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맥

땅끝기맥12차 (문바위재~땅끝마을)

일자: 2014.11.8

산행코스: (진입:미황사)

문바위재갈림길~떡봉~도솔암~도솔봉~불골이재~마련고개~갈두재~사자봉(땅끝전망대)~땅끝탑~토말(땅끝마을)

인원: 홀로

GPS거리: 16.5km 널널8시간30

 

전날 17시 사상터미널에서 출발하여 순천.벌교.보성.장흥.강진을 지나, 해남에 도착하니 2145분이다.

터미널 근처 식당에서 늦은 저녁을 먹고, 불가마사우나찜질방에서 하루를 마감한다.

 

AM 0530분에 찜질방을 나와 터미널근처 24시편의점에서 컵라면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0610분에 출발하는 땅끝行 직행버스를 타고 산정에 하차후 송지면 개인택시 이용하여 미황사에 도착,

제일먼저 대웅보전에 들러 부처님께 삼배를 올린후, 산행준비를 마치고 출발이다.

 

미황사 일주문(一柱門)

 

불사중인 사천왕문(四天王門)

 

미황사 자하루(紫霞樓)

 

미황사(美黃寺)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서정리에 위치한 전통사찰로

대한불교 조계종 22교구 본사인 대흥사(大興寺)의 말사이다.

우리 나라 육지의 최남단에 있는 절로 749(성덕왕 8) 의조(義照)가 창건하였다.

1597(선조 30) 정유재란으로 소실되자 1598년 만선(晩善)이 중건하였다.

1660(현종 1) 성간(省侃) 3창하였으며, 1751(영조 27) 덕수(德修)가 중건하여

금고각(金鼓閣)을 짓고 대웅전·나한전을 중건하였다.

그 뒤 고승 유일(有一, 17201799)이 주석하였고,

1858(철종 9)에는 의현(義玄, 18161874) 만일회(萬日會)를 열었다.

1996년 만하당을 짓고 누각을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보전· 달마전(達磨殿)· 응진당(應眞堂)· 명부전(冥府殿)·

세심당(洗心堂)· 요사채 등이 있으며, 기타 석조(石槽)· 당간지주(幢竿支柱)·

부도군(浮屠群)· 사적비(事蹟碑) 등의 문화재가 있다.

 

산행들머리

 

가을과 겨울의 문턱에서~

 

 

완만하게 이어지는 등로를 따라 서서히 고도를 올리고~

 

 

 

주능선 오르기전 바위전망대에 도착하니

북평면 월송리 일대와 미황사가 한 눈에 들어온다.

 

진도가 희미하게 조망되고~

 

지난구간 산행마친 문바위재 지난 삼거리에 도착하여

땅끝기맥 마루금잇기 마지막 산행이 시작된다.

 

완도 앞바다의 전경

 

신라시대 해상왕 장보고(張保皐)가 청해진(淸海鎭 : 지금의 완도)을 건설했다.

청해진은 7세기말에서 8세기초에 걸쳐 설치된 군진(軍鎭)의 하나이지만

건설 당초부터 독자적인 성격이 강했다.

그에게 내려진 대사(大使)라는 직명도 다른 군진의 진두(鎭頭)·두상(頭上)

신라의 정규 관직과는 다른 것이었다는 점도 이러한 사실을 말해준다.

청해진이 건설된 뒤 그는 해적을 소탕하여 서남해안의 해상권을 장악했고,

당나라와 일본을 잇는 해상무역로를 통한 무역활동을 주도하기 시작했다.

신라 지배체제의 외곽적 존재로서 해상무역을 통해 일종의 해상왕국을 형성한 그는 당나라에

견당매물사(遣唐賣物使)와 함께 교관선(交關船)이라는 무역선을 보내 교역활동을 했다.

840(문성왕 2)에는 일본에 회역사(廻易使)를 파견하여 서신과 물건을 보냈다.

일본측은 이를 사교(私交)라 하여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무역은 허용했고,

그 사자와 이충(李忠)·양원(楊圓) 등에게 식량을 지급하기도 했다.

또한 그는 무역활동을 통해 확보한 경제력을 배경으로 중국의 산둥 성[山東省]

원덩 현[文登縣] 츠산춘[赤山村]법화원(法華院)이라는 절을 세웠다.

