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일자: 2014.4.6
답사코스: 밀양.상동면/고정리.박연정(博淵亭)~모정마을~고답마을/고명학교터.칠성바위~달성서씨재실/경선재
~고답고개~신대구.부산고속도로/고정터널~공동산고개~산외면/남기리.정문마을 정려각(旌閭閣)
거리: 12.4㎞, 5시간 휴식포함/ 널널~
부산역에서 07:45 무궁화호 열차를 타고 08:40 상동역 도착.
09:05 신곡리行 새마을버스를 이용해 고정리 박연정 앞에 도착후 답사준비를 마치고 출발이다.
고정리 모정마을의 박연정(博淵亭) 전경
양무공 박연 김공 공덕비 앞을 지나 모정마을 방향으로 진행한다.
양무공 김태허의 가묘터를 지나고~
모정마을은 다른 이름으로 노진촌(盧津村)으로도 불리는데,
동창천을 일명 “노진강”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 마을의 옛 이름에서 따왔을 정도~
즉, 고정리 전체가 경부선 철도와 신작로가 뚫리기 이전에는 밀양 상동면의 면소재지이자 중심 마을이었다.
모정마을 당산나무
당산나무 앞에서 직진하여 들판길을 걷다 들판 한가운데 사거리에서 좌측 고답마을로 향한다.
고답저수지
작은 연못 가장자리에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가 바로 고답마을 칠성바위 중 하나다.
고답마을에 산재해 있는 북두칠성의 모양을 닮은 칠성바위는 그 기원을 알 수는 없지만
이 마을 사람들 사이에는 소원을 빌면 이뤄진다는 속설이 전해온다고 한다.
오르풀사거리에서 좌회전하여 밀양 출신 독립운동가들의 자취가 배여있는 옛 고명학교 터를 보러 간다.
옛 고명학교 터
옛 고명학교 터는 그냥 평범한 과수원 밭으로 쓸쓸히 방치돼 있을 뿐, 옛 흔적을 찾을 수 없다.
1907년 개교한 이 학교에 다닐 무렵 의협심 강하고 용맹했던 소년 김원봉은 일장기를 변소에 처박아 넣는 등의
기개를 떨쳤다고 전해지는데, 일제 당국은 이 학교를 문제학교로 낙인 찍었고~
결국 개교 14년 만인 1919년 폐교되는 운명을 맞게 된다.
밀양이 낳은 비운의 항일 영웅 약산 김원봉 장군, 그는 누구인가???
그는 일제강점기 일본 경찰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항일무장테러조직인 “의열단(義烈團)”을 결성하고
단장을 맡았던 민족의 영웅이었다.
의열단은 23차례가 넘는 일본 요인 암살 및 주요 기관 폭파 등의 의거를 감행한 극강의 항일투쟁단체로서
나라 잃을 설움에 빠져있던 국민의 타 들어가는 가슴을 적셔주는 단비와 같은 조직이었다.
1945년 해방 후 3개월 만에 그는 대한민국 상해임시정부 군무부장 자격으로 귀국했는데,
(그의 부인이자 부산 동래여고 출신 여성 독립운동가로 유명한 박차정 여사가 1944년 이국땅에서 숨진 지 갓 1년여가 지났을 무렵이다.)
그는 부인 박 여사의 유해를 안고 돌아와 밀양에 묻었다.
그러나 그는 해방 후 돌아온 고국에서 오히려 더 큰 시련과 수모를 겪게 된다.
미국의 비호 아래 이승만이 주도한 남한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하고 이데올로기에 휘둘리지 않는 영세 중립국을 표방하는
남북합작 자주독립국 건설을 주장하면서 우익 세력으로부터 끊임없는 괴롭힘을 당했다.
그가 존경했던 몽양 여운형이 1947년 암살당하는가 하면 그 자신도 친일경찰 출신 경찰에게 붙잡혀 뺨을 맞는 등
수모를 당하고 암살의 위협까지 높아지자 결국 김일성의 초청으로 1948년 평양에서 열린 남북협상회의에
김구, 김규식 등과 함께 참석했다가 혼자만 북에 남았다.
결과적으로 그는 자진 월북한 사람으로 취급됐고 북한 정권 초기 검열상 노동상 최고인민회의 상임위 부위원장 등을
거쳤지만 1958년께 연안파 숙청 당시 함께 숙청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민족의 영웅이었지만 남북 어디에도 환영받지 못했던 비극적 인물 “약산 김 원봉”
그래서 그를 일컬어 "일제강점기 조선이 낳은 최고의 별이자 가장 비극적인 영웅'"이라고 묘사한다.
오르풀사거리로 되돌아나와 좌측 마을로 올라가면 나머지 칠성바위 들이 이곳 저곳에 눈에 띄는데
주택 마당에도 있고 논바닥에도 있다.
