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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파랑길

남파랑길 광양51구간

답사일자: 2023.10.13

코스: 광양공용터미널(시점)-경전선.굴다리-월평마을회관-신촌마을회관-해창.버스정류장

-산성마을-광양만.방조제-신대.배수장-광양시·순천시 경계-충무사.입구-순천왜성.입구주차장

-왜성.천수기단-순천왜성.주차장-현대제철.버스정류장-율촌 교차로-호두마을.작은도서관

-호두마을.버스정류장-순천시·여수시 경계-율촌 파출소(종점)

인원: 나홀로 (이사. 곽차)

거리: GPS 14.98km (두루누비기준 14.5km)

시간: 널널.촬영&휴식포함/ 4시간6분

▶ 갈때 : 경남 양산.내송집에서 양산역으로 이동하고~

지하철2호선 타고 사상역에서 하차후, 사상 서부시외버스터미널로 이동,

사상 서부시외버스터미널에서 (07:05) 광양行 시외버스를 타고

(09:35) 광양공용터미널에 하차, 시점까지 도보이동

▶ 올때 : 광양51구간 마치고, 52구간 동시진행으로 인해 51구간 날머리 대중교통편 확인못함

남파랑길 광양 51코스 궤적

남파랑길 광양 51코스 안내판 (남파랑길 광양 51코스 시점)

안내판에는 51코스의 명소로 지난구간시 탐방했던 '유당공원'과 바로 지나게 될 '전남 도립 미술관',

그리고 51코스에 포함되지 않는 '광양 와인동굴 & 광양 에코파크'를 소개하고 있다.

답사준비를 마치고 두루누비&트랭글 앱 켜고,

(09:55) 남파랑길 광양 51코스 시작이다.

'광양역 입구 교차로' 앞에서 우측 횡단보도를 건너고,

좌회전하여 '전남 도립 미술관' 앞으로 진행하고~

(09:58) '전남 도립 미술관'을 지난후 '신덕로' 도로를 따라

남쪽방향으로 계속 직진해서 진행이다.

전남도립미술관

2021년 3월 개관한 전남도립미술관은 옛 광양 역사 부지에

지상 3층, 지하 1층 규모로 건립된 현대미술 공간이다.

한국 미술사를 대표하는 작가를 다수 배출한 '예향' 아카이브 사업을 통해

지역 작가 수집, 발굴에 앞장서고 있다.

우수한 전통을 토대로 새로운 현대미술의 미래를 밝히고, 남도 미술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전체가 6m 전시장으로 구성돼 다양한 전시를 할 수 있으며, 조명도 자연광과

가장 가까운 빛의 조명을 활용하여, 관람객이 머무르다 갈 수 있는 미술관이 되고 있다.

세계 현대미술과의 개방적이고 다양한 교류를 통해 문화예술 기관으로서의

공공성 확립에 앞장서고 있다.

-이용요금-

성인 1,000원,

어린이,청소년,대학생,군인,예술인 700원

단체(20인 이상) 성인 700원 어린이,청소년,대학생,군인,예술인 500원

-이용시간-

10:00~18:00 (입장마감 17:30)

-쉬는날-

매주 월요일, 1월 1일, 설.추석 당일

미술관 개장시간은 10:00부터인데,

미술관을 관람하려고 했으나 너무 이른 시간이라 후일을 기약하고 그냥 간다.

(10:02) 쭉 뻗은 왕복 6차선 '신덕로' 도로를 따라

'광양역 전방 300m' 교통표지판을 지나고~

(10:07) '광양경찰서' 앞으로 이어지는 '덕용로'와 만나는 사거리교차로를 만나고,

횡단보도를 통해 도로를 건너는데 한산한 도로지만 신호는 지켜야 한다. ㅎ~

(10:09) '도로 끝 전방 300m' 표지판을 지나 '신도교'로 들어서는데,

'인동리'에서 '광양읍 도월리'로 행정계가 바뀐다.

광양읍 도월리(道月里)

전라남도 광양시 광양읍에 있는 리(里)이다.

농촌지역으로 마을 앞에 인덕천이 흐른다.

자연마을로 강변동, 월평, 새터마을 등이 있다.

강변동은 마을 바로 옆으로 개울이 흐른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깽변이라고도 불린다.

월평은 도월리에서 으뜸되는 마을로, 들에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들몰 혹은 달머리라고도 불린다.

새터는 마을 서남쪽에 새로 자리잡은 마을이라 하여 생긴 지명이다.

'광양서천'를 건너가는데,

우측으로 '58번 덕용로'가 지나는 '익산1교'가 위치한다.

광양서천(光陽西川)

전라남도 광양시 봉강면 조령리에서 발원하여 남쪽으로 흘러 봉강면을 남북으로 관통하고,

광양 시가지를 거쳐 바다로 들어가는 총 길이 21,285m의 하천이다.

조령리와 백운저수지 사이의 봉강천을 포함하여 서천이라 한다.

광양동천, 억만천, 신룡천 등 광양시에 있는 하천의 절반 이상이 광양서천으로 유입된다.

유역면적은 163㎢로 광양 지역을 흐르는 하천 중 가장 넓은 유역을 차지하며 흐른다.

유량이 많은 만큼 주변의 평야에 풍부한 농업용수를 공급해주는 역할을 한다.

