에 부관(府館)을 옮겨 지음으로써 객사문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하며,

염양사(艶陽寺)의 삼문(三門)을 객사로 옮겨지었기 때문에 사문(沙門)이라 불려 왔다고도 한다.

절집이 아닌 목조건물로는 이 객사문이 가장 오래된 것이다.

이곳에서 꼭 챙겨 봐야 할 보물 중 하나로 '배흘림 기둥'을 들 수 있다.

중간은 불뚝하고 아래위는 좁은 완벽한 배흘림 수법을 자랑하는 객사 기둥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굵은 목조 기둥이기도 하다.

강릉의 옛 할머니들이 다리를 훤히 내놓고 다니는 처녀들을 보고

‘객사 기둥 같은 다리를 다 내놓고 다닌다’며 혀를 찼다는 그 기둥이다.

중대청(中大廳)

고려 건축 양식으로 전면 3칸, 측면 4칸의 맞배지붕 주심포 양식이다.

건물의 용도에 대하여는 관찰사의 순력 등을 위한 장소로 추정되나 자세한 것은 알 수 없다.

서헌(西軒)

우측의 동대청과 더불어 사신 등이 숙식을 하던 곳으로

구조는 온돌방과 마루로 구성되어 있으며 동대청보다 규모가 작다.

이용 규정에 대한 명확한 기록은 없으나 《수교집록(受敎輯錄)》에 의하면

사신 일행 중 정 3품 관료들이 서헌을 사용했다고 한다.

전대청(殿大廳)

객사의 정청(正廳)이자 중심공간이다.

전대청에는 왕의 전패(殿牌)를 모셔두고 초하루와 보름에 수령이

대궐을 향해 절을 하는 망궐례(望闕禮)를 행하였던 곳으로,

좌·우측의 동대청과 서헌에 비해 지붕이 한 단계 높게 지어졌다.

정면에 1366년 고려 공민왕의 친필인 ‘임영관(臨瀛館)’ 이

가로 3m, 세로 1.2m 크기의 현판이 걸려 있다.

동대청(東大廳)

좌측의 서헌과 더불어 사신 및 중앙관료들의 숙식 및 연회, 재판,

국가 경사 및 애사시 망곡(望哭) 등을 하던 곳이다.

구조는 온돌방과 마루로 구성되어 있으며 서헌보다 규모가 더 크다.

이용 규정에 대한 명확한 기록은 없지만 《수교집록(受敎輯錄)》에 의하면

문·무관 구별 없이 사신 일행 중 품계가 2품 이상은 동대청을 이용했다는

것으로 미루어 서헌보다 위계가 높았음을 알 수 있다

(15:08) '객사문 사거리'에서 남쪽 '남대천' 방향으로 진행하고~

강릉관광호텔 앞 사거리에서 좌회전 하여 '강릉 중앙시장' 방향으로 간다.

(15:13) 강릉 면세 거리 '금성로'의 '사랑 마크'도 지나고~

(15:19) 중앙 성남 전통시장 옆을 지난다.

중앙시장 좌측 건너편의 '옥천동 은행나무' 고목

우측 '월화 거리' 관광안내센터 앞을 통해 '월화 거리'로 들어서서 남쪽으로 진행이다.

강릉시는 강릉~원주 간 고속 철도 도심 구간[강릉시 교동 강릉역~노암동 부흥 마을]의

지하화로 생긴 폐철도 부지에 2.6km의 거리 공원을 조성하고, 강릉 지역의 고유 설화인

애틋한 사랑 이야기의 주인공인 ‘무월랑(無月郞)’과 ‘연화 부인(蓮花夫人)’의 이름에서

한자씩 따 와 '월화 거리'라 명명하였다.

월화 거리 공원은 총 8개의 구간으로 구성해 ‘말 나눔터 공원’, ‘숲길’, ‘임당 광장’,

‘역사 문화 광장’, ‘생활 문화 광장 및 전망대’, ‘철도 보도 육교’, ‘물놀이 시설·

노암 터널’, ‘월화정 숲길’ 등으로 조성하였고, ‘임당 광장’, ‘역사 문화 광장’ 등에는

89개의 풍물 상점도 문을 열었다.

야간에 밝혀지는 등불이 만국기처럼 길게 줄지어 걸려있는 탐방로를 따라서 간다.

(15:25) '월화 거리' 포토존

폐철도길을 따라 조성된 도심공원으로 강릉 고유의 설화이자

춘향전의 모티브가 된 ‘무월랑과 연화부인’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주요테마로 하여 ‘월화거리'라 이름을 지었다.

스토리가 있고 누구나 걷고 싶은 거리, 맛난 음식과 공연, 전시 등 을

즐길 수 있는 매력적인 공간이다.

남매~

남대천을 가로지르던 철교가 보도교로 탈바꿈했다.