고답마을을 지켜주는 당산나무
일명 “뒷말리성” “작은 하늘 방우산” 등으로도 불리는 소천봉 전경
오례산성 전경
철마산, 화악산 전경
마을을 빠져나오는데 특이한 구조의 이층 한옥이 눈길을 끈다.
달성 서씨 재실인 경선재(景先齋)
모정초등학교 교적비
44회 졸업생을 배출하고 도시화에 따른 이농현상의 파도를 넘지 못해 1995년 폐교된 사실을 기록한
이 교적비에 동문들의 안타까움이 절절히 묻어난다.
도로 갈림길에서 좌측 골안마을 방향으로 진행한다.
도로가 뚫리기 전까지 매화리, 신곡리, 고정리, 도곡리 등 상동면 4개리 사람들이
밀양장을 오가던 옛길을 찾아가는 길이다.
골안마을
신대구부산고속도로/ 고정2터널
골안마을 뒤로 산이 그리는 스카이라인이 참 멋있다.
임도를 따르다 은행나무 앞 갈림길에서 우측 묵은 임도를 따라 산으로 올라간다.
양지꽃
세월속에 묻혀있는 고답고개
도로가 뚫리기 전까지는 매화리, 신곡리, 고정리, 도곡리 등 상동면 4개리 사람들이 밀양장을 오가던
옛길의 고개인데 그 동안 사람들이 다니지 않아 상당히 묵어있다.
고답고개를 내려서니 곳곳이 화전민터가 나타나고~
구슬붕이
배수로에서 바라 본 신대구부산고속도의 고정 1터널
볼수바위
가곡리 비암골의 가곡저수지
주변에는 한국전쟁 때까지 비암마을이 있었는데 전쟁 중에 없어지고 지금은 마을 흔적만 남아 있다.
가곡저수지 둑 못미쳐 중간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오르니 온통 꽃길이다.
공동묘지를 지나 운문지맥 마루금에 올라 휴식하다 점심을 해결하고~
각시붓꽃
운문지맥/ 공동산고개
이곳에서 능선길을 버리고 산외면 엄광리로 내려서는 길은 그윽한 숲의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는 호젓한 길이다.
숲을 벗어나자 눈앞이 탁 트이며 엄광리 일대와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보담산, 낙화산, 중산,
석이바위, 꾀꼬리봉 등이 한눈에 들어오고~
엄광리 숲촌 마을
마을 앞 숲이 있다고 해서 붙여진 마을이름이라는데~
산외면 엄광리는 북쪽과 동쪽 서쪽이 모두 산줄기에 싸였고 남쪽만 뚫려 있는 형상인데 숲을 조성하여
나쁜 기가 마을로 들어오는 것을 막고 좋은 기가 마을을 빠져나가는 것을 막고 있다.
100년을 넘게 산 회나무와 단풍나무 등이 숲을 이루고 있는 체육공원 겸 쉼터
고속도로 교각 못 미친 곳에 자리잡은 멋진 소나무 7그루
엄남천
지나온 길을 뒤돌아보고~
엄난천을 좌측에 끼고 둑길을 진행하면 우측으로 운문지맥상의 비학산(317m)이 눈에 들어오고,
운문지맥 산줄기가 끝나는 지점에 장려각이 위치하고 있다.
남기리 남가동 마을회관을 지나고~
운문지맥 산길이 끝나는 곳
임진왜란 당시 왜군들로부터 정절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버린 열부(烈夫) 창녕 장씨 정려각(旌閭閣)
밀성 손씨인 손기후의 처인 장씨는 왜란 당시 친정인 창원에 갔다가 그곳에서 왜군에게 화를 당할 위기에 처하자
창원 월영대에서 뛰어내려 부도를 지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문(旌門)”이라는 동네 이름도 바로 이 정려각에서 비롯된 것이라 한다.
정려각 안내판에는 “밀성손씨교동파문중”이라는 글이 보이는데~
정려(旌閭)란 효자나 열녀, 충신 등의 행적을 높이 기르기 위해 그들이 살던 집 앞에 문(門)을 세우거나
마을 입구에 작은 정각(旌閣)을 세워 기념하는 것인데 교동 앞에 세우지 않고 남기리에 세워는지 의아스럽다.
예전 운문지맥 마루금 진행할 때 비학산에서 정려각까지의 능선에는 많은 묘지들이 보이는데 대부분이
밀양(밀성) 손씨의 묘지 인것으로 기억되는데, 밀양(밀성) 손씨의 선산 아래에 정려각을 세웠다고 보면 될까?
정려각 주위에는 제비꽃이 지천으로 피어있다.
답사 마무리를 하고, 잠시 기다리다 밀양시내버스를 타고 밀양터미널로 이동후,
곧바로 연계되는 부산行 버스를 타고 부산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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