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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파랑길

해파랑길 양양~속초 42구간

답사일자: 2023.4.21

코스: 죽도해변입구(시점)-동산항-동산마을-동산해변-북분리해변-북분리마을

-38선휴게소/38선해변-기사문항-만세고개-하조대교차로-하조대입구-하조대-기사문등대

-하조대전망대/스카이워크-하조대해변(종점)

인원: 나홀로 (이사, 곽차)

거리: GPS 10.2km (두루누비기준 9.7km)

시간: 널널.촬영&휴식포함/ 2시간50분

▶ 갈때 : 양양~속초41구간 마치고, 42구간 동시진행으로 인해 42구간 들머리 대중교통편 확인못함

▶ 올때 : 양양~속초42구간 마치고, 43구간 동시진행으로 인해 42구간 날머리 대중교통편 확인못함

'죽도해변' 입간판 옆 해파랑길 41코스 종점이자 42코스 시점에서 해파랑길 41코스를 마치고,

근처 GS25 편의점 야외테이블에 앉아 뜨거운 컵라면과 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한 후

해파랑길 42코스를 이어간다.

해파랑길 41코스,42코스 종합안내판

해파랑길 42코스 종합안내판에 의하면 거리 9.4km,

소요시간 3시간30분으로 표시하고 있다.

해파랑길 42코스 스탬프찍고 두루누비&트랭글 앱켜고

(11:40) 해파랑길 양양~속초 42코스 시작이다.

좌측으로 줄지어 이어져있는 서핑가게들과

우측으로 '죽도해변' 사이로 이어지는, '인구중앙길'을 따라 진행하고~

(11:47) '동산교차로'를 지나고,

이곳에서 해파랑길은 우측 '동산해변'으로 이어진다.

'동산교차로' 옆 넓은 주차장을 지나는데,

부부 시인인 '김귀녀 시인'과 '김내식 시인'의 시비가 세워져 있다.

고향바다 -김귀녀 ※1952년 현남면 시변리 출신

대관령 돌고 돌아 / 고향 바다 찾아가는 것은 / 추억 속에 묻혀 / 오늘의 현실을 잊고 싶기 때문이다 //

휴휴암 지나 / 광진 고갯마루 올라서서 / 포말 속에 갇힌 죽도를 바라보며 / 꿈 많은 소녀로 되돌아가고 //

시인의 꿈에 젖어 / 수평선을 읊어대던 시 안 구절 / 모래알 속에 / 살며시 묻었던 수줍은 사랑 //

밀려오는 허무의 포말 덩어리 / 중년의 가슴으로 끌어안고 / 삶을 압축한 시 한 편 /

갈매기 나래 위에 얹고 싶다

아내의 바다 -김내식 ※ 1973년 동방사 해안 중대장

아내의 바다에서 일으키는 / 거친 물결은 / 두고두고 퍼져나가 / 지워지지 않는다 //

수면에 던져진 돌은 / 가라앉으나 / 감정을 뒤집는 삶의 바다엔 / 기슭이 없다 //

때로는 너울성 파도가 되어 / 남편의 잘못을 두고두고 / 자식들과 함께 들추는 / 삼각 파도가 된다 //

그러나 염려 말자 / 그대 스스로 / 순하고 부드러운 잔물결로 / 변하면 될 것이다

(11:49) '불망 선정비'를 가지런히 세워놓은 곳을 지나고~

우측으로 돌아서니 '양양지구 전투 초전 충혼비'와

'UN 태국 해군 참전기념탑'이 세워져 있다.

양양지구 전투 초전 충혼비

6.25전쟁 당시 강원도 지역방어에 힘쓴 8사단을 추모하며, 8사단 초전 전투(50. 6.25~6.27)에

전사한 전몰장병 748명을 추모하기 위해 UN 한국전 참전국 친선협회 강원본부에서

2016년 9월 충혼비를 건립 제막하였다.