그렇게 보도교인 '월화교'를 건너면 우측에 대형 황금 잉어상과 함께 월화정이 세워져 있다.

월화정(月花亭)

무월랑(無月朗)의 ‘월(月)’ 자와 연화부인(蓮花夫人)의 ‘화(花)’자를 따서 이름 붙인 정자로

『고려사(高麗史)』「악지」에 소개된 「명주가(溟州歌)」의 배경 설화가 전승된다.

「남대천 월화정 설화」는 허균(許筠)의 「별연사고적기(鼈淵寺古迹記)」에 가장 자세하게 실려 있다.

그 내용에 의하면 “강릉부의 남쪽에 큰 내가 있고 그 내의 남쪽에 별연사가 있으며,

그 절 뒤쪽 언덕은 연화봉(蓮花峰)이다.

노인들이 전하기를 주원공(周元公)의 어머니 연화 부인이 여기에 살았으므로 이것을 따서

봉우리 이름을 삼았고, 절은 곧 그 옛집이라 한다.

절 앞에는 석지(石池)가 있는데 이름을 양어지(養魚池)라고 한다."라고 하였다.

'남대천 월화정 설화'는 「양어지 설화」 또는 「명주가 배경 설화」 등으로도 불리는

남·여 간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로, 신라 29대 태종 무열왕 6세손인 강릉 김씨 시조

명주군왕(溟州郡王) 김주원의 부모인 ‘무월랑(無月郞)’과 ‘연화 부인(蓮花夫人)’이 그 주인공이다.

신라 35대 경덕왕(景德王) 때에 무월랑 김유정(金惟靖)이 화랑도 사관으로 명주(현 강릉)에서

재임할 때 연화봉 아래 별연사지 부근에 있는 연못에서 잉어에게 먹이를 주고 있는

지방 토호의 딸인 연화 낭자를 만나 사랑을 하게 되었다.

무월랑이 임기를 마치고 서라벌로 떠나면서 백년가약을 언약하였으나 그 후 연락이 끊겼고,

박낭자의 부모는 딸을 다른 데로 시집을 보내려고 하였다.

혼담이 오가게 되자 연화 낭자는 그리움과 현 상황을 비단에 써서 고기에게 먹이를 주며

하소연을 할 때 황금빛 잉어가 편지를 물고 사라졌다.

그 후 무월랑은 어머니의 병구완을 위해 장에 들러 잉어 한 마리를 사 오게 되고,

잉어의 배를 가르니 편지가 나오는데 바로 연화의 편지였다.

이러한 사연을 알게 된 임금은 무월랑과 연화 부인이 천생연분이라 하여 신어의 연으로

혼인을 하게 되었고, 강릉 김씨의 시조 명주군왕 주원을 낳으셨다.

(허균 별연사고적기, 동국여지승람)

두 사람이 잉어의 배에서 나온 편지를 보고 다시 만나게 된 일에 대해

『고려사(高麗史)』「명주가 배경설화」에서는 “정성에 감동되어 이루어진 일이지

사람의 힘으로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하여 천정배필임을 강조하고 있다.

잉어가 편지를 전달하는 전설은 당나라 때 단성식(段成式)이 편찬한

『유양잡조(酉陽雜俎)』의 가섭 처녀 이야기와 유사하고,

고악부 「음마장성굴행(飮馬長城窟行)」의 내용과 아주 비슷하다.

이후 옛 철길에 놓인 깨끗한 탐방로를 따라 해파랑길은 이어지고~

(15:39) 노암 터널을 통과한다.

(15:43) 다시 도로를 만나고~

이중 회전 교차로 중 첫째 교차로의 '청량동' 방향으로 해파랑길은 이어지는데,

바로 좌측 앞의 '기아 모터스' 우측 도로다.

'청량학동길 10번 길'을 따라 진행하고~

사거리 도로 갈림길에서는 '창세기공예사'가 있는 직진방향이다.

(16:02) 자스민 사주카페 입구를 지나고~

도로에서 좌측으로 약간 들어서면 '자스민 사주카페'가 위치하는데,

2007년 연초 국민 마라토너 이봉주가 그의 장인과 함께 방문하여

사주를 보는 장면이 'SBS 백년손님'에 방영된 바 있다.

 

 

 

(16:06) '청량동 삼거리' 버스 정류장 앞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진행이다.

(16:09) 지금은 버스 운행이 중단된 '청량동 종점' 버스정류장을 지나고~

'ㅓ자' 갈림길에서 직진해서 진행하다 만난 해파랑길 이정표

지금은 용도 폐기된 콘크리트 고가 수로 옆을 지나고~

(16:25) '성덕로' 대로로 만나 우측 도로를 따라 잠시 진행이다.