상류에 성불계곡이 있고 또 중간에 백운저수지가 조성되어 있다.

광양서천에 대한 기록은 『신증동국여지승람』(광양)에서부터 확인되는데 "서천(西川)은

현 서쪽 4리에 있고, 백계산(白鷄山)에서 발원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백계산은 옛 문헌에 자주 등장하는데, 옥룡면 추산리 옥룡사지(玉龍寺址) 부근에 있는 산으로

추정되는데 발원지에 대한 기록이 실제와 다소 차이가 있다.

『여지도서』에도 광양서천이 기록되어 있다. 다만 발원지는 계족산(鷄足山)으로 되어 있다.

계족산은 광양서천의 지류인 신룡천의 발원지이므로, 이 역시 실제와 차이가 있다.

『1872년지방지도』에 서천(즉 광양서천)이 성불산(成佛山) 아래서 시작되어 읍치 서쪽과

남쪽을 거쳐 바다로 들어가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성불산은 봉강면 조령리 성불사가 있는 산을 가리키므로 발원지 정보가 실제와

가장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대동여지도』에도 광양서천이 표현되어 있는데, 계족산과 백계산에서 각각 시작된 물줄기가

읍치 서쪽에서 합친 뒤 '서천'이 되고 바다로 들어가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광양서천은 오래전부터 서천이라 하였는데, 읍치 서쪽으로 흐르는 하천이라 해서 그렇게 불렀다.

(10:13) 직진 방향의 '경전선 철로 밑 굴다리'를 바라보며 진행하는데,

우측 길은 '광양역'으로 가는 길이고~

남파랑길 광양51코스 종점까지는 13.4km 남았다.

경전선 철로 밑 굴다리를 통과하고~

(10:16) '도청길, 도월길 방향안내판'을 바라보며,

직진 방향의 비닐하우스 단지로 들어서고~

(10:18) '96 정부지원유통시설 광양농협간이집하장' 건물이 있는

'T자' 갈림길에서 우회전하여 진행이다.

'광양농협 여성대학 농사체험장' 표지판을 지나고~

(10:21) '도월리 월평회관' 옆 '느티나무 보호수' 앞에서 좌회전이다.

월평마을 보호수 느티나무는 2009년 12월10일 지정 당시

수령 300년 이상, 수고 20m, 나무 둘레 2.9m의 고목이다.

이후 남파랑길 빨간 화살표 시그널이 가르키는 방향으로

진행하여 '월평마을'을 빠져나가고~

(10:30) 비닐하우스 옆 농로를 따라 진행하는데,

준·희 선배님의 시그널이 반긴다~ ㅎ

이후 논 가운데로 이어지는 농로를 따라 길게 진행하고~

(10:37) '863번 지방도 해광로' 도로로 올라서서 좌회전하여

'인덕천'을 가로지르는 '세풍교'를 건너간다.

'인덕천' 바라보고~

인덕천(仁德川)

전라남도 광양시 광양읍 덕례리 인덕저수지에서 시작하여 도월리에서

광양서천으로 합류하는 지방하천이다.

섬진강권역 섬진강 남해권 수계의 지방하천으로 광양서천의 제1 지류이다.

하천연장은 5.03㎞, 유로연장 8.5㎞, 유역면적 10.1㎢이다.

하천 유역의 모양은 대체적으로 직사각형의 장방형(長方形)을 나타낸다.

하상경사는 상류부 1/300~1/555, 하류부 1/930~1/1,500로 나타났다.

하천의 토양은 실트질과 모래 섞인 자갈로 이루어져 있다.

그렇게 '세풍교'를 건너면,

'도월리'에서 '광양읍 세풍리'로 행정구역이 바뀐다.

광양읍 세풍리(世豊里)

전라남도 광양시 광양읍에 있는 리(里)이다.

농촌지역으로 마을 앞에 동천, 서천, 억만천이 흐른다.

자연마을로는 해두, 베륵똠, 해창마을 등이 있다.

해두마을의 지명은 게머리라는 뜻으로, 마을이 게의 머리 형국이라는 데에서 유래하였다.

베륵똠마을은 옛날 이곳에 벼락맞은 비렁(바위)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해창마을은 옛날 이곳에 세곡을 쌓아 두었다가 배로 조정에 옮기는 해창이

존재했었기 때문에 이름 붙여졌다.

 

 

 

이후 '세풍리' 마을 포토존을 지나고,

바람개비가 눈길을 끄는 '세풍마을공원'을 지난다.

(10:42) '세풍리 신촌마을' 앞 수령을 알수없는 '느티나무' 고목

두 그루 사이에 위치한 '檀石亭(단석정)' 정자 쉼터를 지나고~

(10:47) '신촌마을회관'을 지나는데,

좌측 논 너머로 '2번 국도'가 지나는 '세풍대교' 사장교가 보여 땡겨본다.

(10:49) '신촌 버스정류장'을 지나고~

(10:54) '해창 버스정류장'을 지나는데,

도로 건너편에 '세풍정미소'라는 이름 또한 정겹다.

요즘은 대형 RPC 때문에 동네 '정미소'는 구경하기도 어려운데,

이곳에서 만나는 작은 '정미소' 또한 반갑다.