이곳에는 500석을 수확하는 장전(莊田)이 속해 있었는데, 많은 승려가 머물며

정기적으로 법회를 열었고, 청해진과의 연락기관 구실도 했다 (다음 백과사전에서~)

 

정면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오르기 힘든 암봉의 연속이라 우회하는데 등로가 거의 뚝 떨어진다.

 

 

보기좋다.

 

우회한 바위암봉들

 

 

작은 금샘 삼거리

 

산행의 즐거움(1)/ 그런데 얘 이름을 몰라요?

 

밧줄을 잡고 바위지대를 오른다.

 

멋진 암릉구간의 연속~

 

 

 

 

완도 전경

 

완도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김과 다시마의 생산지이며 해남으로 유배왔던

孤山 尹善道의 손길이 남아있는 보길도와 매혹적인 청산도가 있는 곳...

완도가 오늘따라 참으로 여유롭게 보인다.

 

다시 바위지대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지나온 땅끝기맥길(1)

 

말안장 같은 바위에서 추억을 한장 남기고~

 

칼날 능선을 곡예하듯이 지나는데 좀처럼 산행속도가 나지 않는다.

 

지나온 땅끝기맥길(2)

 

만추(1)

 

 

지나온 땅끝기맥길(3)

 

가야할 땅끝기맥길(1)

 

대밭삼거리에 내려서고~

 

배낭을 내리고 나무벤치에 앉아 막걸리 한잔하며 한참을 쉬어간다.

 

대밭삼거리의 명물/ 고인돌처럼 보이는 문바위

 

다시 바위암릉은 이어지고~

 

 

지나온 땅끝기맥길(4)

 

가야할 땅끝기맥길(2)

 

데크목 나무계단길이 시작된다.

 

귀래봉/ ET를 닮은 바위

 

지나온 땅끝기맥길(5)

 

연달아 나타나는 밧줄구간을 내려서고~

 

 

가야할 땅끝기맥길(3)

 

지나온 땅끝기맥길(6)

 

가야할 땅끝기맥길(4)

 

귀래봉을 지난후부터 서서히 등로는 좋아진다.

 

산행의 즐거움(2)

 

하숙골재의 전경

 

가야할 땅끝기맥길(5)

 

지나온 땅끝기맥길(7)

 

우측으로 바라본 장춘리 일대의 전경

 

지나온 땅끝기맥길(8)

 

떡봉 정상부의 전경

 

25000지형도에는 ×422봉으로 표기된 별 특징없는 봉이다.

 

가야할 땅끝기맥길(6)

 

우측으로 진도가 보이고~

 

최근에 개봉된 영화 “명량”...

1,700만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여 한국영화사의 한 획을 그었던

그 명량대첩의 그 장소가 진도대교 아래의 울돌목이다

 

지나온 땅끝기맥길(8)

 

도솔봉으로 가는 능선은 그야말로 바위가 바딱 선 능선의 연속이다.

 

 

지나온 땅끝기맥길(9)

 

가야할 땅끝기맥길(7)/ 이젠 도솔봉도 지척이다.

 

도솔암 갈림길을 만나고, 우측으로 올라간다.

 

도솔암 입구

 

 

도솔암((兜率庵)

 

 

신라시대 의상대사가 창건한 도솔암은 달마산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암자로

원효대사, 서산대사, 사명대사 등 여러 스님들의 기도처로도 사용되었으며

동국여지승람에는‘달마대사의 法身이 늘 상주하는 곳’으로 기록이 되어있는 곳이다.

깍아지른듯한 암릉사이에 아슬아슬하게 자리잡은, 마치 제비집을 연상케 하는 도솔암

미황사의 12번째 부속 암자로 해남 8경중에서도 가장 으뜸이라는 도솔암의 풍광은

남도의 금강산인 달마산에 핀 연꽃이란 수식어가 붙는다.

최근 TV드라마 ‘추노’ ‘각시탈’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 가 촬영된 장소로 알려지면서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탄 암자이기도 하다.

 

도솔암에 들리니 신도 1명이 예불을 올리고 있어 방해가 될까봐 법당내로 못 들어가고

마당에서 부처님께 저두삼배의 예를 올린다.