유엔 태국 해군 참전기념탑

양양군 현남면 인구리에 2017.8.14 제막된 탑이다.

태국은 한국전 발발 5일 후인 1950년 6월 30일 쌀 4만 t을 지원키로 하는 등 아시아 지역에서

가장 먼저 한국전 지원 의사를 밝혔으며, 전쟁 발발 후 5개월 만인 1950년 11월 7일 첫 파병군이

부산항에 입항하는 등 보병 1개 대대와 군함 9척, 수송기 편대 등 연인원 1만 5천여 명이 참전해

전사 136명, 실종 4명, 부상 1139명의 피해를 입었다.

당시 태국군이 한국전 참전을 위해 미국으로부터 구매해 운용했던 「쁘라새함」 군함은

총 32차례의 작전에 참여했고, 한때 양양 해변에서 좌초되기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2000년에 퇴역한 쁘라새함은 라용 주(州) 팍남 쁘라새에 박물관 형태로 보존되어 있다.

(11:51) '동산항'입구 교통표지판을 지난후,

'동산큰길' 도로를 따라 우측으로 진행하고~

 

(11:53) '현남면 종합안내도'를 바라보고~

'동산리 해변'이 시작된다.

'동산해변'에 조성되어 있는 해송 방풍림 사이

데크 탐방로를 따라 길게 진행하고~

(11:56) '시변리해변'을 거쳐 '동산리해변'을 지나고 있는 지점에

종합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조각가 '표찬용'의 「환영(幻影) – 바다를 넘다」

이 작품은 양양군의 유명 서핑 장소인 동산항 해수욕장의 지역적 특징을 나타내는

파도를 타는 서퍼의 모습을 표현하였고, 바다와 푸른 하늘의 경계를 나타내는

파도를 승리를 나타내는 V자 형태로 표현하고 있다.

(11:57) '동산포 캠핑장'을 지나고~

(11:58) '동산리마을 복지회관'을 지나고~

(11:59) 우측으로 '동산항'을 보면서 지나는데, 특이하게도 '동산항'은

포구 안에 둥근 갯바위들이 산재해 있고 그 사이에 넓은 평탄면이 조성되어 있다.

2013년 초에 방영된 박신양, 김정태 주연의 영화 ‘박수 건달’ 중

무당이 굿하는 장면이 이곳 '동산항 포구' 안에서 촬영되었다고 한다.

(12:00) '동산큰길' Y형 도로갈림길에서 좌회전하고~

(12:02) 현대식 2층 양옥건물인 '東山庵(동산암)'을 지난다.

(12:03) '동산리 버스정류장'을 지나고~

우측으로 '동산해변'이 펼쳐지는데, '동산해변'은 그냥 패스다.

(12:06) '동산리(동산해변) 버스정류장'을 지나고~

'동산항교차로'에서 우측 도로 오르막길을 올라서면

도로옆에 큰 바위 2개가 있는곳을 지나고~

(12:08) '조개굽는마을' 대형 표지석을 지난다.

동해안에서 가장 저렴하게 구이용 조개를 구할 수 있는 곳!

동해안의 조개구이집으로 조개를 조달해 주는

「조개굽는마을[대흥운수산/ 033-671-0768]」)’이라 한다.

이곳의 특징은 각종 조개들을 직접 도매가로 고객들께 공급을 한다는 점이다.

이후 '소나무 방풍림'이 높이 솟은 2차선 도로를 따라 나가는데,

좌측으로는 '7번국도 동해대로'가 나란히 지나간다.

(12:14) 작은 개천을 가로지르는 시멘트다리를 건너고,

'행복나드리 글램핑&카라반' 건물앞에서 우회전하여 진행이다.

우측으로 제법 큰 개천을 끼고 직진하다가,

해변을 만나면 좌회전이다.

(12:06) '북분리 솔밭해변'을 지나고~

북분리 해변(北盆里海邊)

양양군 현남면 북분리의 해수욕장으로 백사장 길이 350m, 수심 0.7m이다.