(10:56) 이름이 정겨운 옛날식 방앗간인 '퐁년정미소'를 약간 지난 곳

도로 삼거리에서 좌측 '삼성마을' 표지석 방향으로 좌회전하고~

(10:58) 좌측의 '한길유통' 건물을 바라보며

'해창길' 도로를 따라 진행이다.

그렇게 진행하다 우측 간척지 논 한가운데에 위치한,

'광양농협 미곡종합처리장'을 땡겨보고~

(11:02) 볼록거울이 있는 도로 삼거리에서 우회전하여,

'유자도길' 도로를 따라 우측 굴다리를 향해 진행이다.

(11:04) '2번국도 충무공로' 도로 밑을 통과하는

굴다리를 지나고~

앞쪽에 보이는 야산을 좌측 시계방향으로 빙 돌아 나가는데,

이곳이 예전에는 '유자섬'이란 섬이었다.

좌측 너머로 '세풍대교' 땡겨보고~

(11:09) '세풍리 삼성마을'을 지나는데,

유독 빈 폐가가 눈에 많이 띄고~

지도를 보니 이 지역은 '세풍일반산업단지'로 개발할 예정인데,

아마도 주민들이 보상을 받고 다른곳으로 이주를 한 것으로 추측해 본다.

(11:11) 이후 직선으로 곧게 뻗은 농로를 따라 진행하는데,

정면 멀리로 '현대제철'이 건물이 보인다.

(11:23) 배수 조절문이 있는 'T자' 삼거리에서

우회전하여 저멀리로 '순천' 땅에 있는 아파트단지를 바라보며 진행하고~

(11:25) 갈대가 우거진 습지 앞 갈림길에서 좌회전하여,

'광양시 물관리센터' 담장을 좌측에 끼고 진행이다.

(11:29) '광양시 물관리센터 광양 하수처리장' 정문을 지나고~

그렇게 '하수처리장'을 지나는데, 먼지를 막기 위해 물을 뿌리는

살수차들이 하수처리장에서 물을 받고 있다.

생활하수를 처리한 방류수를 비산먼지 예방에 사용하는 것이라고 한다.

(11:31) 수문을 지나서 우회전하여 진행하는데,

좌측 제방 너머로는 '광양만'이고 우측에는 제방을 쌓아만든 생태습지다.

습지 바라보고~

우측 '광양만 방조제' 위에는 억새가 한창이다.

그렇게 '광양만 방조제' 우측 둑 아래 길을 따라 진행하는데,

좌측으로 '현대제철'이 넓게 조성되어 있는데~

지도를 바라보니, 현대제철 중 좌측 제철부두 지역은 광양읍에,

우측 현대제철 공장지대는 순천시에 속하는 것으로 표시되어 있다.

(11:42) '신대 배수장'을 지나고~

이후 '신대 배수장' 배수갑문 두 곳을 차례로 지나면,

'광양읍 세풍리'에서 '순천시 해룡면 신성리'로 행정구역이 바뀐다.

순천시 해룡면(海龍面)

전라남도 순천시 남동부에 있는 면(面)으로 동쪽은 광양만(光陽灣), 서쪽은 순천만(順天灣),

남쪽은 여수시 율촌면(栗村面), 북동쪽은 광양시 광양읍에 접한다.

산지가 남쪽 앵무산(鸚鵡山)을 중심으로 여수시 율촌면 경계를 따라 형성되어 있다.

면의 서쪽은 순천만, 동쪽은 광양만에 면해 있었으나 율촌산업단지의 매립으로 육지화되었다.

서쪽은 이사천의 하류 지역으로 퇴적평야가 펼쳐져 있고, 북쪽은 저산성 구릉지가 나타난다.

하천은 이사천이 서쪽 경계를 따라 흘러 순천만으로 유입한다.

17번 국도가 면을 남북으로 관통하고, 지방도가 면 서쪽의 순천만을 따라 남북으로 연결된다.

철도는 전라선이 남북으로, 경전선이 면의 북부를 동서로 연결하고 있다.

면 소재지인 월전리를 비롯한 남가리·농주리·대안리·도롱리·복성리·상내리·신대리·신성리·

상삼리·성산리·선월리·선학리·용전리·중흥리·하사리·해창리·호두리의 18개 법정리와

59행정리를 관할하고 있다.

『여지도서』에 "동쪽 해촌면(海村面)은 관아에서 15리이다.

용두면(龍頭面)은 관아에서 30리이다."라는 기록에서 지명의 유래를 추정할 수 있다.

해촌면의 해(海)와 용두면의 용(龍)자를 따서 해룡면이라고 하였기 때문이다.

『대동지지』에는 "해촌면은 동쪽으로 처음은 10리, 끝은 20리이다.

용두면(龍頭面)은 남쪽으로 처음은 15리, 끝은 40리이다."고 기록되어 있어

방향에 있어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

『해동지도』에 해촌면은 광양만의 가장 위쪽에 표기했고,

용두면은 순천만과 광양만 사이에 표기하고 있다.

해촌면과 용두면 사이에 봉수대가 있다.

『1872년지방지도』에 해촌면과 용두면이 순천만과 광양만 사이에 묘사되어 있다.

1896년(고종 33)에 북쪽에 해촌면, 남쪽의 용두면으로 나뉘어져 있었으나,

1914년 두 면이 해룡면으로 통합되었다.