 

도솔암에서 바라본 삼성각과 주위전경

 

삼성각 전경

 

이곳에서 50m 정도를 내려가면 바위틈에 용담(龍潭)이라는 샘이 있는데,

이 샘은 굴 천정에 드러난 물길에서 물이 굴 바닥에 떨어져 바닥에 샘이 생겼다 한다.

또한 이 굴은 ‘용굴’이라고도 하는데 옛날 이 굴에서 2마리의 용이 나와 승천했다고 한다.

그당시 바위 앞에서 용이 입을 벌려 바위가 뚫리고 용이 뿔로 받아 구멍이 생겼다고 하며,

용담물이 가끔 누런빛을 띄는데 이는 하늘로 올라간 황룡이 아쉬움에

자신의 몸에서 난 가루를 샘의 벽에 묻어두고 갔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용담아래 마봉마을 사람들에 의하면 용굴은 그 깊이를 알 수 없어

굴에서 떨어뜨린 고무신이 진도 앞바다에 나타난다고 한다는 전설이 있다.

 

삼성각 앞마당에서 추억을 한장 남기고~

 

도솔암 갈림길로 되돌아가면서 바라본 도솔암의 전경

 

도솔암 주위 전경

 

 

이정표가 있는 갈림길에서 좌측 능선으로 올라서니 이곳은 잡목이 너무 우거져

진행할 엄두가 나질 않아 되돌아나와 편한 길 따라 도솔암 주차장으로 향한다.

 

주위의 멋진 바위암봉

 

도솔암주차장 위쪽은 군부대 정문 앞이고,

몇걸음 내려가다 이곳에서 도로를 버리고 우측 산으로 올라간다.

 

뒤돌아본 도솔봉 정상부의 전경

 

도솔봉(418.2m)

전남 해남군 송지면에 있으며 달마산 5봉중에 가장 마지막에 있는 봉우리로

정상은 군부대가 자리잡고 있다

 

도솔(兜率) 도솔천에서 유래하면 범어(梵語) 듀스타(Tusita)의 음역으로서,

의역하여 지족천(知足天)이라고 한다.

, 이곳에 사는 무리들은 오욕(五欲)을 만족하고 있음을 뜻한다.

불교에서는 세계의 중심에 수미산(須彌山)이 있고, 그 산의 꼭대기에서

12만 유순(由旬) 위에 있는 욕계(欲界) 6천 중 제4천인 도솔천이 있다고 한다.

도솔천은 내원(內院)과 외원(外院)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외원은 수많은 천인들이 즐거움을 누리는 곳이고,

내원은 미륵보살의 정토로서 내원궁(內院宮)이라고 부른다.

이 내원궁은 석가모니가 인도에 태어나기 직전까지 머무르면서

중생교화를 위한 하생(下生)의 때를 기다렸던 곳이다.

미래불(未來佛)인 미륵보살은 현재 이 내원궁에서 설법하면서

남섬부주(南贍部洲)에 하생하여 성불(成佛)할 때를 기다리고 있다.

따라서 도솔천은 미륵보살 정토(淨土)로서, 정토신앙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러한 미륵보살 신앙은 우리나라 불교역사에서 삼국시대에 크게 융성하였다.

신라시대 원효는 도솔천에서 왕생할수 있는 수행방법을 제시하였고

특히 백제 무왕은 미륵보살이 인간세상에 하생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익산에 미륵사(彌勒寺)를 세웠다고 전한다.

 

도솔봉 정상석이 있는 봉에 오르고~

 

추억을 한장 남긴다.

 

윤도산(284m)으로 내려가는 능선

 

가야할 땅끝기맥길(8)/ 땅끝기맥상의 마지막 잡목구간이 시작된다.

 

가지말라고 붙잡고 늘어지는 지긋지긋한 넘들~

 

 

포장도로로 내려서고~

 

좌측아래로 통호리 일대가 잘 조망된다.

 

갈림길을 만나고, 좌측으로 땅끝기맥길과 삼남길이 같이 이어진다.

 

 

삼남길이란?

해남 땅끝마을 해안에서 시작하여 강진, 나주, 광주, 장성을 지나 전북 정읍, 완주, 익산,

충남 논산, 공주, 천안, 경기 평택, 수원을 거쳐 과천 남태령을 넘어서 남대문까지

천리가 넘는 트레일 워킹코스로 조선시대 10대 대로(大路)중 우리나라에서 최장거리

도보코스이며 이 길을 통해서 관리들은 임지로 파견하고 진상품을 이동했으며

과거를 보러가는 선비나 장사를 보부상들도 이 길을 걸었으며 또 제주도나 남도지방으로

유배를 왔던 선비들이 걷던 길이다.