주문진읍에서 북쪽으로 15km 떨어진 곳에 있으며, 잔교리 해수욕장과 동산해수욕장 사이에 위치한다.

작고 아담한 곳으로, 바닷물이 맑고 모래가 깨끗하며, 해안선과의 경사가 완만하다.

소나무 숲이 울창하여 주변 경관이 빼어나며 무엇보다 조용해 가족 단위의 피서지로 적합하다.

주문진 시내에서 북분리행 시내버스가 수시로 운행되고 있다.

북분리해변 포토존

(12:21) '북분리 솔밭해변' 끝에서 '7번국도 동해대로'

밑을 지나는 굴다리를 통과하고~

(12:23) '북분리' 표지석이 있는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북분안길' 도로를 따라

'북분리경로당' 녹색지붕 건물을 바라보며 진행이다.

(12:25) '북분리경로당' 앞을 지나고~

(12:27) '북분리마을'을 지난다.

'북분리마을' 오르막길을 오르다 우측으로 보면,

'曉園齋(효원재)'란 표지석의 건물이 있는데 어떤 건물인지 궁금하지만 물어볼때가 없다.

그렇게 언덕길에 올라서고, 멋진 소나무를 바라보면서

'북분안길' 도로를 따라 길게 진행하고~

(12:32) 우측으로 '훼미리 휴게소'로 이어지는 T자 갈림길에서 좌회전하는데

건너편 전봇대에 '해파랑길 42코스 3km지점 패널'이 달려 있다.

(12:33) '황겹매화' 군락지를 지나고~

(12:35) '북분교'앞 도로사거리에서 해파랑길은 '북분교'를 건넌다.

그렇게 '북분교'를 건너면 지금까지 '현남면 북분리'였던 행정계가

'현북면 잔교리'로 바뀌게 된다.

현북면 잔교리(棧橋里)

양양군 현북면의 리(里)로 밭농사를 주로 하는 농촌 지역이다.

마을 중간으로 하천이 형성된 관계로 하천을 건너기 위한 棧橋가 많았다하여

잔교리라 하며, 일명 잔다릿골이라고도 한다.

잔교리는 국군의 날 제정의 토대가 된 마을이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뒤 한반도에 38선이 그어진다.

이어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인천상륙작전과 9·28 서울 수복 등으로 승승장구하며

북진을 거듭할 무렵 유엔에서 연합군 측에 38선을 넘지 말 것을 지시한다.

연합군이 머뭇대던 사이 이승만 대통령이 국군에 북진 명령을 하달하였고,

국군 3사단 23연대가 최초로 잔교리의 38선을 넘어 북으로 진격한다.

그날이 1950년 10월 1일이다.

현재 국군의 날은 이날을 기려 1956년 제정한 것이다.

 

 

 

(12:37) '7번국도 동해대로'를 만나고,

해파랑길은 '7번국도 동해대로' 직전에서 좌측으로 이어지는 탐방로를 따라 진행된다.

'7번국도 동해대로' 건너편에 '해난어업인 위령탑'이 있는데,

'해난어업인 위령탑'은 먼 발치에서 바라보기만 한다.

해난어업인 위령탑

해상 조업 중 불의의 사고로 사망, 실종된 어업인의 넋을 추모하고

유가족을 위로하기 위해 1995년에 세운 탑으로, 매년 5월 10일

위령제가 개최되며, 총 1075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우측의 '7번국도 동해대로'와 나란히 이어지는 탐방로를 따라 진행하고~

(12:39) 우측 '7번국도 동해대로' 도로 건너편의

'잔교해변'을 바라보며 진행이다.

잔교해변(棧橋海邊)

38선 휴게소에서 남쪽으로 1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해수욕장으로

백사장이 작고 깨끗하여 가족 단위 피서로 알맞은 곳이다.