1995년 순천시의 해룡면이 되었다.

금당 지구의 택지개발로 인한 인구 증가로 상삼지구에 출장소를 두고 있다.

용두면 지명은 지형이 용의 머리처럼 생겼다고 하여 유래하였다고 한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참깨·목화 등이며, 연안에서는 조개류의 양식이 활발하다.

신성리(新城里)에서 굴, 상내리(上內里)에서 꼬막을 많이 양식한다.

문화재로는 순천 검단산성(順天檢丹山城:사적 418), 순천 검단산성지(전남기념물 157),

순천왜성(전남기념물 171), 승주 복성리(福星里) 지석묘군, 대안리(大安里)·농주리(弄珠里) 지석묘군,

전왜군정(傳倭軍井), 충무사(忠武祠), 이충무공사적비, 성윤문묘(成允文墓) 등이 있다.

해룡면 신성리(新城里)

전라남도 순천시 해룡면에 있는 리(里)이다.

쟁골, 양등이골 등이 낮은 산지를 이루고 있으며

대부분의 지역이 낮은 산지와 평지로 이루어져 있다.

자연마을로는 신성, 한유가 있다.

신성은 신성리의 본 마을로 새로 형성되어 흥하라는 의미에서 신성이라 칭하였다.

한유는 신성의 남쪽에 위치한 마을이다.

문화재로는 순천검단산성(順天檢丹山城:사적 418), 순천검단산성지(전남기념물 157),

순천왜성(전남기념물 171), 충무사(忠武祠)가 있다.

 

 

 

우측으로 '신성2교' 바라보고~

(11:47) 앞쪽에 있는 '신성1교'를 바라보며 진행이다.

'광양만'과 '세풍대교' 바라보고~

'현대제철' 바라보고~

(11:49) '신성1교' 밑 평상에 배낭을 내리고 준비해온 토스트 2조각과

얼음이 서걱거리는 테라 캔맥주 큰거 1캔으로 점심을 해결하며 13분 휴식이다.

(12:03) '신성마을','충무사·왜성대' 이정표를 바라보며

'충무사길' 도로를 따라 우측으로 빙 돌아 진행하고~

나중에 진행해야할 '신성교' 바라보고~

(12:06) 여러 비석과 설명 표지석, 안내판이 세워져 있는

충무사 입구에 도착이다.

충무사(忠武祀,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48호)

임진왜란(1592~1598)이 끝난 뒤 약 100년 후 이곳에 이주해 온 주민들이

신성리성 전투(순천왜성 전투)에서 많은 왜군이 죽어 그 왜귀가 밤이면 자주 출몰하여

몹시 불안해서 이곳에 사당을 짓고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위패와 영정을 모신 후

제사를 지냈는데 그 뒤부터는 안락한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1943년 가을 일제가 민족정신 말살정책의 일환으로 사당을 헐어 없애고

영정은 해룡주재소 순사들에 의해 소실되었다가 1945년 조국 광복과 동시에

충무공 유적 영구 보존회가 설립되고 1947년 현 위치에 사당을 새로 건립하였다.

후에 공의 군관 송희립 장군과 정운 장군의 위패와 영정을 같이 봉안하고

봄 가을로 제향을 모시고 있다.

'외삼문'을 바라보며 계단을 오르고~

'충무사' 안으로 들어서서,

좌측 사당 강당 건물 바라보고~

'동광문(東光門)' 현판이 걸린 내삼문으로 들어서고~

정면으로 '충무사' 사당 바라보고~

충무사(忠武祠,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48호)

임진왜란 때 큰 공을 세운 이순신(李舜臣), 정운(鄭運), 송희립(宋希立) 장군을 제향하고 있다.

1598년 임진왜란이 끝나고 약 100년 후 왜인의 악귀가 마을에 나타나기 시작하여 불안해진

주민들이 1697년경 사당을 짓고 충무공의 위패를 봉안하여 제사를 지내오다가,

1944년 일본인들에 의해 소실되었다.

1945년 8·15 광복을 맞으면서 유적보존회가 설립되어 1947년 사당을 새로 건립하였으며,

1987년 복원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충무공 이순신의 자는 여해(汝諧), 본관은 덕수(德水)이다.

1578년(선조 11)에 무과에 급제하였다.

그 뒤 의주판관, 정읍현감 등을 지내다가 1591년 류성룡의 천거로 전라좌도 수군절도사에

부임하여 임진왜란 때 나라를 구하는 큰 공을 세웠다.

충장공(忠壯公) 정운의 본관은 하동(河東), 자는 창진(昌辰), 시호는 충장(忠壯)으로,

지금의 해남군 옥천면 대산리에서 태어났다.

1570년에 무과에 급제한 뒤 웅천현감, 제주판관 등을 지내다가 1591년 류성룡의 천거로

녹도만호(鹿島萬戶)에 임명되어 군기를 정비하였다.

임진왜란 때 옥포, 당포, 한산도대첩 등에 참여하였고 부산포해전에서 순절하였다.

후에 병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수사공(水使公) 송희립의 본관은 여산(礪山), 자는 신중(信仲)으로 고흥에서 태어났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지도만호(智島萬戶)로 형 대립(大立)과 함께 의병을 모아 참전하여

승리를 이끌었다.

충무공 탄생일과 귀천일에 제향을 모신다.