(16:30) '청송 어린이집' 입구 횡단보도와 '핸들 버스승강장'이 있는 곳에서

우측 마을길로 들어서고~ 학우리골 방향이다.

햇빛사랑 어린이집 갈림길에서는 좌측으로 진행하고~

(16:39) 한옥 펜션인 '학동마을 대장골집' 앞을 지나는데,

솟대(진또배기)가 여러 개 세워져 있다.

전방 논 앞쪽으로 '강릉비행장'의 관제탑이 보이고~

(16:50) '병산동 서낭당'을 지난다.

마을 수호신인 성황을 모셔 놓은 서낭당으로, 병산동에는

수서낭과 암서낭 두 개의 서낭당이 있는데,

병산 초등학교 앞 논 가운데 위치하고 있는 이곳은 암 서낭당으로,

소나무 7그루가 서낭 숲을 이루고 있다.

당집 안에 성황지신(城隍之神)을 모시고, 제의는 성황제(城隍祭)라고 하며

음력 정월 초순에 지낸다.

성황지신(城隍之神)·토지지신(土地之神)·여역지신(癘疫之神)을 모시는

병산동 수 서낭 제당은 병산동 산 32번지 마을 산기슭에 위치하며

수령이 오래된 소나무가 서낭목이다.

강원도 교육연수원 별관 앞을 지나고~

(16:53) '병산교' 앞에서 다리를 건너지않고 좌측 둑길로 진행이다.

이후 해파랑길은 우측으로 섬석천을 끼고 둑길을 따라 진행이다.

(17:08) '공항길'로 들어서고, 우측의 '남항진교'를 건너서 간다.

그렇게 '남항진 해변' 방향으로 진행하다 좌측으로 보면,

'안목 해변'이 있는 '죽도봉'이 보이고~

(17:13) '남항진' 표지석이 있는 도로 갈림길에서 해파랑길은 좌측길로 이어진다.

'타워 360° / 아뜨 9' 커피 카페를 지나고~

(17:17) '남항진 해변'

남항진해수욕장

길이 600m, 2만 4천㎡의 백사장이 있는 간이해수욕장이다.

남항진은 강릉시 동쪽 남대천 하구의 섬석천이 바다와 만나는 곳에 위치한 포구이다.

옛날에 송정에서 한송사(寒松寺)로 가는 남쪽 길목에 있는 나루라는 뜻에서,

그런 지명이 붙었다.

해수욕장 주변에는 횟집들이 많고, 주차장이 넓어서 주차하기도 용이하다.

주변에는 울창한 소나무 숲과 깨끗이 정비된 민박집이 있어서

조용하게 며칠쯤 쉬어가기에 적당하다.

(17:20) 남항진해변 솔바람다리

해파랑길 38코스,39코스 종합안내판과 스탬프는 솔바람다리 우측에 세워져 있다.

오늘 아침에 출발한 해파랑길 37코스는 바다에서 내륙으로 들어갔으나,

반대로 38코스는 내륙에서 다시 바다로 나오는 등 해파랑길 37코스와 38코스는

ㄷ자형의 코스로 조성되어 있다.

강릉 아라나비 짚라인

-운행시간 : 10:00 ~ 17:00 (기상에 따라 변경 가능)

-요금 : 20,000원(왕복 600m) - 1인 기준/ 대인·소인 동일 / 동반 체험시 2인 기준

-이용조건 : 몸무게 30 ~ 130kg 이하(30kg 이하의 경우 성인과 동반 가능)

아라나비란???

​"아라"는 바다의 순우리말로서 아름다운 바다 위를 "나비"처럼 훨훨 날아간다는 의미입니다.

아라나비는 열대원주민들이 짐승들을 피해 정글위로 생활용품 등을 메고 이동했던 이동수단으로,

이동하고자 하는 곳 양편의 지주대 사이로 와이어를 설치하고 체험객이 안전띠와 연결된

도르래를 걸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이동하는 신종 익스트림 레포츠입니다.

운영업체에 따라 "집라인", "짚와이어", "짚트랙"으로도 불리지만 아라나비는 유사 업체 중

국내 기술로 만들어진 유일한 대한민국 토종 브랜드입니다.

탄소배출이 없는 무동력 친환경 스포츠로서 현재 미국, 호주, 유럽 등 전세계에서

친환경관광(Eco Tourism)으로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아라나비 홈페이지]

오늘 2차로 목표했던 해파랑길 38구간도 무사히 도착했다.

해파랑길 38코스 완료 스탬프 찍고, 두루누비&트랭글 앱 끄고, 물 한잔하고 잠시 쉬었다가

오늘 하룻밤 묵어갈 숙소가 해파랑길 39구간 초반에 있어, 해파랑길 39코스 출발 스탬프 찍고,

두루누비&트랭글 앱 켜고~ 해파랑길 39구간을 연속으로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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