주변에 숙박업소나 상가가 없어 한적하지만 화장실 등 부대시설은

물론 해송 사이로 야영장이 갖춰져 있어 피서를 즐기기에 좋다.

해수욕장 옆으로는 공원이 조성되어 있어 산책과 주차가 편리하다.

매년 여름 해변축제가 펼쳐져 조개 잡기 체험, 조개 보물 찾기, 해물파전 만들기,

해변 줄다리기, 유선 보트 시승, 바나나보트 시승 등 다양한 체험을 즐길 수도 있다.

(12:41) '4대강 국토종주 낙동강 자전거길 팔각정쉼터' 안내판을 지나고~

(12:43) 우측 '7번국도 동해대로' 도로 건너편의 '무궁화동산'에

'경찰전적비'가 있는데, 먼 발치에서 바라보기만 한다.

6·25전쟁 당시 양양·속초 지역은 접경 지역으로 수많은 격전이 있었던 곳이다.

전쟁 초기 수없이 많은 격전이 치러졌고, 휴전 시까지도 계속해서 접전이 이루어진 전선이었다.

이처럼 치열한 전장이었던 양양·속초 지역 25개소 격전지에서 희생된 경찰 32위의 넋을

추모하기 위하여 1992년 6월 14m 높이의 경찰전적비가 건립되었다.

그렇게 우측으로 '7번국도 동해대로'와 나란히 이어지는 탐방로를 진행하다가,

(12:45) 잡목 사이로 바다 한가운데 제법 큰 섬인 '조도' 바라보고~

양양군 조도 주변 해역에 보호 대상 해양생물인 왕거머리말(잘피)군락이

형성되어 있는 것이 확인되어 국내 28번째 해양보호구역으로 지정하였다.

이로써 국내 해양보호구역은 연안습지보호지역(갯벌) 14곳, 해양생태계 보호구역 13곳,

해양생물 보호구역 1곳 등 모두 28곳으로 확대되며, 전체 면적도 서울시 전체 면적의

96% 수준인 586.4㎢로 늘어난다.

해양수산부는 2013년 해양생태계 기본 조사를 실시하여 양양군 조도 주변 해역에

보호 대상 해양생물인 왕거머리말(잘피)가 0.13㎢(축구장 면적의 18배) 범위로

서식하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12:46) 우측으로 '양양소방서 하조대119안전센터'를 바라보며 진행이다.

(12:47) Y자 도로갈림길을 만나고,

해파랑길은 좌측으로 진행하고~

(12:49) 쓰레기매립장 폐쇄안내판을 지난다.

(12:54) 저 앞쪽으로 '7번국도 동해대로' 위에 대형 광고판이 설치되어 있는데,

그 내용은 '말이 돼? / 양양 서핑도 안 해보고!'이다.

(12:56) 갈림길 앞쪽으로 '가스공사 시설물'이 보이는, 해파랑길 갈림길이다.

이곳에서 우측 육교를 통해 '7번국도 동해대로'를 건너고~

반대편 대형 광고판에는 '파도를 탄다! 행복을 탄다!'란 문구와 함께

가족들이 서핑보드를 들고 해변을 지나는 보기좋은 모습이 설치되어 있다.

이후 지그재그 데크탐방로를 내려서서 저 앞쪽에 있는

'38선휴게소' 방향으로 진행하고~

(13:02) '38선 표지석'을 지난다.

1945년 8월 미·소 양국이 북위 38도 선을 경계로 일본 점령지의 전후 처리를 위해 설정한

임시 군사분계선으로 하나였던 한반도의 허리를 관통하여 12개의 강과 75개 이상의

샛강을 단절시켰고, 181개의 작은 우마차로, 104개의 지방 도로, 15개의 전천후 도로,

8개의 상급 고속도로, 6개의 남북 간 철로를 단절시키며, 하나의 독립국가로의 발전을

저해하는 걸림돌이 되었다.