우측으로 충무공 이순신 · 충장공 정운 · 수사공 송희립 장군 영정이

봉안되어 있는 影堂(영당) 바라보고~

좌측으로 제사를 준비하는 齋室(재실) 바라보고~

그렇게 '충무사' 사당과 영당을 배알한 뒤 되돌아 나가고,

외삼문 밖으로 나서서 계단 우측 편의 '이충무공' 비석을 둘러보고~

'충무사' 입구 비석군 앞으로 내려서서,

우회전하여 진행이다.

(12:13) '신성포'가 있었던 '신성마을'로 들어서고~

신성포(新城浦)

순천시에서 여수반도로 이어지는 산줄기 초입의 동쪽에 해안가를 따라 낮게 펼쳐져 있다.

조선시대에 작은 어촌마을에 시장이 형성되면서 ‘신장개(新場開)’로 불렀으나 이후 포구의 기능이

발달하면서 새로운 성[新城, 왜성(倭城)]이 있는 포구라는 의미의 ‘신성포(新城浦)’로 불렸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초에는 포구에 어물전을 포함한 시장이 있었다고 한다.

신성포에는 충무사와 순천 왜성 두 개의 사적지가 있다.

충무사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영정을 모셔 놓은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48호이다.

순천 왜성(順天倭城)은 마을의 남쪽에 있는 성으로 일본식 성곽이고, 왜교성(倭橋城)이라고도 불린다.

1963년 사적 제49호 승주 신성리성(新城里城)으로 지정되었다가,

1999년 전라남도 기념물 제171호로 지정되었다.

신성리 신성포는 광양만에서 순천을 연결하는 포구로서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였으나,

1982년 광양제철소 건설을 위한 바다 매립으로 쇠퇴 일로를 걷다가 1996년 율촌 산업단지를

조성하기 위해 다시 바다가 매립되면서 신성포는 어촌의 성격을 완전히 잃었다.

바다와 갯벌을 터전으로 살아가던 주민들의 삶은 농업을 주로 삼는 농민과 주변의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로 전환되었다.

신성포 서쪽과 동쪽 양편에 남북으로 순천과 광양에서 율촌 산업단지를 연결하는 무평로와

인덕로가 있다.

이후 남파랑길 빨간 화살표 시그널이 가르키는 방향으로

진행하여, '신성마을'을 빠져 나가고~

(12:20) '순천 왜성' 주차장 앞으로 들어서면,

좌측에 '왜성 정류장'이, 우측에 '순천왜성/ ←300m' 표지판이 보이고~

순천 왜성(順天倭城)

순천시 해룡면 신성리에 광양만을 따라 쌓은 조선시대의 성이다.

이름이 왜교성, 왜성, 왜성대, 왜교, 예교(曳橋), 예교성, 망해대(望海臺), 신성리성,

순천성 등 여러 가지로 기록되어 있다.

이 성은 3면이 바다로 둘러져 있고 서쪽 만이 육지로 연결되어 있는 수륙 요충지로,

성곽은 다섯 겹으로 만들어졌다.

외성(外城)과 내성(內城) 사이에는 바닷물을 끌어들여 해자(垓字)를 만들었다.

해자에 다리를 놓아 필요할 때만 사용했다.

멀리서 보면 성과 육지가 다리로 연결해 놓은 모습이어서 ‘왜교성(倭橋城)’으로도 불렸다.

왜교 또는 예교란 명칭은 축조 당시 왜군들이 피습이 두려워 조·명 연합군이 축조한

순천 검단산성(사적 418) 쪽의 육지부를 파내고 바닷물을 끌어들여 마치 해자의 역할을

하도록 하고 출입하기 편리하게 연결 다리를 설치한 데서 유래하였다.

남해안에 조성된 26개 왜성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왜성이다.

순천 왜성은 정유재란(1597) 당시 육전에서 퇴진한 왜군 선봉장 우키타 히데이에[宇喜多秀家],

도도다카도라[藤堂高虎]가 호남을 공략하기 위한 전진기지 겸 최후 방어기지로 삼기 위해

3개월간 쌓은 토·석성으로, 침략 최정예 부대로 왜장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이끄는

1만 4000여 명의 왜병이 주둔하여 조·명 수륙 연합군과 두 차례에 걸쳐 최후·최대의

격전을 벌인 곳이기도 하다.

중국 명(明)의 유정(劉綎)과 조선 육군 도원수 권율이 이끄는 육군 3만 6000여 명,

명의 해군 제독 진린(陳璘)과 이순신(李舜臣)이 이끄는 수군 1만 5000여 명의 병력이

순천 왜성을 비롯하여 장도(노루섬) 등을 오가며 왜군을 격퇴하였고,

이순신이 27일간 머물면서 고니시 유키나가를 노량 앞바다로 유인하여 대첩을 거둔

유서 깊은 전적지로서 역사의 산 교육장이기도 하다.

 

 

 

이후 우측 직진 방향으로 조성된 탐방로를 따라

해자를 좌측에 두고 진행하고~

(12:24) 본성과 외성을 연결하는 주 출입문이 있었던,

'문지1'로 들어간다.

문지(門址) 1

본성과 외성을 연결하는 주 출입문으로, 문지 옆으로는 해자(垓字)를 만들고,

바닷물을 끌어들여 섬처럼 만들어 방어에 치중하였던 건물지로 여겨진다.