 

이제부터 조은길이 시작되는데, 날씨가 심술을 부리는지 이슬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불골이재 전경

 

지나온 땅끝기맥길(10)

 

그러나 가야할 길은 아직도 멀기만 하다.

 

그렇게 몇 개의 봉우리를 지나고~

등산로 팻말이 깨진 곳에서 임도 같은 편한길을 버리고 우측 능선으로 들어선다.

 

희미한 등로를 따라 잡목을 뚫고 내려서서 南平文公과 부인 竹山安氏의 묘지를 지나고,

다시 무명 묘 2기를 지나 묘지로 들어오는 길을 따라 내려서서

조금전에 헤어졌던 편안한 길을 만나고, 이제부터 조은길이 계속 된다.

 

등로좌우로 자주 나타나는 단풍이 그나마 위안이다.

 

 

 

갑자기 좌측으로 조망이 확 트이며 시원한 바다가 유혹하는데~

해남 앞바다가 참 깨끗하게 보인다.

 

그늘이 진다고 그랬는지 나무위를 삭뚝 잘라버린 묘지를 지나는데,

그렇게 보기가 좋지는 않다.

 

묘지가 참 넓다.

 

넓은 억새밭이 나타나고, 이곳이 지도상 헬기장이다.

 

앞에 보이는 시멘트 도로 위에 있는 봉우리가 232봉이다

 

산행의 즐거움

 

마련고개 전경

 

해남군 송지면 송호리와 통호리 넓골마을을 연결하는 고개다.

 

시멘트길을 따라 오르니 등로좌우로 단풍이 절정이다.

 

 

올라서니 운동장 넓이만한 묘터가 있는데 거의 왕릉수준의 김해김공 가족묘다.

이곳 사람들의 조상들에 대한 禮敬... 참으로 존경스럽다.

 

225.4봉에 오르고, 삼각점을 찾아보지만 어디에 있는지 보이지않는다.

 

지나온 땅끝기맥길(11)

 

225.4 봉에서 서쪽으로 내려서면서 밀양박공묘를 좌측으로 휘돌면 방향이

북쪽으로 향하는데, 우측으로 임도수준의 길을 내려가니 시멘트 포장길이 나온다.

좌측 능선이 마루금 인데 다리도 아프고, 피로도 몰려와 그대로 길 따라 내려가다가 좌측 산길로 든다.

 

가을의 절정이다.

 

 

 

전주이씨 묘지를 지나고~

묘지의 특징은 제주도 묘지에서나 볼 수 있는 돌담을 쌓아놓은 것이 퍽 이채롭다.

 

저멀리 사자봉 정상에 있는 돌고래 형상의 땅끝전망대가 보이기 시작한다.

 

진행하다보니 똑같은 장소에 2개의 이정표가 있는데 삼남길의 이정표는 해남 땅끝까지

2.78km이고 해남군에서 설치한 이정표는 4km라고 표기를 해놓았는데 어느것이 맞는지

 

그렇게 능선에 오르니 바위너덜지대가 나오는데~

지도상에는 이곳이 언제나봉으로 표기가 되어있다.

 

조금 내려서니 순찰사를 지낸 洪川龍公과 配부인 江陵劉氏와 海南尹氏의 호화로운 묘지가 나온다.

죽어서도 부인 2명과 같이 있으니 참으로 부럽다.

 

묘지로 이어지는 포장도로를 따라 조금 내려가면 등로는 좌측으로 이어진다.

 

호젓한 등로를 따르다 160봉을 넘고 내려서니 77번국도가 지나가는 갈두재다.

 

갈두재(葛頭峙)

전남 해남군 송지면 송호리의 송호(松湖)해수욕장과 갈두(葛頭)리 사이를 잇는 고개인데,

우리나라 최남단을 통과하는 77번 국도가 지나가고 최근에 설치한듯한 구름다리가 있고

우측으로는 해남땅끝테마호텔이 자리를 잡고 있다.

 

구름다리를 건너 좌측으로 진행하여 호텔 마당으로 들어서고~

 

호텔마당 끝으로 가면 산책로라는 표지판이 산길을 알려준다.