이데올로기의 갈등이 심화되고 적대감이 고조된 1950년 6월 25일 전쟁으로 이 선이 무너지나,

1953년 휴전 협정으로 휴전선이 성립할 때까지의 남한과 북한의 정치적인 경계선이 되었다.

양양지역에서 최초로 38선을 돌파하면서 기념 표지판을 세운 3사단 23연대(1950. 10. 1)를

기념하여 정부는 1956년 10월 1일을 국군의 날로 제정하였다.

38선이 그어질 당시 잔교리는 마을 중심을 흐르는 잔교천(현 38선천)을 경계로 북쪽 능선에는

소련군 초소가, 남쪽 능선에는 아군 초소가 설치되어 한마을이 불시에 양단되고 해상에서까지

남북 왕래가 끊기어 혈육이 생이별하고 서로가 적대시하는 민족적인 비극이 비롯되었다.

그 비극적인 과거를 되새기기 위해 38선을 따라 38km의 걷는 길을 만들었는데,

그게 ‘38선 숨길’이다.

3·8 표지석을 이전하면서 [표지석 내용]

본 3·8 표지석은 민족 통일 양양군 협의회가 주축이 되고 뜻을 같이한 강호 제현의

협찬으로 1988년 10월 9일 이곳으로부터 15km 북방 3·8휴게소 광장에 세워졌다.

그러나 2001년 6월 차량 접촉사고로 인하여 표지석의 하단부가 파손되어

긴급 보수공사를 요하게 되었다.

차제에 해마다 늘어나는 관광객 수용과 증폭되는 차량 운행을 위하여 자리를 옮겨 보자는

총의가 모아져 회원들의 성금과 (주)대명콘도의 협찬으로 원형을 이곳에 복원하였다.

2001년 10월 1일

'평화통일기원 일붕 시비'

곰 인형 포토존

'38선휴게소'

38선 경계선은 연천군, 가평군, 포천시, 화천군, 인제군 그리고 양양군에 남아 있다.

38선휴게소는 전국에 세 곳이 있는데, 포천시· 인제군· 양양군에 있다.

그중 7번국도변에 위치한 양양휴게소가 가장 유명하고 오래되었다

'조도' 바라보고~

'기사문리 38선해변'에는 2명의 써퍼들이 파도를 즐기고 있다.

(13:06) '잔교천[38선천]'을 가로지르는 '38선교'를 건너고~

'잔교천[38선천]' 기수역 바라보고~

(13:08) '기사문리해변' 입구를 지나고,

'기사문길' 도로를 따라 '기사문항'으로 해파랑길은 이어진다.

기사문리(基士門里)

양양군 현북면에 위치한 리(里)로, 예전에는 내·외 마을로 구분 지어 각각 초진과 기사진으로 불렸다. 1759년(영조 35년)에는 초진리로 불렸고, 근래에 와서 기사진이 기사문리로 개칭되었다.

기사문리의 해변 백사장을 걸으면 사박사박 소리가 나기 때문에 오사(嗚沙)라고 한다.

(13:10) '기사문항' 어촌계 활어센터를 지나고~

'기사문항'과 방파제 바라보고~

(13:13) '기사문 해양출장소'가 있는 갈림길에서 해파랑길은

좌측 '기사문길' 도로를 따라 '기사문마을' 안으로 이어진다.

'기사문마을' 벽화 길이 시작되고~

(13:17) '기사문리' 마을끝 '삼팔파크횟집' 건물에서,

우회전하여 마을 길을 벗어난다.

(13:18) '기사문리 버스정류장'을 지나고~

(13:19) '7번국도 동해대로'와 나란히 이어지는 자전거길을 따라 진행하는데,

4km 전방의 '양양국제공항' 휴게소가 있다는 교통안내판을 지난다.

(13:23) '7번국도 동해대로' 건너편에 있는

'3.1 만세운동 유적비'를 바라보며, '만세고개'를 지나고~

만세고개

원래 이름은 '관고개'였는데 광복이 되자 자연스럽게 '만세고개'로 이름이 바뀌었다.