만조 때 멀리서 이곳 출입로가 다리처럼 보인다 하여 왜교(倭橋) 또는 예교(曳橋)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문지 보수 공사는 2007년에 이루어졌으며, 기존에 남아 있던 형태를 기본으로 하여

일본성 축조방식을 자문 받아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네이버 이미지에서 퍼 온 순천 왜성 그림)

명나라 황실의 임진왜란 종군화가가 임진왜란 당시 순천왜성의 전투 장면을 그린

'정왜기공도권(征倭紀功圖卷)' 중 왜성 가운데 수로는 인공적으로 판 해자로 바닷물이 통한다.

해자 너머 외성이 있고 그 앞에 목책을 둘렀으며, 성벽은 외성을 포함해 성벽이 3중 구조를 보인다.

해자 사이에 다리를 설치해서 다녔기 때문에 왜교성(倭橋城), 예교성(曳橋城)이라고도 부른다.

이 성을 왜군은 3개월 만에 쌓았다고 하는데, 당시 우리 조선의 민초가 얼마나 많이 동원되어

고초를 겪었을지 말하지 않아도 짐작이 가고, 또한 철옹성 같은 이 성에서 왜병을 지휘한

고니시 유키나가 14,000명을 조명 연합군 육군 36,000명, 수군 15,000명이 공략하지 못해

애를 먹었던 이유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겠다.

(12:27) 천수에 이르는 주 출입문이 있었던 문지2를 지나고~

문지(門址) 2

천수에 이르는 주 출입문이다.

문지로 들어서면 일직선으로 들어서지 않고 'ㄱ자' 형태로 꺾어 진입하는 구조이다.

문지 바깥쪽은 성벽이 남쪽으로 길게 연결되고, 서쪽으로는 해자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석축 쌓기 방식은 자연석을 불규칙하게 쌓는 방식이며, 문지의 상단부를 큰돌로 쌓아

적에게 위압감을 주는 심리전에 이용하였다.

(12:29) 한옥 형태의 화장실에서 고민을 해결하고~

(12:34) 갈림길에서 좌측 탐방 길을 따라 올라간다.

(12:35) '순천 왜성' 안으로 들어서고~

성곽 사이를 올라 좌측으로 휘어져서 내성 안으로 들어간다.

왜성의 축성은 기본적으로 조선식 성의 축성과 다른 점이 많다.

조선식 성이 평지성이나 산성임에 견주어 왜성은 두 가지를 겸한 평산성이다.

또한 왜성은 반드시 선박을 댈 수 있는 해안가의 얕은 산 위에 지어졌다.

조선식 성곽이 단곽이며 수직이라면, 왜성은 지휘대를 중심으로

3중의 동심원형으로 만든 복곽이며 70도 각도로 경사져 있다.

그런가 하면 조선식은 많은 양의 돌로 기초공사를 하고서 그 위에 장방형의 돌로

성벽을 쌓아올리는데, 왜성은 기초공사 없이 큰 자연석을 포개 올리고

그 사이를 작은 돌로 메워 성벽을 고정했다.

성벽 또한 조선식은 보통 30㎝로 얇은데, 왜성은 보통 2~4m로 두텁다.

성문을 통해 성안으로 들어가면 조선식의 경우 성안이 훤히 다 보이는데,

왜성은 ㄱ자형의 돌담 사이를 통과해 들어가도 10~20m 앞에 또 다른 돌담이 있어

침입자를 활 또는 조총으로 격퇴할 수 있게 하였다.

또한 조선식은 총지휘소를 두는 데 일정한 원칙이 없지만,

왜성에는 성내 가장 높은 자리에 보통 3층짜리 건물을 지어 총지휘소로 삼았다.

(12:36) 내성 위로 올라서면 넓은 공터가 자리하고 있고,

동쪽 끝에 '소서행장'의 지휘소였던 왜교성의 '천수대 기단'이 자리하고 있다.

(12:38) '2단'으로 된 천수기단(天守基壇) 위로 오르고~

천수기단(天守基壇)

천수(天守)는 다른 망루와 같이 성의 방위와 내화성, 내진성을 갖춘 건물이다.

이에 더해 성을 대표하는 권위와 상징의 건물이기 때문에 다른 건물과 차별되게

여러 하후나 화두창 등으로 장식되어 있고 천수대 위에 건립되어 있다.

명나라 황실의 임진왜란 종군화가가 그린 당시 전투 상황 그림인

'정왜기공도권(征倭紀功圖卷)'에는 3층 팔작지붕의 천수대가 그려져 있으나, 천수각

1층 아래에는 ‘오층망해루(五層望海樓)라고 쓰여 있어, 5층 건물이었음을 추정해 볼 수 있다.

천수기단은 오랜 세월 동안에 석축이 흐트러지고 일부가 무너져

2007년에 보수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석축 쌓기 방식은 자연석을 불규칙하게 쌓는 방식으로, 모서리 돌은 쐐기질하여

쪼갠 돌을 사용하였고, 쐐기질 흔적이 잘 남아 있으며 위아래를 교차되게 쌓았다.

천수기단의 상부는 남아 있던 초석은 그대로 보존하고 기존 초석 위에 새로운 초석을 놓아

건물의 규모를 알 수 있도록 하였다.