 

산책로를 잠시 따르다 좌측으로 오르니 호화묘지와 사각정자가 나오고~

 

데크목 계단을 따라 오른다.

 

망집봉(168m)

 

 

해남군 송지면 송호리와 갈두리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정상에는 멋있는 팔각정자가 있다.

 

지나온 땅끝기맥길(12)

 

이제 사자봉도 지척이다.

 

데크목 계단을 따라 내려선다.

 

쉼터를 지나고~

 

등로 좌우로 간간히 나타나는 이넘이 그나마 산행후반부의 피로를 풀어준다.

 

땅끝탑 갈림길

 

이곳에서 우측으로 가면 땅끝탑이 나오고, 직진으로 가면 마지막 봉우리인 사자산 방향이다

 

사자산 주차장

 

주차장에서 우측 산책로는 현재 출입금지구역이라~

좌측아래에 있는 산책로를 따라 땅끝전망대로 진행한다.

 

 

사자산(獅子山:156.2m) 땅끝전망대

 

전남 해남군 송지면 갈두리에 있는 산으로 우리나라 최남단에 위치하며

예전에는 칡이 많이 난다고 해서 갈두산(葛頭山)이라고 불렸는데,

현재 정상부는 땅끝 전망대로 인해 산 전체가 공원화 되어버렸다.

 

동쪽으로 장흥 천관산, 완도 상황봉, 백일도, 청산도가 보이고~

서쪽으로는 진도 첨찰산, 남쪽으로는 흑일도, 노화도, 보길도, 추자군도가 보인다는데~

지금의 날씨는 비도 내리고, 흐려서 조망 꽝이다.

 

통나무 계단길 따라 한참 내려가니 길이 갈라지는데 좌측으로 땅끝마을을 가리킨다.

땅끝탑 까지 갔다가 다시 올라와서 땅끝마을로 내려가면 되겠다.

 

땅끝탑(土末塔) 전경

 

땅끝 끝자락 토말탑이 있는 바닷가 갯바위가 위도상으로 34 17 21초로 더 이상 갈곳이 없다

우리 선조들은 이곳을 땅끝 또는 ‘흙 토()’ ‘끝 말()’을 토말이라 하였는데

행정구역상으로는 전남 해남군 송지면 갈두리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 만국 경.위도에서는 우리나라 전도 남쪽의 깃점을 이곳 땅끝 해남현을 잡고

북으로는 함경북도 온성부에 이른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육당 최남선의 “조선상식문답”에서는 해남 땅끝에서 서울까지 천리, 서울에서 함경북도

온성까지 이천리를 잡아 우리나라를 삼천리 금수강산이라고 하였다.

 

추억을 남기고~

 

땅끝 뱃머리?

 

보길도가 흐릿하게 보인다.

 

땅끝은 우리나라 육지부의 최남단(最南端)이다.

산줄기를 타면서 나라의 동단(東端)인 호미곶, 서단(西端)인 안흥진에 이어

남단까지 찍었다는 의미도 함께 남긴다.

 

한참을 휴식하다 땅끝마을로 이어지는 길따라 진행하고~

 

땅끝 모노레일

 

땅끝마을 유래 안내판

 

땅끝마을 앞 바다에 있는 맴섬 전경

 

땅끝마을 앞 갈두항 옆에는 조그만 섬이 두개 나란히 있는데,

한 쌍의 매미처럼 보인다고 해서 맴섬이라고 불린다고 한다.

 

형제섬

 

땅끝마을이 있는 해남군 송지면 갈두리는 원래 마을 이름은 더 이상 갈 수 없다라는 뜻의

갈수리(葛水里)였는데 물이 귀한 해안지방에서는 좋지 않은 이름이라 하여 갈두리로 바꿔 불렸다.

우리나라 행정구역상의 최남단은 마라도이지만 육지의 최남단은 바로 이곳이다.

 

 

그러나 예전의 호젓한 분위기와는 달리 지금의 땅끝마을은 모텔과 식당이 빽빽한 관광지로 바뀌고 말았다.

 

차 시간이 남아 땅끝희망공원을 다 둘러보고~

 

 

 

 

 

금호고속 직행버스를 타고 해남읍내로 나가 어제 묵은곳에서 하루를 더 유한다.