​1919년 4월 9일 현북면 농민 6백여 명이 독립 만세운동을 일으켜 기사문리의

일제 경찰관 주재소를 포위, 천지가 진동하는 만세를 외쳤다.

이때 언덕 밑 계곡에서 미리 잠복하고 있던 일제 수비대와 경찰의 무차별 발포에

현장에서 9명이 순국하고 30여 명이 부상했다.

2000년 3월 1일 만세고개에 태극기를 본뜬 기념탑을 세우고 당시 순국하거나

다친 사람들의 명단을 새겨 3·1만세운동 유적지로 조성하여, 매년 삼일절마다

선열의 희생과 뜻을 기리는 기념식이 열리고 있다.

 

 

 

(13:26) '하조대 교차로'에서 '7번국도 동해대로'를 벗어나,

우측 '하조대' 방향으로 우회전하고~

(13:29) '하조대' 입간판을 만나고, '하조대1길' 도로를 따라 진행하는데,

남쪽지방에는 이미 지고없는 '겹벗꽃'이 이곳은 한창이다.

(13:32) '광정초등학교' 앞을 지나고~

(13:34) '현북파출소' 앞 삼거리에서 우회전하여,

'광정천'을 좌측에 끼고 '하륜길' 도로를 따라 진행이다.

지나온 '광정천 은하수교' 바라보고~

광정천(光丁川)

강원도 양양군 현북면 명지리에서 발원하여 말곡리, 상광정리,

중광정리를 지나 하광정리에서 동해로 합류하는 지방하천이다.

한강동해권 수계의 지방하천으로 하천의 수계는 본류인

광정천과 지류인 대치천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천연장은 8.2km, 유로연장 11.7km, 유역면적 31.83㎢이다.

(13:39) '하륜길'과 '하조대해안길', 그리고 '조준길'이

갈리는 삼거리갈림길 앞에 도착하고~

'엘마 콘도텔'과 하조대 횟집 좌측 '하륜교'를 건너면 '해파랑길 42코스 종점'인데

두루누비앱은 '조준길'을 따라 이곳에서 500m 가량 떨어져 있는 양양8경 중 5경인

'하조대''와 '기사문등대'를 보고 오라고 한다.

(13:40) '하조대'로 이어지는 아치형 입구로 들어간다.

좌측으로 '하조대둘레길' 데크 탐방로와 군 경계 철망펜스 너머로

군 휴양소 해변이 펼쳐지고~

(13:44) 군 휴양소 입구를 지난다.

군 휴양소 출입문 우측의 도로를 따라 진행하여 '하조대'와 '기사문등대'를 보고

다시 이곳으로 되돌아 나와 '하조대 둘레길' 방향으로 가야 한다.

(13:47) 겹벚꽃이 화사한 '하조대 유격장' Y자 갈림길에서

해파랑길은 좌측 길로 진행이다.

(13:48) 등대와 '하조대 정자' 갈림길에서, 우측 정자 방향의 계단길을 오르고~

(13:50) '하조대' 정자 앞 바위 위에 '河趙臺' 음각 글씨가 있는데,

조선 숙종 때 충청도 관찰사를 지낸 이세근(李世瑾)이 쓴 글자다.

'하조대'

양양 하조대

양양군의 동남쪽 현북면 하광정리에 위치한 경승이다.

2009년 12월 9일 국가지정문화재인 명승 제68호로 지정되었다.

하조대는 고려 말 조선 초 문신인 하륜(河崙, 1347~1416)과 조준(趙浚, 1346~1405)

두 사람이 만났던 곳이라 하여 이들의 성을 따서 이름 붙였다고 전한다.

『여지도서』 양양도호부 고적조에 "하조대(河趙臺)는 부 남쪽 30리에 있다.