지나온 남파랑길 가늠해보고~

'율촌산업단지' 바라보고~

이후 '천수기단'을 내려서서 왔던 길을 되돌아 내려와,

(12:45) '문지 2'에서 올라왔던 '문지 1' 방향이 아닌 우측 임도로 진행이다.

(12:49) '왜성 주차장' 갈림길에 도착후 남파랑길은 우측으로 이어지는데,

이곳에 배낭을 두고 카메라와 핸드폰만 챙겨 좌측의 '왜성 주차장'으로 간다.

명나라 황실의 임진왜란 종군화가가 '임진왜란' 당시 '순천왜성'의 전투 장면을 그린

'정왜기공도권(征倭紀功圖卷)' 표지석 바라보고~

'순천왜성 해자' 설명 패널 바라보고~

'순천시 관광지 및 주요 버스노선 안내도'와

'순천왜성' 설명 패널 바라보고~

(12:54) '왜성 주차장' 갈림길로 되돌아와서,

우측으로 연결되는 남파랑길을 다시 이어간다.

(12:57) '신성교' 방향으로 나가서 약간 좌측으로 진행하여,

'신성교' 위로 올라 우회전하여 '신성교'를 건너간다.

'순천왜성' 바라보고~

(13:00) '현대제철 순천공장' 정문 앞에서 우회전하여,

'인덕로' 도로를 따라 '순천' 방향으로 진행하고~

(13:01) '현대제철 버스정류장'을 지나간다.

(13:06) '율촌산단3로' 교차로를 지나고~

(13:09) 좌측 도로 건너편에 있는 '삼미메탈' 건물을 지난다.

(13:11) '율촌산단2로'와 갈리는 삼거리를 지나고~

그렇게 '율촌산단2로'와 갈리는 삼거리를 들어서면,

'신성리'에서 '해룡면 선월리'로 행정구역이 바뀐다.

해룡면 선월리(船月里)

전라남도 순천시 해룡면에 있는 리(里)이다.

호암산, 안산, 서항산 등이 낮은 산지를 이루고 있으며 등성이와 골짜기가 발달해 있다.

배처럼 생긴 산이 있으므로 배다리 또는 선월이라 불리게 되었다.

자연마을로는 통천, 옛달 등이 있었으나, 지금은 해룡산업단지가 들어섰다.

이후 계속되는 '인덕로' 도로를 따라 진행하여,

'율촌교차로' 앞에 도착하고~

(13:21) '율촌교차로'에서 직진 횡단보도를 건넌후,

바로 이어 좌회전하여 횡단보도를 통해 '인덕로' 도로를 건넌 뒤, 우회전하여 진행이다.

(13:25) '해룡3교' 다리 직전에서 좌회전하여,

'용전천'을 우측에 끼고 탐방로를 따라 진행하고~

'용전천' 물 빠진 뻘에는

'망둥어'와 '갯게'가 꼬물거리는 모습도 보이고~

(13:31) '한국가스공사 율촌관리소'를 지난다.

(13:32) '한국가스공사 율촌관리소' 담장끝 삼거리에서,

우측 '용전천' 제방길로 진행하고~

(13:36) '율촌산단1로' 도로를 만나 우회전하여 잠시 진행하다,

'KHPT' 공장 앞에서 다시 우회전하고~

그렇게 '율촌산단1로' 도로로 올라서면,

'선월리'에서 '해룡면 호두리'로 행정구역이 바뀐다.

해룡면 호두리(狐頭里)

전라남도 순천시 해룡면에 있는 리(里)이다.

대부분의 지역이 낮은 산지와 평지로 되어 있으며 남쪽으로

용전천이 흐르고 중봉, 질맛가지산, 태봉멀랑산 등이 위치해 있다.

자연마을로는 구상, 당두, 드문-드리, 새밭끝 등이 있다.

구상은 호두 서북쪽에 위치한 마을이다.

당두는 호두 동남쪽에 위치한 마을로 당집이 있었다 하여 당두라 불린다.

드문-드리는 호두의 서쪽 끝에 위치한 마을로 산지로 이루어져

들이 드물게 보인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새밭끝은 호두 동남쪽에 위치한 새밭끝산의 밑이 되어

산의 이름을 따서 새밭끝이라 하였다.

(13:37) '용전천'을 가로지르는 '율촌3교'로 진행하는데,

홀로 남파랑길을 걷고있는 여성도보여행자를 만나고~

남파랑길에서 처음으로 만나는 홀로 여성도보여행자인데,

새로 신은 등산화가 발에 안맞아 금일 도보 여행이 힘들어 오늘 51코스 종점 부근에서

하루를 묵어간다는데 숙소는 잘 찾았는지...

짧은 시간이었지만 몹시 반가웠고 남은 남파랑길 무사 완주를 기원드립니다. ㅎ~

 

 

 

(13:39) '율촌3교'를 건너 우회전하여 '호두마을'로 들어서서,

남파랑길 빨간 화살표 시그널이 가르키는 방향으로 진행하고~

호두리(狐頭里)는 순천시 해룡면에 속하는 법정리로, 천황봉[174m]에서

북동쪽으로 이어지던 야트막한 야산의 마지막 봉우리 남쪽 산자락에 있다.

마을 뒷산이 여우 머리 같다고 하여 ‘여숫머리’라고 하였고,

이를 여우 ‘호(狐)’에 머리 ‘두(頭)’자로 한자로 표기하여 ‘호두(狐頭)’가 된 것이다.

현재 호두마을 · 당두마을 · 구상마을 등 3개 자연마을로 구성되어 있으며

해룡면 호두리 동쪽으로 펼쳐진 갯벌은 현재 매립되어 율촌산업단지[율촌 제1산업단지]가 조성되었다.

(13:42) '해룡 호두 작은도서관' 겸 경로당 앞을 지나는데,

1층에 있는 "9988 쉼터"라고 이름 붙은 쉼터 앞에서 미소 지으며 길을 이어간다.

나이 들면 누구나 꿈꾸는 9988234!!!

(13:47) '용전천' 지류 위를 가로지르는 '호두교'를 건너고~

이후 '호두길' 도로를 따라 '주.백련 순천지점',

'현대자원계량소'를 연달아 지나고~

(13:50) '율촌로' 도로를 만나 우회전하여 횡단보도를 통해 도로를 건넌뒤

다시 좌회전하여 '율촌로' 도로를 따라 진행이다.

(13:57) 그렇게 '율촌로' 도로를 따라 진행하다 '당두 버스정류장'을 지나는데,

'당두마을 버스정류장'은 '순천시'의 마지막 버스 정류장이다.

(13:59) '여수시 율촌면' 교통표지판이 있는 시 경계를 지나면~

이제까지 이어지던 '순천시 해룡면'에서

'여수시 율촌면 조화리'로 행정구역이 바뀐다.

여수시 율촌면(栗村面)

전라남도 여수시 북부에 있는 면(面)으로 동쪽은 광양만(光陽灣), 서쪽은 순천만(順天灣),

남쪽은 소라면(召羅面), 북쪽은 순천시 해룡면(海龍面)과 접한다.

면 중앙으로 앵무산과 수암산 등이 지나가 구릉지가 발달하지만 동서해안 지역으로는

평지가 발달해 있다.

조선 시대 순천부 지역으로 조선 중기까지 부곡이었으며 조선 후기 면이 되었다.

현재 관할 법정동으로 면 소재지인 조화리를 비롯해 월산리·산수리·가장리·봉전리·반월리·

취적리·신풍리·상봉리·여동리의 10법정리와 24행정리를 관할한다.

4개의 유인도와 5개의 무인도가 있다.

『세종실록지리지』(순천)에 "부곡(部曲)이 열이니, 가음(嘉音) · 이촌(梨村) · 죽청(竹靑) ·

율촌(栗村)"이라는 기록으로 보아 그 전부터 율촌이라 불린 것으로 보인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부곡으로 나오나 『여지도서』에 "율촌면은 관아에서 30리이다."라는

기록과 『대동지지』 등을 통해 볼 때 조선 후기에 면으로 바뀐 것을 알 수 있다.

조선 초기 지도에서 찾을 수 없으나 『호남지도』, 『해동지도』를 비롯한 대부분의 조선 후기

지도에 율촌면이 묘사되어 있다.

『여수여천향토지』에서는 밤나무의 명산지였기에 지명이 유래된 것이라 한다.

주요농산물은 쌀·보리·오이 등이며, 밤과 감의 산출도 많다.

간석지에서는 꼬막·낙지 등이 잡히고, 순천만에서는 전어·조기·문어 등이 잡힌다.

전라선과 17번 국도뿐만 아니라 여수공항이 위치해 교통의 요지이다.

문화재로는 율촌 순찰사비(栗村巡察使碑), 월산리(月山里) 고분군,

산수리성지(山水里城址) 등이 있다.

율촌면 조화리(稠禾里)

전라남도 여수시 율촌면에 있는 리(里)이다.

동쪽으로 바다와 접해있으며 조화간척지가 조성되어 있어 대부분 평지로 이루어져 있다.

자연마을로는 조화, 득실, 윗동네, 아랫마을 등이 있다.

조화는 바다에서 얻어진 수입이 생계유지의 수단은 되었으나 큰 생산은 없었던 시절에,

벼가 장래 주 소득원이 될 큰 생산물이 될 것이라 하여 조화(조밀할 稠, 벼禾)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득실은 국사봉 왼쪽 줄기가 마을을 감싸고 있으며 지형이 마치 바다에 사는 게의 형태라 하여

득실(得實)이라 칭하였다.

윗동네는 전라선이 마을 중앙부를 통과하고 있어 철도 위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북당샘 주위로 윗동네(웃돔)라 불리고 아랫마을(아랫돔)은 철길 아래에 있다 하여 붙여진 명칭이다.

(14:00) 'NH-OIL 농협주유소'를 지나고~

(14:01) '율촌 파출소' 도로 건너편 남파랑길 여수 52코스 안내판이 있는곳이,

남파랑길 51코스 종점이자 52코스 시점이다.

남파랑길 여수 52코스 안내판 바라보고~

오늘 1차로 목표했던 남파랑길 광양 51코스도 무사히 도착했다.

두루누비&트랭글 앱 끄고 남파랑길 광양 51코스를 종료하고~

주변에는 쉴곳이 없어 선채로 물 한잔하고 호흡 조절한후,

남파랑길 여수52코스를 연달아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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