(중략) 세상에 전하기를 조선 초기에 하륜과 조준이 놀고 즐긴 곳인 까닭에

이름 지어졌다."라는 기록이 있다.

『1872년지방지도』에는 현북면 바닷가에 하조대가 읍에서 35리에 있다는

내용과 함께 절벽으로 묘사되어 있다.

『조선지지자료』에는 현북면 하광정리에 있는 고적명소로 하조대(河趙坮)를 수록하면서

"하륜과 조준이 항상 놀면서 하조대라고 각석(刻石)을 하였기 때문에 칭한다."라고 되어 있다.

하조대 정자는 조선 정종 때 처음으로 세웠는데, 훼철된 것을 1939년 6월 양양군 현북면에서

기념사업으로 육각정을 건립하였으나 해방 후 다시 파괴되었다.

현재의 정자는 1998년 해체 복원된 건물로 초익공 굴도리 양식의 육각정으로

지붕에 절병통을 얹었는데 소나무와 함께 주위의 자연경관과 잘 어울리고 있다.

정자각 앞 바위에는 조선 숙종 때 참판을 지낸 이세근(李世瑾)이 쓴

'河趙臺' 음각 글자가 남아 있다.

양양 하조대는 돌출 해안 정상부에 건립된 정자 주변을 지칭하며 온갖 기암괴석과

바위섬들로 이루어져 있는 암석해안으로, 동해바다의 절경을 바라볼 수 있는 전망 지점이자

빼어난 조망 대상이 되고 있다.

또한 주위의 울창한 송림이 정자와 잘 어우러져 아름다운 해변 풍경을 자랑하고 있으며,

정자 주변에는 참나무류 등이 활엽수림을 형성하고 있다.

하조대의 지질은 중생대 쥐라기에 관입된 화강암(대보화강암)이 노출되어 있는데,

이 화강암이 동해바다의 해식 작용을 받아 해식애 등 우수한 해안경관을 이루었으며

이 해식애 위에 소나무가 자라고 있어 운치를 더하고 있다.

하조대 풍경을 더해 주는 주변 경관으로 정자 맞은편에 무인등대가 파도와 어우러져

또 다른 절경을 이뤄내고 있다. 하조대에서 바라보는 동해안의 일출이 장관을 이룬다.

양주지 전설 편에 보면, 옛날 하광정리 하조대 근처에 하씨 성을 가진

준수한 청년이 있었는데, 이웃 조씨 가문에 혼기가 찬 두 처녀가 하씨 청년의

준수함에 반해서 둘이 다 같이 한 청년에게 애정을 품게 되었다.

두 처녀는 한사코 양보를 하지 않으므로 해결책이 없자 저 세상에는 도덕이니

윤리이니 하는 번거로움이 없을지도 모르니 우리 다 같이 저세상에 가서

함께 살자고 합의하여 이들은 하조대 절벽에서 몸을 던져 죽었다고 한다.

그 후 이곳을 하조대라 고 불렀다고 한다.(양주지) ​

또 다른 전설로, 양양지역에는 서로 앙숙으로 지내던 하씨와 조씨가 있었다.

오래 묵은 원혐도 청춘 남녀의 사랑까지는 막지 못했다.

하씨 집안의 총각과 조씨 집안의 처녀가 이룰 수 없는 사랑을 했다.

당연히 집안의 반대에 부딪혔고 그들은 저 세상에서 사랑의 결실을 맺자며

절벽 아래로 몸을 던졌다.

남은 사람들이 ‘조선판 로미오와 줄리엣’을 가슴속에 담았다.

그들이 몸을 던진 절벽이름을 ‘하조대’라고 명명했다.

그야말로 전설이다.

'하조대' 정자 안에 걸려 있는 '택당 이식'의 시와 '백헌 이경석'의 시판

河趙臺 - 澤堂 李植(1584, 선조 17 ~ 1647, 인조 25)

臺名河趙自何年(대명하조자하년) 하조대 이름이 시작된 게 언제 부터인가

形勝兼將姓氏傳(형장겸장성씨전) 빼어난 경치와 더불어 성씨까지 전해 오네

負展千尋爭巨浪(부전천심쟁거랑) 큰 파도와 다투며 천 길 우뚝 솟은 누대

灣洄一曲貯深淵(만회일곡저심연) 한 굽이 돌 때마다 깊은 못에 모였네

初疑砥柱當橫潰(초의지주당횡궤) 처음에는 격류속의 지주인가 의심하다가

更覺桑田閱變遷(경각상전열변천) 상전벽해의 변천이 심함을 다시 깨달았네

從古爽鳩遺此樂(종고상구유차락) 첫 자리 잡은 이 즐거움을 물러준 뒤로부터

幾人陣迹逐風烟(기인진적축풍연) 옛 자취의 풍광을 뒤쪽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

※ 砥柱(지주) : 중국 삼협에 있는 지주산이 황하의 급류 속에 버티고 서 있다는 지중중류의 고사에서 유래. 난국 수습의 중책에 비유.

※ 爽鳩(상구) : 처음부터 자리잡고 살았던 사람에 비유.

'하조대' 정자 앞에는 '애국가' 영상에 나오는 갯바위와 소나무가 자리하고 있다.

이 소나무는 1982년에 보호수로 지정된 높이 9m, 수령 200년 된 해송으로,

지금 나이로 치면 240년 이상이 되었다.

애국가 영상 화면에 이 소나무 뒤로 떠오르는 일출이 소개되면서

‘애국가에 나오는 소나무’라는 뜻으로 '애국송'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14:04) '하조대' 정자와 등대 갈림길로 되돌아내려와, '등대' 방향으로 간다.

와~ 가슴이 확 트이는~

해파랑길에서만 느낄수있는 이 묘한 느낌은 뭐지!!!

(14:06) '기사문 무인 등대'

일명 '하조대 등대'라고도 불리는 무인 등대이다.

'하조대'가 육지에서 툭 튀어나와 있어서 등대 위치로는 딱인 곳이다.

'기사문 무인 등대'에서 좌측(북쪽)방향 바라보고~

'기사문 무인 등대'에서 우측(남쪽)방향 바라보고~

(14:16) '하조대 둘레길'이 연결되는 '군 휴양소 입구'로 되돌아나오고~

철책과 조릿대 숲 사이로 연결되는 '하조대 둘레길'을 따라간다.

해안으로 설치된 데크길을 따라 진행하고~

지나온 '군 휴양소 해변' 바라보고~

 

'하조대 방파제' 바라보고~

(14:21) '하조대 스카이워크' 입구를 지난다.

'하조대 스카이워크'는 예전에 들려보았음으로 오늘은 패스하고~

(워낙 많은 관광객이 나보다 먼저 한꺼번에 올라감으로 올라갈 엄두가 안나서~ ㅎ)

'하조대 해수욕장'을 바라보고~

'하조대둘레길 관광안내도' 바라보고~

'하륜교' 앞 삼거리로 되돌아 나와서,

(14:26) '광정천'을 가로지르는 '하륜교'를 건너간다.

'광정천' 기수역 바라보고~

(14:30) '하조대 해변' 입구 '하조대 해변' 표지석이 있는곳이

해파랑길 42코스 종점이자 43코스 시점이다.

해파랑길 42코스,43코스 종합안내판과 스탬프는

'하조대 해변' 입구의 '하조대 해변' 표지석 좌측에 세워져 있다.

오늘 2차로 목표했던 해파랑길 42코스도 무사히 도착했다.

해파랑길 양양~속초 42코스를 종료하고, 두루누비&트랭글 앱 끄고~

배낭을 메고 서 있는체로 에너지바 1개 먹으면서 에너지와 당 보충하고,

물 한잔 마신후 연달아 해파랑길 43코스를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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